7화(5,023자) · 차민 · 10월 16일

팔백팔십일 번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아버지.

어제 목요일, 시월 십오일 저녁에 어머니 집에 갔습니다. 4동 오 층 가운데. 식당이 쉬는 날이라 어머니는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간다고 하자 어머니는 뭘 먹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거나요,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고 했습니다. 십칠 년 동안 매주 통화하면서 한 번도 안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 둘 다 그 말에서 조금 웃었습니다.

현관을 열자 된장 냄새가 났습니다. 어머니 된장은 시어서 냄새가 멀리 갑니다. 복도 끝까지. 된장을 직접 담그십니다. 해마다 시월 초에 메주를 띄워서, 베란다 항아리 두 개에. 그 항아리도 십칠 년 동안 한 번도 안 바뀌었습니다. 3동 507호 앞 난간에서 이 창을 보던 사람이 이 냄새까지 맡았을 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생각을 했습니다.

부엌은 좁습니다. 식탁 하나에 의자 셋. 셋째 의자는 십칠 년 동안 아무도 안 앉았습니다. 벽에 붙여 두고 그 위에 신문을 쌓아 둡니다. 어제도 신문이 쌓여 있었습니다. 제가 가방을 둘 데를 찾자 어머니가 그 신문 더미를 들어 베란다에 내놓았습니다. 신문 밑 의자 방석에 네모난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햇빛을 안 받은 자리만 색이 진했습니다. 저는 그 의자에 가방을 올려놓았습니다. 앉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 편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월 십칠일. 일곱 시. 방석. 삼분의 일짜리 금. 열한 시까지 4동 창을 봤다는 것. 불이 꺼져 있었다는 것.

어머니가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이모가 쓰러졌어. 그날 오후 네 시에. 뇌졸중. 병원에서 밤새웠어. 집에 불이 꺼져 있었던 건 집에 아무도 없어서야.”

“전화는요.”

“했어. 새벽 한 시에. 안 받더라. 다음 날 걸었더니 없는 번호래.”

아버지는 그날 밤 짐을 싸서 새벽 첫차를 타셨습니다. 휴대폰은 음성에서 새로 하셨겠지요. 어머니 전화가 새벽 한 시에 울렸을 때 아버지는 짐을 다 싸고 불 꺼진 507호에 앉아 계셨을 겁니다. 그 전화기는 가방 어디에 들어 있었을까요. 소리를 꺼 두셨을까요. 저는 그걸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따질 사람이 없습니다. 두 사람 다 그날 밤 할 수 있는 걸 했습니다.

그다음에 저는 제가 준비한 말을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준비한 말이었습니다.

“엄마, 왜 일곱 번이에요.”

“허락이 일곱 번 났다고 했잖아.”

“그 말 말고요. 왜 저한테 한 번도 같이 가자고 안 했어요.”

어머니가 저를 봤습니다. 오래.

“너는 한 번도 가겠다고 안 했어.”

“엄마가 안 물어봤잖아요.”

“물어봤어. 너 스무 살 때. 군대 가기 전날. 너 기억 안 나지.”

저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너 그때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어. 문 앞에서 물었어. 아빠 보러 갈래. 너는 대답 대신 음악을 크게 틀었어. 그다음부터 안 물었어.”

어머니 말투가 날카로워졌습니다.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부엌을 채웠습니다. 불을 끄지 않은 채였습니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민아.”

어머니가 일어나서 불을 껐습니다. 그러고는 안방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손에 비닐 파일 하나를 들고. 반투명 파일. 안에 종이가 두껍게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걸 식탁에 놓았습니다. 제 앞에.

면회 신청서 사본이었습니다. 교도소 민원실에서 주는 영수증 같은 종이. 날짜와 면회 대상자 이름과 결과 칸. 결과 칸에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거의 전부 같은 도장이었습니다. 수용자 거부.

“목요일마다 갔어. 식당 쉬는 날마다. 버스 세 번 갈아타고. 정문 앞에서 신청하면 안에서 물어봐. 면회 받겠냐고. 그 사람이 안 받는다고 하면 이 도장이 찍혀서 나와. 그럼 정문 앞 분식집에서 라면 먹고 돌아왔어. 처음엔 이천오백 원이었어. 나올 때쯤엔 사천오백 원. 라면 값 오르는 걸로 해가 가는 걸 알았어.”

저는 파일을 넘겼습니다. 넘기고 또 넘겼습니다. 종이가 얇아서 넘길 때마다 서로 달라붙었습니다. 침을 묻혀 넘겼습니다. 종이에서 오래된 복사지 냄새가 났습니다. 잉크가 날아간 냄새.

“몇 번이에요.”

“세 봐.”

저는 셌습니다. 관리원은 셀 수 있는 건 셉니다.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식은 찌개를 다시 데웠다가, 또 식게 두었다가, 또 데웠습니다.

팔백팔십일 번이었습니다. 팔백팔십일 번 가서, 일곱 번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 숫자를 두 번 셌습니다. 두 번 다 같았습니다. 세고 나서 손바닥을 봤습니다. 복사지 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습니다. 흑연처럼 식용유로 빠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털면 떨어졌습니다. 털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머니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어머니가 화면을 보고 받았습니다. 반장 아줌마였습니다. 스피커가 아니었는데도 목소리가 부엌까지 들렸습니다. 금순 씨 청원 서명 아직 안 했지, 오늘 마감 전에 해 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 오늘 쉬는 날이야. 그러고는 끊었습니다. 반장 아줌마가 뭐라고 더 하는 중이었는데.

“일곱 번은 그 사람이 정한 거야.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파일에서 일곱 장을 뽑았습니다. 결과 칸에 다른 도장이 찍힌 종이. 면회 실시. 어머니는 그 일곱 장을 날짜순으로 식탁 위에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507호 몰딩 틈에서 꺼낸 종이와 같은 날짜였습니다.

“이천구 년 십일월. 네가 대학 붙었을 때. 수시 발표 난 다음 목요일. 내가 편지로 썼어. 민이 붙었다고. 그다음 목요일에 가니까 처음으로 받더라. 유리 너머에서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물은 게 무슨 과냐였어.”

어머니가 두 번째 종이를 짚었습니다.

“이천십 년 사월. 너 입대한 주. 사진을 가져갔어. 훈련소 들어가기 전날 머리 깎고 찍은 거. 유리에 대고 보여 줬어.”

세 번째. 이천십이 년 이월. 전역. 네 번째. 이천십오 년 삼월. 제가 3동 관리원으로 들어간 주. 다섯 번째. 이천십팔 년 시월. 외할머니 장례 치른 주. 여섯 번째. 이천이십이 년 유월. 어머니 수술하고 퇴원한 주. 그건 그 사람이 먼저 편지로 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이천이십오 년 십이월. 제가 관리소에서 십 년 근속 표창을 받은 주. 저는 그 표창장을 관리소 서랍에 넣어 두고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장이 어머니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가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소장한테 사진을 한 장 얻었습니다. 표창 받는 날 관리소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그 사람은 네 소식이 있을 때만 받았어. 네 사진 들고 올 때만.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하고 내가 아팠을 때만 빼고.”

“면회실에서 그 사람이 뭐 했는지 알아? 사진을 유리에 대면 그 사람이 손바닥을 유리에 댔어. 네 얼굴 크기만큼. 딱 덮이게. 쓰다듬는 게 아니라 그냥 덮고 있었어. 십 분 면회에 칠 분을 그러고 있었어. 말은 삼 분 했어. 무슨 과냐, 어디 부대냐, 월급은 나오냐. 그게 다야.”

어머니는 손바닥을 식탁에 대 보였습니다. 식탁 위 제 앞, 신청서 일곱 장 옆에. 손등의 데인 자국 여섯 개가 형광등 아래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다방에서 세었다는 그 여섯 개.

저는 일곱 장을 봤습니다. 벽의 붉은 금 일곱 개가 이 종이 일곱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다섯은 저였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 유리 앞에 가지 않았는데, 저는 그 벽에 다섯 번 붉게 그어져 있었습니다.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네가 안 물어봤잖아.”

어머니가 방금 제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줬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 집은 십칠 년 동안 서로 안 묻는 걸로 살았습니다. 안 물으면 대답할 일이 없으니까. 대답할 일이 없으면 울 일도 없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어머니가 파일을 닫았습니다.

“2동 표씨네 엄마. 윤미숙 씨. 나 알아.”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시장 생선 가게에서 십오 년을 같이 줄 섰어. 목요일마다. 그 사람도 목요일에 장 봐. 처음엔 몰랐어. 이천십일 년에 그 집이 2동으로 이사 오고 나서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말해 줬어. 저 사람이 그 집이라고. 그 뒤로 십오 년 동안 목요일마다 같은 줄에 섰어. 한 번도 말 안 했어. 그 사람도 나 알아. 알면서 한 번도 줄을 바꾸지 않았어. 나도 안 바꿨어.”

“왜요.”

“몰라. 줄을 바꾸면 우리가 뭘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 사람도 그랬을 거야.”

“칠월에 다방에서 만났을 때, 그 사람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어. 연필 쥐는 자리. 그렇게 두꺼운 굳은살은 처음 봤어. 뭘 그렇게 썼냐고 물을까 하다가 안 물었어. 노른자만 건네줬어. 그 사람 노른자 좋아했거든.”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찌개를 떠 줬습니다. 네 번 데운 찌개. 짰습니다. 된장이 졸아서. 저는 다 먹었습니다.

집을 나오기 전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냐고. 저는 시장 뒤 고시원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집에서 걸어서 칠 분.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등을 보이고. 그러다 물 소리 사이로 한 마디 했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회의, 나도 갈 거야.”

“엄마.”

“청원 명단에 우리 동 사람들 이름 많더라. 나한테도 서명하라고 왔었어. 반장 아줌마가. 모르고. 나는 안 했어. 그 사람들은 내가 왜 안 하는지 몰라.”

어머니 집을 나와 시장 쪽으로 돌아서 왔습니다. 생선 가게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셔터 앞 바닥이 젖어 있었습니다. 얼음 녹은 물. 비린내가 골목에 남아 있었습니다. 목요일마다 두 사람이 십오 년 동안 말없이 섰던 줄. 저는 그 셔터 앞에 잠깐 섰습니다. 고시원은 그 골목 끝에 있었습니다. 삼 층 끝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저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남궁 주무관 말을 아버지만 들으라는 법은 없어서요.

아버지.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제 앞에 봉투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507호 벽에서 오려 낸 여덟 조각. 하나는 어머니가 저한테 준 면회 신청서 일곱 장. 붉은 금 일곱 개와 종이 일곱 장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날짜가 하나도 안 틀립니다.

여덟 번째 조각은 짝이 없습니다. 그날은 신청서가 없으니까요. 교도소가 아니라 507호였으니까요. 짝 없는 그 조각은 봉투 맨 앞에 넣어 두었습니다. 꺼낼 때 제일 먼저 손에 닿게.

회의는 이십이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단지 관리동 이 층 회의실입니다. 남궁 주무관 말대로 오지 마십시오. 대신 제가 갑니다. 어머니도요.

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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