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13자) · 아버지 · 10월 13일

우유 투입구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민아.

나는 새길동 시장 뒤 고시원에 있다. 삼 층 끝방. 이름은 새길 고시텔이다. 방은 한 평 반이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창문을 열면 시장 뒷골목이 보이고, 생선 가게 얼음 녹은 물 냄새가 올라온다. 복도에서는 라면 냄새와 락스 냄새가 번갈아 난다. 저녁에는 라면, 아침에는 락스. 총무가 아침마다 복도를 닦는다. 교도소 냄새와 제일 비슷한 곳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됐다.

옆방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청년이다. 벽이 얇아서 밤마다 그 청년이 한국사 연표를 외우는 소리가 들린다. 임진왜란 천오백구십이, 병자호란 천육백삼십육. 나는 그 청년 덕에 조선 임금 순서를 다시 외웠다. 첫날 밤 청년이 복도에서 나한테 물었다. 아저씨도 시험 보세요?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여기 왜 계세요? 나는 가까워서라고 했다. 청년은 뭐가 가까운지 묻지 않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총무는 예순 넘은 사람인데 내 신분증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열쇠를 줬다. 알아본 것 같았다. 넉 달 동안 새길동 게시판에 내 얼굴이 붙어 있었으니까.

수요일, 시월 칠일에 들어왔다. 네가 벽을 뜯은 날 아침에 나는 이 방에 있었다. 일곱 시에서 열한 시 사이. 그 네 시간 동안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3동은 여기서 안 보인다. 안 보이는 데서 앉아 있었다. 네가 한 폭씩 떼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리는 없다. 그래도 귀가 3동 쪽으로 가 있었다. 열한 시에 시장 스피커에서 정오 알림 음악이 미리 한 번 나왔다. 시험 방송이라고 했다. 그걸 신호로 일어났다.

정류장에는 안 갔다. 네가 새벽에 가 봤다고 썼지. 거기 안 갔다. 이제 안 간다. 넉 달 동안 간 것으로 됐다. 그리고 표지훈 씨가 청원을 받고 있다. 내가 단지 근처에서 한 번이라도 보이면 그 사람 청원에 한 줄이 는다. 너한테도 한 줄이 는다. 네 어머니한테도.

그런데 한 번 갔다. 그 이야기를 쓴다. 너한테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저께 일요일, 시월 십일일 저녁 여덟 시에 나는 2동에 갔다. 가기 전에 면도를 했다. 고시원 공용 세면대 거울 앞에서. 셔츠를 하나 있는 것으로 갈아입었다. 출소할 때 영치품으로 받은, 십칠 년 전에 입고 들어간 셔츠다. 목둘레가 헐렁해졌다. 스킨은 옆방 청년 것을 빌렸다. 청년이 누구 만나러 가시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맙다고 했다. 스킨 냄새가 너무 셌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 냄새가 나를 따라왔다.

주머니에 봉투를 넣고 갔다. 음성 정문 앞 아스팔트에 떨어졌던 그 봉투. 한쪽이 눌어 있는 것. 구월분이다. 이백다섯 번째. 나는 그걸 우편으로 다시 보낼까 하다가, 그러면 또 우편함에서 그 부인이 내 글씨를 볼 것 같아서, 차라리 문 앞에 두고 오자고 생각했다. 문 앞에 두면 그 부인 말고 아들이 먼저 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이미 내 글씨를 봤으니까.

그건 핑계다. 나는 그 집 문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십칠 년 동안 봉투에 적은 주소가 어떤 문인지.

2동은 3동과 똑같이 생겼다. 복도식 오 층. 계단을 올라가며 층마다 멈췄다. 숨이 차서가 아니다. 삼 층에 가까워질수록 다리가 안 올라갔다. 삼 층 복도 끝 집. 308호. 문 옆에 작은 화분이 하나 있었다. 카네이션은 아니었다. 고무나무. 잎을 닦아 놨는지 복도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문에는 우유 투입구가 있었다. 요즘 누가 우유를 받나 싶은 작은 구멍. 거기 봉투를 넣으려고 몸을 숙였다.

문이 열렸다.

표지훈 씨였다. 반팔에 운동복 바지. 손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었다. 버리러 나오던 참이었다. 우리는 문 하나 너비를 두고 섰다. 나는 허리를 숙인 채였다. 봉투를 우유 투입구에 반쯤 넣은 채로.

그 사람이 쓰레기봉투를 놓았다. 바닥에 털썩. 그러고는 내 멱살을 잡았다. 한 손으로. 나는 예순넷이고 그 사람은 스물아홉이다. 그 사람 손에 들려 내가 반쯤 섰다. 등이 복도 난간에 닿았다. 난간 너머는 삼 층 아래다. 나는 그걸 알았다. 그 사람도 알았을 것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 사람 목소리는 낮았다. 문 안쪽을 신경 쓰는 목소리였다. 안에 어머니가 계셨다.

“봉투만 두고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 엄마 앞에 한 번만 더 서면.”

그 사람은 그다음 말을 하지 않았다. 멱살 잡은 손이 떨렸다. 화가 나서 떠는 게 아니었다. 힘을 주지 않으려고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목으로 느꼈다. 그 사람 손에서 쓰레기봉투 냄새가 났다. 생선 뼈와 귤껍질. 저녁을 먹은 집의 냄새. 그 집은 저녁을 먹었다. 그게 그날 밤 제일 오래 남은 생각이다.

그때 문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지훈아.”

여자 목소리였다. 부엌 쪽에서. 문으로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불렀다.

“들어와.”

그 사람 손이 멈췄다. 떨림도 멈췄다. 그 사람은 문 안쪽을 봤다. 나는 안을 못 봤다. 그 사람 어깨 너머로 신발장과 현관 매트만 보였다. 매트에 운동화 두 켤레. 큰 것과 작은 것. 작은 것은 여자 운동화였다. 뒤축이 꺾여 있었다. 오래 신은 것이다.

“들어와. 쓰레기는 내일 버려.”

그 부인은 그 말만 했다. 나한테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내가 거기 있는 걸 알았을 것이다. 우유 투입구에 반쯤 걸린 봉투를 봤을지도 모른다. 문 안쪽에서 그 구멍이 보이니까. 그래도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나오지도 않았다. 그게 그 부인의 대답이다. 십칠 년 동안의 대답과 같은 대답.

표지훈 씨가 손을 놓았다. 나는 난간에서 등을 뗐다. 그 사람은 우유 투입구에서 봉투를 뽑았다. 내 가슴팍에 도로 넣었다. 셔츠 주머니에. 그러고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에 말했다.

“관리원님이 한 통 열었어요. 아니, 내가 열었어요. 분식집에서.”

문이 닫혔다. 잠기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보조 잠금까지.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삼 층에서 일 층까지. 올라갈 때보다 빨랐다. 셔츠 주머니 속 봉투가 가슴에서 바스락거렸다. 스킨 냄새가 계단참마다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1층 현관을 나와서 2동 앞 화단에 앉았다.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그 사람이 3동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네가 썼지. 나는 2동 앞에서 담배를 안 피우기로 했다. 이유는 모른다.

열한 시까지 화단에 앉아 있었다. 308호 창은 복도 반대쪽이라 안 보였다. 대신 복도 끝 현관등이 보였다. 열 시 반에 누가 나와서 현관등 옆에 쓰레기봉투를 내놓았다. 그 사람이었다. 내일 버리라던 쓰레기를 그날 밤 내놓았다. 그러고는 복도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나를 봤는지 모른다. 나는 화단 그늘에 있었다. 그 사람 담뱃불이 세 번 밝아졌다가 꺼졌다. 그 사람이 들어가고 나서 나도 일어났다.

민아. 네가 소식지 이야기를 썼지. 부고와 분리수거 공지가 한 쪽에 나란히 있었다고. 나는 그 소식지를 못 봤다. 그 사람 장례가 언제였는지도 재판 때 처음 알았다. 오월 십일. 나는 그날 구치소에서 세 번째 금을 그었다. 그 사람이 땅에 들어간 날을 나는 벽에 세 번째 줄로 적었다. 그날의 줄이 다른 줄보다 길었는지 짧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물었다. 이백네 통에 다 그 세 줄이 들어 있느냐고. 아니다.

첫 번째만 세 줄이다. 그다음부터는 날마다 다른 말이다. 두 개만 옮긴다. 나머지는 그 사람이 열면 그 사람이 읽을 것이다.

천백스무 날째. 목공반에서 처음으로 의자를 하나 다 짰습니다. 다리 길이가 안 맞아 흔들립니다. 상근 씨 아들이 이제 열네 살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의자를 짜는 데 몇 해가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삼천사백마흔네 날째. 오늘 면회가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왔습니다. 그 집 아들도 누가 면회를 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래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통이니 한 달 중 하루를 골라 그날 있었던 일을 한 줄 적었다. 그리고 날수를 적었다. 내 날수와 상근 씨가 못 산 날수. 두 숫자는 늘 같다. 그 사람이 음성 정문에서 말했지. 당신 날짜만 세는 거 아니냐고. 우리 아버지 날짜는 누가 세냐고.

내가 셌다. 벽에 그은 검은 금 육천이백여덟 개는 내가 산 날이면서 상근 씨가 못 산 날이다. 한 줄에 두 사람이다. 나는 그걸 그 사람한테 보여 주려고 507호 벽에 다 옮겼다. 교도소 벽은 두 해마다 칠해져 지워졌으니까. 한 번도 안 지워진 벽을 그 사람이 한 번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네가 물은 나머지 반이다. 누구 보라고 그렸느냐. 네 어머니 보라고, 그리고 표지훈 씨 보라고.

그 사람은 벽을 못 봤다. 네가 막았다. 네가 옳았다. 그 사람이 그 벽을 사진으로 찍어 게시판에 붙였으면, 거기 붙은 건 살인자가 넉 달 동안 한 짓이 됐을 것이다. 한 줄에 두 사람이라는 건 벽에 안 적혀 있다. 그건 봉투 안에 있다.

그 사람은 이제 한 통을 열었다. 남은 게 이백세 통이다. 이백네 통 중에서.

나는 기다린다. 이백세 통을 그 사람이 여는지 안 여는지. 여는 건 그 사람 몫이다. 내가 문 앞에 가서 열어 달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걸 그저께 멱살을 잡히고서야 알았다.

셔츠 주머니의 봉투는 아직 여기 있다. 이백다섯 번째. 구월분. 그 안에 쓴 줄은 이렇다. 네가 보라고 옮겨 적는다. 음성에서 썼다.

오늘로 육천삼백사십오 일째입니다. 상근 씨가 못 산 날도 육천삼백사십오 일째입니다. 오늘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왔습니다.

그 편지는 그 뒤로 왔다. 이제 이 줄은 틀렸다. 틀린 줄을 그 부인 집에 넣을 수는 없다. 이 봉투는 다시 쓰겠다.

남궁 주무관이 오늘 왔다. 이 편지를 가져간다. 주무관이 한 가지 말했다. 이십이일 목요일 주민 회의 전까지 단지 쪽에 나타나지 말라고. 청원에 한 줄이라도 안 붙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주무관이 한 가지를 더 말했다. 회의 날 구청에서 자기가 간다고. 지원주택 담당으로. 발언권이 있다고.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모른다고. 규정에 없는 말은 안 된다고 적혀 있지 않으면 해도 된다고.

그 사람은 늘 그렇게 말한다. 주무관은 이 편지를 받아 가방에 넣으면서 복도 락스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 여기 오래 계실 거 아니죠, 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래라는 게 며칠인지 나는 이제 셀 줄을 모른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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