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79자) · 차민 · 10월 9일

이백네 통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아버지.

뜯었습니다. 시월 팔일 목요일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해서 열한 시에 끝났습니다.

편지는 수요일 밤에 받았습니다. 남궁 주무관이 관리소 앞 벤치에서 이번에도 기다렸다가 건넸습니다. 버스 안에서 쓴 거라 풀을 안 붙였다고, 자기도 안 읽었다고 했습니다. 버스에서 쓰셨다는 그 편지. 글씨가 정말 흔들렸습니다. 어떤 줄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왔습니다. 과속 방지턱을 넘은 자리 같았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507호 바닥에 앉아서 읽었습니다. 벽 앞에서. 마지막으로 벽 앞에서 읽을 수 있는 편지였으니까요. 공구함이라는 단어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카네이션 두 개에서 또 멈췄습니다. 어버이날과 생일이 같은 날인 아이에서 편지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다시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쓰지 않는다고 하신 그 부분을 저는 목요일 아침에 알았습니다. 도배 자재를 받으러 관리소 창고에 갔다가, 창고 선반에 이천구 년 단지 소식지가 묶여 있었습니다. 소장이 이십 년 치를 버리지 않고 둔 것입니다. 오월 호에 부고가 있었습니다. 2동 표상근 님. 향년 서른여덟. 사진은 없었습니다. 이름과 나이와 발인 날짜뿐. 그 아래 칸에 같은 달 분리수거 요일 변경 공지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은 일과 분리수거 요일이 같은 쪽에 나란히 있었습니다. 소식지는 그런 종이입니다. 저는 그 쪽을 오려서 여덟 조각과 같은 봉투에 넣었습니다.

일곱 시에 507호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커터 칼로 여덟 조각을 오려 냈습니다. 붉은 금 일곱 개와 삼분의 일짜리 하나. 한 조각에 검은 금 두어 개가 같이 붙어 나왔습니다. 벽지는 오래돼서 칼이 잘 들어갔습니다. 종이가 아니라 마른 잎을 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린 조각을 코에 대 봤습니다. 크레용 냄새는 넉 달이 지나도 그대로였습니다. 기름이라서 날아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여덟 조각을 서류 봉투에 넣었습니다. 봉투 겉에 날짜를 적었습니다. 일곱 개. 그리고 여덟 번째에는 날짜를 적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뜯었습니다. 벽지 뜯는 일은 제가 십일 년 동안 백마흔두 번 한 일입니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오 분 기다리면 풀이 불어서 벽지가 들뜹니다. 모서리를 잡고 천천히 당기면 한 폭씩 떨어집니다. 한 폭에 금이 삼백 개쯤 붙어 있었습니다. 불은 풀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쉰 밀가루 냄새. 그 밑에서 연필 냄새가 마지막으로 한 번 났습니다. 젖은 흑연 냄새. 비 온 뒤 운동장 같은.

한 폭씩 떨어질 때마다 벽지가 바닥에 겹쳐 쌓였습니다. 금이 있는 면이 안으로 말렸습니다. 저는 그걸 펴서 보지 않았습니다. 폐기 봉투에 넣었습니다. 스무 폭. 열한 시에 동쪽 벽은 시멘트 색이 됐습니다. 회색. 곳곳에 옛날 풀 자국이 얼룩처럼 남은.

마지막 폭을 떼기 전에 저는 한 번 앉았습니다. 마지막 폭에는 마지막 줄이 있었습니다. 아흔 개. 그리고 오려 낸 구멍 하나. 삼분의 일짜리가 있던 자리. 구멍 너머로 시멘트가 보였습니다. 저는 그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봤습니다. 시멘트가 차가웠습니다. 넉 달 동안 이 벽 앞에서 누가 밤마다 쉰 개씩 그었는데 벽은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 벽은 그런 겁니다. 저는 그 폭을 떼었습니다.

그 앞에 서 있는데 소장이 왔습니다. 소장은 문간에서 빈 벽을 봤습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한참 있다가 서랍에 넣어 둔 경위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거 오늘 버렸다고. 그러고는 갔습니다.

오늘 금요일 오전에는 새 벽지를 발랐습니다. 흰 바탕에 연한 회색 줄무늬. 휠체어 타는 할머니 따님이 골랐다고 했습니다. 풀을 개서 붓으로 바르고 한 폭씩 붙였습니다. 새 풀 냄새는 달큼합니다. 찹쌀 풀이라 그렇습니다. 붙이고 나서 솔로 쓸면 공기가 빠지면서 벽지가 벽에 달라붙습니다. 동쪽 벽 스무 폭. 어제 떼어 낸 폭수와 같았습니다. 점심때 할머니 따님이 방을 보러 왔습니다. 동쪽 벽을 보고 깨끗하네요, 했습니다. 저는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따님이 여기 전에 누가 살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넉 달 사신 분이라고만 했습니다. 따님은 더 묻지 않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이 잘 드네, 하고 갔습니다.

목요일 저녁 표지훈 씨한테서 문자가 왔습니다. 관리소 대표 번호로 제 번호를 알아냈다고. 내일 저녁 여섯 시, 단지 앞 분식집에서 보자고. 가져갈 게 있다고.

분식집은 정문 옆입니다. 테이블 네 개. 떡볶이 냄새와 오뎅 국물 냄새가 문을 열기 전부터 납니다. 저는 여섯 시 오 분 전에 갔습니다. 그 사람은 벌써 와 있었습니다. 구석 테이블. 작업 조끼를 벗고 반팔 차림이었습니다. 팔뚝에 분리수거 통 손잡이에 쓸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동대표 일이 그런 일인 모양입니다. 손톱 밑이 까맸습니다. 흑연이 아니라 기름때였습니다. 테이블 위에 상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라면 상자. 테이프로 몇 번이나 다시 붙인 흔적이 있는. 그 사람 앞에는 오뎅 국물 한 컵만 있었습니다.

“뜯었더라고요.”

“네.”

“사진 찍기 전에는 뜯지 말라고 했는데.”

“찍었습니다. 제가.”

“그거 나한테는 안 준다면서요.”

“네.”

그 사람이 상자를 제 쪽으로 밀었습니다.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다가 오뎅 국물 컵에 부딪혀 멈췄습니다. 국물이 조금 튀었습니다.

“이백네 통이에요. 이거 그 사람한테 돌려줘요. 아들이니까.”

상자 뚜껑을 열었습니다. 흰 봉투가 세로로 빽빽하게 꽂혀 있었습니다. 도서관 카드함처럼. 앞쪽 것은 하얗고, 뒤로 갈수록 누랬습니다. 맨 뒤 것들은 가장자리가 갈색이었습니다. 종이가 늙은 색. 상자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오래된 종이 냄새. 그 밑에 희미하게 나프탈렌 냄새. 옷장에 넣어 두었던 상자였습니다.

“엄마가 버리라고 했어요. 이천십이 년에 한 번, 이천십구 년에 한 번. 두 번 다 제가 안 버렸어요. 왜 안 버렸는지 저도 몰라요. 버리면 그 사람이 이긴 것 같아서. 아니면 버리면 우리 아버지가 한 번 더 없어지는 것 같아서.”

저는 상자를 닫지 않았습니다.

“제가 돌려드릴 수 없습니다.”

“왜요.”

“이건 표지훈 씨 집에 온 겁니다. 제가 받으면 제 아버지가 저한테 보낸 게 됩니다. 아버지는 저한테 이런 걸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제 얼굴을 봤습니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떡볶이 1인분을 가져다 놨습니다. 우리 둘 다 안 시킨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서비스야, 둘 다 얼굴이 굶은 얼굴이라. 우리 둘 다 떡볶이를 보기만 했습니다. 김이 올라왔습니다. 고추장 냄새가 매웠습니다.

“그럼 내가 여기 두고 가요.”

“그러셔도 됩니다. 그럼 분식집 아주머니가 치우실 겁니다.”

그 사람이 웃었습니다. 처음 봤습니다. 웃는 얼굴이 아니라 기가 막힌 얼굴이었습니다.

“관리원님 진짜 치우는 사람이네요.”

“십일 년째입니다.”

그 사람은 상자에서 봉투 하나를 뽑았습니다. 맨 뒤, 제일 누런 것. 첫 번째. 봉투 겉에 보낸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천구 년 유월 칠일. 받는 사람 윤미숙 님. 보내는 사람 칸에 구치소 주소.

“뭐가 들었는지 나는 알아요. 돈이죠. 교도소 작업하면 한 달에 몇 만 원 준대요. 그거 보낸 거예요. 우리 아버지 목숨값을 몇 만 원씩. 십칠 년 동안.”

그 사람은 그 말을 하면서 봉투를 뜯었습니다. 손가락으로 거칠게. 뜯을 생각이 없던 사람이 화가 나서 뜯는 손이었습니다. 종이가 오래돼서 소리도 안 나고 찢어졌습니다.

만 원짜리 두 장이 나왔습니다. 옛날 만 원짜리.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돈을 테이블에 던졌습니다. 떡볶이 접시 옆으로. 그리고 종이를 폈습니다. 폈다가, 멈췄습니다. 저는 맞은편에서 거꾸로 봤습니다. 짧았습니다. 세 줄.

오늘로 삼십일 일째입니다. 상근 씨가 못 산 날도 삼십일 일째입니다. 같이 셉니다.

그 사람은 그 종이를 오래 봤습니다. 떡볶이 김이 다 사라질 때까지. 분식집 아주머니가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습니다. 그 사람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에서 하얘졌습니다. 너무 세게 쥐어서.

그러다 종이를 접었습니다. 원래 접힌 자국대로. 봉투에 넣었습니다. 만 원짜리 두 장도 도로 넣었습니다. 봉투를 상자에 꽂았습니다. 맨 뒤 원래 자리에.

그리고 상자를 자기 쪽으로 가져갔습니다.

“이거 뭐예요.”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저한테가 아니라 상자한테 묻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이백네 통 다 이래요?”

“모릅니다.”

그 사람이 상자 뚜껑에 손을 얹은 채 물었습니다.

“관리원님, 그때 몇 살이었어요.”

“열아홉입니다.”

“나는 열한 살.”

그 사람은 그 두 숫자를 나란히 놓고 한참 봤습니다. 떡볶이 접시 위 어딘가에.

“우리 둘 다 그해에 아버지 없어졌네요. 방법은 다르지만.”

저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살아 있고 그 사람 아버지는 죽었습니다. 같은 해에 없어졌어도 같은 없음이 아닙니다. 그걸 그 사람도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저를 봐준 건지 찌른 건지 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일어섰습니다. 상자를 들었습니다. 계산대에 가서 떡볶이 값을 내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서비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오뎅 국물 값 오백 원을 내고 나갔습니다. 상자를 안고. 문을 나서다가 돌아봤습니다.

“청원, 오늘 삼백 명 넘었어요. 이십이일 목요일 저녁에 단지 주민 회의 해요. 3동 지원주택 해제. 관리원님도 와요. 아들이니까.”

“가겠습니다.”

그 사람이 나갔습니다. 저는 남은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혼자 1인분을. 아주머니가 오뎅 국물을 한 컵 더 갖다 줬습니다. 말없이. 매웠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떡볶이 때문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분식집을 나와서 저는 2동 앞을 지나 집으로 갔습니다. 일부러 돌아서. 2동 삼 층 끝 창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어느 창이 그 사람 집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냥 그 창에 불이 켜져 있어서 봤습니다. 거기서 누가 상자를 열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 통을 더 열까 말까 하면서.

아버지. 이백네 통에 다 그 세 줄이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날마다 다른 말입니까.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이 그것입니까. 오늘 그 사람은 한 통을 열었습니다. 한 통.

그리고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아버지는 이 동네 어디에 계십니까. 수요일에 오셨으면 벌써 이틀째입니다. 저는 오늘 새벽 여섯 시에 정류장에 가 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창만 여섯 시 삼십오 분에 열렸다가 닫혔습니다.

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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