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86자) · 아버지 · 10월 6일

공구함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민아.

네 손가락에서 부침개 냄새가 났다는 대목에서 웃었다. 소리를 내서. 위 칸에 있던 투안이 놀라서 이어폰을 빼고 내려다봤다. 내가 웃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이다. 웃고 나서 그 편지를 한 번 더 읽었다. 그 대목만 두 번.

이 편지는 서울 가는 버스에서 쓴다. 무릎에 공책을 받치고. 글씨가 흔들리는 건 버스 탓이다. 오늘 아침에 기숙사를 비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뒤에 쓴다. 먼저 네가 물은 것에 답한다. 목요일 전에 답하라고 했으니까.

구월 십칠일 옆의 물음표.

네 어머니가 오기로 한 날이다. 칠월에 한 번 차를 마셨다. 출소하고 두 달 만에. 새길동 시장 끝 다방에서. 네 어머니는 쌍화차를 시켰다. 나는 뭘 시켜야 할지 몰라서 같은 걸 시켰다. 십칠 년 만에 다방에 앉으니 메뉴판 글씨가 너무 많았다. 쌍화차에 달걀노른자가 떠 있었다. 네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노른자를 건져 내 잔에 옮겼다. 말없이. 예전에 내가 노른자를 좋아했다. 그걸 네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삼십 분 동안 컵만 봤다. 나는 네 어머니 손을 봤다. 식당 일 삼십 년 한 손. 손등에 데인 자국이 여섯 개 있었다. 내가 들어갈 때는 하나도 없던 것이다. 헤어질 때 내가 부탁했다. 한 번만 와 달라고. 보여 줄 게 있다고. 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팔월 말에 문자가 왔다. 구월 십칠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그게 전부였다.

그날 나는 오후 네 시에 방을 치웠다. 치울 게 별로 없었다. 이불을 개고, 연필 깎은 부스러기를 쓸고, 창문을 열었다. 벽 앞에 방석을 하나 놓았다. 네 어머니가 앉을 자리. 그리고 빨간 크레용을 꺼냈다. 여덟 번째를 미리 그어 둘까 해서. 긋다가 말았다. 오지도 않은 날을 미리 긋는 건 내가 십칠 년 동안 한 번도 안 한 짓이었다. 손이 멈췄다. 그래서 삼분의 일이다.

일곱 시에 안 왔다. 여덟 시에도. 나는 방석 옆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방석에는 안 앉았다. 네 어머니 자리니까. 아홉 시에 옆집 506호에서 뉴스 소리가 났다. 그 영감님은 아홉 시 뉴스를 크게 튼다. 넉 달 동안 그 소리를 신호로 연필을 잡았다. 그날은 연필을 안 잡았다. 뉴스가 끝나자 벽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조용한 데다 대고 나는 기다렸다. 나는 복도에 나가 4동 창을 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열한 시까지 봤다. 계속 꺼져 있었다. 나는 그게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열한 시 반에 짐을 쌌다. 가방 하나. 공책 열한 권, 연필 두 자루, 칼 하나, 옷 몇 벌. 남궁 주무관한테 문자를 보냈다. 새벽 첫차로 음성 가겠다고. 주무관이 전에 알려 준 일자리였다.

왜 불이 꺼져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네가 알면 알려 주지 않아도 된다. 대답은 받았다.

이제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쓰려다가, 그보다 먼저 써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너는 그날 밤을 모른다. 네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에는 났지만 너는 그 신문을 안 봤을 것이다. 열아홉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쓴다. 한 번만.

이천구 년 오월 칠일 목요일. 나는 마흔일곱이었다. 화물차를 몰았다. 새길동 뒤 물류 단지에서 지방으로 가는 오 톤 트럭. 그 봄에 회사가 배차를 줄였다. 나는 한 달에 열흘밖에 못 나갔다. 내 노선이 표상근 씨한테 갔다. 서른여덟. 나보다 아홉 살 어리고, 운전이 빠르고, 회사에 말을 잘했다. 나는 그 사람이 내 노선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회사가 준 것이다. 그 사람은 받았을 뿐이다. 그걸 나는 교도소에서 삼 년쯤 지나서야 인정했다.

그날 밤 새길동 시장 입구 포장마차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소주 두 병째였다. 그 사람은 막 들어와서 한 병을 시켰다. 옆 테이블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노선 얘기를. 그 사람은 처음에 웃었다. 형님, 그건 회사 일이잖아요, 하고. 나는 그 웃음이 싫었다. 목소리가 커졌다. 그 사람도 커졌다. 그러다 그 사람이 한 말이 있다. 형님 그러다 아들 대학도 못 보내요. 너 얘기였다. 그 봄에 너는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먼저 일어섰다. 싸우기 싫다고. 돈을 내고 나갔다. 나도 나갔다. 따라 나갔다. 주차장까지. 그 사람 트럭 옆에 내 트럭이 서 있었다. 나는 내 트럭 문을 열고 공구함을 열었다.

그다음은 쓰지 않는다. 법정에서 다 말했다. 검사가 읽었고 판사가 읽었고 그 사람 부인이 방청석에서 들었다. 그 사람 부인은 그날 방청석에서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네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나는 따라 나갔다. 공구함을 열었다. 그건 술이 한 게 아니다. 내 손이 한 것이다.

그 뒤는 쓴다. 그 사람은 주차장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나는 백십구에 전화했다. 내 손으로. 구급차가 올 때까지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사람 트럭 조수석 문이 열려 있었다. 거기 카네이션 화분이 두 개 있었다. 빨간 것 하나, 분홍 것 하나. 다음 날이 어버이날이었다. 그 사람은 어머니가 둘이었다. 친어머니하고 장모. 화분에 꽂힌 리본에 글씨가 있었다. 사랑합니다. 나는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 두 화분을 봤다. 흙 냄새가 났다. 물을 준 지 얼마 안 된 흙. 그 냄새는 지금도 꽃집 앞을 지나면 난다. 나는 꽃집 앞을 돌아서 간다. 넉 달 동안 새길동 시장 꽃집 앞을 한 번도 안 지나갔다.

그 사람 아들은 그해 열한 살이었다. 오월 팔일이 생일이었다. 어버이날과 생일이 같은 날인 아이. 그 아이가 표지훈이다. 그 아이는 열한 살 생일 아침에 아버지가 안 들어온 걸 알았다.

그 집이 새길동 영구임대 2동으로 옮긴 건 이천십일 년이다. 그 사람 부인이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전세를 못 버텼다. 나는 그걸 교도소에서 알았다. 민사 판결문에 주소가 바뀌어 적혀 있었다. 새길동. 우리 집 4동에서 이백 미터. 네 어머니와 그 사람 부인은 같은 시장에서 장을 봤을 것이다. 서로 모르고. 아니면 알고.

그다음 날, 오월 팔일에 나는 구치소에 들어갔다. 금요일이었다. 그날이 첫 번째 금이다. 연필은 없었다. 저녁 배식 때 받은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끝을 벽에 대고 그었다. 자국이 거의 안 났다. 손톱으로 한 번 더 긁었다. 벽 페인트가 조금 벗겨지면서 선이 됐다. 그 선을 보면서 나는 표상근 씨 아들이 오늘 몇 살이 됐는지 계산했다. 열한 살. 그 계산을 그 뒤로 해마다 오월 팔일에 했다. 열두 살, 열세 살. 올해 스물아홉.

민아. 네가 물었다. 이건 누구 보라고 그렸느냐고. 반은 대답했다. 네 어머니 보라고. 나머지 반은 아직 못 쓰겠다. 그 사람한테 먼저 보여야 해서.

이제 오늘 아침 이야기를 한다.

야간조를 마치고 여섯 시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방 앞에 센터장이 서 있었다. 센터장은 본사에서 나온 사람이다. 마흔 초반. 넥타이에 형광 조끼를 겹쳐 입었다. 그 옆에 반장이 서 있었다. 반장은 나를 안 봤다.

“차동수 씨, 잠깐 얘기 좀.”

센터장은 복도에서 말했다. 방 안에는 투안이 자고 있었다. 센터장은 목소리를 낮추려고 했지만 복도가 울려서 다 들렸다. 옆방 문이 몇 개 열렸다가 닫혔다.

“민원이 들어왔어요. 여직원들이 주간조 못 나오겠대요. 야간이랑 교대할 때 마주친다고. 그리고 외부에서 전화가 계속 와요. 본사로. 살인자를 고용하냐고. 기사 링크까지 보내면서.”

“제가 뭘 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나는 뭘 했는지 안다. 센터장도 그 질문이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여기서요?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하셨죠. 분류 제일 빠르시다고 들었어요.”

“그럼.”

“근데 여기서 하신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센터장이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일용직 계약 종료 확인서. 사유 칸에 「업무 조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걸 받았다. 볼펜을 받았다. 서명 칸 앞에서 손이 멈췄다. 사유가 거짓말이었다. 업무 조정이 아니다. 나는 서명하기 전에 말했다.

“사유를 고쳐 주십시오.”

“네?”

“업무 조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과 때문이라고 써 주십시오. 그래야 맞습니다.”

센터장이 나를 봤다. 반장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복도에 옆방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투안도 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러닝셔츠 바람으로.

“그렇게 쓰면 회사가 문제가 돼요.”

“그렇게 안 쓰면 제가 거짓말에 서명하는 겁니다. 법정에서 거짓말 안 했습니다. 여기서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센터장은 한참 서 있다가 서류를 도로 가져갔다. 사유를 두 줄로 긋고 옆에 볼펜으로 썼다. 「전과 관련 민원으로 인한 계약 종료(본인 요청으로 사유 명시)」. 글씨가 삐뚤었다. 나는 서명했다.

반장이 센터장을 따라가다가 돌아왔다.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번 주 일당이었다. 현금. 반장이 그걸 내 손에 쥐여 주면서 말했다.

“차 씨, 그 사유 칸, 나 처음 봐요. 고쳐 달라는 사람.”

투안이 방에서 가방을 가져와 내 짐 싸는 걸 도왔다. 가방을 챙기면서 투안이 센터장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사장님, 우리 베트남에서는 사람 쫓을 때 밥은 먹이고 쫓아요. 센터장은 못 들은 척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은박지에 싼 주먹밥 두 개를 가방 옆주머니에 넣어 줬다. 그것도 모른 척했다. 짐이라야 가방 하나다. 공책 열한 권이 제일 무겁다. 투안이 한 권을 들어 보더니 이게 뭐냐고 물었다. 숫자라고 했다. 투안은 펴 보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저씨 편지 또 오면 어디로 받아요.

기숙사 앞 정류장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음성 국도 옆 정류장은 논 한가운데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냄새가 났다. 비릿하고 달다. 교도소 운동장에서는 한 번도 못 맡은 냄새다. 거기는 모래 냄새뿐이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사십 분. 투안이 정류장까지 따라 나와 같이 기다려 줬다. 투안은 한국에 온 지 삼 년이라고 했다. 엄마한테 한 달에 한 번 돈을 보낸다고. 나는 나도 그런다고 했다. 투안이 아저씨 엄마 아직 살아 계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한 달에 한 번 돈을 보내는 곳이 어딘지 설명하기에는 버스가 너무 금방 왔다.

어디로 받을지 모른다. 새길동 근처에 고시원을 알아보겠다. 남궁 주무관한테 연락해 두겠다. 편지는 주무관한테 주면 된다.

목요일에 벽을 뜯는다고 했지. 뜯어라. 사진은 찍었다니 됐다. 그 전에, 수요일까지 서울로 가겠다. 뜯는 걸 보겠다는 게 아니다. 가까이 있고 싶어서다. 넉 달 동안 가까이 있었는데 그걸로는 모자랐다는 걸 음성에 와서 알았다.

아버지가.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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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배2026.06.02· 4화

    문장이 짧은데 밀도가 있어요. 계속 읽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