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81자) · 아버지 · 9월 29일
뜯지 않은 봉투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민아.
네 편지를 어제 받았다. 구월 이십팔일 월요일 저녁 여섯 시. 남궁 주무관이 음성까지 직접 가져왔다. 우편으로 보내면 주소가 봉투에 남는다고, 규정에 그러지 말라고 적혀 있지는 않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고. 그 사람은 서울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 기숙사 식당에서 편지를 내밀고, 내가 그걸 받는 것까지 보고, 컵라면 하나를 먹고 돌아갔다. 국물은 안 마셨다. 막차 시간 때문이라고 했다. 가면서 답장은 화요일 저녁에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 봉투에 넣고 풀칠하지 말라고. 자기가 한 번 보고 붙이겠다고. 주소나 연락처가 적혀 있으면 지워야 한다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편지는 규정보다 먼저 가는 거라서요, 하고 웃었다.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른다. 좋은 뜻 같았다.
기숙사는 사 인실이다. 이 층 침대 두 개. 나는 아래 칸이다. 위 칸 청년은 베트남에서 왔고 이름이 투안이다. 한국말을 나보다 빨리 한다. 편지를 받아 들고 침대에 앉으니 투안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저씨 편지 처음 받죠. 나는 그렇다고 했다. 투안은 축하한다고 하고 이어폰을 꼈다. 방에는 발 냄새와 믹스커피 냄새와 파스 냄새가 났다. 교도소 방 냄새와 비슷했다. 다른 것은 창문이다. 여기 창문은 안에서 열린다.
편지를 뜯는 데 오래 걸렸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다. 네 글씨를 처음 봐서다. 네가 열아홉일 때 나는 네 글씨를 본 적이 없다. 알림장이나 숙제 같은 것을 나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봉투 겉에 적힌 차동수 님이라는 다섯 글자를 한참 봤다. 님 자가 다른 글자보다 작았다. 쓰다가 망설인 글씨였다.
먼저 대답할 것부터 쓴다. 3동을 고른 것은 맞다. 출소자 지원주택은 단지가 몇 군데 있었다. 나는 새길동을 달라고 했다. 남궁 주무관이 가족이 사는 동네는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새길동을 달라고 했다. 3동에 빈 방이 났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동 관리원이 누군지 물었다. 주무관은 그런 건 모른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 네 어머니가 면회 때 말해 줬으니까. 민이가 3동 관리원 됐다고. 이천십오 년 삼월. 그 목요일에 나는 벽에 빨간 금을 하나 그었다.
그러니까 네 물음 하나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네가 그 방을 치울 줄 알았다. 나간 사람 방은 관리원이 치운다. 넉 달이든 넉 달 하루든.
다른 물음, 구월 십칠일 옆의 물음표는 다음에 쓰겠다. 지금은 못 쓰겠다. 대신 오늘 있었던 일을 쓴다. 너한테 먼저 알려야 할 일이다.
어제 편지를 받기 두 시간 전, 오후 네 시에 표지훈이 여기 왔다.
음성 물류센터는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창고 네 동이다. 나는 삼 동에서 야간 분류를 한다. 저녁 여섯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 컨베이어로 흘러오는 상자를 지역별로 나눠 수레에 싣는다. 상자에서는 골판지 냄새가 나고, 테이프 냄새가 나고, 가끔 안에 든 것의 냄새가 샌다. 귤, 세제, 개 사료. 열두 시간 동안 그 냄새를 맡으면 손바닥에서 종이 냄새가 안 빠진다. 교도소 목공반에서 십 년 있었을 때는 손에서 대팻밥 냄새가 안 빠졌다. 나는 늘 무언가의 냄새를 손에 묻히고 산다.
네 시에 기숙사에서 나와 정문 쪽으로 걸었다. 담배를 사러. 정문 옆 경비실 앞에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새길동에서 넉 달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전단은 봤다. 문에 붙은 것도 봤다. 사진이 있었다. 이천구 년 신문에 난 내 얼굴. 그 얼굴을 넉 달 동안 문 앞에서 봤다. 그런데 그 사람 얼굴은 어제 처음 봤다. 표상근 씨를 닮았다. 눈썹이 닮았다. 나는 그 눈썹을 이천구 년 오월 칠일 밤에 봤다.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그 눈썹이었다.
구월 말인데 볕이 셌다. 창고 지붕에서 올라온 열이 정문 쪽으로 밀려왔고, 아스팔트가 신발 밑창으로 올라왔다. 그 사람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모른다. 경비 아저씨 말로는 두 시부터였다고 한다. 두 시간. 그 사람이 나를 알아봤다. 나보다 먼저. 걸어왔다. 빨리 걷지 않았다. 내 앞 두 걸음에서 멈췄다.
“차동수 씨.”
“네.”
“봉투요.”
그 사람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흰 봉투. 내 글씨. 구월 이십일에 보낸 것이다. 음성으로 옮기고 사흘 뒤. 보내는 사람 칸에 음성 기숙사 주소가 적혀 있었다. 나는 십칠 년 동안 봉투에 늘 내 주소를 적었다. 교도소 주소를. 돌려보내고 싶으면 돌려보낼 수 있게. 한 번도 돌아온 적은 없었다. 그 사람이 그 봉투를 내 가슴에 대고 눌렀다. 뜯지 않은 봉투였다.
“이거 그만 보내세요.”
“…….”
“이백네 통이에요. 한 통도 안 뜯었어요. 우리 엄마가 그 봉투 올 때마다 하루를 앓아요. 우편함에서 그 글씨를 보면 그날 밥을 못 먹어요. 십칠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나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그 사람이 손을 떼자 봉투가 내 가슴에서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정문 앞 아스팔트는 한낮 볕에 데워져 있었다. 뜨거운 바닥에 흰 봉투가 떨어졌다. 나는 그걸 줍지 않았다. 그 사람도 줍지 않았다.
“새길동에서 나가셨으니까 거기까진 됐어요. 이제 이것도 끝내세요. 우리 엄마가 당신 글씨 안 보고 죽을 수 있게.”
“돈은.”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기숙사 방에서 혼자 있을 때는 말을 안 해서 목이 잠겨 있었다.
“판결 난 돈이 있습니다.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그건 갚아야 합니다.”
“안 받아요.”
“받으시든 안 받으시든.”
그 사람이 한 걸음 다가왔다. 두 걸음이 한 걸음이 됐다. 담배 냄새가 났다. 그 사람도 담배를 피운다. 표상근 씨도 피웠다. 그날 밤 포장마차에서도.
“당신이 갚는 거 아니에요. 당신이 세는 거지. 날마다 그은 거 봤어요. 벽에. 당신 날짜 세는 거. 우리 아버지 날짜는 누가 세요? 우리 아버지는 이천구 년 오월 칠일에서 멈췄어요. 셀 날이 없어요.”
그 말을 하고 그 사람은 경비실 쪽을 봤다. 경비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퇴근하는 주간조 사람들이 정문을 나오다가 걸음을 늦췄다. 그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으로.
“이 사람 살인자예요. 사람 죽이고 십칠 년 살고 나왔어요. 알고들 계세요.”
주간조 사람 몇이 나를 봤다. 반장도 있었다. 삼 동 반장, 쉰 조금 넘은 사람. 나한테 컨베이어 속도 맞추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반장은 나를 한 번 보고, 그 사람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표지훈 씨는 그렇게 한 번 소리치고 나서 더 말하지 않았다. 숨이 찼는지 가슴이 오르내렸다. 그러고는 돌아서 갔다. 정문 밖에 세워 둔 작은 트럭으로. 트럭 짐칸에 새길동 영구임대 2동이라고 적힌 분리수거 통이 두 개 실려 있었다. 동대표 일로 뭘 싣고 다니는 차 같았다. 그 사람은 트럭 문을 열다가 멈췄다. 돌아서 한마디 더 했다.
“그 벽, 관리원이 뜯는대요. 관리원 성도 차씨던데.”
트럭이 떠났다. 떠나면서 짐칸의 분리수거 통 하나가 덜컹 넘어졌다. 그 사람은 세우지 않았다. 통이 굴러 짐칸 끝에 걸린 채로 트럭은 국도 쪽으로 사라졌다. 저 통은 새길동까지 가는 동안 계속 덜컹거릴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한 시간 반을 운전할 것이다. 나는 땅에 떨어진 봉투를 주웠다. 아스팔트 열에 봉투 한쪽이 눌어 있었다. 코에 대 보니 타르 냄새가 났다. 그 밑으로 내 방 냄새가 났다. 기숙사 사물함에서 나는 파스 냄새. 봉투 안에 든 오만 원짜리 두 장이 그 냄새를 품고 새길동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기숙사로 가져왔다. 지금 이 편지 옆에 있다. 뜯지 않았다. 내 봉투를 내가 뜯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야간조에는 나갔다. 새벽 두 시 휴식 시간에 반장이 컨베이어 옆 의자에 와서 앉았다.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들고. 하나를 나한테 줬다. 설탕이 바닥에 가라앉은 커피였다. 반장은 한참 자기 커피만 마시다가 물었다.
“진짜요?”
“네.”
“몇 년 살았어요.”
“십칠 년이요.”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컨베이어를 봤다. 멈춰 있는 벨트 위에 상자 몇 개가 줄지어 있었다. 휴식 시간에는 벨트가 멈춘다. 멈춘 벨트 위의 상자는 이상하게 무거워 보인다.
“나는 컨베이어만 보면 돼요. 컨베이어는 사람 안 가려요. 근데 사람들은 가려요. 주간조에서 벌써 얘기 돌아요. 여자 조원들이 무섭다고 해요.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압니다.”
“아시면 됐어요.”
반장은 커피 잔을 구기며 일어났다. 일어나다가 다시 나를 봤다.
“차 씨, 분류 제일 빨라요. 그건 알아 두세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오늘 아침까지 생각했다. 아직 모르겠다. 칭찬인지, 아니면 그래도 소용없다는 말인지.
민아. 그 사람 말이 맞다. 나는 날짜를 셌다. 내 날짜를. 육천이백여덟 일. 표상근 씨의 날짜는 이천구 년 오월 칠일에서 멈췄다. 그걸 나는 안다. 알고 셌다. 날마다 한 줄씩 그을 때마다 그걸 알았다. 그래도 그었다. 안 그으면 그 방에서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교도소 방 벽은 두 해에 한 번씩 페인트를 새로 칠했다. 연두색. 칠하는 날이면 내가 그은 금이 전부 덮였다. 첫 번째로 덮였을 때 나는 사흘 동안 긋지 못했다. 몇 날째인지 몰라서. 그다음부터는 공책에도 적었다. 벽에 긋고, 공책에 숫자를 적고. 벽은 두 해마다 지워졌고 공책은 남았다. 공책은 열한 권이다. 출소할 때 영치품으로 받아 나왔다. 507호에서 넉 달 동안 나는 그 열한 권을 펴 놓고 벽에 옮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안 지워진 벽을 한 번은 보고 싶었다. 그게 전부냐고 물으면, 전부는 아니다. 그것도 다음에 쓰겠다.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지금 쓰지 않겠다. 그 사람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지 네가 먼저 알 것이 아니다.
오늘 밤 야간조에 나갈지 모르겠다. 반장이 아무 말도 안 했으니 나가야겠지. 컨베이어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벽은 네가 정해라. 네 일이다. 네가 치울 줄 알고 그린 것이다. 치우는 것까지가 그 벽이다.
그리고 네 오른손 검지 이야기. 흑연은 비누로 안 빠진다. 식용유를 조금 묻혀서 문지르고 그다음에 비누로 씻어라. 교도소에서 연필을 오래 쓰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한다.
이 편지 끝에 뭐라고 적을지 오래 생각했다. 이름을 적을까. 네가 첫 줄에 아버지라고 썼으니까 나도 그렇게 적는다. 쓰고 나니 손이 조금 뜨겁다.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