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538자)

국내 1위가 된 남편, 작은방에 들어온 아내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4월 30일 금요일 오전 열 시⁠, 가사조정실 4는 사람으로 꽉 찼다⁠. 탁자 이편에 현주와 태호가⁠, 건너편에 기태와 진성이 앉았고⁠, 벽 앞 삼각대 위에 협회 기록용 카메라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하정임이 허락한 카메라는 한 대뿐이었다⁠. 복도에서는 봉재만이 문틈에 휴대전화를 대고 소리 없이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남향 창으로 한낮 햇빛이 들어왔다⁠. 탁자 한가운데 「⁠이혼 조정 신청서⁠」와 두 사람의 도장이 놓여 있었다⁠. 창 너머 북서쪽 하늘에서 보랏빛 금이 숨을 쉬었다⁠. 첫 기일보다 금이 굵어져 있었다⁠.

진성이 은색 가방을 열었다⁠. 장갑 두 짝 사이의 유리 받침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진성의 손가락이 노트북 자판 위에서 떨렸다⁠.

하정임이 토마토 타이머를 탁자 위에 놓았다가 서랍에 도로 넣었다⁠.

“⁠아내분⁠, 오늘은 시간 안 잽니다⁠. 하실 말씀 하세요⁠.⁠”

현주는 한동안 탁자 위의 도장을 보았다⁠. 그리고 태호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검은 고무줄⁠.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내가 산 적 없어⁠. 김밥 은박지는 당신이 까서 줬어⁠. 내 손이 떨려서⁠. 진통제는 조끼 네 번째 주머니에 있고⁠, 반창고는 두 번째 주머니에 있어⁠. 인천에서 당신은 코피를 흘리면서 결계를 붙들고 있었고⁠, 나한테 뒤는 보지 말라고 했어⁠. 마포 생기고 세 해 동안 일요일마다 시우 데리고 기지에 왔어⁠. 나는 출입석 앞에서 김밥만 받고 들어갔고⁠.⁠” 현주는 숨을 한 번 쉬었다⁠. “⁠생중계 날엔 결계를 늘이다 안경이 날아갔어⁠. 시우 공개 수업 알림장은 세 해 동안 당신 조끼 안쪽 주머니에만 있었어⁠. 그게 다 당신이 뒤에서 한 일이야⁠. 나는 앞에서 칼만 휘둘렀어⁠.⁠”

방 안이 조용했다⁠. 카메라 렌즈가 천천히 초점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레벨 반⁠, 가져가⁠.⁠”

태호는 안경을 벗지 않았다⁠. 대신 조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가 내렸다⁠. 지퍼 말고는 손으로 할 일이 없는 얼굴이었다⁠.

현주는 기태를 보았다⁠. “⁠소수점은 장치 말고 제가 정하고 싶은데요⁠.⁠”

“⁠장치 설정은 협회가 합니다⁠.⁠” 기태가 말했다⁠.

“⁠그럼 그대로 하세요⁠.⁠”

기태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싸움을 준비하고 들어온 사람이 상대가 칼을 내려놓는 것을 본 얼굴이었다⁠. 진성이 현주를 보았다⁠. 현주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진성이 엔터 키를 눌렀다⁠.

*

현주는 왼쪽 장갑에⁠, 태호는 오른쪽 장갑에 손을 넣었다⁠. 유리 받침 위로 금빛 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LV⁠.99⁠」⁠. 구슬은 탁자 한가운데로 미끄러져 이혼 조정 신청서 위에서 멈췄다⁠. 햇빛이 구슬을 통과해 서류 위에 금빛 동그라미를 그렸다⁠.

첫 기일에는 둘 다 구슬을 끌어당겼다⁠. 오늘 현주는 장갑 낀 손으로 구슬을 태호 앞으로 밀었다⁠. 태호가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두 사람 손 사이에서 구슬 가운데로 금이 그어졌다⁠. 머리카락만 하던 금이 손가락 굵기로 벌어지더니⁠, 쩍 소리와 함께 구슬이 반으로 갈라졌다⁠.

금빛이 두 갈래로 흘렀다⁠. 한 갈래는 현주 손등으로 돌아왔고⁠, 한 갈래는 태호 손등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태호의 몸이 의자 위에서 크게 휘청였다⁠. 태호가 탁자 모서리를 붙잡았다⁠. 현주는 반대로 몸이 가벼워졌다⁠. 등에 멘 칼이 아침보다 무거웠다⁠.

받침 가장자리에 글자가 흘렀다⁠.

「⁠기현주 LV⁠.79 · A급 / 변태호 LV⁠.101 · S급 · 국내 1위⁠」

현주가 주먹을 쥐었다⁠. 손등에 「⁠LV⁠.79⁠」가 떠올랐다⁠. 몇 해 만에 처음 보는⁠, 일곱으로 시작하는 숫자였다⁠.

“⁠국내 1위요⁠?⁠” 하정임이 돋보기를 내려 썼다⁠. “⁠남편분이요⁠?⁠”

“⁠백 레벨 할아버지가 백이셨거든요⁠.⁠” 태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손등의 「⁠LV⁠.101⁠」을 내려다보는 눈이 멍했다⁠. “⁠제가⁠…⁠… 하나 넘었네요⁠.⁠”

기태가 서류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미리 써 온 협회 공문이었다⁠.

「⁠등급이 바뀐 헌터 기현주 — 두 주 동안 협회 배정 및 단독 출동 정지(⁠적응 기간⁠) · 마포 균열 담당 — 변태호(⁠LV⁠.101⁠)⁠」

“⁠두 주면 5월 14일이에요⁠.⁠” 현주가 공문을 보았다⁠. “⁠새끼 균열은 첫 주라면서요⁠.⁠”

“⁠그래서 남편분을 담당으로 둡니다⁠. 국내 1위니까요⁠. 그리고 협회는 남편분을 부회장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레벨 이전법 홍보 대사도요⁠.⁠” 기태가 태호를 보았다⁠. “⁠열두 해를 숫자로 받은 첫 결계사니까요⁠.⁠”

태호는 손등의 숫자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기록용 카메라를 똑바로 보았다⁠.

“⁠담당은 받겠습니다⁠. 마포 앞에 있어야 하니까요⁠. 부회장은 안 받겠습니다⁠. 저는 결계사입니다⁠. 회장님 뒤에 서려고 받은 숫자 아닙니다⁠.⁠”

기태의 얼굴에 처음으로 무언가 지나갔다⁠. 서운함인지 감탄인지 현주는 알 수 없었다⁠. 하정임이 돋보기를 올리고 수첩을 덮었다⁠.

“⁠도장은 다음 주 금요일⁠, 7일 오전 열한 시에 찍습니다⁠. 레벨 먼저 하고 도장은 일주일 뒤⁠. 일주일은 생각해 보세요⁠. 제 방식이에요⁠.⁠”

“⁠7일이면 법안 표결 날입니다⁠.⁠” 기태가 말했다⁠.

“⁠그건 국회 사정이고요⁠.⁠”

*

법원 정문 앞은 기자들로 막혀 있었다⁠. 재만이 드론을 띄우고 소리쳤다⁠.

“⁠아아⁠, 대한민국 첫 레벨 분할⁠! 국내 1위 결계사가 탄생했습니다⁠! 여러분⁠, 결계사가 1위입니다⁠!⁠”

재만의 휴대전화 화면에 댓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결계사 1위 실화냐 역사적이다⁠」

「⁠현주 언니 A급 됨ㅠㅠ⁠」

「⁠근데 아줌마가 자기 입으로 다 말했음 고무줄부터⁠」

「⁠삼 분 넘게 말한 거 처음 봄⁠」

전광판에는 도명란 의원의 성명이 떠 있었다⁠. 「⁠첫 분할 성공 — 헌터 부부 레벨 분할법⁠, 다음 주 통과 청신호⁠」⁠. 성명 아래로 외신 자막이 지나갔다⁠. 「⁠일본 헌터협회⁠, 한국 레벨 이전기 도입 문의⁠」⁠.

기자 하나가 현주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A급이 되신 소감은요⁠?⁠”

“⁠칼이 무거워요⁠.⁠”

기자들은 현주의 말을 받아 적느라 잠깐 조용해졌다⁠. 현주는 조용해진 틈에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아래 주차장 입구에서 기태가 차 문을 열다 말고 현주를 불렀다⁠.

“⁠왜 안 싸우셨어요⁠? 공청회 때처럼요⁠.⁠”

“⁠싸울 건 다음 주예요⁠.⁠” 현주는 칼끈을 고쳐 맸다⁠. 끈 길이가 아침과 같았는데 칼이 더 아래로 처졌다⁠. “⁠메기랑요⁠.⁠”

기태는 대답 없이 현주를 보다가 차에 올랐다⁠. 차창이 올라가기 전에 기태가 한 마디를 보탰다⁠. “⁠두 주 정지는 규정입니다⁠. 내가 만든 거 아닙니다⁠.⁠”

“⁠세 해 전에 만드신 거죠⁠.⁠”

차창이 끝까지 올라갔다⁠.

*

저녁 여섯 시⁠, 기지 컨테이너 숙소 앞에 협회 직원 둘이 빈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마포 담당이 아니면 기지 숙소를 쓸 수 없다고 했다⁠. 직원은 미안해하면서도 상자를 내려놓지 않았다⁠.

세 해 산 컨테이너의 짐은 상자 셋에 다 들어갔다⁠. 칼 손질 기름⁠, 컵라면 한 박스⁠, 경갑 수리 도구⁠, 시우가 여섯 살 때 그린 그림 한 장⁠. 그림에는 칼 든 사람과 지팡이 든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다⁠. 공개 수업에서 본 그림과 달리⁠,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현주는 그림을 접지 않고 상자 맨 위에 펴서 올렸다⁠.

둑길 아래로 태호의 SUV가 들어왔다⁠. 태호가 내려서 상자 하나를 들었다⁠.

“⁠작은방 써⁠.⁠”

“⁠모텔 잡을 거야⁠.⁠”

“⁠A급 헌터가 출동 정지 받고 모텔에 있으면 내일 기사 제목 뭐일지 알아⁠?⁠” 태호는 상자를 트렁크에 실었다⁠. “⁠「⁠국내 1위 남편⁠, 아내는 모텔로⁠」⁠. 시우 학교에서 다 봐⁠.⁠”

현주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시우였다⁠.

「⁠엄마 작은방 레고 내가 치웠어 근데 몇 개 못 찾음 발 조심⁠」

현주는 상자 둘을 들고 SUV 뒷자리에 실었다⁠. 뒷자리에는 아직 시우의 카시트가 있었다⁠. 현주는 카시트 옆에 상자를 놓고 조수석에 앉았다⁠.

*

작은방은 시우가 놀이방으로 쓰던 방이었다⁠. 벽에 메기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천장에는 야광 별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첫날 밤 현주는 이불을 펴다가 레고 조각 두 개를 밟았다⁠. 하나는 발뒤꿈치로⁠, 하나는 무릎으로⁠. 메기 꼬리에 맞을 때보다 소리를 크게 질렀다⁠. 거실에서 시우와 태호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토요일 아침에는 화장실 앞에서 부딪쳤다⁠. 현주는 열두 해 동안 화장실을 삼 분 만에 쓰고 나왔고⁠, 태호는 이십 분을 썼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바뀐 것은 처음이었다⁠. 현주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국내 1위가 화장실에서 뭐 해⁠?⁠”

“⁠1위는 원래 오래 해⁠!⁠”

출동 정지 두 주 동안 현주는 균열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침마다 시우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한강 둔치에서 나무 칼을 휘둘렀다⁠. 레벨 79의 몸은 99의 몸보다 반 박자 느렸다⁠. 같은 동작에 땀이 두 배로 났다⁠. 둔치를 지나가던 할아버지 하나가 혀를 차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운동을 안 한다고 했다⁠. 현주는 대꾸하지 않고 나무 칼을 한 번 더 휘둘렀다⁠.

열 시가 되면 현주는 김밥 한 줄을 은박지에 싸서 기지로 갔다⁠. 태호가 마포 담당이 된 뒤로 날마다 그랬다⁠. 출입석 앞에서 태호에게 김밥을 건네고⁠, 태호가 돌에 손을 얹는 것을 보았다⁠. 「⁠LV⁠.101 · S급 · 출입 허가⁠」⁠. 태호가 균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현주는 출입석 뒤 통제선에 서서 태호의 등을 보았다⁠. 남색 로브 위의 등산 조끼⁠, 주머니 열두 개⁠, 지팡이 끝의 하늘색⁠.

열두 해 동안 태호는 현주의 등을 보았다⁠. 균열 안에서는 결계 뒤에서⁠, 마포가 열린 뒤 세 해 동안은 일요일마다 이 통제선에서⁠. 현주는 등을 보는 일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 들어간 사람이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김밥 은박지만 접었다 폈다⁠. 핫도그 이모가 옆에 와서 핫도그 하나를 쥐여 주었다⁠.

“⁠이제 알겠죠⁠?⁠”

“⁠뭘요⁠?⁠”

“⁠기다리는 사람이 왜 김밥을 싸는지⁠.⁠”

태호는 날마다 저녁 무렵 나왔다⁠. 하루는 로브 소매가 찢어져 있었고⁠, 하루는 안경알에 또 금이 가 있었다⁠. 나올 때마다 태호는 손등을 내밀어 보여 주었다⁠. 「⁠LV⁠.101⁠」은 그대로였다⁠. 결계를 치는 사람에게는 메기의 금빛 가루가 실낱만큼만 왔다⁠. 국내 1위가 되어도 그랬다⁠. 태호는 막타를 치지 않았다⁠. 혼자 들어가서도 결계부터 쳤고⁠, 결계 안에서 메기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버텼다⁠.

“⁠막타 좀 쳐⁠. 1위잖아⁠.⁠”

“⁠손이 안 가⁠.⁠” 태호가 김밥 은박지를 깠다⁠. 손이 떨려서 은박지가 찢어졌다⁠. 현주가 은박지를 받아서 대신 까 주었다⁠. “⁠열두 해 동안 안 쳐 봐서⁠.⁠”

진성은 날마다 기지 측정 천막에서 금의 맥박을 쟀다⁠. 화면 속 그래프가 하루하루 가팔라졌다⁠. 진성은 숫자를 보여 주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

5월 6일 목요일 밤⁠, 작은방 천장의 야광 별이 희미하게 빛났다⁠. 현주는 이불 위에 누워 손등을 보았다⁠. 「⁠LV⁠.79⁠」⁠. 숫자 아래로 아주 가는 금빛 줄이 차오르다 만 채 멈춰 있었다⁠. 팔십까지 남은 길이었다⁠. 나무 칼로는 한 뼘도 차오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진성이었다⁠.

「⁠마포 맥박이 일 분에 열두 번입니다⁠. 보고서 그래프와 같습니다⁠. 내일입니다⁠.⁠」

이어서 한 통이 더 왔다⁠.

「⁠내일 아침 기지에 협회 상황실을 엽니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회장님도 아십니다⁠.⁠」

내일은 금요일이었다⁠. 오전 열한 시에 도장을 찍기로 한 날이었고⁠, 오후 두 시에 국회가 법안을 표결하는 날이었다⁠. 현주는 휴대전화를 가슴 위에 엎어 놓았다⁠. 거실에서 태호가 조끼 주머니를 하나씩 열었다 닫는 소리가 들렸다⁠. 반창고⁠, 진통제⁠, 박하사탕⁠, 고무줄⁠. 열두 번⁠. 지퍼 소리는 열두 번 나고 멈췄다가⁠, 한 번 더 났다⁠. 열세 번째 주머니는 없었다⁠. 태호가 같은 주머니를 다시 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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