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28자)

아빠랑 살래요, 엄마는 앞만 보잖아요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4월 26일 월요일 아침⁠, 여의도 헌터협회 본부 꼭대기층 회장실은 창이 한강을 향해 통째로 나 있었다⁠. 강 건너 망원 하늘에 보랏빛 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현주는 비서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들어가 기태의 책상 위에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붉은 도장이 찍힌 표지가 책상 유리에 비쳤다⁠.

기태는 읽던 서류를 덮었다⁠. 표지를 한 번 보고⁠, 현주를 한 번 보았다⁠.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곽 실장이군요⁠.⁠”

“⁠아니라고 하실 거예요⁠?⁠”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지시했고⁠, 내가 설정했어요⁠.⁠” 기태는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 창가로 갔다⁠. 손을 뒷짐 진 채 강 건너 금을 보았다⁠. “⁠헌터님⁠, 저 금 하나로 서울 지하철 두 노선이 달립니다⁠. 기지에서 일당 받는 보조 헌터가 사백 명이고⁠, 망원시장은 세 해 동안 손님이 세 배가 됐어요⁠. 협회 연구비의 절반이 저기서 나오고⁠, 그 연구비로 레벨 이전기를 만들었습니다⁠. 저걸 닫는 순간 나는 서울 불을 끈 사람이 됩니다⁠.⁠”

“⁠안 닫으면 새끼 균열이 열린대요⁠. 보고서에⁠.⁠”

“⁠예상입니다⁠. 세 해 전 연구원이 그린 그래프예요⁠.⁠” 기태는 돌아서지 않았다⁠. “⁠열리면 협회가 막습니다⁠. 레벨 이전법이 7일에 통과되면 A급 열 명의 레벨을 모아서 S급 다섯을 새로 만들 수 있어요⁠. 지금 서울에는 S급이 열둘뿐입니다⁠. 한 사람 손등에 숫자가 몰려 있으면 그 사람이 다치는 날 서울이 비어요⁠. 나는 그걸 고치려는 겁니다⁠.⁠”

“⁠그럼 소수점은요⁠? 그것도 서울 위해서예요⁠?⁠”

기태가 처음으로 몸을 돌렸다⁠.

“⁠두 분이 같이 문 앞에 서면 닫으실 거니까요⁠. 헌터님은 닫는 사람이에요⁠. 세 해 전 첫날에도 철수 무전을 한 번은 못 들은 척하셨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기태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굳은살을 문질렀다⁠. “⁠남편분 열두 해는 진짜입니다⁠. 내가 그분 마음을 빌려 썼다고 해도⁠, 열두 해가 가짜가 되지는 않아요⁠. 나도 마흔 해 뒤에 서 있었으니까 압니다⁠.⁠”

“⁠빌려 쓴 거 아니고 이용하신 거죠⁠.⁠”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회장님 선배요⁠.⁠” 현주가 말했다⁠. “⁠마흔 해 같이 뛰셨다는 분⁠. 은퇴하던 날 뒤 돌아보셨어요⁠?⁠”

기태의 손이 굳은살 위에서 멈췄다⁠. 창밖으로 협회 헬기 한 대가 망원으로 낮게 날아갔다⁠. 헬기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 봤습니다⁠. 은퇴식 무대에서 꽃다발 받고 내려가면서 객석에 손을 흔들었어요⁠. 나는 무대 뒤 커튼 옆에 있었고요⁠.⁠” 기태가 말했다⁠. “⁠그래서 이걸 만드는 겁니다⁠. 다음 사람은 커튼 옆에 안 서도 되게⁠.⁠”

“⁠그 다음 사람 손등에 숫자 올려 주려고⁠, 저희 집 세 해를 커튼 뒤로 보내셨네요⁠.⁠”

기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주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이거 들고 기자 만나면요⁠?⁠”

“⁠곽 실장은 내일 해고됩니다⁠. 대외비 유출이니 고발도 하게 되고요⁠. 그 사람 애가 둘입니다⁠.⁠” 기태는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높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30일에 손을 안 넣으셔도 결과는 같습니다⁠. 법이 통과되면 법원이 반을 정하고⁠, 소수점은 장치가 정합니다⁠. 장치 설정은 협회가 하고요⁠. 헌터님이 고르실 수 있는 건 언제냐뿐입니다⁠.⁠”

창밖에서 금이 한 번 크게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기태도 현주도 창밖의 금을 보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튿날 오후⁠, 기지 핫도그 노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상인 넷이 둘러앉아 있었다⁠. 핫도그 이모⁠, 칼국수집 사장⁠, 떡집 아저씨⁠, 메기 어묵 가게 총각이었다⁠. 탁자 위에는 「⁠망원시장 상인회 긴급 회의⁠」라고 쓴 종이와 반반 응원봉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현주가 지나가자 이모가 손을 흔들어 불러 앉혔다⁠.

“⁠헌터님⁠, 솔직히 말해 줘요⁠. 저거 닫을 수 있는 거예요⁠?⁠”

현주는 이모를 보았다⁠. 칼국수집 사장은 국자 대신 볼펜을 쥐고 있었다⁠.

“⁠왜요⁠?⁠”

“⁠인터넷에 누가 올렸대⁠. 마포 문 두 개라고⁠. 부부가 같이 치면 닫힌다고⁠.⁠” 떡집 아저씨가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화면에 「⁠마포 문 두 개임 진짜임⁠」 게시물이 떠 있었다⁠. 시우의 게시물이었다⁠. “⁠닫으면 우리 보라색 쑥떡은 어떻게 해요⁠. 작년에 기계까지 새로 들였는데⁠.⁠”

“⁠메기 어묵도요⁠.⁠” 총각이 말했다⁠. “⁠메기가 안 나오면 메기 어묵은 그냥 어묵이에요⁠.⁠”

“⁠닫히면 메기도 안 나오고⁠, 메기 숨도 안 나와요⁠.⁠” 현주가 말했다⁠. “⁠저번에 제 갈비뼈 금 간 거 보셨잖아요⁠.⁠”

“⁠봤죠⁠. 그래서 더 모르겠다는 거예요⁠.⁠” 이모가 응원봉 다발을 만지작거렸다⁠. “⁠헌터님 다치는 것도 싫고⁠, 우리 장사 닫히는 것도 싫어⁠. 둘 다 싫으면 어떡해요⁠?⁠”

현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모가 반반 응원봉 하나를 현주 손에 쥐여 주었다⁠.

“⁠닫든 안 닫든⁠, 우리는 반반이에요⁠.⁠”

*

수요일 오후 세 시⁠, 가사조정실 4의 문이 닫혀 있었다⁠. 문에는 하정임이 붙인 종이가 있었다⁠. 「⁠자녀 면담 중 · 부모님은 복도에서 기다려 주세요⁠」⁠.

복도 긴 의자의 한 끝에 현주가⁠, 다른 끝에 태호가 앉았다⁠. 의자는 다섯 사람이 앉는 길이였고⁠, 가운데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지나가던 법원 직원이 빈자리에 앉으려다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보고 그냥 지나갔다⁠.

“⁠무슨 얘기 할까⁠.⁠” 태호가 말했다⁠.

“⁠몰라⁠.⁠”

“⁠당신 몰라 하는 거 시우가 처음 들었대⁠.⁠”

“⁠그것도 시우가 말했어⁠?⁠”

“⁠토요일 밤에⁠. 엄마가 몰라 했다고 엄청 신나 하더라⁠.⁠” 태호는 조끼 주머니에서 박하사탕 두 개를 꺼내 하나를 가운데 빈자리에 놓았다⁠. 현주는 손을 뻗어 사탕을 가져왔다⁠. 의자 길이만큼 팔을 뻗어야 했다⁠.

이십 분이 지나 문이 열렸다⁠. 하정임이 두 사람을 불렀다⁠. 시우는 탁자 앞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토마토 타이머는 꺼져 있었다⁠.

“⁠시우가 직접 말하고 싶대요⁠.⁠” 하정임이 말했다⁠. “⁠저는 듣기만 하겠습니다⁠.⁠”

시우는 다리를 멈추고 엄마와 아빠를 차례로 보았다⁠. 연습한 얼굴이었다⁠.

“⁠저 평일엔 아빠랑 살래요⁠.⁠”

현주는 사탕 껍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비닐이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엄마는 앞만 보잖아요⁠. 아빠는 저 봐요⁠.⁠” 시우는 말을 멈췄다가 엄마를 똑바로 보며 이어 갔다⁠. “⁠엄마 미워서 아니에요⁠. 엄마는 앞을 봐야 메기를 잡잖아요⁠. 앞 보는 사람이 저까지 보려면 목 아파요⁠.⁠”

하정임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다가 펜을 멈추고 시우를 보았다⁠.

“⁠주말은 엄마랑 지낼래⁠?⁠”

“⁠네⁠. 주말은 엄마가 저 보는 연습 하는 날이에요⁠.⁠” 시우는 엄마에게 덧붙였다⁠. “⁠엄마 연습 잘해⁠.⁠”

태호가 고개를 숙였다⁠. 안경 너머로 무엇이 떨어졌는지 현주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아들을 보았다⁠. 시우는 다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할 말을 다 한 열한 살이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면담이 끝나고 태호가 시우 손을 잡고 먼저 나갔다⁠. 현주가 가방을 챙기는데 하정임이 돋보기를 머리 위로 올리며 말했다⁠.

“⁠제가 스무 해 동안 아이들 면담을 했는데요⁠, 엄마 목 아플까 봐 걱정하는 애는 처음 봤어요⁠.⁠”

현주는 웃으려다 웃지 못했다⁠. 하정임은 토마토 타이머를 서랍에 넣었다⁠.

“⁠30일에 뭘 하실지는 정하셨어요⁠?⁠”

“⁠아직요⁠.⁠”

“⁠정하시면 이번엔 삼 분 다 쓰세요⁠. 저 타이머 안 돌릴게요⁠.⁠”

“⁠엄마⁠.⁠” 시우가 말했다⁠. “⁠사탕 나도⁠.⁠”

현주는 쥐고 있던 박하사탕을 시우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껍질이 손바닥 땀에 젖어 있었다⁠.

*

수요일 밤⁠, 현주는 망원동 아파트 식탁에 앉았다⁠. 시우가 엄마도 저녁 먹고 가라고 했고⁠, 하정임이 면담 끝에 오늘은 시우 말을 들어 주라고 했다⁠. 태호가 김밥을 쌌다⁠. 참치김밥이었고 현주 몫에는 단무지가 빠져 있었다⁠. 시우가 엄마도 한 줄 싸 보라고 김발을 내밀었다⁠. 현주는 밥을 펴고 참치를 얹고 김발을 말았다⁠. 칼끝으로 메기 아가미를 찾는 손이 김발 앞에서는 힘 조절을 못 했다⁠. 김밥 옆구리가 터져 참치가 식탁으로 쏟아졌다⁠.

“⁠엄마 칼은 잘 쓰는데 김발은 못 써⁠.⁠” 시우가 배를 잡고 웃었다⁠.

“⁠김발은 막타가 없잖아⁠.⁠”

“⁠김밥은 막타 아니고 끝까지 말아야 돼⁠. 아빠가 그랬어⁠.⁠” 시우는 터진 김밥을 제 접시로 가져갔다⁠. “⁠이건 내가 먹을게⁠. 엄마가 처음 싼 거니까⁠.⁠”

태호는 아무 말 없이 새 김을 한 장 꺼내 현주 앞에 깔아 주었다⁠. 두 번째 김밥은 옆구리가 조금만 터졌다⁠. 시우는 김밥 꽁다리만 골라 먹다가 아홉 시에 소파에서 잠들었다⁠.

베란다 창 너머로 보랏빛 금이 보였다⁠. 아파트에서는 금이 기지에서보다 작았다⁠. 태호가 보리차 두 잔을 들고 나와 하나를 건넸다⁠. 두 사람은 빨래 건조대를 사이에 두고 난간에 기댔다⁠. 건조대에는 시우의 체육복이 널려 있었다⁠.

“⁠이 흉터⁠.⁠” 현주가 왼쪽 눈썹 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인천에서 생긴 거 기억나⁠?⁠”

“⁠지네 다리⁠.⁠”

“⁠그날 왜 다쳤는지는⁠?⁠”

태호는 보리차를 들고 생각했다⁠. “⁠…⁠…당신이 갑자기 멈췄어⁠.⁠”

“⁠뒤를 봤어⁠.⁠” 현주는 흉터를 문질렀다⁠. “⁠결계가 한 번 크게 흔들렸거든⁠. 깨지는 소리가 났어⁠. 돌아보니까 당신이 코피를 흘리면서 지팡이를 붙들고 있더라⁠. 무릎이 반쯤 꺾여서⁠. 그거 보는 사이에 지네 다리가 들어왔어⁠.⁠”

태호의 손에서 보리차 잔이 살짝 기울었다⁠.

“⁠나와서 당신이 내 이마 꿰매면서 그랬어⁠. 뒤는 보지 마⁠. 내가 있어⁠. 당신이 보면 당신이 다친다고⁠.⁠” 현주는 창밖의 금을 보았다⁠. “⁠그래서 안 봤어⁠. 여덟 해 동안 한 번도⁠. 돌아보고 싶을 때마다 흉터가 당겼어⁠.⁠”

태호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빨래 건조대의 체육복이 바람에 흔들렸다⁠.

“⁠내가 그랬구나⁠.⁠” 태호가 말했다⁠. “⁠나는 그 말 한 것도 잊었어⁠. 당신이 뒤를 안 본다고 열두 해 서운해하면서⁠, 보지 말라고 한 건 나였네⁠.⁠”

“⁠당신 말 하나는 잘 들어⁠.⁠”

“⁠하나만⁠.⁠”

현주가 웃었다⁠. 태호도 웃었다⁠. 웃음 끝에 태호가 보리차 잔을 건조대 위에 내려놓았다⁠.

“⁠청구 취하할게⁠. 30일에 손 안 넣어도 돼⁠.⁠”

“⁠넣어⁠.⁠”

태호가 현주를 보았다⁠. “⁠뭐⁠?⁠”

“⁠반 가져가⁠. 열두 해 맞잖아⁠. 고무줄도⁠, 김밥 은박지도⁠, 코피도⁠.⁠” 현주는 보리차를 다 마셨다⁠. “⁠당신이 취하해도 회장님은 법으로 해⁠. 7일에 법 통과되면 법원이 반을 정하고 소수점은 장치가 정해⁠. 결과는 똑같아⁠. 다른 건 하나야⁠. 그건 회장님이 주는 거고⁠, 이건 내가 주는 거야⁠.⁠”

“⁠그럼 당신 칠십구 돼⁠. 문 못 쳐⁠. 마포 못 닫아⁠.⁠”

“⁠한 레벨이야⁠. 잡아서 올리면 돼⁠.⁠”

“⁠칠십구에서 팔십은 한 달은 잡아야 돼⁠. 새끼 균열은 다음 주라며⁠.⁠”

“⁠그럼 다음 주에 한 달 치를 잡지 뭐⁠.⁠”

태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안경을 벗어 눈가를 닦았다⁠. “⁠말이 돼⁠?⁠”

“⁠안 돼⁠. 그래도 할 거야⁠.⁠” 현주가 빈 잔을 건조대 위 태호 잔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보고서는 안 들고 가⁠. 곽 실장 애가 둘이래⁠. 큰애가 시우 또래고⁠.⁠”

거실에서 소파 스프링이 삐걱였다⁠. 시우가 눈을 반쯤 뜬 채 베란다 문을 열었다⁠. 머리카락 한쪽이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엄마 아빠⁠, 김밥 남았어⁠?⁠”

“⁠다 먹었어⁠.⁠”

“⁠그럼 내일 또 싸⁠.⁠” 시우는 하품을 하며 몸을 돌렸다가 문턱에서 멈췄다⁠. “⁠엄마 오늘 자고 가⁠?⁠”

현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호가 대신 말했다⁠.

“⁠작은방에 이불 있어⁠.⁠”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로 돌아갔다⁠. 현주는 오른손을 쥐었다⁠. 손등에 「⁠LV⁠.99⁠」가 떠올랐다⁠. 이틀 뒤면 다른 숫자가 뜰 손이었다⁠. 현주는 주먹을 오래 쥐고 있다가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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