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05자)

국회 공청회에서 김밥 이야기를 한 S급 결계사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4월 21일 수요일 아침⁠, 국회 의원회관 검색대에서 금속 탐지기가 또 울었다⁠. 현주는 방호 직원이 바구니를 내밀기 전에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노란 케이블 타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칼집이랑 칼자루 묶으시면 돼요⁠. 법원에서 그렇게 했어요⁠.⁠”

방호 직원은 케이블 타이와 현주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무전기를 들었다⁠. 위층과 한참 이야기한 끝에 칼은 보관함에 맡기라는 답이 내려왔다⁠. 국회는 법원보다 엄했다⁠. 현주는 칼을 맡기고 번호표를 받았다⁠. 「⁠17번⁠」⁠. 칼 없이 등이 가벼우니 갈비뼈가 더 아팠다⁠. 기지를 나설 때 핫도그 이모가 반반 응원봉 하나를 후드 주머니에 꽂아 주며 국회 가서 반반으로 들고 있으라고 했다⁠. 현주는 응원봉을 꺼내지 않았지만 버리지도 않았다⁠.

대회의실 앞 현수막에는 「⁠헌터 부부 레벨 분할법 공청회⁠」가 큼직했다⁠. 방청석은 꽉 찼다⁠. 앞쪽 절반은 「⁠보조도 사냥이다⁠」 머리띠를 맨 보조 헌터들이었고⁠, 뒤쪽은 기자들과 외신 카메라였다⁠. 맨 뒷줄 구석에 곽진성이 앉아 있었다⁠. 현주와 눈이 마주치자 진성은 노트북 화면으로 고개를 숙였다⁠.

진술인석은 디자 모양으로 놓였다⁠. 왼쪽에 찬성 진술인 변태호와 보조 헌터 모임 대표⁠, 오른쪽에 반대 진술인 기현주와 가족법 교수⁠. 가운데 위원석에 도명란 의원이 앉았고⁠, 옆 참고인석에 염기태가 앉았다⁠. 태호와 현주 사이의 거리는 조정실 탁자보다 세 배쯤 멀었다⁠.

“⁠진술인 한 분당 오 분입니다⁠. 시간 넘기시면 마이크가 꺼집니다⁠.⁠”

명란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현주는 법원의 토마토 타이머를 떠올렸다⁠. 하정임은 마이크를 끄지는 않았다⁠.

하정임은 방청석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조정위원이 아니라 방청객이라고 했다⁠. 무릎 위에는 토마토 타이머가 놓여 있었다⁠. 현주와 눈이 마주치자 하정임이 타이머를 들어 보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오 분이면 두 판 반⁠.

*

태호가 먼저 마이크를 당겼다⁠. 등산 조끼를 벗고 남색 로브만 입은 모습은 현주가 보기에도 낯설었다⁠. 태호는 원고를 펼쳤다가 접었다⁠.

“⁠저는 결계사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협회 중계 화면에 제 뒤통수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반쯤요⁠. 화면 왼쪽 아래에 지팡이 끝이 하늘색으로 반짝이면 그게 저였습니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났다⁠. 태호는 웃지 않았다⁠.

“⁠아내가 앞에서 막타를 칠 때 저는 뒤에서 김밥 생각을 했습니다⁠. 끝나면 먹여야 하니까요⁠. 싸우고 나면 아내는 손이 떨려서 김밥 은박지를 못 깝니다⁠. 그래서 까서 줬습니다⁠. 그것도 열두 해 했습니다⁠.⁠”

현주는 테이블 아래에서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손이 떨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태호뿐이었다⁠.

“⁠그 열두 해 동안 저는 레벨이 하나 올랐습니다⁠. 하나요⁠. 저보다 늦게 결계사가 된 후배들도 다 비슷합니다⁠. 앞에 선 사람이 막타를 치면⁠, 뒤에 선 사람은 영입니다⁠. 저는 아내가 미워서 레벨을 나눠 달라는 게 아닙니다⁠. 뒤에 있는 사람도 숫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숫자가 있어야 뒤에 있었다는 게 남으니까요⁠.⁠”

보조 헌터들이 머리띠를 맨 채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보조 헌터 모임 대표는 쉰 넘은 C급 헌터였다⁠. 대표는 스물두 해 동안 마석 가방만 졌고⁠, 가방 하나가 이십 킬로그램이었다⁠. 대표는 진술을 마치고 의자 밑에서 실제로 마석 가방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탁자가 끼익 소리를 냈다⁠. 명란이 가방은 치워 달라고 했지만⁠, 가방을 든 방호 직원 둘이 휘청거리는 동안 방청석이 다시 한 번 일어나 박수를 쳤다⁠. 명란이 의사봉을 두드렸지만 박수는 한참 이어졌다⁠. 회의실 화면 귀퉁이에 국회방송 동시 접속자 숫자가 떠 있었다⁠. 평소의 마흔 배였다⁠.

*

현주 차례가 왔다⁠. 현주는 마이크를 당기다가 옆구리가 당겨 숨을 삼켰다⁠.

“⁠레벨은 몸이에요⁠. 메기가 죽을 때 금빛 가루가 제 손등으로 들어와요⁠. 뜨거워요⁠. 그 뜨거운 게 쌓여서 제 몸이 된 거예요⁠. 의원님⁠, 몸을 반 나눌 수 있어요⁠?⁠”

“⁠혼인 중에 몸으로 번 월급도 나눕니다⁠.⁠” 명란이 바로 받았다⁠. “⁠공사장에서 몸으로 번 돈도요⁠.⁠”

“⁠월급은 쓰면 없어지잖아요⁠. 레벨은 안 없어져요⁠. 제가 칠십구가 되면 내일 메기 숨을 칠십구로 받아야 돼요⁠.⁠”

가족법 교수가 마이크를 켰다⁠. “⁠보충하겠습니다⁠. 지금 민법의 재산분할은 반반이 원칙이 아닙니다⁠. 각자 얼마나 보탰는지⁠, 기여도를 보고 법원이 정합니다⁠. 법으로 반을 박아 버리면 법원이 볼 것이 없어집니다⁠.⁠”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고 덧붙였다⁠. “⁠게다가 레벨은 이혼 뒤에도 몸에 남아 일을 합니다⁠. 남편분이 백 레벨이 되면 남편분이 위험한 균열에 불려 갑니다⁠. 반을 받는 순간 위험도 반을 받는 겁니다⁠. 그 위험을 받을지 말지도 사람이 골라야 합니다⁠.⁠”

태호가 교수를 쳐다보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싸움이 줄어듭니다⁠.⁠” 명란이 말했다⁠. “⁠기여도를 놓고 싸우다가 부부가 생중계까지 하잖아요⁠. 반이면 싸울 일이 없어요⁠.⁠”

“⁠반이면 막타는 누가 쳐요⁠?⁠” 현주가 말했다⁠. “⁠법이 쳐요⁠?⁠”

방청석이 웃었다⁠. 명란은 웃지 않고 참고인석을 보았다⁠.

“⁠염기태 회장님⁠, 협회에 장치가 몇 대 있습니까⁠?⁠”

“⁠지금은 시제품 한 대입니다⁠. 법이 생기면 전국 지부마다 한 대씩 둘 계획입니다⁠.⁠” 기태가 말했다⁠. “⁠그리고 헌터님 말씀에 하나 보태자면⁠, 레벨이 안 없어지는 건 맞습니다⁠. 그래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에 S급이 열둘뿐입니다⁠. 레벨이 몇 사람 손등에만 쌓여 있으면⁠, 그 사람들이 다치거나 늙는 날 서울이 비어요⁠.⁠”

“⁠회장님⁠.⁠” 현주는 남은 시간을 보았다⁠. 일 분 이십 초였다⁠. “⁠세 해 전 마포 첫날⁠, 저희 부부 철수시키셨죠⁠. 왜 철수시키셨어요⁠?⁠”

“⁠위험해서요⁠.⁠” 기태는 망설이지 않았다⁠. “⁠처음 열린 S급 균열이었습니다⁠. 세 해 전 일이고⁠, 오늘 안건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있어요⁠. 그날 저희가 같이 결계를 치니까 금이⁠…⁠…⁠.⁠”

“⁠진술인⁠, 안건 밖 질문은 삼가 주세요⁠.⁠” 명란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삐⁠. 마이크가 꺼졌다⁠. 오 분이 끝났다⁠. 현주는 꺼진 마이크에 대고 입을 벌린 채 굳었다⁠. 조용해진 회의실에 방청석 세 번째 줄의 토마토 타이머가 땡 울렸다⁠. 하정임이 맞춰 둔 오 분이었다⁠. 회의실 전체가 웃음을 터뜨렸고⁠, 명란이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리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맨 뒷줄에서 진성이 노트북을 덮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커서 앞줄 기자 몇이 돌아보았다⁠.

*

쉬는 시간⁠, 의원회관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현주는 태호와 마주쳤다⁠. 태호가 동전을 넣자 자판기가 동전을 삼키고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태호는 반환 버튼을 세 번 눌렀다⁠.

“⁠작년 겨울에 회장님 만났지⁠.⁠” 현주가 말했다⁠.

태호의 손가락이 반환 버튼 위에서 멈췄다⁠.

“⁠시우가 보내 준 협회 게시판 사진 보다가 알았어⁠. 작년 12월 협회 송년회 사진에 당신이 회장님 옆에 앉아 있더라⁠. 당신 송년회 안 가잖아⁠.⁠”

“⁠…⁠…회장님이 먼저 물었어⁠.⁠” 태호는 자판기에서 손을 뗐다⁠. “⁠열두 해를 숫자로 받고 싶지 않냐고⁠. 장치를 만들고 있다고⁠. 결계사로 마흔 해 산 사람이 그렇게 물으니까 대답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이혼도 회장님이 하자고 했어⁠?⁠”

“⁠이혼은 내가 하자고 했어⁠. 2월에⁠, 당신이 기지에서 설 쇠던 날⁠.⁠”

“⁠왜⁠?⁠”

“⁠당신이 뒤를 한 번도 안 봐서⁠.⁠”

현주는 받아칠 말을 알고 있었다⁠. 여덟 해 전 인천에서 들은 말이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현주는 삼켰다⁠. 대신 자판기 옆구리를 발로 찼다⁠. 자판기가 쿵 울리더니 캔 두 개를 한꺼번에 떨어뜨렸다⁠. 보리차 캔이었다⁠. 현주는 하나를 태호에게 내밀었다⁠.

“⁠볼 일이 없었으니까⁠.⁠”

“⁠있었어⁠. 많았어⁠.⁠” 태호는 캔을 받았다⁠. 차가운 캔을 이마의 꿰맨 자리에 대 보다가 내려놓았다⁠. “⁠내가 안 보여 준 것도 있고⁠.⁠”

“⁠뭘 안 보여 줬는데⁠?⁠”

복도 저편에서 보조 헌터 몇이 태호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태호는 보리차 캔을 손에 쥔 채 그리로 걸어갔다⁠. 현주는 자판기 앞에 혼자 남아 캔 뚜껑을 땄다⁠. 따는 순간 손이 떨려서 보리차가 손등으로 흘렀다⁠.

*

휴대전화가 떨었다⁠. 시우였다⁠.

「⁠엄마 아빠 국회방송 나옴 반 애들 다 봄ㅋㅋ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틀어 줌⁠」

「⁠근데 엄마 3년 전 영상 끝까지 봐 줘 제발 끝에 소리 있어⁠」

시우가 보낸 주소를 누르자 둑길에서 본 영상이 다시 열렸다⁠. 「⁠2024⁠.03⁠.11 · 마포 균열 첫날⁠」⁠. 현주는 복도 창가에 기대 이어폰을 꽂고 화면을 끝까지 넘겼다⁠. 금빛 결계 위로 보랏빛 금이 눈에 띄게 오므라드는 장면⁠, 협회 무전이 지직거리는 장면⁠. 「⁠전원 철수⁠. 반복한다⁠, 철수⁠.⁠」 둑길에서 들은 데까지였다⁠. 시우가 소리를 키워 붙여 둔 마지막 십 초가 남아 있었다⁠.

무전 너머에서 다른 목소리가 낮게 덧붙였다⁠. 무전을 끄기 직전에 섞여 들어간 목소리였다⁠.

「⁠마포는 손대지 마라⁠. 닫으면 안 된다⁠.⁠」

현주는 영상을 되돌려 한 번 더 들었다⁠. 낮고 매끄러운 목소리⁠, 끝을 살짝 내리는 버릇⁠. 오늘 오전 참고인석에서 레벨이 몇 사람 손등에만 쌓여 있으면 서울이 빈다고 말한 목소리였다⁠.

복도 저편 회의실 문이 열리고 기태가 나왔다⁠. 전화를 하며 걸어오다가 창가의 현주를 보고 전화를 끊었다⁠. 현주는 이어폰 한 짝을 빼서 기태에게 내밀었다⁠.

“⁠들어 보세요⁠. 회장님 목소리예요⁠.⁠”

기태는 이어폰을 받아 귀에 대고 십 초를 들었다⁠. 표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어폰을 돌려주는 손도 떨리지 않았다⁠.

“⁠세 해 전 오후 세 시였죠⁠. 그 시각에 나는 상황실에서 서울 지도 전체를 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열린 S급 균열이었고⁠, 누가 들어가서 무슨 일이 날지 아무도 몰랐어요⁠.⁠” 기태는 와이셔츠 소매를 내려 단추를 채웠다⁠. “⁠무전에 섞인 한마디로 사람을 재지 마세요⁠, 헌터님⁠. 막타 숫자로 남편분을 재셨듯이요⁠.⁠”

“⁠닫으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왜 안 돼요⁠?⁠”

“⁠안건 밖 질문이라고 의원님이 그러셨죠⁠.⁠” 기태는 회의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음 기일에 뵙겠습니다⁠. 장치 들고요⁠.⁠”

현주는 이어폰을 쥔 채 창밖을 보았다⁠. 의원회관 창으로는 마포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데도 현주는 북서쪽을 오래 보았다⁠.

*

공청회가 끝나고 명란이 마이크 앞에서 일정을 읽었다⁠. 법안은 5월 7일 금요일 상임위에서 표결한다고 했다⁠. 기태가 이어서 마이크를 잡았다⁠.

“⁠협회는 4월 30일 다음 조정 기일에 장치를 법원으로 가져가겠습니다⁠. 두 분이 합의하시면 그 자리에서 첫 분할을 하겠습니다⁠.⁠”

현주는 보관함에서 17번 칼을 찾아 등에 멨다⁠. 칼이 등에 닿자 갈비뼈가 덜 아팠다⁠. 복도에서 하정임이 현주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하정임은 타이머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아까 마이크 꺼질 때 하실 말씀이 남으셨죠⁠?⁠”

“⁠네⁠.⁠”

“⁠다음 기일엔 제가 안 끕니다⁠. 대신 이번엔 제대로 하세요⁠. 세 해 전 일 말고⁠, 열두 해 일로요⁠.⁠” 하정임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무릎에 좋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누군가 손을 넣어 문을 막았다⁠. 진성이었다⁠. 진성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지 않고 접은 쪽지 하나만 현주 손에 쥐여 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쪽지에는 볼펜 글씨가 꾹꾹 눌려 있었다⁠.

「⁠토요일 낮 열두 시 · 망원시장 칼국수집 · 시우 영상 끝까지 봤습니다⁠. 시우도 데려오세요⁠. 시우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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