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11자) · 처음 형식으로

송신 300

궤도에서 온 편지 · 서지오

첫 수확은 사월 초에 했다.

꼬투리는 노랗게 마르면 딴다. 교범 부록은 그렇게 말하지만, 무중력에서는 마른 꼬투리가 저절로 터진다. 터지면 콩알이 튀어 나가서 송풍기 망에 붙는다. 그래서 나는 꼬투리 하나하나에 비닐 봉지를 씌우고 입구를 치실로 묶어 두었다. 서른 개가 넘는 봉지가 덩굴 끝에 달려 흔들리는 걸 보면, 3구역은 온실이 아니라 누가 잔치를 준비하다 만 방 같았다.

사흘 동안 봉지 안에서 꼬투리가 하나씩 터졌다. 밤에 자다가 들으면 3구역 쪽에서 톡, 하는 소리가 났다. 작고 마른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날 때마다 침낭 안에서 숫자를 하나 올렸다. 사흘째 밤에 백열 번을 넘겼다.

봉지를 풀다가 하나를 놓쳤다. 콩알 하나가 봉지 입구로 빠져나가 천천히 돌면서 송풍기 쪽으로 갔다. 나는 그걸 잡으러 3구역을 두 바퀴 돌았다. 결국 망에 붙은 걸 핀셋으로 떼어 냈다. 나사, 단호박죽, 그리고 콩. 이 정거장에서 내가 쫓아다닌 것들의 목록에 한 줄이 늘었다.

다 모은 콩은 이백사십 알이었다. 한 줌 반쯤 됐다. 무게를 재니 오십팔 그램이었다. 삼 년 가까이 이 정거장이 스스로 만든 첫 먹을거리. 저울 눈금이 오십팔에서 멈추는 걸 보는데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한 줌은 먹었다. 뜨거운 물 봉지에 넣고 열두 시간 불린 다음, 조리기에 넣어 삶았다. 조리기는 죽 봉지를 데우는 용도라서 온도가 끝까지 안 올랐다. 세 번을 돌렸다. 봉지를 열자 김이 한 덩어리로 뭉쳐 나와 천천히 퍼졌다. 콩 삶은 냄새였다. 무중력에서 김은 위로 안 올라가고 얼굴 앞에 둥글게 머문다. 나는 그 둥근 김 속에 얼굴을 묻고 한참 있었다.

맛은 싱거웠다. 소금이 없었다. 소금은 보급 목록에 있었지만 나는 넣지 않았다. 처음 것은 처음 맛으로 먹고 싶었다. 씹으면 겉이 조금 질기고 속은 포슬포슬했다. 비린 맛이 살짝 났다가 고소한 맛이 뒤따라왔다. 한 알을 오래 씹었다. 두 번째 알은 더 오래 씹었다. 세 번째 알을 씹을 때쯤 턱이 아팠다. 삼 년 가까이 죽만 먹은 턱이었다.

남은 반 줌은 밀봉 봉투에 넣었다. 봉투에 매직으로 이름을 적으려다가 멈췄다. 이름 대신 번호를 적었다. 「17」. 그리고 그 옆에 조금 작게, 「23」. 반 줌을 둘로 나눌 수는 없었다. 봉투 하나에 번호가 둘이었다.

송신 287. 발신 시각 09:14.

보고합니다.

0. 3구역 첫 수확. 콩 이백사십 알, 오십팔 그램. 0-1. 한 줌을 먹었습니다. 싱거웠습니다. 일부러 싱겁게 먹었습니다. 0-2. 반 줌은 밀봉해 두었습니다. 받을 사람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1. 7번 자리 공사 시작. 벽 클램프 두 개는 십사 년 전 것 그대로 씁니다. 녹이 없습니다. 잘 만든 클램프입니다. 2. 급수관은 보급 예비품에서 한 벌을 돌렸습니다. 원래 산소 탱크 연결용입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사후 보고합니다.

이상입니다.

수신 287. 수신 시각 09:23.

1. 산소 탱크 연결관 전용 승인합니다. 소급해서. 2. 클램프 칭찬 감사합니다. 만든 사람이 잘 받았다고 전합니다. 3. 발사까지 열흘입니다.

이상입니다.

열흘이었다. 지연은 구 분이 됐고, 구 분은 이제 짧았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을 다 못 끝냈는데 답이 먼저 왔다. 십사 분을 버티던 몸이 구 분을 남는 시간으로 여기지 못했다. 나는 구 분 동안 할 일의 목록을 새로 짜려다가 그만두었다. 짜기도 전에 필요 없어질 목록이었다.

7번 자리는 1번 배양조 옆 벽에 있었다. 클램프 두 개가 네모난 여백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고, 그 여백 한가운데 급수관이 지나갈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구멍 가장자리에 줄로 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가 드릴이 아니라 손줄로 구멍을 넓힌 것이다. 나는 그 줄 자국을 장갑 낀 손가락으로 쓸었다. 거친 자리와 매끈한 자리가 번갈아 나왔다. 줄질을 하다가 멈춘 자리가 있었다. 그 뒤로는 거칠었다. 십사 년 전 그 사람은 여기서 줄을 내려놓고 짐을 싸러 갔다.

나는 나머지를 갈았다. 한 시간이 걸렸다. 매끈해질 때까지.

배양조 뚜껑에 번호는 쓰지 않았다. 매직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 자리의 번호는 그 사람 글씨로 적히는 게 맞았다. 끝이 조금 올라간 7. 그 글씨가 적히기 전까지 이 배양조는 번호가 없다.

그다음 이틀은 정거장을 두 사람 몫으로 바꾸는 데 썼다. 침낭을 하나 더 꺼내 옆 칸 벽에 묶었다. 상주자가 나 하나가 된 뒤로 창고였던 칸이라 공구 상자와 빈 필터 통이 쌓여 있었다. 그걸 다 옮기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식탁 걸쇠를 하나 더 달았다. 컵 고리를 하나 더 달았다. 칫솔 벨크로를 하나 더 붙였다. 벨크로를 붙이다가 손이 멈췄다. 칫솔이 두 개 나란히 붙어 있는 벽을 상상했는데, 그 상상이 잘 안 됐다. 벽에 칫솔은 늘 하나였다.

그리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했다. 교신은 전부 글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사람에게 말한 게 보급선 기장이었고, 그때도 「네」와 「압니다」가 거의 전부였다. 3구역에서 콩한테 말을 걸어 본 적은 있다. 그건 셈에 안 넣는다. 나는 창가에서 「안녕하세요」를 소리 내어 해 보았다. 목이 잠겨서 끝이 갈라졌다. 물을 마시고 다시 했다. 이번에는 너무 컸다. 좁은 통로에서 울려서 벽이 한 번 더 말했다. 안녕하세요. 세 번째에 적당해졌다. 그다음에 할 말을 고르다가 그만두었다. 그다음은 구 분이 걸리지 않는다. 고를 시간이 없다. 그 생각을 하자 손바닥이 조금 젖었다. 닦지 않았다.

가족 우편은 발사 엿새 전에 왔다.

「[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

첫 줄이 전부 대괄호였다. 여덟 개였다. 이솔이 여덟 개를 붙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혼할 때 다섯 개였다. 나는 둘째 줄을 읽기 전에 여덟 개를 한 번 더 셌다.

「오빠 나 엄마 됐어. 사월 구 일 새벽. 삼 킬로 이백. 남자애. 엄마가 오빠 닮았대 코가. 불쌍하게.」

그다음 줄에는 대괄호가 하나도 없었다.

「이름은 내가 지었어. 오빠 늦어서. 도하. 물 건너 도 자에 여름 하. 여름에 강 건너는 거. 오빠가 지었으면 또 보고서처럼 지었을 거잖아.」

「그리고 뉴스 봤어. 관제하는 사람 하나 올라간다며. 그 사람이지. 엄마가 그러는데 오빠 편지에 맨날 관제님 관제님 해서 알았대. 엄마는 다 알아.」

「어제 도하 안고 옥상 올라갔어. 저녁에. 오빠가 적어 준 시간에. 점 지나가더라. 저기 삼촌 있다 했어. 조금 있으면 둘이라고도 했어. 도하는 잤어.」

마지막 줄은 이백 번째 칸에 걸려 있었다.

「오빠 지난번에 팔십 자 남겼지. 그거 이번에 써.」

나는 우편 창을 한참 그대로 두었다. 도하. 물 건너 도, 여름 하. 여름에 강을 건너는 아이. 동생은 이름에 건너는 것을 넣었다. 오빠가 건너오기를 바라서인지, 아이가 언젠가 건너가기를 바라서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백 자 안에는 그걸 적을 칸이 없었다. 3구역에서 송풍기 소리가 났다. 7번 자리에 이제 막 물이 도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썼다. 이백 자. 번호 없이.

「솔아. 도하 축하한다. 이름 좋다. 보고서보다 낫다. 코는 미안하다. 너 옥상 올라갔을 때 오빠도 창가에 있었다. 너희 동네 위였다. 구름이 없었다. 불빛이 보였다. 어느 게 너희 집 불인지는 모르겠더라. 그래서 다 봤다. 도하한테 나중에 말해 줘라. 저건 우리 집 별이라고. 이번엔 진짜다. 사람이 살아.」

세어 보니 백구십팔 자였다. 두 자가 남았다. 나는 그 두 자를 채우지 않고 보냈다. 동생은 칸이 남은 걸 보고 알 것이다. 오빠가 이번에는 모자라지 않았다는 걸.

발사 전날 밤, 나는 보고서를 처음 형식으로 썼다.

송신 300. 발신 시각 22:00.

0. 이 송신은 삼백 번째입니다. 0-1. 삼백 번째라서 형식을 처음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송신 012와 같은 순서로 적습니다.

보고합니다.

1. 산소 순환계 정상. 3번 필터 교체함. 예비 필터 남은 수량 여섯. 2. 태양광 패널 좌현 2번 출력 91퍼센트. 궤도가 낮아진 뒤로 조금 올랐습니다. 3. 식량 재고 삼백일 인분. 3구역 수확분은 셈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건 식량이 아니라서. 4. 통신계 정상. 중계 지연 구 분 십이 초. 5. 3구역 배양조 여섯 개 가동. 일곱 번째는 급수관까지 끼웠고 비어 있습니다. 내일 올라올 것을 위해. 6. 역대 상주자 휘장 스물세 번째는 복제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진짜가 내일 올라온다고 들었습니다. 붙일 자리는 번호 없는 배양조 앞으로 비워 두었습니다. 7. 오늘 창밖으로 지구가 열여섯 번 하고 한 번 더 지나갔습니다. 궤도가 낮아서입니다. 8. 이건 보고 항목이 아닙니다. 지우려다가 안 지웠습니다. 9. 내일부터 이 보고서는 두 사람이 씁니다. 항목을 어떻게 나눌지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10. 0번은 제가 쓰겠습니다. 거기가 제일 넓어서.

이상입니다.

답은 구 분 뒤에 왔다.

수신 300. 수신 시각 22:09.

관제 서린입니다.

1. 보고 확인했습니다. 2. 항목 1부터 4까지 정상 처리합니다. 3. 항목 5와 6은 내일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4. 항목 7은 평소보다 한 번 많습니다. 이것도 보고 항목이 아닙니다. 5. 항목 10은 반려합니다. 0번은 같이 씁니다. 사유는 행정상 처리 가능. 6. 이것이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회신입니다. 7. 다음 답은 구 분 걸리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5번 줄을 세 번 읽었다. 행정상 처리 가능. 반려 사유가 허가였다. 그 사람은 가끔 이렇게, 번호 붙은 줄 안에 번호로 안 되는 말을 숨겨 놓는다. 나는 이제 그걸 찾는 데 빨랐다.

그날 밤 나는 창가에 오래 있었다. 지구가 들어왔다가 나갔다. 밤인 쪽이 들어올 때, 대륙 끝 바닷가에 불빛이 조금 모인 자리가 있었다. 고흥이었다. 오타가 아니었던 지역 이름. 그 불빛 가운데 하나가 관제실이고, 그 관제실에 창은 하나뿐이고, 거기 오늘 밤 마지막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반 줌짜리 콩 봉투를 창틀 고리에 걸어 두었다. 17과 23. 내일 그 옆에 번호가 하나 더 붙을지는 그 사람이 정할 일이었다.

세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세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세는 사람이 둘이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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