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16자) · 일곱 번째 자리

올라가는 배

궤도에서 온 편지 · 서지오

결재는 폐쇄 예정일 아흐레 전에 났다.

문서는 네 쪽이었다. 첫 쪽에 「정거장 운영 연장 — 조건부」라고 적혀 있었고, 조건은 셋이었다. 하나, 정거장 궤도를 낮춘다. 둘, 협의체에 감쇠 일정을 낸다. 셋, 연장 운영 기간에는 단독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다. 상주 인원은 두 명이다.

결재란 넷째 칸에 권도형의 서명이 있었다. 획이 곧았다. 끝을 끌어올리지 않는 글씨였다. 셋째 칸은 비어 있었다. 철회 신청을 낸 사람의 칸이라서.

서린은 그 문서를 관제실 종이 로그 사이에 끼워 두었다. 전자 문서라 끼울 수 없어서 인쇄했다. 인쇄한 문서를 로그에 끼우는 건 규정에 없다.

궤도 하강은 이틀에 걸쳐 했다. 정거장 추진기를 짧게 여러 번 태워서 조금씩 내려앉히는 작업이었다. 양 박사가 관제실에 와서 서린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사십팔 시간 동안 집에 가지 않았고, 민재가 사 온 컵라면을 여섯 개 먹었다. 여섯 번째를 먹으면서 「이건 궤도 역학이 아니라 컵라면 역학」이라고 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양 박사는 혼자 웃었다.

마지막 분사가 끝났을 때 화면의 지연 값이 바뀌었다.

「중계 지연: 9분 12초.」

서린은 그 숫자를 오래 봤다. 십사 년에 이 분이 줄었는데, 이틀에 사 분 사십팔 초가 줄었다. 거리는 이렇게도 준다. 누가 결재하면. 그리고 누가 끝까지 버티면.

그날 정거장에서 온 보고서는 짧았다.

송신 142. 발신 시각 16:40.

보고합니다.

1. 궤도 하강 완료. 추진기 정상. 2. 창밖 지구가 조금 커졌습니다. 기분 탓이 아닙니다. 계산해 봤습니다. 3. 오늘 지구는 열여섯 번 하고 조금 더 지나갈 겁니다. 궤도가 낮으면 빨리 돕니다. 4. 답이 구 분 만에 오겠군요.

이상입니다.

수신 142. 수신 시각 16:49.

1. 구 분 만에 갑니다. 2. 오 분이 남았습니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보내 놓고 서린은 정말로 오 분 동안 무엇을 할지 몰라서 창가에 섰다. 창밖에는 고흥 바다가 있었고, 낮이라 하늘에 점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구 분 거리에 있었다.

상주 인원 두 명이라는 조건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문서 부록에 자격 요건만 있었다. 궤도 체류 경험 백오십 일 이상. 3구역 설비 정비 가능자. 의료 재인증 통과. 관제 인력 가운데 그 셋을 다 갖춘 사람은 한 명이었다. 운영국 인력 가운데는 한 명 더 있었다. 쉰 살이고 본청 국장이었다.

권도형은 전화로 말했다. 목소리는 회의 때와 같았다.

“저는 안 갑니다. 저는 결재를 한 사람이라서요. 결재한 사람이 올라가면 그건 연장이 아니라 사유화입니다.”

“압니다.”

“그리고 저는 기다려 본 사람입니다. 올라가는 쪽이 아니라.”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양식은 관제님이 만든 걸 그대로 씁니다. 칸은 두 개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서린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귀에 댔던 쪽이 따뜻했다.

의료 재인증은 대전에서 사흘 걸렸다. 첫날은 피를 뽑고 뼈 밀도를 쟀다. 둘째 날은 원심분리기에 탔다. 십사 년 만이었다. 회전이 시작되자 몸이 의자에 짓눌렸고, 시야 가장자리가 까맣게 좁아졌다. 서린은 교관이 시킨 대로 배에 힘을 주고 짧게 숨을 끊어 쉬었다. 그 방법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십사 년이 몸에서는 하루였다. 원심분리기에서 내린 뒤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민재가 따라와 문밖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봉지는 필요 없었다. 민재는 그 봉지를 끝까지 들고 있었다.

“선배, 진짜 가세요?”

“칸에 아직 표시 안 했어.”

“근데 가실 거잖아요.”

서린은 대답하지 않고 세수를 했다. 거울 속 얼굴이 하얬다. 민재는 봉지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으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럼 야간 관제 저 혼자네. 커피 두 잔 다 제가 마셔야겠다.”

셋째 날 오후, 검사가 다 끝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권도형이 왔다. 본청은 의료동과 같은 단지 안에 있었다. 그는 서류 가방 대신 작은 비닐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다. 서린 옆자리에 앉지 않고, 한 칸 건너 앉았다.

“결과 들었습니다. 통과랍니다.”

“아직 통보 안 받았는데요.”

“제가 먼저 물어봤습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웃지 않았다. 그리고 비닐 파일을 두 사람 사이 빈 의자에 올려놓았다. 파일 안에 동그란 천 조각이 하나 들어 있었다. 휘장이었다. 테두리 실이 조금 바래 있었고, 가운데 정거장 그림 아래 이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스물세 번째 겁니다. 내려올 때 떼 왔습니다. 정거장에 붙은 건 복제품이고요. 진짜는 제 서랍에 있었습니다.”

서린은 파일을 집지 않았다. 권도형이 말을 이었다.

“이름 자리를 비워 둔 건 규정 때문이 아닙니다. 수를 놓으려고 했는데, 제 이름을 거기 넣으면 제가 거기 있었던 게 끝나는 것 같아서요. 끝내기 싫어서 비워 뒀습니다. 십삼 년 동안.”

그는 파일을 서린 쪽으로 조금 밀었다.

“가져가 주십시오. 3구역 번호 없는 배양조 앞에 붙여 주시면 됩니다. 이름은 안 놓아도 됩니다.”

“국장님이 직접—”

“저는 결재한 사람입니다.”

그는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오른손 엄지로 흉터 자리를 한 번 문질렀다. 클램프가 문 자리.

“물 주는 사람이 둘이 되면, 그건 제 결재 덕이 아니라 그 사람이 버틴 덕입니다. 보고서에 그렇게 쓰십시오.”

권도형은 복도로 나갔다. 서린은 한참 뒤에 파일을 집었다. 비닐이 차가웠다. 천 조각은 가벼웠다. 무게를 재면 몇 그램이나 될까. 우주선에 싣는 물건은 그램 단위로 허가를 받는다. 그녀는 이 천 조각의 무게를 신고서 어느 칸에 적어야 할지 잠깐 생각했다. 개인 물품 칸이었다. 그 칸은 아직 비어 있었다. 첫 줄에 적힐 물건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기일은 그 주 토요일이었다.

순천 집 밥상에 가지볶음이 올라왔다. 기름이 적었다. 어머니는 제사상을 차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싫어했다. 대신 아버지가 좋아하던 걸 한 가지 해서 식구끼리 먹는다. 십사 년 동안 그랬다. 첫해에는 서린이 한 젓가락도 못 먹었다.

창밖에서 시장이 파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셔터 내리는 소리, 빈 상자 끄는 소리, 누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 부엌 환풍기가 덜덜 돌았고, 식탁 위 형광등 하나가 가끔 깜박였다. 어머니는 그 등을 몇 년째 안 갈고 있었다. 깜박일 때마다 가지볶음 기름이 번들거렸다가 흐려졌다. 서린은 그 깜박임이 관제실 나간 줄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가지를 세 젓가락 먹었다.

“엄마.”

“왜?”

“나 다시 올라가.”

어머니는 가지를 집던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집어서 밥 위에 올리고, 밥과 같이 입에 넣고, 다 씹어서 삼켰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언제.”

“다음 보급선. 백칠십 일쯤 뒤.”

“그 사람 있는 데.”

“응.”

어머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장식장 위 사진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뱃머리에 서서 손으로 햇빛을 가린 사람.

“이번엔 끝까지 있다 와라.”

서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중간에 내가 아프고 뭐 하고 해도, 끝까지 있다 와. 네 아버지가 그때 너 내려온 거 알았으면 뭐라 했을 거 같냐. 배는 물때 맞춰 나가는 거지 집에 일 있다고 도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그 소리 했을 거다.”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가지를 한 번 더 집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작은 종이봉투를 하나 가지고 왔다.

“가지 씨다. 거기서 되는지 모르겠다만.”

봉투는 약국 봉투였다. 겉에 어머니 글씨로 「가지. 작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린은 봉투를 받아 흔들어 보았다. 안에서 작은 것들이 부딪쳤다. 사락, 사락.

그날 밤 관제실에서 서린은 양식을 열었다. 탑승, 미탑승. 네모 칸 두 개. 그녀가 만든 양식이었고, 셋째 칸이 빠진 자리가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그 여백을 오래 보지 않았다.

표시했다.

그리고 답장 창을 열었다. 구 분이면 닿는다.

수신 158. 수신 시각 02:31.

0. 오늘 기일이었습니다. 아버지 기일입니다. 0-1. 어머니가 가지를 볶았습니다. 기름이 적었습니다.

1. 연장 운영 조건 셋째 항목을 통보합니다. 상주 인원 두 명. 2. 다음 보급선 탑승 명단에 관제 인원 한 명이 추가되었습니다. 3. 양식은 제가 만든 것을 그대로 썼습니다. 칸은 두 개뿐이었습니다. 4. 저는 탑승에 표시했습니다. 5. 이건 지상에서 궤도로 가는 배입니다. 6. 가지 씨앗을 가져갑니다. 약국 봉투에 들었습니다. 되는지는 모릅니다.

이상입니다.

보내 놓고 서린은 종이 로그를 폈다. 수신 158 옆 칸을 비워 두었다. 구 분 뒤에 올 답을 손으로 적을 자리였다.

구 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났다.

답은 그보다 한참 뒤에 왔다.

송신 159. 발신 시각 03:08.

0. 이 답은 쓰는 데 이십팔 분 걸렸습니다. 0-1. 그중 이십 분은 3구역에 있었습니다. 뭘 한 건 아닙니다. 떠 있었습니다.

1. 확인했습니다. 2. 1번 배양조 옆에 빈자리가 있습니다. 급수관 하나 더 끼울 자리입니다. 도면에 없는 자리입니다. 3. 십사 년 전에 누가 일곱 번째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4. 가지는 거기 심으면 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서린은 2번 줄을 읽고, 손으로 종이 로그에 옮겨 적었다. 적으면서 기억이 났다. 일곱 번째 자리. 그녀가 만들다 만 것은 셋이 아니었다. 셋 반이었다. 반은 벽에 붙인 클램프 두 개와 뚫어 놓은 구멍 하나였고, 그 반쪽짜리 자리가 십사 년 동안 거기 비어 있었다. 스물세 번째 사람도 거기까지는 채우지 않았다. 번호가 없는 자리라서, 누구의 것인지 몰라서.

민재가 새벽 네 시에 들어왔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서린은 한 잔을 받았다. 민재가 놀라서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선배 오늘 드세요?”

“응. 연습해야지. 거기 가면 봉지 커피야.”

민재는 남은 한 잔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말없이 자기 자리로 갔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 구석에 달력을 띄워서, 백칠십이 일 뒤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 옆에 작게 적었다. 「커피 한 잔만.」 서린은 그걸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창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하늘 낮은 데서 점 하나가 건너갔다. 궤도가 낮아진 뒤로 점은 조금 더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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