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01자) · 스물세 번째

이백억

궤도에서 온 편지 · 서지오

대전 우주청 삼층 회의실은 창이 북쪽으로 나 있어서 한낮에도 형광등을 켠다. 형광등은 다 들어와 있었다. 서린은 앉을 자리를 고르다가, 어두운 줄이 없다는 걸 알고 아무 데나 앉았다.

보급선이 떠나고 사흘 뒤였다. 회의 소집 문서는 전날 밤 열한 시에 왔다. 제목은 「궤도 정거장 잔류 인원 관련 긴급 대책」. 참석자 명단에 관제 대표로 그녀 이름이 있었다. 민재가 새벽 다섯 시에 차를 몰고 그녀를 데리러 왔다. 고흥에서 대전까지 세 시간 반이다. 민재는 운전하는 내내 휴게소마다 멈추자고 했고, 서린은 두 번째 휴게소부터 대꾸하지 않았다. 민재는 세 번째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두 봉지 사 왔다. 하나는 그녀 무릎에 놓았다.

“회의 길어지면 드세요. 높은 사람들 회의는 밥을 안 줘요.”

우주청 일층 로비에는 정거장 모형이 유리 상자 안에 놓여 있다. 실물의 백분의 일. 태양광 패널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모듈마다 작은 이름표가 붙어 있다. 서린은 회의 전 십 분을 그 앞에서 보냈다. 3구역 모듈은 모형에서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했다. 그 안에 배양조 여섯 개가 있다는 건 모형이 말해 주지 않는다. 유리 상자 옆 벽에는 역대 상주자 휘장 복제품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스물두 개가 두 줄로, 그 아래 한 줄에 드문드문. 스물세 번째 휘장에는 이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수를 놓다 만 것처럼 실 자국만 있었다. 서린은 그 빈자리를 한참 봤다. 정거장에 붙은 진짜 휘장에도 그 자리가 비어 있을까. 이한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묻지 않기로 했다.

회의실에는 열두 명이 앉아 있었다. 운영국, 재정국, 법무팀, 궤도역학팀, 그리고 제네바 협의체 연락관이 화상으로 한쪽 모니터에 떠 있었다. 연락관은 사십 대 여자였고, 한국어 통역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 있었다.

운영국장 권도형은 서류를 넘기지 않았다. 이번에도 다 외워 온 사람이었다.

“정리하겠습니다.”

그는 숫자로 시작했다. 잔류 인원 한 명. 규정 7-2에 따라 국가는 그 인원을 회수할 의무가 있다. 특별 회수 비행을 새로 띄우면 이백육십억 원. 정거장 폐쇄를 한 해 늦추면 이백억 원. 폐쇄를 늦추려면 협의체 권고를 한 번 더 미뤄야 하고, 그러면 다음 발사 허가 심사에 불리하다.

“육십억 차이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 숫자를 만든 건 우리가 아닙니다. 본인이 만들었습니다. 본인이 규정을 알고, 알면서 미탑승에 표시했습니다. 송신 107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깨끗한 선택이 아니라고.”

법무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정국 사람이 무언가를 적었다. 모니터 속 연락관은 통역 이어폰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인질극입니다.”

권도형은 그 말을 아주 차분하게 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서린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송신 107을 받은 날 그녀도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단어를 쓴 사람이 그걸 가장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인질극에는 인질이 있다. 서린은 회의실 탁자 나뭇결을 손톱으로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이 판에서 인질은 누구인가. 정거장인가, 이백억인가, 규정 7-2인가. 그 사람은 자기 몸을 걸었다. 걸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어서. 그리고 그걸 걸게 만든 문서 셋째 칸에 그녀 이름이 있었다. 인질극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면, 그 판을 먼저 짠 사람도 이 방 안에 있었다. 그녀를 포함해서.

“관제 의견을 듣겠습니다.”

열두 개의 얼굴이 그녀 쪽으로 돌았다. 서린은 준비한 종이를 폈다. 밤새 쓴 것이었다. 첫 줄은 「관제는 규정 7-2에 따른 회수 계획 수립을 권고합니다」였다. 그녀는 그 줄을 읽지 않았다.

“관제 서린입니다. 폐쇄 일정 결재란 셋째 칸이 제 서명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 서명을 철회 신청하겠습니다. 사유는 설비 존속 필요입니다.”

재정국 사람이 펜을 내려놓았다. 법무팀 사람이 「철회는 절차상—」 하고 말을 꺼냈다가, 권도형이 손을 들자 멈췄다.

“설비가 사유입니까?”

권도형이 물었다. 서린은 대답하기 전에 무릎 위 호두과자 봉지를 한 번 쥐었다.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아닙니다.”

“그럼 사유란에 뭐라고 적을 겁니까?”

“설비라고 적겠습니다. 사유란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회의실 누군가가 짧게 웃었다가 멈췄다. 권도형은 웃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한참 봤다. 그리고 궤도역학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거장 궤도를 낮추면 뭐가 달라집니까?”

궤도역학팀 양 박사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는 반쯤 조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 궤도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떠졌다.

“낮추면 대기 저항으로 자연 감쇠가 빨라집니다. 협의체가 걱정하는 건 폐기 구조물이 오래 떠 있는 거니까, 낮춰 두면 그 걱정이 줄어요. 대신 연료가 들고, 보급선 궤도 맞추기도 쉬워집니다. 중계 거리도 줄고요.”

“중계 거리가 줄면.”

“지연이 줄어요. 지금 십사 분이 십 분 안쪽으로.”

서린은 그 숫자를 듣고 무릎 위 봉지를 놓았다. 십 분. 십사 년에 이 분이 줄었는데, 한 번에 사 분이 준다.

모니터 속 연락관이 처음으로 말했다. 통역이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협의체는 사람 문제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구조물 문제를 결정합니다. 궤도를 낮추고, 감쇠 일정을 제출하면, 권고 연장은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우리가 묻지 않습니다.”

권도형은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외웠을 것이다.

연락관은 통역 이어폰을 다시 누르고, 서린 쪽을 보며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공식 질문이 아니라고 먼저 밝혔다.

“그 사람은 왜 남았습니까?”

회의실 사람들이 서린을 봤다. 서린은 사유란에 들어갈 말을 찾다가, 찾지 않기로 했다.

“콩 때문입니다.”

통역이 잠깐 멈췄다. 「빈(bean)」이라고 옮기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작게 들렸다. 연락관은 눈썹을 올렸다가, 천천히 웃었다. 제네바는 밤이었고, 그녀 뒤 창문에 호텔 불빛이 번져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발코니에서 토마토를 키웠습니다. 여든 살까지요. 요양원에 안 가겠다고. 토마토 때문에.”

연락관은 그 말만 하고 화면을 껐다. 권도형이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서린은 구분하지 못했다.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났다. 「관련 부서 검토 후 재논의.」 사람들이 서류를 챙겨 나갔다. 서린도 일어섰다. 문을 나서려는데 권도형이 불렀다.

“관제님. 잠깐.”

회의실에 둘만 남았다. 권도형은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를 반쯤 올렸다. 북쪽 하늘이 희끄무레했다. 그는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3구역 왼쪽 급수관 두 벌. 목록에서 안 빼셨더군요.”

“네.”

“저도 봤습니다. 뺄까 하다가 안 뺐습니다. 관제가 넣은 걸 운영국이 빼면 기록이 남아서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말을 멈췄다. 블라인드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

“그 배양조, 번호 적힌 셋이 누구 겁니까?”

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묻는 것 같았다.

“번호 없는 셋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권도형이 말했다. 목소리는 회의 때와 같았다. 차분했고 높지 않았다.

“십삼 년 전에요. 스물세 번째로 올라갔습니다. 3구역에 반쯤 된 온실이 있었고, 만든 사람은 내려가고 없었습니다. 급한 일로 내려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나머지 셋을 만들었습니다. 만들면서 보고서에 한 줄 넣었습니다. 지적받을 줄 알았는데 안 받았습니다. 그때 관제가 지적을 안 했습니다.”

서린은 문고리를 쥔 채로 서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문고리가 미끄러웠다.

“만든 사람이 돌아오면 여섯 개였으면 했습니다. 이백 일 동안 기다렸습니다. 안 왔습니다. 저는 내려와서 본청으로 왔고, 현장 기록에서 이름이 빠졌습니다. 그게 규정이라서.”

그는 블라인드를 다시 내렸다. 회의실이 조금 어두워졌다.

“폐쇄 결재할 때 쉬웠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으니까요. 기다려도 안 온다는 걸 아니까. 이백억보다 그게 더 확실한 숫자였습니다.”

“국장님.”

“반려 메모 보셨지요. 모르겠다고 한 사람은 끝까지 모른다고 쓴 거.”

“네.”

“그거 저한테 한 말입니다. 그때 저는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끝까지 몰랐습니다.”

그는 그녀 쪽으로 돌아섰다. 쉰 살쯤 된 얼굴이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많았고, 오른손 엄지손톱 옆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급수관 클램프에 찝힌 자국처럼 생긴 흉터였다. 서린은 그 흉터를 알았다. 그녀 왼손에도 같은 자리에 비슷한 것이 있었다. 3구역 클램프는 그 자리를 문다.

“오늘은 쉽지 않았습니다.”

권도형이 말했다.

“철회 신청은 받겠습니다. 결재는 아직 못 하겠습니다. 이백억이 이백억이라서요.”

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 나가면서 문간에서 한 번 멈췄다.

“그 콩, 꽃은 폈습니까?”

“폈습니다. 여섯 송이까지 셌습니다.”

권도형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복도로 나갔다.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돌아오는 차에서 서린은 호두과자 봉지를 뜯었다. 식어서 딱딱했다. 민재가 운전하면서 곁눈질했다.

“어떻게 됐어요.”

“아직.”

“그 국장님 무서운 분이에요?”

서린은 호두과자를 하나 입에 넣고 한참 씹었다.

“아니. 기다려 본 사람이야.”

민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앞을 봤다. 그러다 휴게소 표지판이 나오자 깜빡이를 켰다.

“그럼 괜찮은 거네요. 기다려 본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 마음 알잖아요.”

“알아서 더 어려운 거야.”

민재는 차를 휴게소로 넣으면서 「어려운 거 말고 쉬운 거 먹어요, 우동」 하고 말했다. 서린은 그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우동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가방에서 회색 노트를 꺼내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줄을 하나 긋고 적었다. 「셋째 사람. 스물세 번째.」 노트 한 쪽에 사람 이름이 셋 적혔다. 둘은 이름이고 하나는 번호였다.

그날 밤 관제실에서 그녀는 정거장에 짧은 회신을 보냈다.

수신 124. 수신 시각 23:40.

1. 오늘 우주청에 다녀왔습니다. 2. 번호 없는 배양조 셋을 만든 사람을 찾았습니다. 3. 그 사람도 아직 콩꽃 수를 궁금해합니다. 4. 급수관 두 벌은 그 사람도 목록에서 안 뺐습니다. 뺄까 하다가 안 뺐다고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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