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27자) · 여섯 개
빼지 않은 부품
궤도에서 온 편지 · 서지오
마감 전날 밤, 나는 양식을 일곱 번째로 열었다.
탑승, 미탑승. 네모 칸 두 개. 그 사이에 칸 하나가 들어갈 만한 여백이 있었다. 나는 그 여백을 한참 봤다. 반려된 칸이 있던 자리다. 누가 거기 있다가 지워진 자리처럼, 다른 여백보다 조금 넓어 보였다. 실제로 넓은지 재 보려고 화면에 자를 댔다. 넓지 않았다. 똑같았다. 나는 자를 내려놓고 웃었다. 이 년 반을 혼자 있으면 여백에도 자를 댄다.
송신 104. 발신 시각 23:10.
보고합니다.
1. 보급선 도착까지 열닷새입니다. 2. 양식을 일곱 번째로 열었습니다. 3. 여쭙겠습니다. 보급선 적재 목록을 봤습니다. 급수관 두 벌이 실려 있습니다. 3구역 왼쪽 두 배양조용입니다. 4. 폐쇄가 결정된 정거장에 필요 없는 부품입니다. 5. 누가 넣었습니까.
이상입니다.
수신 104. 수신 시각 23:24.
1. 제가 넣었습니다. 폐쇄 결정 두 달 전이었습니다. 2. 결정 뒤에 목록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은 다 뺐습니다. 3. 그 두 벌은 빼지 않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송신 105. 발신 시각 23:33.
1. 왜 안 빼셨습니까.
이상입니다.
수신 105. 수신 시각 23:47.
1. 십사 분 동안 답을 못 찾았습니다. 2. 지금은 못 쓰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쓰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자려고 침낭에 들어갔다가 두 시간 만에 나왔다. 3구역에 가서 왼쪽 두 배양조를 열어 보았다. 흙이 바싹 말라 벽돌로 돌아가 있었다. 삭은 급수관 끝이 누렇게 굳어서 손가락으로 누르면 바삭 소리가 났다. 성한 넷에서는 콩꼬투리가 여물어 가고 있었다. 꼬투리는 손가락 한 마디만 했고, 겉에 잔털이 나 있었다. 불빛에 대면 안에 든 알이 세 개씩 비쳤다. 넷은 그렇게 차 있고, 왼쪽 끝 둘은 비어 있었다. 한 온실 안에서 한쪽만 계절이 갔다.
답은 아침 여섯 시에 왔다.
수신 106. 수신 시각 06:02.
1. 빼면, 그 두 칸이 영영 마른 채로 남는 걸 제가 결재하는 겁니다. 2. 저는 이미 한 번 결재했습니다. 셋째 칸에. 3. 한 번으로 됐습니다.
이상입니다.
셋째 칸. 나는 통보 문서의 결재란을 떠올렸다. 획 끝이 올라간 서명. 그 사람은 거기 한 번 이름을 쓰고, 그다음부터는 쓰지 않는 쪽을 골라 왔다. 목록에서 빼지 않는 것, 지적하지 않는 것, 추천하지 않는 것. 하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한 번 쓴 이름을 지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대신 그 사람이 빼지 않은 급수관 두 벌은 받을 수 있었다. 받으려면 여기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답을 읽고 양식을 여덟 번째로 열었다. 그리고 한 칸에 표시했다. 마감은 그날 자정이었다. 나는 자정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제출했다. 제출 확인 화면이 떴다. 「담당 기술자 탑승 의사 접수. 관제 확인 대기.」 나는 무엇에 표시했는지 관제에 따로 적지 않았다. 십사 분 뒤면 그 사람 화면에 뜬다. 내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한 줄을 보냈다.
송신 107. 발신 시각 06:20.
1. 제출했습니다. 2. 하나만 적겠습니다. 제가 이 칸에 표시하면 누군가 저를 데리러 와야 합니다. 규정 7-2가 그렇습니다. 3. 그 비용이 이백억보다 싼지 비싼지 저는 모릅니다. 4. 알면서 표시했습니다. 이건 깨끗한 선택이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답은 오지 않았다. 그날 하루 종일 오지 않았다. 교신 창에는 정기 보고 확인만 한 줄씩 떴다. 「보고 확인. 관제.」 서명이 없었다. 교대자가 대신 친 것이었다.
나는 그 하루를 셈으로 버텼다. 식량 사백 일분, 예비 필터 여덟, 콩꼬투리 서른한 개. 꼬투리 하나에 알이 셋이면 아흔세 알이다. 아흔세 알을 다 먹으면 한 끼가 될까. 안 된다. 다시 심으면 여섯 배양조가 몇 번 돈다. 셈은 끝이 없었다. 끝이 없어서 좋았다. 저녁에는 지난 넉 달 치 교신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수신 012의 「이것도 보고 항목이 아닙니다」부터. 읽으면서 그 사람의 문장이 조금씩 길어져 온 걸 알았다. 처음에는 한 줄에 한 사실이었다. 요즘은 한 줄에 사실 하나와, 사실 아닌 것 하나가 같이 들어 있다. 오늘은 그 긴 줄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동생한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가족 우편은 이레 뒤에 열린다. 그 이레 동안 이솔은 모른다. 오빠가 어느 칸에 표시했는지. 나는 그게 조금 고마웠고, 그렇게 고마워하는 내가 비겁하다는 것도 알았다.
보급선은 열나흘 뒤 새벽에 왔다.
도킹 경보가 울리고, 포트 창 너머로 흰 원통이 천천히 커졌다. 추진기가 짧게 불을 뿜을 때마다 원통이 조금씩 자세를 고쳤다. 쇠끼리 닿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딸깍, 하고 뒤이어 긴 쉿 소리. 압력이 맞춰지는 소리다. 해치 너머에서 누가 주먹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 년 반 만에 듣는 남의 노크였다.
해치가 열리고 사람 냄새가 들어왔다. 땀과 새 옷감과 커피 냄새. 보급선 기장은 마흔 초반의 여자였고, 헬멧을 벗자마자 코를 찡그렸다.
“머리는 직접 자르세요?”
“네.”
“티가 나네요.”
기장은 그 말을 하고 다시 코를 찡그렸다.
“근데 여기 흙냄새 나요?”
“콩 키웁니다.”
“콩이요?”
기장은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웃음을 참는 얼굴로 화물 목록을 내밀었다. 목록 맨 아래에 손글씨로 추가된 줄이 두 개 있었다. 「관제 개인 물품 — 치실 두 통.」 「관제 교대자 개인 물품 — 식혜 두 캔. 하나는 기장님 몫.」 기장은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말했다.
“식혜는 제가 이미 하나 마셨어요. 목록에 제 몫이라고 돼 있어서.”
짐을 옮기는 데 여섯 시간이 걸렸다. 필터, 식량, 산소 탱크, 의약품. 그리고 급수관 두 벌. 급수관은 긴 원통형 상자에 들어 있었고, 상자 옆면에 매직으로 「3구역 왼쪽」이라고 적혀 있었다. 획 끝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짐을 옮기는 사이사이 기장은 쉬지 않고 말했다. 보급 비행이 열한 번째라고 했다. 첫 비행 때는 이 정거장에 네 명이 있었고, 여섯 번째 때부터 한 명이었다고 했다. 한 명만 있는 정거장에 오면 그 한 명이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한마디도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는 어느 쪽도 아니라서 이상하다고 했다. 지상 뉴스에서는 나를 「마지막 우주인」이라고 부른다고도 했다. 나는 그 별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뒤를 닫는다.
“한번 볼래요?”
나는 기장을 3구역으로 데려갔다. 기장은 해치 앞에서 멈췄다가, 송풍기 바람에 실려 온 흙냄새를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 많던 사람이. 치실에 감긴 덩굴과 흰 꽃 몇 송이와 여물어 가는 꼬투리를 차례로 보더니, 장갑을 벗고 꼬투리 하나를 손가락으로 아주 살짝 건드렸다.
“우리 할머니 밭 냄새다.”
기장은 그 말만 하고 해치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관제분, 발사장에 나왔었어요. 관제 사람이 발사장 오는 거 처음 봐요. 급수관 상자를 직접 들고 와서 적재 담당한테 넘기더라고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기장은 짐을 다 옮기고 나서 좌석 쪽을 가리켰다.
“양식 봤어요. 확인하려고요. 진짜 안 타요?”
“네.”
“다음 배는 없는데요.”
“압니다.”
기장은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규정대로 확인서를 내밀었다. 나는 서명했다. 기장은 확인서를 받아 접으면서, 규정에 없는 말을 한마디 했다.
“관제 쪽 사람이 저한테 따로 부탁한 게 있어요. 안 타시면 이걸 전해 달래요.”
작은 봉투였다. 종이 봉투. 우주선에 종이를 싣는 건 무게 때문에 드문 일이다. 봉투 안에는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손글씨였다.
「급수관은 교범대로 말고, 먼저 쓰던 넷에 한 것처럼 하루 이 리터. 여섯 개 다.」
그게 전부였다. 번호도 없었다.
보급선은 그날 오후에 떠났다. 해치가 닫히고, 딸깍 소리 대신 이번에는 쉿 소리가 먼저 났다. 나는 포트 창에 이마를 대고 원통이 작아지는 걸 봤다. 유리가 차가웠다. 이 년 반 전 귀환선이 떠날 때와 같은 자리였다. 이마에 동그란 자국이 또 남을 것이다.
원통이 점이 되었을 때 식혜 캔을 땄다. 무중력에서 캔을 따면 음료가 방울로 비어져 나온다. 빨대를 꽂고 입구를 엄지로 막은 채 조금씩 빨았다. 달았다. 이 년 반 동안 먹은 어떤 것보다 달아서 혀뿌리가 조금 아팠다. 밥알이 빨대를 타고 올라와 이 사이에 끼었다. 치실이 두 통 새로 왔다는 게 생각나서 웃었다. 정거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 하나가 여섯 시간 머물다 간 것뿐인데, 떠난 뒤의 조용함은 전보다 한 겹 두꺼웠다. 통로에 기장의 커피 냄새가 조금 남아 있었다. 재생 공기는 그 냄새를 사흘이면 지울 것이다.
원통이 점이 되고, 점이 안 보이게 되었을 때 3구역으로 갔다.
왼쪽 두 배양조의 삭은 급수관을 뜯어냈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조각들이 떠다녀서 청소기로 하나씩 빨아들였다. 새 급수관은 말랑하고 투명했다. 끼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마른 벽돌을 다시 물에 불리는 데 여섯 시간이 걸렸다. 주사기로 오십 밀리리터씩, 스무 번. 성한 넷에서 딴 콩 가운데 제일 여문 꼬투리 둘을 골라 까서, 한 배양조에 세 알씩 심었다. 여섯 알이었다. 흙을 덮는 엄지 끝이 조금 떨렸다.
송신 121. 발신 시각 23:58.
보고합니다.
0. 보급선 출항 확인. 적재 물품 전량 인수. 0-1. 식혜는 한 캔 인수했습니다. 기장님이 한 캔을 먼저 인수하셨습니다.
1. 3구역 왼쪽 배양조 급수관 교체 완료. 2. 여섯 개 전부 가동합니다. 3. 여섯 개 다 하루 이 리터입니다. 4. 쪽지 받았습니다. 5. 저는 안 탔습니다.
이상입니다.
답은 십사 분 뒤에 왔다.
수신 121. 수신 시각 00:12.
1. 여섯 개. 2. 확인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 두 줄 사이에 무엇이 지워졌는지 나는 모른다. 지운 것은 서버에 남는다. 나한테는 열람 권한이 없다. 나는 그 두 줄을 오래 봤다. 「여섯 개」 뒤에는 마침표가 있었다. 그 마침표를 찍는 데 얼마나 걸렸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3구역으로 돌아가서, 새로 물을 먹은 왼쪽 두 배양조의 흙에 손바닥을 얹었다. 미지근했다. 안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온도였다. 먼저 쓰던 넷도 그랬다. 십사 년 만에, 여섯 개 중 여섯 개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