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08자) · 치실과 콩꽃

기호 삭제됨

궤도에서 온 편지 · 서지오

가족 우편은 한 달에 한 번 온다. 관제 교신과 다른 길로 온다. 지상에서 보낸 글이 검열 필터를 거치고, 통신 창이 비는 시간에 묶음으로 올라온다. 글자는 이백 자까지다. 사진은 안 된다. 그림 기호도 안 된다. 필터가 기호를 만나면 지우고 그 자리에 대괄호를 남긴다.

이솔의 편지는 그래서 늘 대괄호투성이다.

「오빠 [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 나 할 말 있어 [기호 삭제됨] 놀라지 마 [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기호 삭제됨]」

여기까지 읽고 나는 한 번 멈췄다. 동생은 기호를 셋 연달아 붙일 때 대개 좋은 일이다. 나쁜 일에는 기호를 안 붙인다. 이 년 이 개월 동안 우편을 스물여섯 통 받으면서 알게 된 규칙이다. 그러니까 필터가 지운 자리에도 뜻이 남는다. 몇 개를 지웠는지가 남는다.

「나 봄에 엄마 돼 [기호 삭제됨] 사월 말이래. 오빠 보급선 타고 오지? 그럼 딱 맞아. 조카 이름 오빠가 지어. 엄마한테는 아직 말 안 했어 오빠 오면 같이 말하려고.」

그리고 마지막 두 줄에는 대괄호가 없었다.

「근데 오빠 안 오면 나 조카한테 하늘 가리키면서 저기 삼촌 있다 할 건데, 거기 아무것도 없으면 뭐라고 해.」

이백 자를 꽉 채운 편지였다. 마지막 글자가 이백 번째 칸에 걸려 있었다. 이솔은 칸이 모자라면 앞을 줄이는 사람이다. 앞을 줄이고 뒤를 남겼다.

나는 편지를 세 번 읽고 3구역으로 갔다.

이솔은 나보다 여섯 살 어리다. 아버지가 일찍 집을 나간 뒤로,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는 동안 동생을 본 건 나였다. 열두 살 오빠가 여섯 살 동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는 것 정도였다. 나는 동생에게 별 이름을 지어서 알려 줬다. 진짜 이름은 몰랐다. 저건 국자별, 저건 삼 형제별, 저건 우리 집 별. 동생은 다 믿었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국자별이 북두칠성이라는 걸 알고 와서 나를 한 대 때렸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옥상에 올라가서 「그래도 저건 우리 집 별이지」 하고 물었다. 그건 금성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정거장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이솔은 반대하지 않았다. 딱 한 가지를 물었다. 「거기 가면 우리 집 별이랑 더 가까워?」 나는 계산해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했다. 사실은 거의 안 가까워진다. 사백 킬로미터는 금성까지 거리에 비하면 없는 거리다. 그 거짓말이 동생한테 한 두 번째 별 거짓말이었다.

콩은 한 달 사이에 많이 자랐다. 떡잎 사이에서 본잎이 나왔고, 본잎은 세 장이 한 묶음이다. 줄기 끝에서 가느다란 덩굴손이 나와 허공을 더듬는다. 지상에서는 덩굴손이 위로 오른다. 여기서는 위가 없어서 덩굴손이 사방으로 뻗는다. 조명 쪽으로, 송풍기 쪽으로, 내 손 쪽으로. 한 번은 점검하는 동안 덩굴손 하나가 내 장갑 손가락에 감겼다. 떼어 내는 데 조금 망설였다.

붙잡을 것이 필요했다. 교범에는 지지대 규격이 나와 있었지만 지지대 부품은 목록에 없었다. 나는 의무관이 두고 간 치실을 꺼냈다. 두 통이었다. 배양조 뚜껑 안쪽 고리에서 조명 틀까지 치실을 팽팽하게 당겨 매고, 덩굴손을 하나씩 거기로 옮겨 감았다. 치실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 흙냄새와 박하 냄새가 섞여서, 3구역이 잠깐 치과 대기실 같아졌다.

송신 079. 발신 시각 19:12.

보고합니다.

1. 3구역 콩 본잎 발생. 덩굴손 발생. 2. 지지대가 없어서 치실로 대신했습니다. 치실은 두 통 중 한 통 반을 썼습니다. 3. 의무관 비품을 전용했습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사후 보고합니다. 4. 오늘 가족 우편이 왔습니다. 동생이 봄에 아이를 낳습니다. 5. 4번은 보고가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수신 079. 수신 시각 19:26.

1. 치실 전용 승인합니다. 소급해서 승인합니다. 2. 남은 반 통은 이 닦는 데 쓰십시오. 그건 규정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3. 축하드립니다. 4. 삼촌이 되시는군요.

이상입니다.

「삼촌」이라는 말을 누가 나한테 쓴 건 그게 처음이었다. 이솔도 아직 안 썼다. 조카는 아직 없고, 사월은 멀고, 그 말은 관제 회신 4번 줄에 먼저 와 있었다.

나는 답장을 쓰지 않고 가족 우편 창을 열었다. 이백 자. 칸이 비어 있었다.

「솔아 축하한다」

일곱 자를 쓰고 멈췄다. 보고서는 번호가 있어서 다음 줄이 저절로 온다. 편지에는 번호가 없다. 나는 무심코 「1.」을 쳤다가 지웠다. 동생한테 번호를 매겨 쓰면 동생은 화를 낼 것이다. 「오빠 또 보고서 쓰냐」고. 이 년 전 첫 우편 답장에 번호를 붙였다가 실제로 그 말을 들었다.

탈지 말지를 쓰지 못했다. 그게 편지의 전부인데 그걸 쓸 수 없었다. 대신 창밖 이야기를 썼다. 오늘 지구가 몇 번 지나갔는지, 너희 동네 위를 몇 시에 지나는지. 그리고 지웠다. 그건 관제에 보내는 말이었다. 동생한테 보낼 말이 아니었다.

결국 이렇게 보냈다.

「솔아 축하한다. 이름은 생각해 볼게. 오빠 지금 여기서 콩 키운다. 치실에 감겨서 자란다. 웃기지. 엄마한테 말할 때 오빠가 축하했다고 해 줘. 하늘 얘기는 다음 편지에 할게. 밥 잘 먹어라. 너 이제 두 사람 몫이다.」

백이십 자였다. 팔십 자가 남았다. 남은 팔십 자에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이백 자가 모자라지 않은 편지는 처음이었다.

송신 080. 발신 시각 22:40.

0. 동생한테 답장을 보냈습니다. 백이십 자입니다. 팔십 자가 남았습니다. 0-1. 남은 칸에 쓸 말이 있었는데 못 썼습니다. 0-2. 탈지 말지입니다.

1. 관제님. 2. 이백 자는 짧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길었습니다. 3. 동생이 물었습니다. 제가 안 내려가면, 조카한테 하늘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이상입니다.

답은 십사 분보다 오래 걸렸다. 사십 분쯤. 나는 그동안 3구역에 가서 덩굴손 두 개를 치실로 옮겼다. 하나는 벌써 치실을 두 바퀴 감고 있었다. 식물은 붙잡을 것이 생기면 빠르다.

수신 080. 수신 시각 23:21.

1. 제가 대신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2. 다만 하나를 적겠습니다. 정거장은 맨눈으로 보입니다. 새벽과 저녁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가는 점입니다. 3. 동생분 사는 곳 위를 지나는 시각을 궤도역학팀 시간표로 뽑을 수 있습니다. 사월 한 달 치를 뽑아 두겠습니다. 4. 거기 무엇이 있든 없든, 그 점은 사월에도 지나갑니다. 5. 사람이 타고 있는지는 점만 봐서는 모릅니다.

이상입니다.

5번 줄에서 나는 오래 멈췄다. 그 사람은 위로하지 않았다. 사실을 적었다. 점은 지나간다. 사람이 있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 두 문장 사이에 내가 서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사람이 나를 거기 세워 두고, 떠밀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보고서 끝에 질문을 하나 붙였다. 조카 이름을 뭐로 지으면 좋겠느냐고. 보고서에 넣을 질문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0번 항목이 생긴 뒤로 나는 그런 걸 덜 따졌다.

수신 081. 수신 시각 10:03.

1. 이름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2. 참고로 관제실 의견을 적습니다. 3. 교대자는 「콩」을 추천했습니다. 태명으로 좋다고 합니다. 본명으로는 반대합니다. 4. 궤도역학팀 양 박사는 「궤도」를 추천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5. 저는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추천하면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제 생각이 나실 테니까요.

이상입니다.

나는 5번을 읽다가 죽 봉지를 놓쳤다. 봉지는 천천히 돌면서 환기구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나사가 아니라 단호박죽이었다. 붙잡으러 가면서 웃었다. 그 사람은 가끔 이렇게, 번호 붙은 줄 안에 번호로 안 되는 말을 숨겨 놓는다. 나는 그걸 찾는 데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사흘 뒤 3구역에 꽃이 폈다.

아침 점검 때 1번 배양조에서 흰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치실 끝이 풀린 줄 알았다. 가까이 가 보니 꽃이었다. 새끼손톱보다 작았고, 흰 바탕에 안쪽만 연한 보라색이 번져 있었다. 꽃잎이 나비 날개처럼 위로 한 장, 옆으로 두 장, 아래로 오므린 두 장. 냄새는 거의 없었다. 코를 바짝 대면 풀 냄새 비슷한 것이 아주 조금 났다.

콩꽃은 저 혼자 꽃가루를 받는다. 벌이 없어도 된다. 교범 부록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 온실에 이 콩을 고른 사람은 그걸 알고 골랐을 것이다. 벌을 못 데려가는 곳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송신 083. 발신 시각 07:02.

보고합니다.

1. 3구역 콩 개화. 꽃 하나. 2. 흰색이고 안쪽이 보라색입니다. 3. 콩을 이걸로 고르신 까닭을 이제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수신 083. 수신 시각 07:16.

1. 확인했습니다. 2. 고른 게 아니라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십사 년 전 보급 목록에 종자가 그것 하나였습니다. 3. 그런데 받고 나서 알았습니다. 벌 없이 되는 거라서 다행이라고. 4. 꽃이 하나 더 피면 알려 주십시오. 제가 종이에 세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종이에 센다는 말이 좋았다. 그 사람 책상 위 어느 노트 한 쪽에 「꽃 하나」가 적힌다. 획 끝이 조금 올라간 글씨로.

그날 저녁에 둘째 꽃이 폈고, 다음 날 아침에 넷이 더 폈다. 나는 필 때마다 보고했다. 한 줄씩. 「3구역 꽃 둘.」「3구역 꽃 여섯.」 보고서 끝이 날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그달 말 가족 우편 창을 다시 열었다. 이솔한테 보낼 이백 자가 비어 있었다. 이번에는 첫 줄을 금방 썼다.

「솔아. 하늘 얘기. 사월에 그 점이 너희 집 위로 지나가는 시각을 적어 보낸다. 새벽 다섯 시 십이 분,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나머지는 아직 쓰지 못했다. 거기 삼촌이 있다고 할지, 없다고 할지는 칸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한 줄을 더 쓰긴 했다. 「그 점을 우리 집 별이라고 해.」 써 놓고 한참 봤다. 동생은 그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옥상에서 금성을 가리키던 오빠를 기억하니까. 그런데 그 줄은 대답이 아니었다. 점에 사람이 있든 없든 통하는 말이었다. 이솔은 그런 말을 제일 싫어한다. 어른들이 곤란할 때 하는 말. 나는 그 줄을 지웠다. 지운 칸이 다시 비었다. 가족 우편은 지운 것이 서버에 남지 않는다. 관제 교신과 다르다. 거기서는 지우면 정말 없어진다.

나는 창을 닫지 않고 두었다. 3구역에서 송풍기가 돌았고, 치실에 감긴 덩굴 끝에서 꽃 여섯 송이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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