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43자) · 열여섯 번
송신 012
폐쇄 직전 우주정거장, 마지막 연락 상대가 그녀였다 · 서지오
정거장의 아침은 조명이 먼저 온다. 천장 띠등이 삼 분에 걸쳐 밝아지는 동안 나는 침낭 끈을 풀고, 벽에 벨크로로 붙여 둔 칫솔을 떼고, 어제 쓴 수건이 덜 말랐는지 코에 대 본다. 재생 공기에는 냄새가 없다. 필터를 세 번 거친 공기는 쇠 냄새도 사람 냄새도 다 빠져서, 수건에 남은 비누 냄새가 이 정거장에서 제일 진한 냄새다.
오늘은 그것도 거의 없었다.
상주 이 년 이 개월째다. 처음 여섯 달은 넷이었고, 운영 축소가 결정된 뒤로는 나 혼자다. 혼자 남은 사람이 할 일은 목록으로 내려온다. 산소 순환계, 필터, 태양광 패널, 식량 재고, 통신계. 다섯 줄을 확인해서 지상에 보내면 하루의 뼈대가 선다.
뼈대 사이는 내가 채운다.
송신 012. 발신 시각 04:12, 정거장 표준시.
보고합니다.
1. 산소 순환계 정상. 3번 필터 교체함. 예비 필터 남은 수량 열하나. 2. 태양광 패널 좌현 2번 출력 87퍼센트. 어제와 같음. 3. 식량 재고 사백이십일 인분. 4. 통신계 정상. 5. 오늘 창밖으로 지구가 열여섯 번 지나갔습니다. 이건 보고 항목이 아닙니다. 지우려다가 안 지웠습니다.
이상입니다.
전송 단추를 누르면 신호가 중계 위성 두 개를 거치고 지상 검역 필터를 지나 관제 화면에 뜬다. 답이 돌아오기까지 십사 분이 걸린다. 나는 그 십사 분 동안 대개 창가에 있다. 창은 손바닥 두 개를 붙인 크기이고, 유리가 세 겹이라 가장자리가 조금 푸르게 휜다. 휜 가장자리로 지구가 들어왔다가 나간다. 구십 분에 한 바퀴다. 어제도 그랬고 이 년 전에도 그랬다.
십사 분 뒤에 답이 왔다.
수신 012. 수신 시각 04:26. 관제 서린입니다.
1. 3번 필터 교체 확인. 예비 수량 기록했습니다. 2. 좌현 2번 패널은 다음 점검 때 각도 조정 권고합니다. 3. 식량 재고 확인. 4. 통신계 정상 확인. 5. 열여섯 번은 평소보다 한 번 많습니다. 이것도 보고 항목이 아닙니다. 지우려다가 안 지웠습니다.
나는 5번을 세 번 읽었다. 그리고 통신계 자가 진단을 돌렸다.
중계 위성이 신호를 되튕기는 고장이 있다. 교범 십이 장에 나온다. 보낸 문장이 그대로 돌아오면 사람은 누가 대답한 줄 안다. 교범은 그 대목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장기 단독 근무자는 반향 신호를 대화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진단을 우선한다.」 나는 진단을 우선했다. 이십 분이 걸렸다. 반향은 없었다. 통신계는 정상이었고, 5번 문장은 내 문장과 두 군데가 달랐다. 「이것도」와 「평소보다 한 번 많습니다」.
반향은 「이것도」라고 하지 않는다.
송신 013. 발신 시각 09:40.
보고합니다.
1. 특이사항 없음. 2. 어제 답신에 열여섯 번이 평소보다 한 번 많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3. 제가 매번 셌다는 걸 아신다는 말입니까.
이상입니다.
수신 013. 수신 시각 09:54.
1. 송신 001부터 011까지 마지막 줄에 전부 숫자가 있었습니다. 2. 열다섯, 열다섯,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다섯, 열다섯, 열넷, 열다섯, 열다섯, 열다섯. 3. 저도 셌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그날 필터를 갈다가 나사를 하나 놓쳤다. 나사는 천천히 돌면서 환기구 쪽으로 떠 갔고, 나는 그것을 잡으러 가면서 열한 개의 숫자를 입으로 따라 했다. 열다섯, 열다섯, 열넷. 내가 보낸 숫자인데 남의 입으로 들으니 처음 듣는 숫자 같았다. 나사는 환기구 망에 붙어 있었다. 떼어 내면서 웃었다. 혼자 웃으면 정거장이 조용하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송신 014. 발신 시각 15:22.
보고합니다.
1. 산소 순환계 정상. 2. 오늘은 열넷이었습니다. 3. 열넷인 날은 구름이 많은 날입니다. 여기서 보면 지구가 하얗게 덮여 있어서 세다가 놓칩니다. 4. 놓친 것을 그대로 적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숫자를 보고서에 적은 건 처음입니다.
이상입니다.
수신 014. 수신 시각 15:36.
1. 정확하지 않아도 됩니다. 2. 오늘 이쪽은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하얗게 보였을 겁니다. 3. 저는 지금 창가에 있습니다. 관제실에 창은 하나뿐이고 밤에는 대개 아무도 안 봅니다. 4. 십사 분 뒤에 이 문장을 읽으시겠지요. 그때도 저는 아마 창가에 있을 겁니다.
이상입니다.
비가 오는 쪽을 위에서 내려다본 적은 있다. 그 아래에 서 본 적은 이 년 이 개월 동안 없다. 나는 그날 밤 창가에서 흰 덩어리가 지나가는 걸 오래 봤다. 그 밑 어딘가에 창이 하나뿐인 방이 있다.
송신 015. 발신 시각 21:08.
보고합니다.
1. 산소 순환계 정상. 2. 오늘 지구는 열다섯 번 지나갔고, 그중 아홉 번은 밤이었습니다. 밤인 쪽에는 도시 불빛이 보입니다. 3. 관제실이 어느 도시에 있는지는 규정상 여쭤보면 안 되는 걸로 압니다. 4. 그런데 저는 이미 압니다. 송신 006 답신에 오타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역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5. 그 뒤로 그쪽이 밤일 때마다 그 자리를 봅니다.
이상입니다.
수신 015. 수신 시각 21:22.
1. 오타가 아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한 줄짜리 답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한 줄을 들고 한참 떠 있었다. 번호가 1번 하나뿐인 목록은 목록이 아니다. 그냥 말이다.
남기로 한 날의 일은 지금도 순서대로 기억난다. 귀환선이 도킹 포트에 붙어 있던 사흘 동안 나머지 셋은 짐을 쌌다. 짐이라고 해 봐야 옷 몇 벌과 사진 몇 장이라, 사흘 중 이틀은 싸 놓은 짐을 도로 풀어서 무엇을 두고 갈지 고르는 데 썼다. 기계 담당 선배는 커피 가루 반 통을 두고 갔고, 의무관은 손톱깎이를, 통신 담당은 다 읽은 종이책 한 권을 두고 갔다. 책 앞장에 「심심하면 두 번 읽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두 번 읽었다. 세 번째는 아껴 두었다. 해치가 닫히고 귀환선이 떨어져 나갈 때 나는 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는데, 유리가 차가워서 이마에 동그란 자국이 하루 동안 남았다. 그날 밤 보고서에 처음으로 다섯 번째 줄을 썼다.
닷새 뒤에 나는 숫자를 세지 않았다. 대신 물자 목록을 처음부터 다시 셌다.
송신 016. 발신 시각 03:40.
보고합니다.
1. 오늘은 지구를 세지 않았습니다. 물자를 셌습니다. 2. 예비 필터 열하나. 하나에 사십육 일. 합쳐서 오백육 일. 3. 식량 사백십구 일분. 4. 다음 보급까지 사백이십육 일. 5. 식량이 칠 일 모자랍니다. 6. 이 계산은 제가 남기로 한 날 이미 했습니다. 그때는 칠 일이 짧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보내 놓고 후회했다. 후회해도 신호는 이미 위성 하나를 지나고 있었다. 십사 분은 그런 시간이다. 말한 것을 도로 삼킬 수 없는데, 대답이 오기 전까지 삼킨 척은 할 수 있다.
수신 016. 수신 시각 03:54.
1. 확인했습니다. 2. 귀환선은 이미 떠났고 다음 보급은 앞당길 수 없습니다. 규정으로 드릴 수 있는 답은 여기까지입니다. 3. 규정 밖의 답을 드리겠습니다. 4. 3구역 온실 모듈은 운영 축소 때 전원만 내렸습니다. 배선은 살아 있습니다. 5. 도면을 첨부합니다. 배양조 여섯 개를 살리면 백일 일째부터 먹을 것이 나옵니다. 6. 이한 씨. 7. 이 줄은 보고가 아닙니다. 칠 일 때문에 남으신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이상입니다.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쓴 건 처음이었다. 관제 문서에는 「담당 기술자」라고 적힌다. 나는 6번 줄에서 오래 멈췄다가, 도면을 열었다.
3구역은 통로 끝에 있다. 해치 손잡이에 먼지가 붙어 있었다. 무중력에서 먼지는 가라앉지 않고 벽에 달라붙어 회색 솜처럼 자란다. 장갑 낀 손으로 쓸어 내자 솜이 천천히 흩어져 조명 속에서 떠다녔다. 안은 어두웠다. 비상등 하나가 초록색으로 깜박였고, 그 빛에 배양조 여섯 개가 두 줄로 서 있는 게 보였다. 투명한 뚜껑 안에 마른 배지가 갈색 벽돌처럼 굳어 있었다.
도면대로 배전반을 열었다. 차단기 세 개를 올리고 우회선 하나를 이었다. 사십일 분이 걸렸다. 마지막 차단기를 올리자 송풍기가 헛기침처럼 두 번 걸리다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흙냄새였다. 오래 묵어서 먼지 냄새가 반쯤 섞인, 비 오기 전날 마당에서 나는 냄새. 송풍기가 마른 배지를 훑고 지나가면서 그 냄새를 통로 끝까지 밀어냈다. 이 년 이 개월 만에 맡는 냄새였다. 나는 재채기를 세 번 했고, 세 번째에 몸이 뒤로 밀려 벽에 등을 박았다. 무중력에서 재채기를 하면 그렇게 된다. 교범에는 없다.
배양조 뚜껑에는 매직으로 번호가 적혀 있었다. 1, 2, 3. 획 끝을 조금 끌어올리는 글씨였다. 나머지 셋에는 번호가 없었다.
나는 배양조를 하나씩 열어 보았다. 뚜껑 경첩이 뻑뻑해서 손바닥 아랫살로 밀어야 열렸다. 배지 벽돌을 손끝으로 누르면 겉은 버석하게 부서지는데 속은 아직 조금 눅눅했다. 급수관은 투명한 실리콘이었고, 오래돼서 누렇게 탁해져 있었다. 관마다 이름표가 묶여 있었다. 「오른쪽 줄 먼저」「물 적게」「뿌리 보고」. 이름표는 교범 문장이 아니었다. 누가 누구에게 남긴 쪽지였다. 나는 쪽지를 하나 떼어 들고, 그걸 어느 항목에 적어야 할지 머릿속으로 번호를 매겨 보다가 그만두었다. 0번 항목이라는 건 없다. 아직은.
송신 017. 발신 시각 12:02.
보고합니다.
1. 3구역 온실 모듈 전원 복구. 소요 사십일 분. 2. 배선은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3.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이 모듈 도면은 관제에 없습니다. 정거장 안에만 있는 자료입니다. 4.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상입니다.
십사 분 동안 나는 1번 배양조 앞에 있었다. 매직 글씨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끝이 올라간 1.
수신 017. 수신 시각 12:16.
1. 여기 오기 전에 그 정거장에 있었습니다. 2. 십사 년 전입니다. 3. 3구역 온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답장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번호를 매길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열었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 세 번째에 1번만 적었다.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지웠다. 확인한 게 아니었다.
송풍기가 계속 돌았다. 흙냄새는 조금씩 옅어지면서 정거장의 냄새가 되어 갔고, 나는 그 냄새가 다 옅어지기 전에 1번 배양조 뚜껑을 한 번 더 열어 코를 댔다. 십사 년 묵은 흙이었다.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닫은 뚜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