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02자) · 12월 30일 밤~31일 아침
마지막 밤
반송된 편지 · 유하람
십이월 삼십일 수요일 밤 열 시. 한강우편집중국 야간 분류실 형광등 서른여섯 개가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켜졌다. 내일 밤에는 켜지지 않는다. 일월 사일부터 이 우편물은 광역센터 기계가 분류한다. 사람 손이 아니라. 은비가 스위치를 올리면서 말했다.
“마지막이네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마지막이 되니까.
붉은 테이프는 팔 일 전에 풀렸다. 감사실 직원 둘이 다시 내려와서 붙일 때보다 빨리 뗐다. 떼는 것은 늘 붙이는 것보다 빠르다. 그날부터 야간조는 낮에 걸었다. 이백육십팔 통 가운데 주소가 남아 있는 것, 옆집이 아는 것, 아들이 같은 이름으로 가게를 하는 것. 확인된 것만. 오 주임 기록에 매일 숫자가 올라갔다. 열넷, 스물하나, 열일곱, 열둘, 열아홉, 스물, 아홉, 여섯. 백열여덟 통. 오 주임은 이제 달걀을 안 먹었다. 먹을 틈이 없었다. 팔 킬로 목표를 육 킬로 남기고 겨울이 끝나 가고 있었다.
선반에는 백오십 통이 남아 있었다. 주소가 없어진 것, 나라 밖으로 간 것, 받는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 강 선배가 그 백오십 통을 어젯밤에 다시 한 번 훑었다. 부전지를 건드리지 않고. 그 손이 훑는 것을 선우는 스무 걸음 옆에서 봤다. 삼십 년 동안 매일 밤 하던 일을 마지막으로 하는 손은 처음 하는 손과 비슷했다. 느리고,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모르는.
“이백육십이.”
강 선배가 말했다. 부전지를 뗀 수였다. 백사십삼에 백열여덟, 그리고 하나. 선우 것. 센터장이 백사십사로 세라고 한 그것.
“이백육십이.”
선우가 따라 말했다. 따라 말하고 나서 그 숫자가 자기 손이 옮긴 바구니 수와 다른 종류의 숫자라는 것을 알았다. 바구니는 옮기면 사라진다. 이것은 옮기면 남는다.
새벽 두 시. 반송함. 열일곱 통. 다 새것이었다. 선우는 열일곱 통을 한 번씩 들어 봤다. 낡은 것이 없었다. 이제 없을 것이었다. 이 반송함은 오늘 밤이 마지막이고, 내일부터 반송물은 광역센터 기계가 읽는다. 기계는 봉투 무게를 손으로 재지 않는다. 두 장인지 한 장인지 모른다. 그것이 나쁜 일인지 그는 몰랐다. 모르는 채로 열일곱 통을 상자에 넣었다. 무거운 것을 위에.
세 시에 오 주임이 야간조를 불렀다. 컨베이어를 끄지 않고, 소리 위로.
“아홉 시에 트럭 와. 소각 업체. 사무관도 와. 입회. 센터장도 내려오고. 백오십 통 자루에 담아서 트럭에 싣는 거야. 그게 우리 마지막 일이야.”
“저희가 담아요?”
은비였다.
“규정이 그래. 국 직원이 담고 입회인이 확인해.”
“못 담겠는데요.”
“담아. 담는 거까지가 일이야.”
오 주임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돌아선 등이 삼 주 전보다 좁았다. 살이 빠진 등은 무거운 것을 진 등처럼 보인다.
여섯 시 반. 휴게실. 자판기 앞에 강 선배가 없었다. 선우는 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십이 년 동안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있었다.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그는 동전을 넣었다. 글자 없는 버튼. 두 번. 종이컵 둘. 뜨거운 것이 손으로 왔다. 십이 년 만에 처음 뽑는 커피였다.
강 선배는 분류실에 있었다. 선반 앞. 한 걸음 뒤가 아니라 바로 앞에. 테이프가 없으니까. 그 사람은 맨 아래 단 왼쪽 끝을 보고 있었다. 1994년 삼월. 첫 번째 것.
선우는 컵 하나를 내밀었다.
강 선배가 그것을 봤다. 받았다. 두 손으로. 삼십 년 동안 주기만 한 사람이 받는 손은 서툴렀다. 컵이 조금 기울어서 커피가 손가락에 묻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닦지 않았다.
“네가 뽑았냐.”
“네.”
“맛이 다르네.”
“같은 버튼인데요.”
“다르다니까.”
두 사람은 선반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강 선배는 한 번에 반을 마시지 않았다. 천천히, 조금씩. 마지막 컵은 그렇게 마시는 것이었다.
“그거요.”
선우가 맨 아래 왼쪽 끝을 봤다.
“오늘 백오십 통에 들어가요.”
“들어가지.”
“태워요?”
“태우지. 내가 남의 걸 태우게 두면서 내 것만 빼면 그건 뭐가 되냐.”
선우는 컵을 내려놓았다. 선반 둘째 단 위에. 그러고는 맨 아래 왼쪽 끝으로 손을 뻗었다. 봉투 하나. 제일 낡은 것. 누런 정도가 아니라 갈색이었다. 받는 사람 칸에 강태만. 보내는 사람 칸은 여자 이름이었다. 강 선배와 같은 성. 부전지가 붙어 있었다. 삼십 년 전 글씨. 획 끝이 지금보다 덜 올라가 있었다. 보관. 폐기하지 말 것. 첫 번째 것에도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부전지를 뗐다. 강 선배가 아니라 자기가. 노란 종이가 손끝에 붙었다가 쓰레기통에 갔다. 그러고는 봉투를 두 손으로 들어 강 선배 앞에 내밀었다.
“배달입니다. 강태만 님.”
강 선배는 봉투를 봤다. 오래 봤다. 손이 오지 않았다. 컵을 든 손이 있었고 다른 손은 점퍼 주머니에 있었다.
“이건 배달이 아니야. 내 앞으로 온 걸 내가 꽂아 둔 거야.”
“꽂아 둔 사람이 안 꺼낼 거면 왜 꽂아 둡니까. 꺼내려고 꽂아 둔 거잖아요. 선배님이 하신 말입니다. 회의실에서.”
“…….”
“선배님이 못 한 걸 제가 대신 하는 겁니다. 그것도 선배님 말이고요.”
강 선배가 컵을 선반에 놓았다. 선우 컵 옆에. 그러고는 봉투를 받았다. 두 손으로. 이번에는 기울지 않았다. 종이 한 장 무게. 그것을 삼십 년 동안 재지 않은 손이 쟀다. 그 사람은 봉투를 뒤집어 봤다. 봉함이 그대로였다. 뜯긴 자리가 없었다.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
“누나야.”
강 선배가 말했다. 벽을 보고.
“내가 스물아홉에 집을 나왔거든. 아버지랑 싸우고. 누나가 이걸 보냈어. 우체국 앞으로. 내가 여기 다니는 걸 아니까. 근데 내가 그때 이름을 바꿔서 썼어. 아버지 성 안 쓰려고. 그래서 수취인 불명이 됐어. 내 앞으로 온 게 내 앞에서 반송이 된 거야. 나는 그걸 반송함에서 봤고, 뭐라고 썼는지 알 것 같아서 못 열었어. 누나는 그 다음 해에 갔어. 그래서 더 못 열었고.”
“……”
“삼십 년 동안 그거 하나 못 여는 놈이 사백열한 통을 꽂아 뒀어. 내 것만 안 태우면 도둑이잖아. 그래서 다 안 태웠어. 이유가 그거야. 처음에 안 한 말.”
그 사람은 봉투를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징계 통보서를 넣었던 자리. 뜯지 않았다.
“집에 가서 열게. 여기서 열면 컨베이어 소리 때문에 안 들려.”
“뭐가요.”
“누나 목소리.”
여덟 시 사십 분. 컨베이어가 멈췄다. 마지막으로. 오 주임이 스위치를 내렸고 그 소리가 멎은 자리에 형광등 소리만 남았다. 형광등도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야간조는 그때 처음 알았다. 십이 년 동안, 삼십 년 동안, 그 소리는 컨베이어 밑에 있었다.
아홉 시에 트럭이 왔다. 뒷문 쪽 하역장. 이 톤 트럭. 기사가 담배를 물고 내려서 노란 자루를 봤다. 셋. 비어 있는 것을. 그 옆에 임지현이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서류철 하나. 얇은 것. 그 옆에 센터장. 목도리를 두른 채.
“담으세요.”
임지현이 말했다.
야간조 여덟이 선반 앞에 섰다. 아무도 손을 안 뻗었다. 은비가 제일 앞에 있었고 은비 손이 제일 먼저 뻗어야 했는데 그 손이 패딩 주머니에 있었다. 오 주임이 은비 옆으로 갔다. 손을 뻗었다. 맨 위 단 오른쪽. 작년 것. 그것을 집었다. 집어서 자루 앞에 섰다. 자루 입이 벌어져 있었다. 그 사람 손이 자루 위에서 멈췄다.
“못 하겠는데.”
“담으세요.”
트럭 기사가 담배를 껐다.
“열 시까지 상차 안 되면 추가 요금입니다.”
선우는 선반으로 갔다. 백사십구 통. 그 앞에 서서 그는 임지현을 봤다.
“사무관님. 규정 십사조 이항. 확인 불가 사유. 백사십구 통 사유를 오 주임님이 적었습니다. 주소 소멸, 국외, 수취인 사망. 그 기록이 있어야 폐기가 됩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받았습니다.”
“사망이 서른둘입니다. 그 서른둘은 받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유족이 있습니다. 유족 확인은 안 했습니다. 시도 불가가 아니라 시도 안 한 겁니다.”
임지현이 서류철을 열었다. 얇은 것. 종이 한 장. 붉은 관인이 아니라 파란 것이었다.
“그래서 이겁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센터장한테 건넸다. 센터장이 야간조 앞에서 읽었다.
“우정박물관 자료 기증 승인. 선반 잔여 미배달 서간 전량. 이십삼일자 한강우편집중국장 신청.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봉인 상태로 보관하며 발신 일자 기준 백 년 경과 후 공개. 유족 확인 시 개별 반환 가능.”
읽고 나서 센터장이 종이를 접었다. 반으로, 다시 반으로.
“제가 냈습니다. 이십삼일에. 승인이 어젯밤에 왔어요. 사무관님이 오늘 아침에 가져오신 겁니다. 트럭은 부르지 말았어야 하는데, 승인 안 나면 규정대로 해야 해서 불렀습니다. 추가 요금은 제가 냅니다.”
트럭 기사가 다시 담배를 물었다. 물고 나서 자루 셋을 트럭에 도로 실었다. 빈 채로.
“얼굴을 안 본다고 하셨는데요.”
선우가 말했다.
“얼굴 안 봤습니다. 종이를 봤습니다. 오 주임 기록 여드레 치. 그건 종이예요.”
센터장은 그렇게 말하고 목도리를 고쳐 맸다. 그러고는 강 선배 앞으로 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삼십 년 분류한 사람과 사 년 국장 한 사람.
“강태만 선생님. 오늘 정년입니다. 삼십 년 고생하셨습니다.”
“……네.”
“선반은 박물관으로 갑니다. 선반째로요. 철제 다섯 단. 박물관에서 그것도 자료로 받겠답니다. 삼십 년 된 우편집중국 미배달 선반.”
강 선배가 선반을 봤다. 자기가 삼십 년 동안 본 것을 남이 볼 거라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무슨 얼굴인지 선우는 몰랐다. 그 사람 얼굴을 십이 년 봤는데 그 얼굴은 처음이었다.
열 시. 야간조는 정문으로 나갔다. 여섯 사람이 한꺼번에. 은비가 먼저, 오 주임이 그다음. 강 선배는 뒷문으로 갔다. 선우가 따라갔다. 뒷계단. 젖은 시멘트. 첫차는 벌써 갔고 열 시 버스가 오고 있었다.
“첫차 못 봤네.”
강 선배가 말했다.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보셨어요?”
“안 봤어. 그 시간엔 커피 뽑았지.”
두 사람은 계단에 서 있었다. 앉지 않았다. 버스가 섰다. 정류장이 아닌데. 이번 달에 두 번째였다. 강 선배가 도로로 내려갔다.
“그거 써라. 이월 전에.”
“……”
“쓰고 우체통에 넣지 마. 우체통에 넣으면 나 같은 놈이 또 잡아.”
그 사람은 버스에 탔다. 점퍼 안주머니에 봉투 하나. 삼십 년 만에 받은 것. 창가에 앉았고 이쪽을 봤다. 손을 들지는 않았다. 버스가 갔다.
선우는 조끼 안주머니를 눌렀다. 편지 한 장, 공책 스무 장, 빈 봉투 하나, 그리고 어젯밤에 넣은 것. 열세 번째 종이. 도경아, 로 시작해서 열두 줄. 어젯밤 새벽 네 시에 반송함 옆에서 썼다. 컨베이어 소리 위에서. 마지막 줄까지. 그는 그것을 아직 봉투에 넣지 않았다. 넣으면 부쳐야 할 것 같아서였다. 부치지 않을 것이다. 우체통에 넣으면 어디서 멈출지 모른다.
이월 삼일까지 서른네 날. 그는 그 숫자를 셌다. 세고 나서 계단을 내려갔다. 뒷계단이 아니라 도로로. 십이 년 만에 처음 그 계단을 끝까지 내려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