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818자)
마흔 개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7월 21일 밤, 독산동 빌라 거실 바닥에 휴대전화와 태블릿이 깔렸다. 소휘가 학원에서 가져온 낡은 태블릿 여섯 대를 장바구니에서 꺼냈다. 화면 귀퉁이마다 금이 가 있었다.
“원장님이 버리라고 한 거야. 중학생들 문제 풀이 영상 틀던 거.” 소휘가 태블릿 하나를 켜며 말했다. “충전기는 세 개밖에 없어. 그래서 얼마 걸려? 다 켜려면.”
“두 시간.”
“나눠서 하면 사십 분.” 소휘가 멀티탭을 두 개 더 꺼냈다. 소휘는 화가 덜 풀렸고, 화가 덜 풀린 사람은 손이 빨랐다.
태블릿 하나가 켜지자 소휘가 손을 멈췄다. 홈 화면에 대화방 앱이 깔려 있었고, 앱 아이콘 위에 빨간 숫자가 떠 있었다. 999. 더 셀 수 없다는 표시였다.
“이거 원장님이 쓰던 거야.” 소휘가 앱을 열지 않고 화면을 엎었다. “원장님이 요즘 상담 끝나면 학부모님들한테 링크를 하나씩 보내. 엄마들끼리 반찬값 버는 방이라고. 나는 못 본 척했어. 원장님이 내 월급 주는 사람이니까.” 소휘가 엎어 둔 태블릿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당신만 못 본 척한 거 아니야. 나도 했어.”
나는 대답 대신 멀티탭에 충전기를 꽂았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 우리 부부가 7월 21일 밤 처음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밤 열 시, 채석란에게서 전화가 왔다. 채석란은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오독오독 씹는 소리가 들렸다.
“과장님, 방 몇 개 찾았어요?”
“서른 개 넘었습니다.”
“저희는 서른다섯에서 멈췄어요. 송출이 나가는 서버가 바다 건너에 있어서 영장이 늦어요.” 채석란이 무언가를 삼켰다. “근데 서버가 바다 건너에 있어도 목소리를 넣는 손은 한국에 있어요. 역삼동 오피스텔 17층, 안쪽 방. 거기 전기 요금이 일반 사무실 세 배예요.”
“뭘 드십니까?”
“아몬드요. 야근할 땐 이거 먹어요. 씹는 소리가 나야 안 졸려요.” 채석란이 전화를 끊기 전에 덧붙였다. “내일 아침 무향실 일, 저 모르는 일로 할게요. 불법 침입 같은 단어는 제 귀에 안 들어온 거예요.”
반장은 물류센터 사람 열두 명의 옛 휴대전화를 비닐봉지에 담아 보냈다. 봉지 안에 쪽지가 있었다. 「본사 과장님, 우리도 듣고 싶음. 다 들으면 돌려주쇼. 반장」 휘람은 중고 거래 앱에서 공기계 여덟 대를 빌려 왔다. 하루 빌리는 데 한 대에 오천 원이었다.
방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방마다 공지 맨 아래에 「능선 선생님 제휴방」 주소가 붙어 있었고, 주소를 따라가면 다른 방이 나왔다. 방이 방을 불렀다. 휘람이 휴대전화 뒤에 이름표 스티커를 붙였다. 「인천 맘방」, 「대구 직장인」, 「청주 공무원」, 「은퇴자 연금방」……. 자정 무렵 휘람이 마지막 스티커를 붙이고 소리 내어 숫자를 셌다.
“서른여덟, 서른아홉, 마흔.”
단미가 방문 틈으로 나와 거실을 보았다. 바닥이 화면 불빛으로 가득했다. “아빠, 우리 집에 폰 가게 열었어?”
“하루만.”
“나도 하나 줘.”
“이건 다 같은 아저씨만 나와.” 소휘가 단미를 안아 들었다. 단미가 화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친구 없나 봐.”
*
7월 22일 목요일 새벽 다섯 시 반, 나는 휘람과 이삿짐 상자 두 개를 들고 회사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내 출입 카드는 인사팀에 있었다. 휘람의 카드로 시험실 문을 열었다. 경비 아저씨가 순찰을 돌다 우리를 보고 손전등을 내렸다.
“오 과장님? 화성 가신 거 아니었어요?”
“물건 하나 두고 가서요.”
“상자 두 개나요?” 경비 아저씨가 상자를 보다가 나를 보았다. 근호가 매일 아침 바닐라 라테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못 본 거로 할게요. 대신 근호 형님한테 저 봤다고 하지 마세요. 형님 라테 없으면 저는 아침에 눈이 안 떠져요.”
무향실 철망 바닥에 휴대전화와 태블릿 마흔 대를 둥글게 눕혔다. 휘람이 하나씩 화면을 켜고 소리를 맞췄다. 나는 가운데에 앉았다. 흡음재 쐐기들이 사방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향실은 소리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마흔 대가 말하면 마흔 자리에서 따로 들린다. 시험실 장비로 소리 나는 자리를 잡을 때 쓰는 방식이었다. 오늘은 부품 대신 사람 목소리를 잡았다.
일곱 시 이십 분, 나는 무향실을 나와 시험실 문틈으로 주차장을 내다보았다. 회색 세단이 들어와 늘 대던 칸에 멈췄다. 근호가 시동을 끄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침 방송 원고를 보는 얼굴이었다. 근호는 원고를 소리 없이 입으로 한 번 읽었다. 입술이 “자, 귀 열고.”의 모양으로 움직였다. 이십오 년 동안 클레임 보고서를 읽을 때도 근호는 먼저 입으로 한 번 읽었다. 고칠 데를 귀로 찾는 사람이었다.
일곱 시 반, 나는 근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팀장님 목소리 마흔 개, 무향실에 모아 놨습니다. 아침 방송 끝나면 내려오세요.」 읽음 표시가 바로 떴다. 답은 오지 않았다.
*
일곱 시 사십 분이 되자 마흔 대가 한꺼번에 입을 열었다.
“자, 귀 열고.”
컨테이너에서 들은 열한 개와 달랐다. 무향실에서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섞이지 않았다. 마흔 개의 “자, 귀 열고.”가 마흔 방향에서 따로따로 내 귀에 도착했다. 앞에서, 뒤에서, 무릎 옆에서, 머리 위 비스듬한 자리에서. 근호 마흔 명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한 사람씩 말을 걸었다. 흠, 흠. 기침 여든 번이 거의 같은 순간에 났다. 한 대만 반 박자 늦었다. 휘람이 반 박자 늦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공개방」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세 칸 너머 주차장, 회색 세단 안에서 근호가 지금 말하고 있었다.
서른아홉 대는 각자 다른 말을 했다.
「은퇴자 연금방」에서는 “어르신들, 연금 통장 그대로 두시면 안 됩니다. 8월 5일 한 번만 저 믿으세요.” 「인천 맘방」에서는 “사모님들, 반찬값 정도가 아니라 학원비가 나옵니다.” 「청주 공무원」에서는 “원금은 제가 책임집니다.” 「대구 직장인」에서는 “대출 받아서라도 오시는 분들, 그 마음 제가 압니다.”
휘람이 무릎을 끌어안았다. “과장님, 연금방은 너무하다.”
“원금 보장 한마디면 끝이야.” 나는 「청주 공무원」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주식에 원금 보장은 없어. 원금을 보장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말만으로 법을 어기는 거고. 연 300%도 그래. 은행 이자 열 배를 준다는 사람은 그 돈을 어디서 가져오는지 말 못 해. 들어온 사람 돈으로 먼저 온 사람한테 주는 거야.”
“대출 받아서라도는요?”
“그 말이 나오면 방은 우리 돈 말고 우리 빚까지 보고 있는 거야.” 나는 「대구 직장인」 화면을 넘겼다. 방 공지 아래에 「총알 지원 — 당일 대출 상담」 주소가 붙어 있었다. 공지 바로 옆에 대출 중개 광고가 있는 방이 서른아홉 개 가운데 스무 개가 넘었다.
공개방 방송이 끝났다. 한 대가 조용해졌다. 서른아홉 대는 계속 말했다. 무향실 문이 열렸다.
*
근호는 문간에 선 채 한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마흔 방향에서 제 목소리가 쏟아지는 방이었다. 근호가 철망 바닥에 한 발을 디뎠다. 철망이 낮게 울렸다.
“이게 다 뭐냐.”
“팀장님 목소리 마흔 개입니다. 하나는 방금 팀장님이 하신 거고, 서른아홉 개는 인공지능이 만든 겁니다.”
근호는 휴대전화 하나를 집어 귀에 댔다. 「청주 공무원」이었다. 원금은 제가 책임집니다. 근호가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집었다. 「은퇴자 연금방」 어르신들, 연금 통장 그대로 두시면 안 됩니다. 근호는 연금방 휴대전화를 오래 들고 있었다.
“이거 진짜 내 목소리 아니냐.” 근호가 휴대전화를 귀에서 뗐다. “똑같은데.”
“기침해 보십시오.”
근호가 나를 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흠, 흠. 두 번째가 반 박자 늦었고, 늦은 만큼 목이 걸걸했다. 나는 「청주 공무원」 방송의 기침을 되감아 틀었다. 흠, 흠. 두 번이 자로 잰 듯 같은 길이로 끝났다.
“팀장님 기침은 그날 아침 목 상태에 따라 늘어납니다. 어제 술 드셨으면 더 늘어나고요. 저 기침은 제가 들은 날마다 한 번도 안 늘었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사람은 매일 다르게 기침합니다. 똑같이 기침하는 건 사람이 아닙니다.”
근호가 제 목을 손으로 쓸었다. 어젯밤 마신 소주가 아직 목에 남아 있는 소리였다.
“우리 아버지가 연금 받으셔.” 근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원금 보장이라는 말 안 해. 이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안 했어. 그 말 하는 놈은 사기꾼이라고 내가 후배들한테 가르쳤어.”
“압니다.”
“대출 받아서 오라는 말도 안 해. 나는 총알 준비하라고 했지, 빚내라고 한 적 없어.”
“주찬이는 빚냈습니다.”
“나도 알아.” 근호가 손에 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주찬이가 대출 받았다고 했을 때 내가 말렸어. 안 들었지. 내가 석 달 동안 맞혔으니까. 맞히는 사람 말은 듣고, 말리는 사람 말은 안 들어.” 근호가 제 입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저도 팔고 하루 입 닫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팀장님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근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 하루 동안 뭐 했냐.”
“탁 대리 집들이 떡 받았습니다.”
근호가 짧게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흡음재가 웃음을 곧바로 먹었다.
근호가 나를 보았다. 무향실에서는 둘 사이에 아무 소리도 끼어들지 않았다. 서른아홉 개 방송이 하나씩 끝나 갔다. 마지막 방송이 끝나자 방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곳이 됐다. 근호의 숨소리만 남았다. 들이마실 때 금니 틈으로 바람이 샜다.
“팀장님, 하나 더 있습니다.” 나는 채석란이 보내 준 화면을 띄웠다. “서른아홉 개 방 가운데 여러 방이 회비를 개인 계좌로 받습니다. 넉 달 동안 수십억이 들어갔습니다. 계좌 주인 이름이 맹근호입니다.”
근호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다 무릎을 꿇듯이 철망 바닥에 주저앉았다.
“반년 전에 표 대표가 세무 처리 해 준다고 신분증 사본이랑 도장 달라고 했어. 사업자로 해 두면 세금이 준다고.” 근호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통장을 한 번도 안 봤어.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인데.”
“8월 5일에 털고 나가면 경찰이 찾는 이름은 팔부능선이고, 팔부능선의 목소리와 계좌는 팀장님입니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근호에게가 아니라 근호의 숨소리에 맞춰 말했다. “표 대표는 얼굴이 없습니다. 팀장님이 얼굴입니다.”
*
휘람이 철망 바닥을 기어 근호 옆으로 갔다. 휘람은 근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말고 휴대전화 하나를 집어 화면을 껐다.
“팀장님, 저 이거 숏폼 안 올릴게요.” 휘람이 말했다. “‘우리 팀장 목소리를 해부해 보았다’, 그거 안 올릴게요. 백만 뷰 안 해도 돼요.”
근호가 웃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이었다. 근호는 손을 들어 휘람의 정수리를 한 번 툭 쳤다. 회의 때 휘람이 클레임 보고서를 잘 써 오면 하던 손짓이었다.
근호가 철망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그럼 우리 식구 백 명은. 열 시 신호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주찬이는 알아?”
“주찬이는 인공지능 목소리는 압니다. 계좌는 모릅니다. 열 시 신호도 모릅니다.”
근호는 철망 위 휴대전화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름표 스티커가 붙은 마흔 개의 검은 화면이었다. 근호가 「은퇴자 연금방」을 다시 집어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꺼진 화면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 휘람, 너 아침 회의 때 내 말버릇 세지?”
“……네.”
“오늘은 몇 번이냐.”
“아직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방금 문자가 와 있었다. 근호는 화면을 나에게 돌려 보였다. 손이 떨려서 글자가 흔들렸다.
「선생님, 오늘 아침 방송 좋았습니다. 8월 5일, 마흔 개 방. 선생님 이름으로 갑니다. — 표서걸」
마흔 대의 화면이 철망 바닥 위에서 하나씩 어두워졌다. 소리 없는 방 한가운데, 근호가 제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화면을 오래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