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6,380자)
대리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7월 19일 월요일 밤 열한 시, 강남역 뒷골목 고깃집 앞에서 휘람이 신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상자를 흔들자 안에서 플라스틱끼리 부딪는 소리가 났다.
“공기계 다섯 대요. 제 부업 장비예요. 숏폼 올릴 때 계정마다 폰을 따로 써야 알고리즘이 안 헷갈려요. 충전은 다 해 놨어요.”
“고마워.”
“고마우면 소주 한 병 더 사 주시지, 왜 벌써 일어나세요.” 휘람이 상자를 내 품에 안겼다. “과장님 오늘 세 잔 드셨어요. 운전하지 마세요. 대리 부르세요. 요즘 대리 앱 오 분이면 와요.”
나는 앱을 열어 목적지를 독산동으로 넣었다. 기사 배정 알림이 이 분 만에 왔다. 기사 사진은 작아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접이식 전동 킥보드 하나가 미끄러져 왔다.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가 킥보드에서 내려 손잡이를 접었다. 이니셜 캡을 쓰고 있었다.
주찬이었다. 주찬은 나를 보고 킥보드를 접던 손을 멈췄다. 휘람이 내 옆에서 “헐.” 하고 소리를 냈다. 사 초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객님.” 주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작았다. “목적지 독산동, 맞으십니까?”
*
주찬은 내 차 운전석에 앉아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거울을 맞췄다. 접은 킥보드는 트렁크에 실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대리기사가 운전할 때 고객은 보통 뒷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월요일 밤에 처음 알았다. 주찬이 그렇게 말했다.
“고객님은 원래 뒤에 타셔야 돼요.”
“고객님 소리 그만해.”
“지금은 일하는 중이야.” 주찬은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았다. 열 시 십 분 자리였다. 운전 학원에서 가르치는 그대로였다. “석 달 됐어. 하루 다섯 콜. 이자가 한 달에 백삼십이야. 월급으로 이자 내면 애들 기저귀를 못 사. 그래서 밤에 뛰어.”
“일산 친구 집.”
“일산 콜.” 주찬이 웃었다. “일요일 오후 운전 중도 콜이었어.”
차는 강남대로를 빠져나와 고가 도로로 올라갔다. 주찬은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았다. 끼익 소리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브레이크를 잘 밟는 사람이 내 동기라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8월 5일로 미뤄진 거 알지?” 주찬이 말했다. “3주 미뤄지면 이자가 백 더 나가. 네가 강당에서 쥐 소리 해서 미뤄진 거야. 그 백, 네가 줄래?”
“VIP방 목소리 팀장님 아니야. 인공지능으로 흉내 낸 거야.”
“알아.” 주찬이 깜빡이를 켰다. 똑딱, 똑딱. “실장이 돌리는 거. 운영진방에서 다 아는 얘기야. 팀장님 혼자서 삼백 명 질문을 어떻게 다 받아. 그게 뭐?”
“팀장님이 안 한 말을 해.”
“동기야.” 주찬이 신호에 차를 세웠다. 빨간불이 주찬의 얼굴을 비췄다. “목소리가 가짜면 돈도 가짜냐? 내 계좌에 찍힌 석 달 수익은 진짜였어. 희서 산후조리원 비용 그걸로 냈어. 가짜 목소리가 진짜 돈을 줬다고. 너는 진짜 목소리로 나한테 뭘 줬는데?”
파란불이 켜졌다. 주찬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출발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고가 도로 아래로 불 켜진 아파트 창들이 지나갔다. 불 하나하나에 집주인이 있었다.
독산동 빌라 앞에서 주찬은 차를 세우고 기어를 주차에 넣었다. 대리비는 이만 오천 원이었다. 내가 삼만 원을 건네자 주찬은 오천 원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팁은 안 받아. 동기한테는.”
주찬은 트렁크에서 킥보드를 꺼내 펼쳤다. 형광 조끼에 가로등 빛이 번쩍였다. 킥보드 모터가 높고 가늘게 울더니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앱에 알림이 떴다. 「기사님께 별점을 남겨 주세요.」 나는 다섯 개를 눌렀다. 다섯 개밖에 없었다.
3층에 올라가니 소휘가 거실 불을 켜 놓고 앉아 있었다. 2억 1천이 소휘 통장으로 간 뒤로 소휘는 매일 밤 잔고 화면을 한 번씩 열었다. 잠들기 전에 문단속을 하는 사람 같았다.
“대리 불렀어?”
“응.”
“기사님이 당신 차 주차를 엄청 반듯하게 했네. 창문으로 봤어.” 소휘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누구였는데? 당신 얼굴이 대리비 낸 얼굴이 아니야.”
“주찬이.”
소휘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냉장고 모터가 돌다가 멈췄다. 소휘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잔고 화면이 아니라 연락처였다. 「희서 씨」라는 이름 위에서 엄지가 멈췄다가, 누르지 않고 화면을 껐다.
“밤 열한 시 반에 둘째 엄마한테 전화하는 사람은 없어.” 소휘가 말했다. “내일 아침에 할 거야. 백설기 핑계 대고.”
*
이튿날 열두 시, 화성 물류센터 구내식당. 반장과 마주 앉아 제육볶음을 먹는데 반장이 내 등 뒤를 보며 숟가락을 멈췄다.
“본사 과장님, 저 여자분 아까부터 과장님만 봐.”
돌아보기도 전에 식판이 내 옆자리에 놓였다. 제육볶음, 콩나물국, 깍두기, 밥은 고봉이었다. 마흔 남짓한 여자가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짧은 머리에 회색 반팔 셔츠 차림이었고 목에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오승표 과장님. 밥 먹으면서 얘기해요. 저 아침을 못 먹었어요.” 여자는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반쯤 보였다가 닫았다. “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채석란 경위입니다.”
반장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보험 아니고?”
“보험 아닙니다, 반장님. 제육 맛있네요.” 채석란은 제육을 크게 한 숟갈 떴다. 씹는 소리가 고르고 빨랐다. 밥을 오래 급하게 먹어 온 사람의 소리였다.
“지난주 화요일에 뫼빛 계좌로 99만 원 보내셨죠. 저희가 그 계좌를 보고 있어요. 보낸 사람 중에 브레이크 회사 품질팀 과장이 있길래 와 봤어요. 회사 게시판에서 쥐라고 불리시던데.”
“제가 쥐입니까?”
“쥐는 저희가 쫓는 사람한테 쓰는 말이 아니죠.” 채석란이 숟가락 끝으로 내 식판을 가리켰다. “과장님은 그냥 귀가 좋은 분.”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8월 5일을 막아 주십시오. 회사 사람 백 명이 들어갑니다.”
“못 막아요. 안 막아요.” 채석란이 콩나물국을 들이켰다. “두 해 전에 다른 리딩방 세력을 하루 일찍 덮쳤어요. 사람들 돈 들어가기 전에요. 잘했다고 신문에 났죠. 대표는 매도 기록이 없어서 풀려났어요. 석 달 뒤에 다른 이름, 다른 목소리로 방을 다시 열었고요. 그 방에서 천이백 명이 들어갔어요.”
“이번에는 백 명이 들어갑니다.”
“백 명 구하면 천 명이 다음 방에서 들어가요.” 채석란이 숟가락을 식판에 내려놓았다. 쇠가 쇠에 닿는 소리가 짧았다. “뫼빛 같은 데가 하는 일은 신문에 여러 번 났어요. 판결문에도 똑같이 나와요.” 채석란이 숟가락으로 식판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루에 사고파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작은 종목을 골라요. 사는 사람이 적으니까 적은 돈으로도 그래프가 움직이거든요. 남의 이름으로 만든 계좌를 여러 개 쥐고 자기들끼리 주고받아요. 짜고 서로 사고파는 걸 통정매매라고 해요. 그래프가 계단처럼 오르고 거래량이 붙으면 바깥 사람들은 뭔가 있다고 믿죠. 그다음이 리딩방이에요. 회원들이 사는 동안 자기들이 쥔 걸 넘겨요. 털기요. 과장님이 그래프에서 본 꼭대기가 거기예요. 이걸 다 합쳐서 시세조종이라고 부르고, 자본시장법에서 제일 무겁게 치는 죄 가운데 하나예요.”
“표서걸은 팔 때 잡아야 돼요. 판 기록이 남아야 법정에서 이겨요. 8월 5일 아침, 저도 그날만 기다려요.”
“제 동기가 2억을 넣습니다.”
“변주찬 과장. 압니다.” 채석란이 깍두기를 집었다. “밤에 대리 뛰는 것도요. 성실한 분이에요. 성실한 사람이 제일 많이 잃어요.”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방 안에 계세요. 들리는 대로 저한테 알려 주세요. 과장님 귀는 저희 녹음 장비보다 비싸요.” 채석란이 고봉밥 마지막 숟갈을 떴다. “대신 변 과장님 같은 분들, 나중에 가해자 말고 피해자로 잡히게 해 드릴 수는 있어요. 방장이었으니 애매하거든요. 그 정도가 제가 드릴 수 있는 거예요.”
“그 정도로는 2억이 안 돌아옵니다.”
“2억은 아무도 못 돌려줘요. 저도, 과장님도.” 채석란이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반쯤 일어서다가 다시 앉아 내 식판의 남은 제육을 보았다.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어도 돼요?”
나는 식판을 밀어 주었다. 채석란은 제육을 자기 식판에 옮기며 말했다. “경찰이 밥 얻어먹는 거 아니에요. 버리는 거 줄이는 거예요.”
반장이 조용히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나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본사 과장님, 나 오늘부터 그 방 나갈까?”
“아직 계세요.” 내가 말했다. “안에 있어야 들려요.”
*
저녁 여섯 시 반, 물류센터 컨테이너 사무실. 책상 위에 휴대전화 아홉 대가 줄지어 누웠다. 휘람의 공기계 다섯, 휘람과 내 휴대전화 넷. 휘람은 퇴근하자마자 화성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 휴대전화 뒤에 이름표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대구」, 「광주」, 「부산」, 「대전」, 「울산」
채석란이 태블릿을 열었다. 화면에 방 이름 열한 개가 떠 있었다. 「팔부능선 대구 식구방」, 「팔부능선 호남 직장인방」, 「능선 선생님 부산 VIP」……. 휘람이 하나씩 들어갔다. 어떤 방은 무료였고 어떤 방은 입장할 때 짧은 문답을 했다. 「직업?」 「직장인」 「총알?」 「장전 중」
“반장님 폰도 하나 빌렸어요.” 휘람이 열 번째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물류」라고 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반장님 폰 배경 화면이 손주예요. 너무 귀여워서 방 들어가기 미안했어요.”
컨테이너 문이 빼꼼 열리고 반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본사 과장님, 내 폰 언제 돌려줘? 손주가 저녁에 영상 통화 한단 말이야.”
반장은 폰을 받기 전에 제 작업복 주머니에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냈다. “근데 이거 좀 봐 줘. 물류센터 애들 셋이 깐 건데, VIP 전용 거래 앱이래.” 화면에는 「뫼빛 트레이딩」이라는 앱이 떠 있었고 수익률이 붉은 글씨로 +212%였다. 평가 금액은 2,400만 원이었다. “처음에 오십만 원 빼 봤는데 바로 들어왔어. 그래서 이번에 이천 빼려고 하니까 이게 떠.”
「고액 출금 안내 — 양도소득세 및 수수료 20%(480만 원)를 먼저 입금하셔야 출금이 승인됩니다.」
채석란이 반장의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앱 정보를 열었다. 공식 앱 장터에서 받은 앱이 아니었다. 문자로 온 주소를 눌러 설치한 파일이었다.
“반장님, 이 숫자는 진짜 주식이 아니에요. 화면에만 있는 숫자예요.” 채석란이 말했다. “오십만 원이 빠진 건 믿게 하려고 돌려준 미끼고요. 세금은 증권사가 떼고 주지, 먼저 보내라고 하지 않아요. 480만 원 보내면 다음엔 ‘보안 인증비’가 떠요. 저희가 수십 번 본 화면이에요.”
“그럼 내 2,400은?”
“처음 넣으신 돈부터 따져 봐야죠.” 채석란이 반장에게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보였다. “더 보내지 마세요. 앱 지우기 전에 화면이랑 입금 내역 전부 찍어 두세요. 내일 아침에 1332 금융감독원 신고 센터에 전화하시고, 입금한 은행에 지급 정지 요청하시고, 112에도 같이 신고하세요. 혼자 말고 물류센터 세 분이 같이 하세요.”
반장은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았다. 숫자 2,400을 오래 보다가 화면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소리가 작은 컨테이너 안에서 여러 번 울렸다. 반장은 손주가 여덟 시면 잔다며 일곱 시 반까지 제 폰을 꼭 돌려 달라고 하고 나갔다. 문을 닫는 손이 느렸다.
열한 번째는 채석란의 업무용 휴대전화였다. 일곱 시가 다가오자 컨테이너 안이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지게차 마지막 후진음이 삐, 삐 울리다 멎었다.
일곱 시 정각, 휴대전화 열한 대에서 같은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자, 귀 열고.”
열한 개의 “자, 귀 열고.”가 컨테이너 철벽에 부딪혀 한 덩어리가 됐다. 흠, 흠. 기침 스물두 번이 거의 한 박자에 겹쳤다. 거의였다. 한 대만 두 번째 기침이 반 박자 늦었다. 내 휴대전화, 공개방이었다. 근호가 지금 지하 주차장이든 집이든 어디선가 직접 말하고 있었다.
나머지 열 대는 같은 목소리로 서로 다른 말을 했다.
「대구」에서는 “도톰로보틱스 계속 들고 갑니다.” 「광주」에서는 “결정바이오 오늘 조금 담으세요.” 「부산」에서는 “이번 판은 원금 보장입니다. 제가 책임집니다.” 「물류」에서는 반장의 손주 사진 위로 “대출 받아서라도 오시는 분들, 그 마음 압니다.”
휘람이 귀를 막았다. “과장님, 이거 무서워요. 팀장님이 열한 명이에요.”
“열 명은 팀장님 아니야.” 나는 한 대씩 귀를 대 보았다. ‘ㅅ’에서 바람이 새는 것은 공개방 하나뿐이었다. “열 대에서 나오는 건 인공지능이야. 원금 보장은 팀장님이 절대 안 하는 말이고.”
채석란이 태블릿에 무언가를 빠르게 쳤다. 방송이 끝나자 컨테이너 안이 갑자기 넓어졌다. 채석란이 태블릿을 나에게 돌려 보였다.
“하나 더 알려 드릴게요. 대가로 과장님 귀를 좀 빌릴 거니까.” 채석란이 숟가락 대신 볼펜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열한 개 방 가운데 아홉 개는 회비를 뫼빛 이름으로 안 받아요. 개인 계좌로 받아요. 지난 넉 달 동안 수십억이 들어갔어요. 계좌 주인 이름은 맹근호예요.”
나는 화면을 보았다. 한글 세 글자가 반듯하게 박혀 있었다. 컨테이너 바깥에서 환풍기가 한 바퀴마다 툭, 툭 걸리는 소리를 냈다. 휘람이 막았던 귀에서 손을 천천히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