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996자)
VIP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화성 물류센터의 아침은 후진 경고음으로 시작했다. 지게차 넉 대가 동시에 뒤로 빠질 때마다 삐, 삐, 삐 하는 소리가 서로 엇박자로 겹쳤다. 컨베이어 벨트는 쉬지 않고 덜거덕거렸고, 천장 환풍기 넷 가운데 하나는 날개가 휘어 한 바퀴마다 툭 하고 걸리는 소리를 냈다. 본사 무향실에서 내 심장 소리를 듣던 귀가 하루아침에 소리의 시장 한가운데 떨어졌다.
물류센터 반장은 예순을 앞둔 남자였고, 나를 “본사 과장님”이라고 불렀다. 반장은 내 흰 반팔 와이셔츠와 회색 넥타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본사 과장님, 넥타이는 풀어요. 지게차 바퀴에 감기면 과장님도 같이 감겨요.”
“감긴 적 있습니까?”
“내가 감겼지. 1998년에.” 반장이 목을 쓸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해부터 목 늘어난 티만 입어.”
나는 넥타이를 풀어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반장은 브레이크 패드 상자에 출고 표를 붙이는 일을 나에게 맡겼다. 상자 하나에 표 하나, 표 하나에 바코드 하나. 일은 단순했고, 단순한 일 사이로 반장의 휴대전화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개방 아침 방송을 반장이 다시 듣고 있었다.
“반장님도 그 방 계십니까?”
“우리 물류센터 열두 명 다 들어가 있어. 본사 근호 형님이 하는 거라던데? 아니, 이건 비밀인가.” 반장이 입을 막았다가 금방 뗐다. “다들 알아. 형님 목소리를 우리가 모르나. 회식 때 노래방에서 맨날 「돌아가는 삼각지」 부르는데.”
본사 백 명 밖에 물류센터 열두 명이 더 있었다. 소리는 아는 사람의 귀를 따라 번진다.
*
점심시간, 나는 컨테이너 사무실 뒤 그늘에서 휘람의 전화를 받았다. 휘람은 목소리를 낮추느라 숨이 가빴다.
“과장님, 저 고백할 거 있어요. 저 VIP방 회비 월 99만 원이에요. 부업으로 모은 돈 3천 넣었어요. 숏폼 편집 한 편에 오만 원씩, 밤마다 두 편씩 해서 모은 거예요.”
“알아.”
“아 그거 말고요. 제가 VIP 초대권이 한 장 있어요. 들어오실래요? 근데 초대받아도 회비는 내셔야 돼요.”
나는 99만 원을 보냈다. 넉 달 동안 번 4천에서 나간 첫 돈이었다. 보내기 단추를 누르면서 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 화면에 받는 사람 이름이 떴다가 사라졌다. 「㈜뫼빛」으로 시작하는 글자였다. 다음 순간 새 방이 열렸다.
「팔부능선 VIP — 먼저 타는 사람들」
공개방, 회사 식구방, 운영진방, 그리고 VIP방. 내가 들어가 본 문이 넷이 됐다.
*
VIP방 공지 맨 위에는 등급표가 고정되어 있었다. 「무료방 — 종목은 장 마감 뒤 공개 / VIP 월 99만 원 — 장중 실시간 / 평생 회원 990만 원 — 8월 5일 우선 탑승, 상장 전 주식 배정, 선생님 1:1 상담」 무료방에서는 늘 한발 늦게 종목을 듣고, 늦게 들은 사람은 비싸게 산다. 비싸게 산 사람은 다음 달 99만 원을 낸다. 99만 원을 낸 사람 앞에 990만 원짜리 문이 하나 더 있다. 층마다 문이 있고, 문을 하나 넘을 때마다 회비가 열 배씩 뛰었다.
휘람은 지난달 평생 회원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저한테만 따로 메시지 주셨어요. 휘람 님 자산이면 이 종목 비중을 몇 퍼센트로 하라고.” 나는 휘람에게 말했다. 유사투자자문업자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보내는 정보만 팔 수 있고, 한 사람을 붙잡고 맞춤으로 사라 팔라 하는 1:1 자문은 법으로 막혀 있다고. 휘람이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그럼 제가 받은 그 다정한 메시지가 불법이었어요?”
오후 한 시 십 분, VIP방에서 음성 방송이 떴다. 공개방에는 없는 시간이었다.
“자, 귀 열고. 흠, 흠. 점심 먹고 왔습니다. 지금 한 시 팔 분 시세 보시면, 반도체 쪽이 오전 낙폭을 반쯤 되돌렸습니다. VIP분들은 오늘 손 놓고 계세요. 깔끔하게.”
같은 시각 휘람에게서 사진이 한 장 왔다. 본사 6층 사장실 옆 회의실, 유리벽 너머 탁자에 근호가 앉아 있었다. 완성차 회사 감사관을 맞기 전 미리 맞추는 회의라고 했다. 근호는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문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사진에 찍힌 벽시계가 한 시 십 분을 가리켰다.
나는 방송을 다시 틀었다. 왼쪽 귀를 손바닥으로 막고 오른쪽 귀에만 소리를 넣었다. 지게차 경고음이 손바닥 너머로 멀어졌다.
‘시세’, ‘쪽이’, ‘손 놓고 계세요’. ‘ㅅ’이 여러 번 나왔다. 바람이 새지 않았다. 금니 틈의 가는 바람 소리가 한 번도 끼지 않았다. 헛기침 두 번 사이도 이상했다. 반 박자가 아니라 딱 맞는 간격이었다. 사람의 기침은 숨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이 기침은 자로 잰 듯했다.
나는 오후 내내 상자에 표를 붙이며 이 소리를 돌려 들었다. 반장이 지나가다 물었다. “본사 과장님, 그거 무슨 노래야? 계속 같은 데만 들어.”
“기침 소리요.”
“기침을 왜 들어?”
“기침이 너무 깔끔해서요.”
반장은 고개를 갸웃하고 지게차에 올랐다. 출입문 위 텔레비전에서 금융 당국이 인공지능으로 목소리를 흉내 낸 투자 사기를 조심하라고 알린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무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
퇴근길 고속도로는 화성에서 서울까지 내내 막혔다. 나는 차 안에서 지갑 안쪽 칸의 저장 장치를 꺼내 연결했다. 7월 7일 밤 무향실의 근호 맨목소리와 오늘 한 시 십 분 VIP 방송을 번갈아 틀었다.
무향실의 근호는 “그래, 내 목소리다.”에서 ‘그래’ 다음에 숨을 한 번 쉬었다. 반 박자 쉬고, 금니 틈으로 ‘ㅅ’이 샜다. VIP의 목소리는 쉬지 않았다. 숨을 쉬는 자리에 숨소리 대신 아주 짧은 무음이 있었다. 사람의 숨은 소리가 난다. 인공지능이 만든 숨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숨 쉬는 시늉만 한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켜질 때마다 나는 같이 밟았다. 휘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VIP방 실장이 누군지 알아?”
“몰라요. 방에는 ‘운영팀’이라고만 떠요. VIP가 삼백 명쯤인데 다들 능선 선생님한테만 말해요. 근데 과장님, 신기한 게 있어요. 선생님이 VIP 질문에는 밤 열두 시에도 답을 해 주세요. 새벽 세 시에 물어본 사람한테도 답이 왔대요. 팀장님 새벽 세 시에 안 주무세요?”
“팀장님은 열 시면 자.”
“그쵸? 회식 때도 열 시 되면 택시 부르시잖아요.” 휘람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럼 새벽 세 시에 답하는 선생님은 누구예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앞차가 다시 멈췄다가 출발했다. 브레이크 패드가 디스크를 문지르는 소리가 내 차 바닥에서 올라왔다. 내가 만든 패드였다. 끼익 소리가 나지 않았다.
*
밤 아홉 시, 독산동 빌라 식탁. 단미는 자고 있었다. 소휘가 맞은편에 앉아 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증권 앱 화면이었다. 「예수금 2억 1,012만 원」
나는 처음부터 말했다. 4월에 보증금이 돌아왔을 때 1억 7천을 넣은 것, 넉 달 동안 앱을 볼 때마다 숫자가 올라간 것, 지난주 목요일 아침에 혼자 판 것, 하루 동안 입을 닫은 것, 적금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소휘는 끝까지 듣고 펜을 들었다. 학원에서 쓰는 빨간 펜이었다.
“1억 7천 넣어서 2억 1천 됐고, VIP 99만 원 냈고.” 소휘가 식탁 위 이사 견적서 뒷면에 숫자를 썼다. 펜 끝이 종이를 긁었다. “그래서 얼마?”
“4천 조금 안 되게 벌었어.”
“아니, 그거 말고.” 소휘가 펜을 내려놓았다. “당신이 나한테 거짓말한 거. 4월부터 오늘까지. 그래서 얼마냐고.”
“석 달 반.”
“백 일 넘네.” 소휘는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계산을 멈추면 울음이 먼저 나올 사람이었다. “그 백 일 동안 나는 이삿짐 견적 세 군데 받았고, 단미 새 유치원 대기 걸어 놨고, 에어컨 26도로 버텼어. 당신은 앱 보면서 웃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을 때 대답하지 않는 것도 비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주찬 씨는?” 소휘가 물었다. “희서 씨도 알아? 주찬 씨가 2억 빌린 거.”
“모를 거야.”
“모를 거야가 아니라, 당신은 알잖아.” 소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희서 씨 둘째 돌잔치 때 내가 떡 했어. 백설기 세 판. 그 집 둘째가 내 떡 먹고 컸다고.”
방문이 열리고 단미가 나왔다.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다. “엄마 목소리 커.”
“미안. 엄마가 아빠한테 수학 가르쳐.”
“아빠 수학 못해?”
“응. 빼기를 못해.” 소휘가 단미를 안아 들었다. 단미가 나를 보며 위로하듯 말했다. “아빠, 빼기는 손가락으로 하면 돼. 나도 그렇게 해.” 단미가 소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소휘가 방으로 들어가다 문간에서 멈췄다. 등을 돌린 채였다. “다 재우고 나서 마저 해.”
“지금 내 통장으로 보내.” 소휘가 제 휴대전화를 내 앞에 밀었다. “전부. 2억 1천. 잔금 날까지 당신 손 안 타게.”
나는 증권 계좌에서 은행으로, 은행에서 소휘의 계좌로 돈을 옮겼다. 확인 단추를 누를 때마다 휴대전화가 짧게 떨었다. 마지막 화면에 「이체 완료」가 떴다. 소휘가 제 휴대전화를 들어 숫자를 확인했다.
“2억 1천 12만 원.” 소휘가 읽었다. “12만 원은 왜 남겨.”
“수수료 빼고 남은 거야.”
“12만 원으로 메로나 몇 개 사는지 알아?” 소휘가 처음으로 웃었다. 울음이 반쯤 섞인 웃음이었다. “백 개. 단미 백 날 먹어. 당신이 백 일 거짓말한 거랑 딱 맞네.”
소휘는 빨간 펜으로 견적서 뒷면에 동그라미를 하나 쳤다. 동그라미 안에 「100」이 있었다. 학원 아이들 시험지에 백 점을 줄 때 치는 동그라미와 같은 모양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아무도 백 점을 받지 않았다.
*
밤 열 시 반, 빌라 앞 편의점 파라솔에 근호가 와 있었다. 내가 불렀다. 근호는 메로나 한 봉지를 들고 왔다. 열 개짜리였다.
“단미 백 개 채우려면 열 번 와야겠네.” 근호는 내 표정을 보고 봉지를 내려놓았다. “와이프한테 들켰구나.”
“말했습니다.”
“잘했다. 들키는 거랑 말하는 건 다르지. 내 와이프는 아직도 몰라. 내가 2006년에 집 살 때 처가에서 천만 원 빌린 거.” 근호가 의자를 끌어 앉았다. “그래서 왜 불렀어. 화성 공기 좋지?”
나는 VIP방 한 시 십 분 방송을 틀었다. 근호는 처음에는 웃었다. “VIP 들어갔냐? 99만 원 아깝게.” 방송이 ‘한 시 팔 분 시세’에 이르자 웃음이 멈췄다.
“한 시 십 분에 팀장님은 사장실 옆 회의실에 계셨습니다. 휘람 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실장이 내 녹음 틀었겠지. 아침에 해 둔 거.”
“한 시 팔 분 시세를 말합니다. 아침에 녹음한 목소리가 점심 시세를 읽습니까?”
근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실장이 무슨 수를 썼든, 내 목소리를 빌려준 건 나야. 표 대표가 그러더라. 선생님 목소리를 컴퓨터에 익혀서 VIP 관리 좀 돕게 하자고. 사람 셋이 할 일을 기계 하나가 한다고. 요즘 다 그렇게 한대.” 근호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문질렀다. “나는 아침저녁만 하고, 나머지는 기계가 내 말투로 답해 주는 거야. 그게 뭐가 나빠.”
“팀장님이 안 한 말을 팀장님 목소리로 합니다.”
“내가 할 말을 대신 하는 거지.”
나는 한 번 더 틀었다. “그리고 ‘ㅅ’에서 바람이 안 샙니다. 헛기침 간격이 자로 잰 것 같습니다. 팀장님은 기침을 그렇게 깔끔하게 못 하십니다.”
근호가 엄지로 제 금니를 두드렸다. 두 번, 세 번. 편의점 냉장고 모터가 웅 하고 돌았다.
바로 이때 내 휴대전화와 근호의 휴대전화가 같이 울렸다. VIP방 밤 특별 방송이었다. 근호가 먼저 화면을 눌렀다.
“자, 귀 열고. 흠, 흠. VIP분들께만 드리는 말씀입니다. 회사에 쥐가 하나 있습니다. 브레이크 만드는 회사, 품질팀 오 과장. 쥐 말은 듣지 마세요. 8월 5일, 우리는 먼저 탑니다. 깔끔하게.”
근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것을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보았다. 근호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녹음 시각이 방금 전이었다.
“나는 이 말 한 적 없다.” 근호가 말했다. 헛기침이 한 번 나왔다. 흠. 두 번째는 나오지 않았다. “이건 실장 짓이다. 내가 정리한다.”
근호는 메로나 봉지를 내 쪽으로 밀어 두고 일어났다. 걸어가는 근호의 휴대전화에서 같은 방송이 한 번 더 흘러나왔다. 근호가 볼륨을 끄지 않았다. 골목 끝까지 근호의 목소리가 근호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