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6,129자)

대강당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화요일 아침 엘리베이터에는 나 말고 다섯 명이 탔다⁠. 문이 닫히자 대화가 끊겼다⁠. 3층에서 한 사람이 내렸고⁠, 4층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4층은 내린 사람들의 층이 아니었다⁠. 5층에 닿았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와 환기팬 소리만 남았다⁠. 사람은 피할 때도 소리를 낸다⁠. 발을 바꾸는 소리⁠, 휴대전화를 고쳐 쥐는 소리⁠, 숨을 참았다가 내쉬는 소리⁠. 다섯 사람이 낸 소리가 전부 나를 향해 있었다⁠.

사내 메신저 두루톡에는 직원들이 이름을 가리고 글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다⁠.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었다⁠. 맨 위 글의 제목은 「⁠품질팀 O과장 녹음 편집 의혹⁠」⁠, 댓글이 여든일곱 개였다⁠. 댓글 하나가 추천을 가장 많이 받아 맨 위에 올라와 있었다⁠.

「⁠브레이크 회사 직원이 남의 버스에 브레이크 거네 ㅋㅋ⁠」

나는 이 댓글이 우리 회사 사람이 쓴 말 가운데 가장 잘 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짧고⁠, 소리가 좋고⁠, 틀렸다⁠.

*

아홉 시 반⁠, 휘람이 종이컵 하나를 내 책상에 놓았다⁠. 컵 옆구리에 검은 펜으로 쥐가 한 마리 그려져 있었다⁠. 꼬리가 길었고 수염이 세 가닥씩 났다⁠.

“⁠배신자 전용 아아예요⁠.⁠”

“⁠쥐를 왜 그렸어⁠.⁠”

“⁠사람들이 과장님을 쥐라고 해서요⁠. 근데 제가 그리니까 귀여운 쥐가 됐어요⁠. 귀여운 쥐는 아무도 안 잡아요⁠.⁠” 휘람이 칸막이에 기대 목소리를 낮췄다⁠. “⁠저 VIP방에 그대로 있을게요⁠. 거기서 무슨 말 나오는지 다 들을게요⁠. 대신 과장님이 저 잘리면 제 부업 숏폼 구독 좀 눌러 주세요⁠. 구독자가 천 명을 넘어야 수익이 나거든요⁠.⁠”

“⁠지금 몇 명인데⁠.⁠”

“⁠구백십이 명이요⁠. 과장님 하나 누르시면 구백십삼⁠.⁠”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구독 단추를 눌렀다⁠. 휘람이 화면을 확인하고 엄지를 들었다⁠. 커피는 쓰고 찼다⁠. 쥐 그림이 컵에 맺힌 물방울에 조금씩 번졌다⁠.

*

열두 시 십 분⁠, 본사 지하 1층 대강당⁠. 의자 이백여 개가 거의 다 찼다⁠. 입구 화면에 오늘 점심 특강 제목이 떠 있었다⁠.

「⁠월급쟁이 내 집 마련 — 석 달의 기록 / 연사 품질팀장 맹근호⁠」

노사협의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도시락이 한 개씩 나왔고 맨 앞줄 가운데에 사장이 앉아 있었다⁠. 사장은 창업주의 아들이었고 쉰여섯이었으며⁠, 회의 때마다 골프 이야기로 말을 열었다⁠. 오늘은 반소매 셔츠 주머니에 골프 티 두 개를 꽂고 있었다⁠.

근호는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두드렸다⁠. 퉁⁠, 퉁⁠. 강당 천장 스피커에서 두 번 울렸다⁠.

“⁠자⁠, 귀 열고⁠.⁠”

강당 곳곳에서 웃음이 났다⁠. 품질팀 회의실 말버릇을 회사 사람 절반이 알았다⁠. 근호는 슬라이드 넘기는 단추를 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6년에 첫 집을 산 이야기⁠, 당시 대출 이자가 얼마였는지⁠, 후배들이 결혼할 때마다 축의금을 넣으며 속으로 미안했다는 이야기⁠. 종목 이름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근호는 리딩방이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좋은 선생을 만나면 월급쟁이도 판을 바꿀 수 있다⁠.⁠”라고만 했다⁠.

중간에 탁 대리가 단상에 올라왔다⁠. 손에 빌라 열쇠를 들고 있었다⁠. 탁 대리는 열쇠를 마이크 앞에 대고 흔들었다⁠. 짤랑⁠. 강당 스피커가 열쇠 소리를 크게 키웠다⁠.

“⁠이 소리 들으려고 십 년 일했습니다⁠. 석 달 만에 들었어요⁠.⁠”

박수가 터졌다⁠. 나는 맨 뒷줄 벽에 기대 박수 소리를 들었다⁠.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는 사람마다 달랐다⁠. 몇몇은 늦게 시작했고 몇몇은 일찍 멈췄다⁠. 사장의 박수는 크고 느렸다⁠.

*

특강 중간에 식구방에 그림 한 장이 올라왔다⁠. 「⁠뫼빛파트너스 — 한별증권 공식 제휴 투자자문사⁠」 아래에 붉은 직인이 찍혀 있었고⁠, 옆에는 경제 방송에 자주 나오는 「⁠돈길 박사⁠」의 사진과 「⁠능선 선생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강당 곳곳에서 고개들이 휴대전화로 내려갔다가 안심한 얼굴로 올라왔다⁠.

나는 금융감독원 누리집을 열었다⁠. 「⁠제도권 금융회사 조회⁠」 칸에 뫼빛파트너스를 넣었다⁠. 결과는 한 줄이었다⁠. 투자자문업 등록은 없고⁠, 신고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유사투자자문업자 목록에 이름이 있었다⁠. 한별증권 누리집의 공지 게시판 맨 위에는 「⁠당사를 사칭한 리딩방 제휴 문서에 주의하십시오⁠」가 올라와 있었다⁠. 날짜는 지난달이었다⁠. 돈길 박사의 채널에도 고정 댓글이 있었다⁠. 「⁠저는 어떤 리딩방도 운영하거나 추천하지 않습니다⁠. 제 사진을 쓴 방은 전부 사칭입니다⁠.⁠」

질문 시간이 왔다⁠. 나는 손을 들었다⁠. 강당의 고개 이백 개가 하나씩 돌아왔다⁠. 소리보다 바람으로 먼저 느껴졌다⁠.

“⁠품질팀 오승표입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회사 식구방에서 종목 하나에 다 같이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종목은 당일 아침에만 공개한다고요⁠. 미리 사 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넘기고 빠지는 걸 털기라고 합니다⁠. 이번이 그겁니다⁠.⁠”

강당이 잠깐 조용했다⁠. 앞줄에서 누가 “⁠또 시작이네⁠.⁠” 하고 중얼거렸다⁠.

“⁠방금 올라온 증권사 제휴 문서는 가짜입니다⁠. 증권사가 지난달에 사칭 주의 공지를 올렸습니다⁠. 뫼빛파트너스는 금융감독원 조회에서 정식 투자자문사가 아니라 유사투자자문업자로만 나옵니다⁠. 돈길 박사 사진도 사칭입니다⁠.⁠”

몇몇이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대부분은 보지 않았다⁠.

“⁠그리고 팔부능선 목소리는 팀장님 목소리입니다⁠.⁠”

이번에는 웃음이 났다⁠. 크게 났다⁠. 근호는 단상에서 마이크를 입에 바짝 댔다⁠.

“⁠오 과장⁠, 내 목소리가 그렇게 좋으냐⁠? 좋으면 노래방 가자⁠. 내가 쏜다⁠.⁠”

웃음이 한 번 더 굴렀다⁠. 근호는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금니 틈으로 ‘⁠ㅅ⁠’이 샜다⁠.

“⁠털기든 뭐든⁠, 좋아요⁠. 오 과장 말이 다 맞다고 칩시다⁠. 근데 여기 탁 대리 집 샀습니다⁠. 석 달 만에⁠. 우리 회사가 지난 이십 년 동안 직원한테 집 사 준 적 있습니까⁠? 사장님 죄송합니다⁠.⁠” 근호가 맨 앞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장이 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아무도 안 해 주니까 우리끼리 하는 겁니다⁠. 위험하죠⁠. 압니다⁠. 월급만 믿고 있는 건 안 위험합니까⁠? 그건 천천히 망하는 겁니다⁠.⁠”

박수가 다시 났다⁠. 처음보다 컸다⁠. 나는 손을 내렸다⁠. 근호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틀린 데가 없는 말로 사람들을 틀린 데로 데려가고 있었다⁠. 이 차이를 이백 명에게 일 분 안에 설명할 말을 나는 갖고 있지 않았다⁠.

강당을 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비켜 지나갔다⁠. 주찬이 맨 마지막에 나왔다⁠. 주찬은 나를 보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너 오늘 강당에서 2억 날릴 뻔한 사람이 백 명이었어⁠.⁠”

“⁠무슨 소리야⁠.⁠”

“⁠네 말 듣고 목요일에 빠졌으면⁠, 석 달 동안 번 거 다 들고 나가서 다음 판을 놓쳤겠지⁠. 팀장님 말 들으면 집이 생기고⁠, 네 말 들으면 걱정이 생겨⁠.⁠” 주찬은 이니셜 캡을 머리에 눌러썼다⁠. “⁠사람들은 걱정 사러 강당 안 와⁠, 동기야⁠.⁠”

주찬이 계단을 올라갔다⁠. 흰 운동화 밑창이 계단 모서리에 닿을 때마다 고무가 짧게 끽끽거렸다⁠. 새 신발이었다⁠. 대출 받은 돈으로 산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

오후 세 시⁠, 사장실⁠. 사장은 카펫 위에 퍼팅 매트를 깔고 공을 굴리고 있었다⁠. 공이 매트 끝의 컵에 들어갈 때마다 플라스틱이 딸깍 울렸다⁠. 인사팀장이 소파에 앉아 서류를 무릎에 올려 두고 있었다⁠.

“⁠오 과장⁠, 귀가 좋다며⁠.⁠” 사장이 퍼터를 들고 말했다⁠. 딸깍⁠. “⁠나도 들어 있어⁠. 5억⁠. 근호 형님이 하자고 해서 넣었지⁠. 석 달 동안 1억 넘게 벌었어⁠.⁠”

“⁠사장님도 목요일에 들어가십니까⁠?⁠”

“⁠들어가지⁠. 왜⁠, 그것도 털기야⁠?⁠” 사장이 공을 하나 더 놓았다⁠. “⁠다음 달에 완성차 회사 품질 감사가 있어⁠. 우리 같은 2차 협력사는 감사 한 번에 일 년 물량이 왔다 갔다 해⁠. 지금 회사 안에서 녹음이니 털기니 하는 소리가 밖으로 새면 감사관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소리 하나 못 잡는 회사라고 하겠지⁠.⁠”

딸깍⁠. 공이 들어갔다⁠.

“⁠그리고 요즘 직원들 이직을 안 해⁠. 왜인 줄 알아⁠? 다들 근호 형님 방에서 돈을 버니까⁠. 집 산다고⁠, 대출 갚는다고 붙어 있는 거야⁠. 오 과장이 그걸 깨고 싶어⁠?⁠”

“⁠깨지는 건 목요일입니다⁠.⁠”

사장이 퍼터를 내려놓았다⁠. 인사팀장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인사 발령 — 오승표 과장⁠, 7월 14일부터 화성 물류센터 대기 근무⁠」

“⁠오 과장 귀는 회사 재산이야⁠.⁠” 사장이 말했다⁠. “⁠그런데 입은 회사 위험이거든⁠. 재산은 아끼고 위험은 멀리 두는 게 경영이야⁠. 화성 공기 좋아⁠. 가서 좀 쉬어⁠.⁠”

나는 서류를 받았다⁠. 종이가 손안에서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나가려는데 사장이 덧붙였다⁠.

“⁠무향실 출입 카드는 인사팀에 두고 가⁠.⁠”

인사팀장이 헛기침을 했다⁠. 흠⁠, 한 번이었다⁠. 근호의 두 번을 오래 들은 귀에는 반쪽짜리로 들렸다⁠. “⁠오 과장님⁠, 물류센터는 반바지 됩니다⁠. 매일요⁠.⁠”

“⁠그게 위로입니까⁠?⁠”

“⁠복지입니다⁠.⁠” 인사팀장이 서류를 챙기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장이 웃다가 퍼팅을 놓쳤다⁠. 공이 컵 가장자리를 돌고 나왔다⁠. 사장이 혀를 찼다⁠. 내가 사장실에서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

출입 카드를 반납하기 전에 나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휘람이 계단참까지 따라왔다⁠.

무향실 문을 열자 귀가 먹먹해졌다⁠. 측정 마이크와 이어진 컴퓨터에는 지난 녹음들이 날짜별로 쌓여 있었다⁠. 문이 닫힐 때마다 저절로 남은 소리였다⁠. 클레임 재현⁠, 장비 점검⁠, 휘람이 몰래 들어와 노래 연습을 한 밤도 있었다⁠. 「⁠7월 7일 21시 03분⁠」 파일을 열었다⁠. 철망 바닥 위 발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물속 같은 목소리⁠, 그리고 근호의 맨목소리⁠.

“⁠그래⁠, 내 목소리다⁠.⁠”

휘람이 문간에서 숨을 들이켰다⁠. “⁠과장님⁠, 이거 팀장님이 직접⁠…⁠…⁠.⁠”

“⁠들은 거 여기 두고 가⁠.⁠”

“⁠그거 팀장님 말투예요⁠.⁠”

나는 파일을 작은 저장 장치에 옮겨 담았다⁠. 진행 막대가 끝까지 차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무향실에서는 침묵도 소리가 없었다⁠. 저장 장치를 지갑 안쪽 칸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이 녹음을 누구에게 들려줄지 무향실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팀장의 맨목소리를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지갑이 무거워지는 일인지 가벼워지는 일인지는 몰랐다⁠.

휘람이 출입 카드를 받아 들고 말했다⁠. “⁠제가 반납하고 올게요⁠. 과장님 인사팀 가면 또 쥐 소리 들어요⁠.⁠” 휘람은 카드를 손에 쥐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계단 위에서 휘람의 목소리가 작게 내려왔다⁠. “⁠근데 제 노래 연습한 것도 들으셨어요⁠? 그건 지워 주세요⁠, 제발⁠.⁠”

*

저녁 일곱 시⁠, 나는 퇴근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출입문 위 화면에서 해외 투자은행이 이차전지 업황 전망을 낮췄다는 자막이 지나갔다⁠. 「⁠팔부능선⁠」 저녁 방송이 시작됐다⁠.

“⁠자⁠, 귀 열고⁠. 흠⁠, 흠⁠. 공지 하나 드립니다⁠. 다음 주 목요일 한 방은 미룹니다⁠. 8월 5일 목요일로⁠.⁠”

공개방 창이 웅성거렸다⁠. 「⁠왜요⁠?⁠?⁠」 「⁠총알 다 빼놨는데⁠」 「⁠대출 이자 나가는데 ㅠㅠ⁠」

“⁠집 안에 쥐가 하나 있어서⁠, 정리하고 갑니다⁠. 대신 더 크게 갑니다⁠. 우리 방만이 아니라 전국 식구방이 같이 갑니다⁠. 3주 더 기다리면 판이 커집니다⁠. 깔끔하게⁠.⁠”

공개방 사람 수가 내 눈앞에서 이천백을 넘었다⁠. 쥐 이야기에 웃음 표시가 줄줄이 달렸다⁠. 나를 쥐라고 부르는 말에 이천 명이 웃고 있었다⁠.

나는 휘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VIP방에도 같은 공지 나왔어⁠?⁠」 답이 바로 왔다⁠. 「⁠네⁠. 근데 VIP는 한 줄 더 있어요⁠. ‘⁠8월 5일은 VIP 먼저 탑승⁠.⁠’ 과장님 이거 진짜 버스예요⁠?⁠」

열차가 땅 위 구간으로 올라왔다⁠. 해가 아직 남아 창으로 주황빛이 들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화면에 근호의 문자가 와 있었다⁠.

「⁠네 덕에 판이 커졌다⁠. 화성 가서 몸조리 잘해라⁠. 단미 메로나는 내가 계속 사 줄게⁠.⁠」

답장을 쓰기 전에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이번에는 소휘였다⁠.

「⁠오늘 은행 갔다며⁠. 적금 통장 사진 보내⁠. 지금⁠.⁠」

곧이어 음성 메시지가 하나 왔다⁠. 단미 목소리였다⁠. 소휘의 휴대전화를 몰래 들고 녹음한 모양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아빠⁠, 엄마가 아빠를 오⁠, 승⁠, 표⁠, 세 글자로 불러⁠. 빨리 와⁠. 아 그리고 메로나⁠.⁠”

단미가 이름을 세 글자로 끊어 부를 때마다 숨이 한 번씩 들어갔다⁠. 집에서 내 이름이 세 글자로 불리는 날은 일 년에 두 번쯤 있었다⁠. 오늘이 올해 세 번째였다⁠.

열차가 덜컹하며 속도를 줄였다⁠. 브레이크 패드가 디스크에 닿는 소리가 왼쪽 귀로 들어왔다⁠. 끼익⁠. 패드는 멀쩡했다⁠. 멈출 때를 아는 소리였다⁠. 나는 적금 통장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어떤 순서로 말해야 할지 세 번째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 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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