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40자)
면회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8월 3일 화요일 아침 열 시, 경찰서 유치장 면회실은 소리가 납작한 방이었다. 두꺼운 유리 한 장이 방을 반으로 갈랐고, 양쪽 벽에 수화기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수화기는 사람 목소리에서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깎아 내고 가운데만 건넸다. 나는 수화기를 오른쪽 귀에 댔다. 왼쪽 귀로는 면회실 환풍기 소리가 들어왔다.
근호는 하루 사이에 머리가 눌려 있었다. 회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근호를 나는 처음 보았다.
“왔냐.”
수화기 속 근호의 목소리에서 금니 바람이 들리지 않았다. 수화기가 깎아 낸 높은 소리 안에 바람이 들어 있었다.
“면회 십오 분이랍니다.”
“그럼 클레임 회의보다 짧네.” 근호가 웃었다. 웃음도 납작했다. “경찰이 어제 밤새 물었다. 내 이름 계좌에 넉 달 동안 얼마가 들어왔는지 알려 주더라. 회비가 몇억, 그리고 따로 ‘수익 배분’이라고 찍힌 돈이 4억. 표 대표 조합에서 나눠 준 내 몫이래. 돈 댄 사람, 판 짠 사람, 방 돌린 사람. 나는 방 돌린 사람이고.”
“한 번도 안 꺼내 보셨습니까?”
“통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까.” 근호가 유리에 이마를 댈 듯 다가왔다. “근데 형사가 그러더라. 모르고 돌렸든 알고 돌렸든 회원들한테는 같은 목소리였다고. 맞는 말이야. 나 휘람이 VIP에 3천 넣은 것도 내 목소리 듣고 넣은 거고.”
“8월 5일 아홉 시에 말씀해 주십시오. 마흔 개 방에. 진짜 목소리로.”
근호가 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뗐다. 유리 너머로 근호의 입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다시 수화기를 댔다.
“나는 지금 유치장에 있다. 내 목소리는 아무도 안 믿는다. 그날 내가 아홉 시에 ‘사지 마라’ 하면, 방에서는 ‘구속된 사람 목소리를 쥐가 합성했다’ 할 거다. 그리고 너는.” 근호가 숨을 길게 쉬었다. 수화기가 숨소리를 깎아 쉿 소리만 남겼다. “너는 이겼다. 녹음 넘겨서 나 잡았고. 이긴 사람이 진 사람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다.”
“저는 안 이겼습니다. 백 명이 집니다.”
“그러니까 네가 졌다는 거야. 나랑 같이.” 근호가 수화기를 고쳐 쥐었다. 손등에 수갑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오 과장, 내가 처음에 너한테 고시원 나가라고 보증 서 줬지. 그때 내가 너한테 이자 안 받는다고 했지.”
“네.”
“이번엔 받았다. 무향실 녹음으로.” 근호가 일어났다. 면회 시간이 아직 오 분 남아 있었다. “깔끔하게.”
근호가 수화기를 고리에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저쪽 수화기가 내려간 뒤의 침묵에도 지직거리는 소리가 있었다.
면회실을 나오자 복도 끝 자판기 앞에 채석란이 있었다. 채석란은 캔 커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캔이 손바닥에 차갑게 박혔다.
“맹근호 씨 어젯밤에 다 말했어요. 송출실 층수, 실장 이름, 표서걸이 종목 고를 때 하던 말까지.” 채석란이 캔을 땄다. 칙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하루에 사고파는 사람이 적은 걸로 고르세요, 그래야 우리 손이 크게 보입니다.’ 표서걸이 그랬대요. 판결문에 나오는 말이랑 토씨 하나 안 틀려요. 이런 사람들은 다 같은 책을 읽었나 봐요.”
“그럼 송출실을 덮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홉 시 반.” 채석란이 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맹근호 씨가 마지막에 하나 물었어요. 오승표 과장 지금 괜찮냐고. 자기를 판 사람 걱정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진술은 조서에 안 적어요.”
*
오후 세 시, 법원 영장실질심사 법정 앞 복도. 근호의 구속 여부를 판사가 정하는 날이었다.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휘람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장님 VIP방에 새 공지요. ‘선생님 음해 수사에 맞서 변호사 비용을 함께 모읍니다. 후원금 계좌 아래.’ 계좌 이름 뫼빛 아니고 개인 이름이에요. 벌써 마흔 명 넘게 보냈대요. 이거 손실 보전방 사촌이에요?」
「사촌 맞아. 안 보낸 사람한테 보내지 말라고 해. 보낸 사람은 화면 찍어 두고.」 나는 답을 보내면서 생각했다. 잃은 사람에게서 한 번 더 받는 방법은 이름만 바뀌었다. 손실 보전, 평생 회원 할인, 변호사 후원금. 사람들은 잃을수록 무엇에든 돈을 더 냈다. 돈을 더 내야 지금까지 낸 돈이 헛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섯 시 사십 분, 법정 문이 열렸다. 변호사가 먼저 나왔고, 근호가 뒤따라 나왔다. 수갑이 없었다. 근호의 변호사가 기자 둘에게 짧게 말했다. “증거가 확보돼 있고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어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나는 근호에게 다가가려 했다. 변호사가 반 걸음 앞으로 나왔다. 은테 안경을 쓴 남자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근호는 나를 보지 않았다.
“맹근호 선생님 변호는 저희가 맡았습니다. 뫼빛파트너스 쪽에서 선임했고요.” 변호사가 명함을 내밀었다. “오승표 과장님이시죠. 선생님께서 당분간 회사 분들과는 연락을 삼가실 겁니다.”
법원 앞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뒷문이 열렸다. 근호가 차에 오르기 전에 잠깐 멈췄다. 근호의 어깨가 두 번 들썩였다. 흠, 흠. 두 번째가 반 박자 늦었다. 근호는 돌아보지 않고 차에 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무겁고 짧았다. 차가 떠났다. 뒷유리에 근호의 뒤통수가 비쳤다가 햇빛에 지워졌다.
*
밤 아홉 시, 독산동 빌라 거실. 휘람이 퇴근길에 들러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소휘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냈다. 단미는 휘람 옆에 붙어 휘람의 숏폼 편집 화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언니, 이거 아저씨가 왜 같은 말을 계속해?”
“이 아저씨가 같은 말 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휘람이 근호의 회의 녹음으로 만든, 올리지 않은 숏폼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 귀 열고」가 열두 번 이어 붙어 있었다. 단미가 깔깔 웃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아빠, 아빠 목소리도 전화로 들으면 다른 사람 같아.”
“그래?”
“응. 할머니 집에서 전화하면 아빠 목소리가 로봇 같아. 근데 아빠가 ‘단미야’ 할 때 숨 쉬는 건 똑같아. 단, 하고 숨 쉬고 미야, 해.” 단미가 내 흉내를 냈다. 단, 그리고 들이마시는 숨, 미야. 소휘가 수박 자르던 칼을 멈췄다.
나는 단미의 흉내를 다시 들었다. 사람은 목소리보다 숨으로 사람을 알아본다. 전화 너머에서도, 변조 너머에서도. 다만 숨을 알아보려면 곁에서 오래 숨을 같이 쉰 사람이어야 했다.
“회사 사람들이요.” 휘람이 말했다. 휘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식구방 백 명은 팀장님이랑 회의실에서, 회식 자리에서, 노래방에서 이십오 년을 같이 있었어요. 맨목소리만 올리면 합성이라 하겠지만, 눈앞에서 팀장님이 말하면요? 얼굴이랑 숨이랑 같이 보이면요?”
“팀장님은 지금 표서걸 차 안에 있어.”
“그럼 표서걸 차에서 꺼내 와야죠.” 휘람이 수박을 한 조각 집었다. 씨를 하나씩 손톱으로 골라냈다. “과장님, 영포티는 계획만 세우고 실행은 MZ한테 시키는 거 알죠?”
“나 서른일곱이야.”
“그니까 실행은 과장님이 하시라고요.”
소휘가 수박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소휘는 손가락에 묻은 수박 물을 닦으며 휴대전화 계산기를 열었다.
“회사 식구방이 백 명이라고 했지. 그 사람들이 8월 5일 아침 아홉 시에 어디 있어?”
“회사. 자리에서 휴대전화 들고.”
“그럼 팀장님이 회사에 있으면 돼. 회사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타고 오 분이면 팀장님 앞에 와.” 소휘가 계산기에 숫자를 눌렀다. “백 명 가운데 반만 내려와도 오십 명이 눈으로 봐. 오십 명이 자기 목소리로 다른 방에 말하면, 한 사람이 방 하나씩만 맡아도 마흔 개가 넘어. 그래서 얼마? 마흔 개 방에 팀장님 숨을 아는 사람이 하나씩.”
휘람이 소휘를 보았다. “언니, 학원 왜 그만두셨어요? 이거 수학 1등 강사 계산인데.”
“그만둔 덕에 이 계산 하는 거야.” 소휘가 계산기를 껐다. 단미가 수박씨를 접시 가장자리에 줄 세우며 하나, 둘 세고 있었다. 단미의 수는 열에서 다시 하나로 돌아갔다.
*
밤 열두 시 반, 강남역 사거리 대리기사 대기소. 형광 조끼들이 편의점 앞에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나는 주찬이 오기를 한 시간 기다렸다. 주찬은 콜을 마치고 킥보드를 타고 돌아왔다. 나를 보고 킥보드에서 내렸지만 접지는 않았다.
“콜 하나 받아 줘. 독산동.”
“앱으로 불러.”
“앱으로 부르면 다른 사람이 와.”
주찬이 한참 나를 보다가 킥보드를 접었다. 근처 주차장에 세워 둔 내 차 운전석에 주찬이 앉았다. 주찬은 의자를 당기고 거울을 맞추고 핸들을 열 시 십 분 자리로 잡았다. 차가 고가 도로로 올라갔다.
“팀장님 나왔다며.” 주찬이 먼저 말했다. “표 대표 차 탔다며.”
“너도 알아?”
“표 대표가 문자 줬어. 선생님 모셔 왔다고.” 주찬이 휴대전화를 핸들 옆 거치대에 꽂았다. 화면에 대화방 목록이 떴다. 「팔부능선 대구 식구방」, 「반찬값 연구소」, 「은퇴자 연금방」……. 방 이름 옆마다 작은 왕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오늘 오후에 받았어. 마흔 개 방 전부 부방장 권한. 8월 5일 아홉 시 정각에 종목 이름 올리는 게 내 일이야. 실장이 송출실에서 목소리 틀고, 나는 글자 올리고.”
“그거 올리면 너도 같이 잡혀.”
“아홉 시에 종목 이름 올리면 표 대표가 내 대출 2억을 갚아 준대. 상환 확인 문자까지 보내 준대. 아홉 시 반 전에.” 주찬이 깜빡이를 켰다. 똑딱, 똑딱. “나는 아홉 시에 글자 하나 올리고 2억 갚아. 마흔 개 방 사람들은 내가 안 올려도 다른 사람이 올려. 동기야, 내가 안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네가 올리는 거랑 다른 사람이 올리는 거랑 다르지.”
“어떻게 달라?”
“희서 씨가 나중에 묻겠지. 아빠가 올렸냐고. 다른 사람이 올렸냐고.”
주찬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신호가 빨간불이었다. 주찬은 늘 부드럽게 밟는 브레이크를 이번에는 조금 세게 밟았다. 차가 앞으로 쏠렸다가 멈췄다. 패드가 디스크를 무는 소리가 바닥에서 짧게 울렸다.
“내가 2억 날리면, 희서는 그것도 물어.” 주찬이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진심이었다. “아빠가 날렸냐고.”
파란불이 켜졌다. 주찬은 출발하지 않았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빵. 주찬은 한 박자 늦게 액셀을 밟았다. 거치대의 휴대전화 화면에서 왕관 마흔 개가 반짝였다.
독산동 빌라 앞에서 주찬은 기어를 주차에 넣고 한참 내리지 않았다. 엔진이 식으면서 쇠가 작게 틱틱 울었다.
“팀장님이 8월 5일 아침에 어디 있을지 알아?” 내가 물었다.
“표 대표가 회사 앞으로 모시고 온대. 지하 주차장. 팀장님이 회사 사람들 사는 거 직접 보셔야 한대. 선생님이 시작하신 판이니까 끝도 보셔야 한다고.” 주찬이 운전석 문을 열었다. “잔인하지. 표 대표는 그런 걸 좋아해.”
주찬이 트렁크에서 킥보드를 꺼냈다. 나는 지갑에서 이만 오천 원을 꺼내 건넸다. 주찬은 이번에는 받았다. 오천 원을 거슬러 주지도 않았다.
“동기 할인 끝났어.” 주찬이 말했다. 킥보드 모터가 가늘게 울었다. “8월 5일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