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41자)

녹음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문채겸

8월 2일 월요일 아침 일곱 시⁠, 독산동 빌라 식탁에서 단미가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찔렀다⁠. 소휘는 학원에 사직서를 내고 첫 월요일을 맞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지만 휴대전화로 잔금 날 계산표를 열어 두고 있었다⁠.

“⁠아빠 오늘도 반만 가⁠?⁠”

“⁠오늘은 다른 데 가⁠.⁠”

“⁠어디⁠?⁠”

“⁠경찰서⁠.⁠”

단미가 젓가락을 멈췄다⁠. “⁠아빠 나쁜 짓 했어⁠?⁠”

소휘가 계산표에서 눈을 들었다⁠. 나는 대답을 골랐다⁠. 짧은 대답은 거짓말일 때가 많다고 근호가 말했다⁠. 긴 대답은 여섯 살에게 소리일 뿐이었다⁠.

“⁠아빠가 들은 거 말하러 가⁠.⁠”

“⁠그거 나쁜 짓 아니야⁠?⁠”

“⁠모르겠어⁠.⁠”

단미는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그러고는 결론을 냈다⁠. “⁠모르면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는 다 계산해⁠.⁠” 소휘가 웃다가 휴대전화를 엎었다⁠. 계산표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

여덟 시 반⁠, 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사무실은 키보드 소리와 전화벨 소리로 차 있었다⁠. 채석란의 책상 위에는 컵라면 용기 두 개와 서류 상자 다섯 개가 쌓여 있었다⁠. 상자마다 굵은 펜으로 종목 이름이 쓰여 있었다⁠. 「⁠도톰로보틱스⁠」⁠, 「⁠결정바이오⁠」

나는 저장 장치를 책상 위에 놓았다⁠. 채석란은 바로 집어 들지 않았다⁠.

“⁠이게 뭔지 먼저 말해 주세요⁠. 제가 듣고 나서 받을지 정할게요⁠.⁠”

“⁠7월 7일 밤 아홉 시 삼 분⁠, 회사 무향실 측정 마이크 녹음입니다⁠. 문이 닫히면 저절로 녹음됩니다⁠. 맹근호 팀장이 팔부능선 방송을 듣고⁠, ‘⁠그래⁠, 내 목소리다⁠’라고 말합니다⁠. 백 명을 데리고 간다고⁠, 마지막 한 방이 다음 주 목요일이라고도 합니다⁠.⁠”

채석란이 저장 장치를 손가락으로 끌어당겼다⁠. “⁠조건이 있으시죠⁠.⁠”

“⁠8월 5일 아홉 시 전에 역삼동 송출실을 덮어 주십시오⁠. 마흔 개 방에 종목이 뜨기 전에요⁠.⁠”

채석란은 대답 대신 서류 상자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표와 그래프가 인쇄된 종이가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과장님이 무향실에서 마흔 개 목소리 들으신 날보다 넉 달 먼저⁠, 거래소 시장감시 쪽에서 도톰로보틱스를 찍었어요⁠. 소식 하나 없는 작은 종목이 며칠씩 이상하게 움직였거든요⁠. 거래소가 금융당국에 넘기고⁠, 금융당국이 조사해서 수사기관으로 넘기는 데까지 몇 달이 걸려요⁠. 그래서 늦어요⁠. 늘⁠.⁠” 채석란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계좌 번호들이 가지처럼 뻗은 그림이었다⁠. “⁠계좌를 따라가 보면 수십 개가 남의 이름이에요⁠. 명의를 판 사람들한테 가 보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해요⁠. 대출 연체됐을 때 누가 백만 원 줄 테니 통장이랑 휴대전화를 넘기라고 했다고⁠. 그 계좌들이 서로 사고판 기록이 쌓여 있고⁠, 수익은 몇 단계를 거쳐 한곳으로 모여요⁠.⁠” 채석란이 그림 맨 아래 칸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모인 곳 가운데 하나가 맹근호 계좌예요⁠.⁠”

“⁠팀장님은 그 계좌를 한 번도 안 열어 봤습니다⁠.⁠”

“⁠명의 판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분들도 처벌받아요⁠. 통장이랑 휴대전화를 남한테 넘기는 것부터가 죄예요⁠. 백만 원 받고 몇백억짜리 사건의 손이 된 거죠⁠.⁠” 채석란이 그림의 가지 끝을 하나 짚었다⁠. “⁠제일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이분들이에요⁠. 받은 건 백만 원인데 재판정에서는 표서걸 옆자리에 앉아요⁠.⁠”

“⁠팀장님은요⁠.⁠”

“⁠판사한테 그렇게 말하면 판사는 ‘⁠그래서 몰랐다는 겁니까⁠, 안 보려고 했다는 겁니까⁠’ 하고 물어요⁠.⁠” 채석란이 저장 장치를 서랍에 넣었다⁠.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짧았다⁠. “⁠이 녹음이 있으면 맹근호는 목소리 주인이 되고⁠, 공범이 돼요⁠. 영장이 나와요⁠. 그리고 맹근호가 입을 열면 표서걸까지 가는 길이 짧아져요⁠. 송출실은⁠…⁠… 위에 올려 볼게요⁠. 약속은 못 해요⁠. 올려 본다는 것까지가 약속이에요⁠.⁠”

“⁠그거면 됩니다⁠.⁠”

나는 일어났다⁠. 채석란이 나를 불러 세웠다⁠.

“⁠과장님⁠, 반장 어머님 단톡방이요⁠. 어젯밤까지 여든일곱 명이 화면이랑 입금 내역을 모았어요⁠. 물류센터 반장님네 세 분도 같이요⁠. 변호사 하나 붙이면 한꺼번에 고소장을 낼 수 있어요⁠. 한 분씩 오면 여든일곱 건⁠, 같이 오면 한 건⁠. 한 건이 훨씬 무거워요⁠.⁠”

*

오후 두 시⁠, 나는 화성에 가지 않고 본사 5층 품질팀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대기발령 중인 사람이 출입 카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휘람이 문을 열어 주었다⁠. 휘람은 내 얼굴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 시 십 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양복 입은 남자 둘과 채석란이 내렸다⁠. 사무실 키보드 소리가 하나씩 멈췄다⁠. 맨 마지막까지 소리를 내던 것은 근호의 볼펜이었다⁠. 근호는 클레임 보고서에 빨간 줄을 긋다가 고개를 들었다⁠.

“⁠맹근호 씨⁠, 자본시장법 위반⁠, 시세조종 공범 혐의로 체포합니다⁠.⁠”

사무실이 숨을 멈췄다⁠. 형사 하나가 혐의와 권리를 차례로 읽었다⁠. 근호는 다 들을 때까지 앉아 있었다⁠. 형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7월 7일 밤 회사 시험실 녹음이 증거로 들어와 있습니다⁠.⁠”

근호가 일어났다⁠.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문 앞의 나에게서 눈을 멈췄다⁠.

“⁠무향실이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근호가 손목을 내밀었다⁠.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는 짧고 높았다⁠. 브레이크 패드 고정 핀이 제자리에 들어갈 때 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근호가 문 쪽으로 걸어오다 휘람 앞에서 멈췄다⁠. 휘람은 울고 있었다⁠.

“⁠나 휘람⁠, 오늘 몇 번이냐⁠.⁠”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근호가 팀원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수갑 찬 손을 앞으로 모은 채였다⁠.

“⁠자⁠, 귀 열고⁠.⁠”

흠⁠, 흠⁠. 두 번째 기침이 길게 늦었다⁠.

“⁠목요일에 아무것도 사지 마라⁠. 깔끔하게⁠.⁠”

근호가 나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갔다⁠. 스쳐 지날 때 근호의 숨이 내 귀 옆을 지나갔다⁠. 금니 틈으로 바람이 샜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구매팀 탁 대리가 유리문 너머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간 뒤에야 탁 대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화면에는 옆집 벽이 한 뼘 앞에 붙은 거실 사진이 떠 있었다⁠.

“⁠과장님⁠, 제 빌라는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제 빌라는 팀장님 방에서 번 돈으로 샀어요⁠. 그 돈이 다 그 사람들이 올려 준 거라면서요⁠. 그럼 제 빌라는 누구 거예요⁠? 그 사람들이 다시 가져가요⁠?⁠”

“⁠빌라는 대리님 겁니다⁠. 대리님이 산 겁니다⁠.⁠”

“⁠그럼 제가 번 돈은 누가 잃은 돈이에요⁠?⁠” 탁 대리가 물었다⁠. 대답을 바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탁 대리는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자리로 돌아갔다⁠. 의자에 앉는 소리가 사무실에서 유일한 소리였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뛰어왔다⁠. 주찬이었다⁠. 주찬은 닫힌 엘리베이터 문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네가 팔았구나⁠.⁠” 주찬이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4천 벌 때처럼⁠. 이번엔 팀장님을⁠.⁠”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씩 나를 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열두 명이 한꺼번에 침묵하는 소리는 무향실의 침묵과 달랐다⁠. 무향실은 소리가 사라지는 방이고⁠, 이 사무실은 소리를 참는 방이었다⁠.

*

오후 다섯 시⁠, 경찰청 뒤편 비상계단⁠. 채석란이 담배 대신 아몬드를 씹고 있었다⁠.

“⁠위에서 안 된대요⁠.⁠” 채석란이 먼저 말했다⁠. “⁠8월 5일 아홉 시 전에 송출실 덮는 거⁠. 표서걸이 파는 기록이 남아야 시세조종으로 끝까지 간대요⁠. 아홉 시 반까지는 손대지 말래요⁠.⁠”

“⁠약속하셨습니다⁠.⁠”

“⁠올려 보겠다고 했죠⁠. 올렸어요⁠. 떨어졌어요⁠.⁠” 채석란이 아몬드 봉지를 접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과장님⁠, 시세조종으로 유죄가 나면 징역이 1년 이상이에요⁠. 번 돈이 크면 더 올라가고⁠, 벌금은 번 돈의 몇 배까지 붙어요⁠. 표서걸을 그 자리에 앉히려면 그날 아침 표서걸 손으로 판 기록이 있어야 돼요⁠. 미리 덮으면 표서걸은 ‘⁠아직 아무것도 안 팔았다⁠’고 해요⁠. 두 해 전처럼⁠.⁠”

“⁠그 기록은 사람들이 사야 생깁니다⁠. 백 명이⁠, 삼백사십 명이⁠, 마흔 개 방이⁠.⁠”

“⁠알아요⁠.⁠” 채석란이 계단 난간에 기댔다⁠. 쇠 난간이 낮게 울렸다⁠. “⁠과장님이 녹음 넘겨서 산 건 맹근호예요⁠. 제가 그 대가로 드릴 수 있는 건 맹근호까지예요⁠. 나머지는 제가 못 팔아요⁠.⁠”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두 층을 내려가서야 채석란의 말 가운데 한 낱말이 귀에 남았다⁠. 산 건⁠. 나는 근호를 샀고⁠, 대가를 치른 것은 근호였다⁠.

*

저녁 여섯 시⁠, 독산동 사거리 카페 2층에 엄마들 열 명 남짓과 물류센터 반장이 모였다⁠. 햇살반 반장 어머님이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에는 폴더가 여든일곱 개 있었다⁠. 폴더마다 사람 이름이 붙어 있었고⁠, 안에는 방 공지 화면과 방송 녹음과 입금 내역이 날짜순으로 들어 있었다⁠.

“⁠단톡방 공지로 올렸더니 다들 보내 주셨어요⁠. 방이 터지기 전에 찍어 둔 거요⁠.⁠” 반장 어머님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님 말씀대로 했어요⁠. 근데 아버님⁠, 브레이크 만드신다면서 이런 건 어떻게 아세요⁠?⁠”

“⁠브레이크도 기록이 있어야 클레임을 받습니다⁠.⁠”

반장이 손을 들었다⁠. “⁠나도 하나 냈어⁠. 앱 화면⁠. 2⁠,400 말고 1⁠,200 쪽으로⁠.⁠”

엄마들이 반장을 보고 웃었다⁠. 반장도 따라 웃었다⁠. 한 엄마가 변호사 사무실 연락처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공동 고소를 맡겠다는 곳이었다⁠. 반장 어머님이 종이를 받아 노트북 옆에 놓으며 말했다⁠. “⁠여든일곱 명이 한 번에 가면⁠, 한 번에 하나씩 가는 것보다 판사님이 오래 보신대요⁠.⁠”

*

저녁 일곱 시⁠, 화성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마흔 개 방이 같은 공지를 올렸다⁠. 휘람이 서른아홉 개 화면을 찍어 보냈다⁠.

「⁠팔부능선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십니다⁠. 8월 5일은 예정대로⁠. 선생님을 판 쥐를 잊지 맙시다⁠.⁠」

이어서 음성 방송이 떴다⁠. 물속 같은 목소리였다⁠. 근호는 지금 유치장에 있었다⁠.

“⁠자⁠, 귀 열고⁠. 흠⁠, 흠⁠. 저는 잠시 쉽니다만⁠, 우리 버스는 갑니다⁠. 깔끔하게⁠.⁠”

새 식구방에는 주찬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오승표 과장이 팀장님 녹음을 경찰에 넘겼습니다⁠. 우리는 팀장님 뜻대로 갑니다⁠.⁠」 근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무것도 사지 마라였다⁠. 주찬은 근호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정했다⁠.

소휘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휘의 목소리가 낮았다⁠.

“⁠팀장님 사모님한테서 전화 왔어⁠. 작년 야유회 때 번호 주고받았거든⁠. 남편이 왜 잡혀갔는지 아무도 말을 안 해 준대⁠. 회사도⁠, 경찰도⁠.⁠”

“⁠뭐라고 했어⁠?⁠”

“⁠다 말했어⁠. 당신이 녹음 넘긴 것까지⁠.⁠” 소휘가 잠깐 숨을 골랐다⁠. “⁠사모님이 한참 가만히 계시다가 그러시더라⁠. ‘⁠그 사람 요즘 밤마다 베란다에서 혼자 헛기침을 했어요⁠. 두 번씩⁠.⁠’ 그러고 끊으셨어⁠.⁠”

나는 버스 창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바퀴 떨림을 고스란히 이마로 옮겼다⁠. 근호는 베란다에서 무엇을 연습했을까⁠. 「⁠자⁠, 귀 열고⁠」를⁠, 아니면 이 말을 하지 않는 법을⁠.

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섰을 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자 볼펜 소리가 먼저 들렸다⁠. 똑⁠, 똑⁠, 똑⁠.

“⁠오 과장님⁠, 표서걸입니다⁠.⁠” 낮고 공손한 목소리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치워 주셔서요⁠. 선생님이 요즘 자꾸 맨목소리를 내셔서 곤란했거든요⁠. 이제 목소리는 온전히 저희 겁니다⁠.⁠”

전화가 끊겼다⁠. 버스 바퀴 아래에서 브레이크 패드가 디스크를 문지르는 소리가 올라왔다⁠. 끼익⁠. 패드 끝이 닳아 있었다⁠. 나는 끼익의 높이를 가늠하지 않았다⁠.

11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녹음 · 리딩방 고수가 우리 팀장이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