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29자) · 갈매

땅 위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1호차는 열아홉 미터 반이다. 좌석 마흔넷. 쉰여덟 명에 나. 운전실 문에서 마지막 연결문까지 사람이 빈틈없이 찼다.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바닥에 앉거나 무릎을 꿇었다. 연기는 위에서 온다. 바닥에 가까울수록 숨을 쉴 수 있다. 그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다들 알았다. 한 시간 동안 칸을 여섯 번 옮기면서 몸이 배웠다.

좁아졌다. 여덟 칸에서 시작해 한 칸이 됐다. 한 칸 안에서도 좁아졌다. 뒤 연결문 틈으로 회색이 스며들자 사람들이 앞으로 무릎걸음을 했다. 앞으로 갈 데가 없는데 앞으로 갔다. 쉰여덟 명의 무릎과 어깨가 서로 밀착해서 하나의 덩어리가 됐다. 누구의 숨인지 모를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누구의 땀인지 모를 땀이 팔에 묻었다. 탄내와 참기름과 복숭아와 담배와 연고와 매니큐어 솜의 냄새가 한데 엉겨서, 사람 냄새가 됐다. 나는 그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다.

묶인 사람은 운전실 문 바로 앞에 눕혀 두었다. 김 과장이 그 사람 발목 넥타이를 한 손으로 쥐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는 박 대리 어깨를 쥐고 있었다. 박 대리가 과장님 저 아파요, 했다. 과장이 놓지 않았다.

사 분 이십 초.

나는 손목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셌다. 속으로. 하나, 둘, 셋. 백까지 세고 다시 하나. 그렇게 두 번 반을 세면 갈매다. 세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구 년 전에 알았다. 계단 위에서 백열하나까지 세고 나서.

두 번째 백을 셀 때 바닥이 기울었다.

열차가 오르막을 타기 시작했다. 한빛선이 지하 오십 미터에서 땅 위로 올라가는 구간. 두물과 갈매 사이 이 킬로미터. 경사가 몸으로 왔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울었다. 귀가 먹먹해졌다가 뚫렸다. 누가 하품을 했다. 누가 따라 했다. 유하가 이모 품에서 귀를 잡고 아파, 했다. 이모가 침 삼켜, 했다.

그리고 창이 하얘졌다.

역의 형광등이 아니었다. 창밖이 통째로 하얬다. 빛에 눈이 먼 것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하얀 것 안에서 색이 하나씩 생겼다. 파란 것. 하늘이었다. 갈색. 강둑. 초록. 강둑 위의 풀. 삼월 중순의 풀은 아직 초록이라고 하기엔 누랬다. 그래도 초록이었다. 한 시간 만에 처음 본, 사람이 칠하지 않은 색이었다.

누가 울었다. 울음은 순서 없이 번졌다. 이번에는 웃음보다 빨리.

열차가 갈매역에 들어섰다. 지상 승강장.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역. 승강장에 빨간 것이 가득했다. 소방관들이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멘 사람들이 스크린도어 앞에 한 줄로 서 있었다. 그 뒤에 구급대원들이, 그 뒤에 경찰이. 승강장 너머 역 앞 도로에 빨간 차와 하얀 차가 불빛을 돌리고 있었다.

오 기관사가 정확히 정차 위치에 세웠다. 일 센티도 안 어긋나게. 나중에 기록을 보니 그랬다. 그 사람은 그 한 시간 동안 일곱 역을 지나면서 한 번도 정차 위치에 서지 못했다. 마지막 한 번에, 가장 정확하게 섰다.

문이 열렸다.

바람이 들어왔다.

강바람이었다. 비린내가 섞인. 진흙과 물풀과 차가운 물의 냄새. 삼월의 강바람은 아직 겨울 끝을 물고 있어서 콧속으로 들어오자 그을음 앉은 점막이 따끔거렸다. 따가운데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그 바람을 마셨다. 입으로, 코로, 목구멍 끝까지. 나도 마셨다. 한 번 들이쉬자 폐 안쪽에 들러붙어 있던 것이 기침과 함께 한꺼번에 떨어져 나왔다. 무릎을 짚고 기침을 했다. 누가 내 등을 두드렸다. 두 번. 세 번째도 두드렸다. 도민이었다.

“차장님, 내리세요.”

“아직요.”

나는 1호차 앞문 옆에 섰다. 스크린도어와 열차 문 사이. 소방관 하나가 내 팔을 잡았다. 나는 팔을 뺐다.

“제가 셉니다.”

소방관이 나를 봤다. 그 사람도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팔을 놓고 옆에 섰다. 그리고 나 대신 사람들 팔을 잡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셌다.

문순례 씨. 하나. 최보람. 둘. 두 사람은 끝까지 팔짱을 끼고 내렸다. 강태오 씨는 노상윤과. 셋, 넷. 남궁하준 씨는 두 손을 든 채 내렸다. 구급대원이 그 손을 보고 뛰어왔다. 다섯. 윤형태 씨 부부. 여섯, 일곱. 부인이 내리면서 남편 손을 자기 바지에 한 번 더 문질렀다. 엄 영감님. 여덟. 보자기를 안고. 한 병 반이 남아 있었다. 영감님은 승강장에 내려서 휴대폰을 꺼냈다. 신호가 잡히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월이냐. 거기 있냐. 공은 차냐. 영감님이 한 말은 그게 다였다. 그러고는 전화를 귀에 댄 채 승강장 의자에 앉아서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이모와 유하. 아홉, 열. 유하가 내리다가 뒤돌아 나를 봤다. 손을 들었다. 인사였다. 7호차 연결문 앞에서 이 아이가 처음 손가락을 접던 게 한 시간 전이었다.

김 과장, 박 대리, 정우석. 셋이 묶인 사람을 들고 내렸다. 경찰이 받았다. 경찰 하나가 그 사람 손목의 넥타이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는 넥타이 위에 수갑을 채웠다. 넥타이는 풀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도 셌다. 서른다섯 번째였다.

“그 사람도 세요?”

옆에 선 소방관이 물었다.

“셉니다.”

“왜요.”

“타고 있었으니까요.”

소방관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사람 이름은 구정태, 쉰둘이었다. 경찰이 그날 밤 알려 주었다. 휘발유는 사흘 전 주유소에서 샀고, 8호차는 그 사람이 고른 칸이었다. 왜 그랬는지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조사에서도, 재판에서도.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다. 이유를 들으면 그 사람을 한 번 더 세게 될 것 같다.

도민은 거의 끝에 내렸다. 코에 휴지를 틀어막고. 그 사람은 내리기 전에 주머니에서 노선도를 꺼냈다. 뒷면이 파랗고 검은 이름으로 빽빽한. 짝 지은 이름들이 줄마다 두 개씩 붙어 있는. 그걸 내 손에 쥐여 줬다.

“다 넘었어요.”

“압니다.”

“이거 가지세요. 저는 순번만 적었어요. 센 건 차장님이잖아요.”

나는 받았다. 그 사람은 승강장으로 내려서 역 출구 쪽으로 뛰었다. 산부인과는 역 앞 건너편이라고 했다. 구급대원이 코 좀 보자고 불렀다. 그 사람은 손만 흔들고 뛰었다.

쉰여덟.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다 내렸다. 셀 수 있는 사람은 다 셌다.

마지막 사람이 내리고 나는 1호차 안을 돌아봤다. 비었다. 정수리, 어깨, 무릎. 없었다. 운전실 문이 열리고 오 기관사가 나왔다. 운전 가방을 들고. 그 사람은 나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내렸다.

나는 내리지 않고 서 있었다.

소방관들이 열차 뒤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공기통을 멘 사람들이 줄지어. 8호차 쪽으로. 열차는 여덟 칸이다. 갈매 승강장은 여덟 칸 길이다. 뒤쪽 끝, 8호차 창은 여전히 검었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연기가 한꺼번에 하늘로 올라갔다. 땅 위라서 빠졌다. 지하 일곱 역에서는 못 빠지던 것이, 여기서는 그냥 빠졌다. 하늘이 넓어서.

소방관들이 들어갔다. 승강장에 남은 사람들이 전부 그쪽을 봤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나왔다. 들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넷이었다. 다섯이 아니라.

나는 그 넷을 셌다. 셀 수 있어서 셌다.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열차에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그날 밤에 알았다. 김옥분, 일흔하나. 손녀 생일 케이크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고 했다. 이정우, 스물셋.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길이었던 일병. 박현철, 마흔여덟. 배관공. 공구 가방. 서지윤, 스물아홉. 학원 강사. 채점할 시험지 한 뭉치.

소방관 하나가 나중에 내게 말해 주었다. 묻지 않았는데. 연결문 바로 앞에서 발견된 사람이 있었다고. 이정우 일병이었다. 그 사람은 문 쪽으로 기어 왔고, 다른 셋은 그 사람 뒤에 한 줄로 있었다고. 앞사람 발목을 잡은 채로. 그 일병이 셋을 데리고 문까지 온 것이었다.

나는 유리에 붙어 있던 손바닥을 생각했다. 엄지가 아래로 벌어져 있던 오른손. 그 손은 문을 열어 달라는 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문이 여기 있다고, 뒤에 선 셋에게 알려 주는 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나는 영영 모른다.

그날 밤 병원은 우리 열차 사람들로 한 층이 찼다. 연기 흡입으로 다들 하룻밤씩 누웠다. 복도를 걸으면 병실마다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시간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이.

밤 열 시쯤 도민이 왔다. 코에 하얀 테이프를 붙이고. 옆에 여자가 있었다. 배가 조금 나온. 그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도민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 사람이 코 깨져서 왔는데요, 검진 들어가서 선생님이 아기 코 보여 주는데 이 사람이 자기 코 잡고 울었어요.”

도민이 그 말 하지 말라고 아내 팔을 잡았다. 아내가 뿌리쳤다. 도민은 휴대폰을 꺼내 새 초음파 사진을 보여 줬다. 흑백 부채꼴 안에 이제 콩이 아니라 옆얼굴이 있었다. 코가 오뚝했다. 도민이 자기 테이프 붙은 코를 가리켰다.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아내가 옆에서 당신 닮으면 큰일이라고 했다. 셋이 웃었다. 나는 웃다가 기침을 했다. 도민 아내가 내 등을 쓸어 주었다. 두드리지 않고, 천천히.

오 기관사는 복도 끝 휴게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젓가락을 들어 보였다.

“차장, 저녁 뭐 먹었어.”

“안 먹었습니다.”

“하나 더 있어.”

그 사람은 컵라면을 하나 더 뜯어 물을 부어 줬다.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사람이 구 년 동안 인터폰으로 물었던 점심 메뉴를, 그날 처음 같이 먹었다.

유하는 이모와 소아 병실에 있었다. 들여다보니 침대에 앉아 병실 사람 수를 세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 다섯. 그 병실에 다섯이 있었다. 이번엔 맞는지 틀리는지 내가 셀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경위서를 썼다. 병원 복도 의자에서. 코에 산소 줄을 끼고. 탑승 인원 칸에 승객 예순둘이라고 썼다. 대피 쉰여덟, 사망 넷. 피의자 일 명 포함. 승무원 칸에는 기관사 오병국이라고 썼다. 그 아래 빈칸이 하나 더 있었다.

볼펜 끝이 그 빈칸 위에서 한참 떠 있었다. 나는 그 칸을 비워 두었다. 차장은 세는 사람이니까. 구 년 동안 그 칸은 늘 비어 있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사흘 뒤 우편물이 왔다. 한빛 광역급행선 열차 화재 사고 조사위원회 출석 요구서. 출석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관제 팀장 권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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