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62자) · 조사위원회
예순셋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한 달이 지나도 냄새는 안 빠졌다. 머리를 감으면 샴푸 거품에서 탄내가 났다. 커피를 내리면 원두 밑에서 탄내가 났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코 점막이 기억하는 거라고 했다. 몸이 그 냄새를 위험으로 외워 버려서 비슷한 것만 맡아도 꺼내 온다고.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고. 나는 잊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구 년 전 도원의 냄새도 아직 가지고 있었으니까.
사월 이십일일. 정부세종청사 옆 별관 삼 층 대회의실. 한빛 광역급행선 열차 화재 사고 조사위원회 삼 차 회의. 새 카펫 냄새, 복사기 토너 냄새,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 냄새. 그 밑에서 역시 탄내가 났다. 나만 맡는 냄새였다.
위원석에 일곱. 가운데에 은퇴한 교통공학 교수라는 위원장. 오른쪽 끝에 한빛교통공사 측 자리가 따로 있었다. 법무팀 셋과 안전본부장. 증인석은 둘이었다. 내 자리, 그리고 두 칸 옆 권혁수의 자리.
방청석을 봤다. 셌다. 버릇이다. 쉰한 명. 아는 얼굴이 많았다. 문순례 씨는 새 안경을 썼다. 눈썹은 아직이었다. 강태오 씨는 등을 의자에 안 대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남궁하준 씨 손에는 압박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도민은 코에 테이프가 없었다. 콧등이 조금 휘었다. 그 옆에 아내. 이모와 유하. 유하는 학교를 조퇴했다고 했다. 엄 영감님은 키 큰 고등학생 손주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맨 앞줄에 검은 옷을 입은 네 가족. 그중 한 사람이 군모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정우 일병의 어머니였다.
오 기관사는 증인이 아니었다. 그래도 왔다. 맨 뒤에 서 있었다. 앉으라는 말에 괜찮다고 했다. 운전실에서는 늘 서 있는다고.
먼저 내 차례였다. 선서문을 읽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그날 연결통로를 넘은 뒤로 내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방청석 누구도 예전 목소리를 모른다. 오 기관사만 안다. 맨 뒤에서 그 사람이 팔짱을 풀었다.
“한차경 차장. 8호차 연결문을 폐쇄할 때 8호차 내부에 잔류 인원이 있는지 확인했습니까?”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위원석이 조용해졌다. 공사 측 법무팀 한 사람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 사람들은 내가 다르게 말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연기로 시야 확보가 불가능했다, 매뉴얼에 따른 조치였다, 같은.
“다 나왔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믿고 닫았습니다.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보지 않았습니다. 그 목소리는 불을 지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문을 닫고 나서 유리 안쪽에 손바닥을 봤습니다. 다시 열지 않았습니다. 열면 7호차의 열다섯이 위험했습니다. 그 판단은 지금도 같습니다. 그래도 문을 닫은 사람은 저입니다.”
맨 앞줄에서 이정우 일병의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봤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오래 보다가, 군모를 쥔 손에 힘을 줬다가 풀었다. 무엇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받았다. 그 침묵이 지금도 나한테 있다.
다음은 권혁수였다.
그 사람을 그날 처음 봤다. 목소리로만 알던 사람. 쉰둘이라고 했는데 더 들어 보였다. 머리가 반쯤 셌다. 양복이 몸에 비해 컸다. 한 달 사이에 줄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증인석에 앉기 전에 방청석을 한 번 둘러봤다. 맨 앞줄에서 멈췄다. 고개를 숙였다. 오래.
공사 측 안전본부장이 먼저 말했다. 서면 진술서를 읽었다.
“관제 팀장의 통과 지시는 반월역 등 승강장 혼잡도를 고려한 적정한 판단이었으며, 각 역 제연 설비의 이상 여부는 사고 이후 정밀 점검에서 처음 인지되었습니다. 이천이십사 년 재점검 기록은 용역 업체가 작성한 것으로, 공사는 그 기록의 허위 여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처음 인지되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알고 결재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위원장이 권혁수에게 물었다.
“증인, 진술서 내용이 맞습니까?”
권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전본부장이 그 사람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뭐라고 속삭였다. 권혁수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사고 당일 열다섯 시 오십구 분부터 관제와 삼일칠 열차 차장 사이 무전 녹음을 요청드렸습니다.”
공사 측 법무팀이 서류를 넘겼다.
“해당 채널 녹음은 사고 당일 관제 서버 장애로 일부 소실되었습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그때 방청석에서 누가 일어섰다. 도민이었다.
“저 들었습니다. 4호차에서. 차장님 무전기 스피커로요. 알고 결재했다고 했습니다. 이천이십사 년에. 가람부터 두물까지.”
이모가 일어섰다.
“저도요. 애 귀 막으려다 못 막았어요.”
윤형태 씨 부부가 일어섰다. 문순례 씨가 일어섰다. 김 과장이, 박 대리가, 정우석이. 엄 영감님은 손주 어깨를 짚고 일어섰다. 유하가 이모 옆에서 의자 위로 올라섰다. 이모가 끌어내리려다 말았다. 위원장이 앉아 달라고 했다.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나는 일어선 사람을 셌다. 버릇이다. 스물여섯. 4호차 무전기 곁에 앉아 있던 사람은 그보다 적었을 것이다. 들은 사람이 전한 사람에게, 전해 들은 사람이 옆 사람에게. 그 숫자는 문 하나를 넘을 때마다 불어난 숫자를 닮아 있었다.
권혁수가 방청석을 봤다. 일어선 사람들을. 그리고 나를 봤다. 두 칸 옆에서. 연기 없이.
“진술서는 틀렸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마이크를 끌어당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들렸다. 회의실이 그만큼 조용했다.
“이천이십사 년 재점검 기록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결재했습니다. 사고 당일 그 사실을 알고 통과를 지시했습니다. 그 지시는 오늘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시가 맞게 된 이유가 제가 틀렸기 때문이라는 것도 압니다.”
안전본부장이 그 사람 팔을 잡았다. 그 사람이 팔을 뺐다. 천천히. 기름 묻은 손이 문짝에서 떨어지듯이.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천십칠 년 삼월 도원역 이일사 열차 화재. 보고서에 승객 백열한 명 전원 대피, 인명 피해 없음이라고 적은 사람이 저입니다. 그날 역 미화원 석만호 씨가 계단에서 사람들을 올려 보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날도 제연 설비가 절반만 돌았습니다. 저는 석만호 씨를 승객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건으로 뺐습니다. 그분을 셌으면 그날 설비 문제가 기록에 남았습니다. 남았으면 이천이십사 년의 결재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삼월 십칠일에 가람에서 열차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거기서 멈췄다. 숨을 쉬었다. 무전 너머에서 한 번도 안 들리던 숨이었다.
“그날 도원에서 백열둘을 센 사람이 저 차장입니다. 저는 백열하나라고 적었습니다.”
위원장이 한참 뒤에 나를 봤다.
“한차경 차장. 증인의 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 뒤의 일은 기사에 다 나왔다. 권혁수는 직위 해제되었고, 두 달 뒤 업무상과실치사와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기소되었다. 용역 업체 대표도. 공사 안전본부장은 사표를 냈다. 한빛선 지하 일곱 역은 그해 여름부터 여덟 달 동안 밤마다 공사를 했다. 이십일만 명이 여덟 달 동안 조금씩 늦게 집에 갔다. 아무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적어도 기사에는 안 났다. 이천십칠 년 도원역 화재 보고서는 정정되었다. 승객 백열한 명, 역무 종사자 한 명, 사망 한 명. 석만호. 그 이름이 처음으로 보고서 본문에 올랐다.
조사위원회는 개선 권고 스물세 개를 냈다. 열일곱 번째가 연결통로에 관한 것이었다. 화재 시 차량 간 이동은 연결통로 양쪽에 보조 인원을 두고, 부상자와 노약자는 둘씩 짝지어 이동시킬 것. 근거 자료로 내 경위서가 붙었다. 스물, 스물여섯, 스물아홉. 문 하나가 한 정거장에 넘긴 사람의 수. 그 숫자는 이제 매뉴얼에 있다.
회의 끝 무렵, 위원장이 서류를 넘기다가 물었다.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기록을 맞추려는.
“마지막으로, 사고 당시 삼일칠 열차 객실 안에 있던 인원을 확인하겠습니다. 경위서상 승객 예순둘, 맞습니까?”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예순둘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구 년 동안 그렇게 말했다. 승객 몇, 대피 몇. 차장은 세는 사람이고 세어지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 칸은 늘 비어 있었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방청석에서 문순례 씨가 나를 보고 있었다. 새 안경 너머로. 1호차 연결문 앞에서 한 말이 그 눈에 그대로 있었다. 아가씨도 세요. 유하가 의자 위에서 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도민이 휘어진 콧등으로 나를 봤다. 승무원은 빼셔야죠,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손을 들었다. 오른손을. 내 정수리에 댔다. 어깨에 댔다. 무릎에 댔다. 셀 때 하는 순서대로. 구 년 동안 수만 번 남에게 한 순서를 처음으로 나한테.
“예순셋입니다.”
위원장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경위서에는 예순둘로.”
“승객 예순둘에 차장 하나. 저도 그 칸에 있었습니다. 불 지른 사람 하나, 돌아가신 네 분, 살아서 내린 쉰일곱, 그리고 저. 예순셋입니다. 제 경위서가 틀렸습니다. 고쳐 주십시오.”
위원장이 펜을 들었다. 서류 위에 무언가를 고쳐 적었다. 그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회의실에 퍼졌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
유하가 의자 위에서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복도에서 권혁수와 마주쳤다. 그 사람은 공사 측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먼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숙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칠에서 육으로, 육에서 오로 내려왔다. 둘 다 그 숫자를 봤다.
“석만호 씨 계신 데가 어딥니까?”
그 사람이 물었다.
“용인 공원묘지요. 매년 삼월에 갑니다.”
“내년 삼월에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엘리베이터가 삼 층에 섰다. 문이 열렸다. 안이 비어 있었다. 나는 타지 않았다.
“그건 제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탔다. 문이 닫혔다. 닫히는 문 사이로 그 사람이 층 버튼을 누르는 게 보였다. 한 번에 못 누르고 두 번 만에 눌렀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그걸 바라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바란 것은 세어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틀린 사람으로. 그건 오늘 회의실에서 다 됐다.
별관 밖으로 나왔을 때 바람이 불었다. 사월의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코를 댔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탄내가 나지 않았다. 흙냄새가 났다. 누군가 화단에 물을 준 모양이었다. 젖은 흙과 막 돋은 풀 냄새. 나는 그 냄새를 한 번 더 들이쉬었다. 셋까지 세면서. 하나, 둘, 셋.
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