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88자) · 마지막 문

손 냄새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사람 손을 그렇게 많이 잡아 본 날은 없었다. 차장은 승객 손을 잡을 일이 별로 없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킬 때, 문에 낀 가방을 빼 줄 때. 그날 나는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쉰 명 넘는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잡을 때마다 그 손을 코에 댔다.

3호차에서 2호차로 넘어가는 문 앞이었다. 솔내를 지나고 삼 분. 나는 줄 맨 앞에 서서 넘어가는 사람의 손을 하나씩 받았다. 받아서 내 얼굴 쪽으로 당겼다. 사람들은 처음에 놀랐다. 차장이 손등에 코를 대니까. 도민이 저쪽에서 설명했다. 손 냄새 맡는 거예요, 휘발유요. 그다음부터 사람들은 넘어가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위로 해서. 검사를 받는 아이들처럼.

윤형태 씨의 손은 참기름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부인 손은 물티슈 냄새. 이모 손은 복숭아. 이어폰 학생들 손은 과자. 김 과장 손은 담배. 박 대리 손은 김 과장 손을 뿌리친 냄새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볼펜 잉크였다. 엄 영감님 손은 보자기 매듭을 하도 쥐어서 무명 냄새가 났다. 강태오 씨 손은 약 냄새였다. 누가 가방에서 꺼내 준 화상 연고를 등에 바르지 못하고 손에만 잔뜩 묻히고 있었다. 사람 손에는 그 사람이 오늘 한 일이 다 묻어 있었다. 그날 나는 그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손에 손수건을 감고 왔다.

회색 손수건. 오른손 전체를 칭칭 감고 있었다. 남자였다. 쉰쯤. 까만 패딩. 모자는 없었다. 머리가 짧았다. 얼굴에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그건 누구나 그랬다.

“손 보여 주세요.”

“데었어요.”

쉰 목소리였다. 작게 말했다. 그 목소리가 작으니까 확신이 안 섰다. 쉰 목소리는 이제 열차 안에 쉰 개가 넘었다. 연기를 한 시간 마신 사람은 다 쉰다.

“어디서 데셨어요?”

“7호차요. 문 열 때.”

7호차 쪽에서 그 문을 연 것은 나다. 문 앞에서 덴 사람은 8호차에서 나온 넷이다. 그 넷은 다 내가 안다. 나는 그 남자의 감은 손을 잡았다. 그 사람이 손을 빼려고 했다. 뒤에서 누가 빨리요, 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감은 손을 코에 댔다. 손수건에서는 연기 냄새가 났다. 짙었다. 그 밑에, 아주 밑에, 뭔가 달큼하고 매운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연기가 코를 다 덮고 있었다. 확신이 안 섰다. 확신이 안 서는데 사람을 붙잡으면 쉰일곱이 다음 문을 못 넘는다.

나는 그 사람을 보냈다.

보내고 나서 세 사람을 더 넘겼다. 네 번째 사람의 손을 잡는데 뒤에서 문순례 씨가 내 이름을 불렀다. 차장님, 이 아니라 아가씨, 하고.

“아가씨. 저 신발.”

순례 씨는 줄 맨 뒤 느린 짝 사이에 앉아 있었다. 안경이 없어서 얼굴을 못 보는 사람이. 그 사람은 발목을 주무르던 손을 들어 방금 넘어간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자의 발을.

“내가 8호차에서 사람 셀 때 바닥 보고 세요. 눈이 나빠서 신발로 세요. 저 까만 운동화에 흰 줄 세 개. 8호차 한가운데 서 있던 신발이에요.”

그 남자가 연결통로 저쪽에서 돌아봤다. 순례 씨를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그게 처음이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연기가 없었던 것은.

그 사람은 2호차 앞쪽으로 뛰었다.

2호차에는 먼저 넘어간 사람들이 스물 남짓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이를 밀치고 앞쪽 연결문으로 갔다. 1호차로 가는 문. 오 기관사가 잠가 둔 문. 그 사람이 손잡이를 흔들었다. 안 열렸다. 돌아섰다. 감은 손수건을 풀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덴 손이 아니었다. 멀쩡한 손이었다. 그 손에 라이터가 있었다. 은색. 뚜껑을 여닫는 것. 엄지로 뚜껑을 젖혔다. 딸깍.

2호차가 얼어붙었다.

그 사람은 다른 손으로 패딩 안주머니에서 작은 음료수 병을 꺼냈다. 뚜껑이 은박으로 싸여 있었다. 병 안에 든 것이 흔들렸다. 노랬다. 참기름이 아니었다.

이 뒤를 나는 조사위원회에서 여러 번 말했다. 여기에는 그 사람이 한 말만 적는다. 그 사람이 한 짓은 이미 8호차에 있다.

“문 열어.”

그 사람이 말했다. 나를 보고.

“운전실 문 열어. 기관사한테 세우라고 해. 여기서. 터널에서.”

그 사람은 역이 아니라 터널을 원했다. 반월 뒤로 그 사람의 출구는 갈매 하나였다. 그 사람은 갈매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방송으로 들었다. 경찰, 소방, 땅 위의 빛. 그래서 터널을 골랐다. 어두운 선로를 걸어서 나가겠다고. 그 사람의 셈은 자기 하나만 셌다.

도민은 2호차 앞쪽에 있었다. 순번 맨 위였으니까. 끄는 손으로 먼저 넘어가 있었으니까. 그 사람은 라이터를 든 채로 도민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도민 뒤로 김 과장, 박 대리, 정우석. 파란 이름 넷. 그 사람이 도민을 봤다.

“너, 아까 명단 만든 놈이지.”

도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맨 위에 너였지. 똑똑하네. 앞에 있는 놈이 산다. 문 열리면 너희 넷이 제일 먼저 1호차 들어가. 그리고 문 닫아. 뒤에 놈들은 여기 두고. 연기는 여기까지만 와. 어차피 다 못 넘어가잖아. 네가 계산했잖아.”

2호차 사람들이 도민을 봤다. 나도 도민을 봤다. 그 사람이 한 말은 도민이 5호차에서 한 말과 모양이 같았다. 느린 사람을 뒤에. 한둘을 고른 것. 계산이요. 그 계산이 라이터를 든 사람 입에서 나오자 전혀 다른 소리가 됐다.

도민은 대답하지 않고 2호차 뒤쪽을 봤다. 줄 맨 뒤. 느린 짝들. 순례 씨와 보람이, 엄 영감님, 등을 못 대는 강태오 씨, 두 손을 든 남궁하준. 노선도 뒷면 맨 아래 한 덩어리로 묶였던 이름들. 그 사람은 거기서 눈을 오래 떼지 않았다. 그러고는 자기 소매를 내려다봤다. 휴대폰이 든 주머니 쪽이었다. 초음파 사진이 든.

도민이 나를 봤다. 그 남자 손에 차장 열쇠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1호차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나라는 것을 도민도 알았다. 그 사람도 알았다. 그 사람이 나를 향해 한 발 다가왔다.

“열쇠 줘.”

나는 열쇠를 꺼냈다. 들어 보였다. 그 사람 눈이 열쇠로 갔다.

그 순간 도민이 움직였다.

도민은 라이터를 든 손목을 두 손으로 잡아서 천장 쪽으로 꺾어 올렸다. 라이터가 천장 손잡이 봉에 부딪혀 떨어졌다. 음료수 병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뚜껑이 은박에 싸여 있어서 새지 않았다. 그 사람이 도민의 얼굴을 쳤다.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도민이 손을 놓지 않았다.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그 사람이 한 번 더 쳤다. 그때 김 과장이 그 사람 허리를 안고 넘어졌다. 폐가 안 좋다던 사람이. 박 대리가 다리에 올라탔다. 정우석이 굴러가는 병을 발로 막아 세우고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가슴에 안았다. 안고 나서 자기가 무엇을 안았는지 알고 얼굴이 하얘졌다.

1호차 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오 기관사가 운전실에서 나와 1호차를 가로질러 온 것이다. 잠긴 문 유리에 얼굴이 보였다. 손에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열쇠를 꽂았다. 돌렸다. 문이 열리자 오 기관사가 소화기 안전핀을 뽑으면서 들어왔다. 뿌리지는 않았다. 뿌릴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바닥에 있었다. 김 과장이 허리를, 박 대리가 다리를, 윤형태 씨가 기름 묻은 손으로 한쪽 팔을 누르고 있었다.

“넥타이.”

김 과장이 헐떡이며 말했다.

“넥타이 풀어. 다들.”

넥타이 넷이 풀렸다. 파란 이름 넷의 넥타이. 법인카드로 싸우던 사람들의 넥타이가 그 사람 손목과 발목을 묶었다. 매듭은 박 대리가 했다. 군대에서 배웠다고 했다. 김 과장이 그거 매듭 맞냐고 물었다. 박 대리가 과장님 넥타이보다는 잘 맸다고 했다.

도민은 벽에 기대 주저앉아 소매로 코를 누르고 있었다. 소매가 금방 젖었다. 그 사람이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와이프한테 뭐라 그러죠. 검진 날 코 깨져서 왔다고.”

“불 지른 사람 잡다가 깨졌다고 하세요.”

“안 믿을 거예요. 저 원래 싸움 못 해요.”

“과장님이 증인 서 주실 거예요.”

김 과장이 넥타이 매듭을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나 폐가.”

2호차에서 누가 웃었다. 이번에는 여럿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기침하다가 또 웃었다. 연기가 발목까지 찬 칸에서.

그 사이 3호차에 남았던 느린 짝들을 노상윤과 윤형태 씨 부인이 마저 넘겼다. 나는 돌아가서 3호차 쪽 문을 닫았다. 여섯 번째.

오 기관사가 나를 봤다. 소화기를 든 채로. 그 사람을 운전실 밖에서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키가 생각보다 작았다.

“차장, 시간.”

두물 일 분 전이었다. 2호차 뒤 연결문 유리가 회색이었다. 3호차 쪽 문을 닫은 지 이 분도 안 됐는데. 연기는 이제 칸 하나를 삼 분에 먹었다.

“넘어갑니다. 1호차로.”

문 하나. 마지막 문. 2호차에 쉰셋, 1호차에 원래 다섯. 1호차 쪽에서 오 기관사와 도민이 문짝을 받쳤다. 도민은 코피를 소매로 막은 채 한 손을 내밀었다. 이쪽에서 윤형태 씨와 노상윤이 등을 밀었다. 나는 등을 짚으면서 셌다. 이번에는 손을 코에 대지 않았다. 셀 것만 셌다.

묶인 사람은 김 과장과 박 대리가 양쪽에서 들어서 넘겼다. 짐처럼. 그 사람 몸이 문을 지날 때 나는 그 사람 등도 짚었다. 짚고 셌다. 그 사람도 셌다. 세는 사람이 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아이가 이모 품에 안겨 넘어가면서 나를 봤다. 손가락을 폈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알았다.

마지막 짝은 문순례 씨와 최보람이었다. 순례 씨가 넘어가다가 돌아서서 말했다.

“아가씨도 세요. 아가씨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순례 씨 등을 밀었다. 그리고 넘어갔다. 돌아서서 문을 밀고, 걸쇠를 내리고, 레버를 눌렀다. 무거운 것이 제자리에 내려앉는 소리. 일곱 번째. 마지막.

창밖이 하얘졌다. 두물역이었다. 텅 빈 승강장에 역무원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경례하지 않았다. 손을 흔들었다. 크게.

1호차 운전실 문 앞에서 오 기관사가 돌아보며 말했다.

“차장. 이제 한 칸이다.”

“압니다.”

“갈매까지 사 분 이십.”

“압니다.”

그 사람이 운전실 문을 닫았다. 나는 1호차를 셌다. 정수리, 어깨, 무릎. 묶인 사람 하나. 오 기관사는 운전실로 돌아갔으니 뺐다. 쉰여덟.

맞았다.

유하가 이모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접고 있었다. 다 접고 나서 나를 봤다. 쉰여덟,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날 처음으로 아이와 내 숫자가 같았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맞았다는 게 아니라 이제 됐다는 끄덕임이었다.

그런데 순례 씨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안경 없는 눈으로.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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