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95자) · 알고 결재했습니다

천이백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천이백이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나는 4호차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전기를 든 손 말고 다른 손은 바닥을 짚고 있었다. 바닥이 미지근했다. 열차 바닥은 원래 차갑다. 뒤에서 오는 것이 바닥을 데우고 있었다.

“반월역 오늘 오후 여섯 시 경기장 행사. 세 시부터 입장 대기. 위층 환승 통로에 팔백, 아래층 승강장에 사백. 역무원 열하나.”

권혁수는 숫자를 불렀다. 세는 사람처럼. 나는 그 목소리가 나와 닮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싫었다.

“그래서 통과시키셨어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잡음. 그 사람이 무전기를 입에서 뗐다가 다시 대는 것 같았다. 관제실은 넓다. 벽 하나가 전부 노선도 화면이다. 열차는 초록 점이다. 우리 열차는 그 화면에서 빨간 점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 빨간 점을 보면서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옆자리 관제사들이 다 듣는 데서. 아니면 다 내보내고.

“반월역 제연 설비, 작동하지 않습니다.”

“점검 기록은요.”

“정상입니다. 기록은.”

“그럼.”

“이천이십사 년 재점검 때 한빛선 지하 일곱 역을 한 업체가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가람부터 두물까지. 급기 팬 절반이 돌지 않았습니다. 배연 댐퍼가 안 열렸습니다. 업체는 기록을 정상으로 올렸습니다. 저는 그 기록에 결재했습니다.”

그 사람 뒤에서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한 대가 아니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 사람은 쉬지 않고 말했다. 외워 둔 것 같았다. 언젠가 누구한테 말해야 한다는 걸 알고, 몇 년 동안 혼자 속으로 불러 본 문장처럼.

“알고 결재하셨어요.”

“알고 결재했습니다.”

“왜요.”

“다시 공사하면 한빛선 지하 구간을 여덟 달 막아야 했습니다. 하루 이용객 이십일만. 위에서 막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막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전기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4호차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무전기는 스피커가 크다. 가까이 앉은 사람들은 다 들었다. 도민, 이모, 윤형태 씨 부부, 문순례 씨. 유하는 이모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다.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그럼 가람에서, 도원에서, 새말에서, 청운에서 우리 세웠으면.”

“승강장이 연기에 잠깁니다. 계단으로 연기가 올라갑니다. 사람들보다 먼저.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 우리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 다 같은 계단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잡음이 길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구 년 전 도원에서 봤습니다.”

나는 숨을 멈췄다.

“구 년 전 도원은 개통 이듬해였습니다. 제연 설비가 그때도 절반만 돌았습니다. 저는 당직이었습니다. 삼일칠, 아니, 그날은 이일사 열차였습니다. 열차 하부 화재. 저는 도원에 세우라고 했습니다. 매뉴얼대로. 차장이 백열둘을 올려 보냈습니다. 계단에 연기가 찼습니다. 역 미화원 한 분이 계단 중간에서 사람들을 위로 밀어 올렸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분은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석만호 씨.”

내가 말했다.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한 것은 구 년 만이었다.

“석만호 씨요. 예순이었어요. 저한테 먼저 올라가라고 했어요. 차장님 먼저 가시라고. 저는 먼저 올라갔어요. 위에서 셌어요. 백열하나였어요.”

“기록에는.”

“승객 백열한 명 전원 대피, 인명 피해 없음.”

“석만호 씨는 승객이 아니었습니다. 역무 외 작업자 사망 일 명, 별건으로 처리됐습니다.”

“그걸 누가 적었어요.”

“제가 적었습니다.”

4호차가 조용했다. 도민이 고개를 숙였다. 이모가 유하 귀를 막으려다 말았다. 유하는 이미 다 들었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가 접었다. 백열둘에서 하나.

“팀장님은 구 년 전에 세워서 한 사람을 잃었어요. 오늘은 안 세워서 몇을 잃을지 모르세요.”

“압니다.”

“그리고 오늘 통과시키는 이유가 구 년 전 기록을 안 고친 거예요. 그날 제연 설비가 안 돌았다고 적었으면, 그날 석만호 씨가 승객처럼 셌으면, 이천이십사 년에 그 결재 못 하셨어요. 오늘 역에 세울 수 있었어요.”

잡음.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기다렸다. 무전기를 쥔 손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한참 뒤에 그 사람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변명이 없었다. 그 사람은 변명을 몇 년 동안 속으로 불러 봤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빨간 점을 보면서, 하나도 안 꺼냈다.

“그래도 통과하십시오, 차장님. 솔내도. 두물도. 갈매까지. 제가 틀린 건 구 년 전이고 이천이십사 년입니다. 오늘은 안 틀렸습니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4호차 천장을 봤다. 맨 뒤 조명 한 줄이 벌써 뿌옇게 번져 있었다. 번진 빛이 천천히 앞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제일 견딜 수 없었다. 오늘 이 사람의 판단은 맞았다. 그 판단이 맞게 된 이유가 이 사람이 두 번 틀렸기 때문이었다. 틀린 것 두 개 위에 맞는 것 하나가 서 있었다. 나는 그 맞는 것에 기대야 했다. 쉰여덟 명을 태우고.

“관제.”

“네.”

“솔내, 두물 통과하겠습니다. 갈매까지 갑니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나는 무전기를 껐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화면이 꺼질 때까지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끄고 나서 알았다. 이제 내가 통과를 고른 사람이었다. 반월에서 역무원이 엑스 자를 그리던 팔을, 계단을 막고 선 교복들을, 나는 내 셈에 넣었다. 천이백을 넣고 쉰여덟을 달았다. 쉰여덟 쪽이 가벼웠다. 가볍다고 내가 정했다.

4호차 공기는 이제 코로 쉬는 공기가 아니었다. 입을 벌리고 쉬어야 했다. 코로 쉬면 콧속 털 하나하나에 그을음이 앉아서 숨이 걸렸다. 사람들은 옷소매를 코에 대고 있었다. 누구는 마스크를 두 장 겹쳐 썼고 누구는 생수를 부은 손수건을 댔다. 이모는 끝까지 쥐고 온 쇼핑백에서 손님이 맡긴 네일 팁 상자를 꺼내, 팁 사이사이에 끼워 둔 얇은 솜을 뽑아 생수에 적셔서 유하 입에 대 주었다. 매니큐어 냄새가 난다고 유하가 말했다. 그 아이는 그날 코로 맡은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일어섰다. 방송 마이크를 들었다. 버튼을 보고 눌렀다.

“승객 여러분, 차장입니다. 이 열차는 솔내, 두물을 통과해 갈매까지 갑니다. 갈매는 땅 위 역입니다. 소방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에 서지 않는 이유는 역마다 승강장에 사람이 많고, 연기를 빼는 장치가 고장 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면 그 사람들이 다칩니다.”

4호차가 술렁였다. 김 과장이 제일 먼저 일어섰다.

“그러니까 남들 다치지 말라고 우리가 연기 마시고 가자는 거예요? 우리는요? 우리는 누가 세 줘요?”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리가 과장님, 하고 소매를 잡았다. 과장이 뿌리쳤다.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엄 영감님이 입을 열었다. 앉은 채로. 보자기를 끌어안고.

“내 손주가 오늘 반월서 공 차는 거 본다고 했는디.”

4호차가 조용해졌다.

“참기름 그거 줄라고 가는 길이었소. 반월서 만나기로 했소. 거기 서면 그놈이 그 계단에 있었을 거 아니여.”

김 과장이 영감님을 봤다. 영감님은 과장을 안 봤다. 보자기 매듭만 만지작거렸다. 과장이 천천히 도로 앉았다. 앉으면서 한 번 더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박 대리가 과장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과장이 그 손을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았다.

유하가 이모 무릎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모, 천이백이 쉰여덟보다 많아?”

“많아.”

“얼마나?”

이모는 대답을 못 했다. 유하가 손가락을 폈다가 도로 접었다. 손가락으로는 안 되는 숫자였다.

설명하지 말라고 배웠다. 이유를 대면 사람들이 그 이유와 싸운다고. 나는 이유를 댔다. 사람들이 싸울 상대는 내가 되어야 했다. 관제가 아니라. 내가 고른 거니까.

4호차 앞쪽에서 누가 소리쳤다.

“세워! 세우라고! 여기서 내려!”

쉰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안다. 귀에 닿을 만큼 가까운 데서 들었다. 연기 속에서. 없어요, 다 나왔어요. 같은 목소리였다. 쉬어 있었고, 숨이 짧았고, 끝이 갈라졌다. 나는 마이크를 든 채 4호차 앞쪽을 봤다. 사람들이 전부 그쪽을 돌아봤다. 그 목소리 근처에 선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봤다. 누구도 자기가 소리쳤다고 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한 번뿐이었다. 두 번은 안 나왔다.

도민이 내 옆에서 입 모양으로만 물었다. 그놈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역에 서기를 원했다. 반월에서 우리가 섰으면 천이백 명 사이로 걸어 나갔을 것이다. 까만 옷을 입고, 휴대폰을 들고, 어른들은 다 똑같이 생겼으니까. 우리가 통과를 고르면서 그 사람의 출구도 같이 막혔다. 이제 그 사람에게 남은 역은 갈매 하나였다. 소방차 넷, 구급차 여섯, 경찰이 있을 땅 위의 역.

그 사람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출구가 하나 남은 사람은 그 하나를 향해 무엇이든 한다.

오 기관사가 인터폰으로 불렀다.

“차장. 방송 잘했다.”

“기관사님, 맨 앞 연결문 잠가 주세요. 1호차하고 2호차 사이. 운전실에서 잠글 수 있죠.”

“왜?”

“불 지른 사람이 앞으로 가려고 해요. 1호차는 운전실 바로 뒤예요.”

오 기관사는 한 박자 쉬었다.

“잠그면 너희도 못 와.”

“열 때 제가 말씀드릴게요. 제가 열쇠 있어요.”

“알았다.”

인터폰 너머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멀리서, 열차 맨 앞에서, 무엇 하나가 잠겼다.

4호차 뒤 연결문 유리가 회색이 되고 있었다. 솔내 이 분 전. 우리는 3호차로 넘어가야 했다. 쉰여덟이 문 하나를 향해 섰다. 짝 지어서. 그 줄 어딘가에 쉰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줄의 맨 뒤에 섰다. 차장은 마지막에 넘어간다. 이번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맨 뒤에 서야 모든 등을 짚을 수 있었다.

솔내역이 창밖을 하얗게 지나갔다. 승강장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역무원 둘이 스크린도어 앞에서 우리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인지 모른다. 아무도 안 시켰을 것이다.

4호차에서 3호차로, 짝이 넘어갔다. 하나, 둘, 셋. 나는 등을 짚으면서 숨을 들이쉬었다. 한 사람씩. 탄내, 참기름, 복숭아. 탄내, 탄내, 땀. 손은 잡을 수 없었다. 짝들은 서로 팔을 끼고 있었고, 손은 팔짱 안에 숨어 있었다. 등에서는 안 난다. 휘발유는 손에 묻는다. 마흔 번째 등을 짚을 즈음 나는 정했다. 다음 문에서는 손을 받는다. 한 사람씩, 손바닥을 펴게 해서.

그 사람은 벌써 내 손바닥 밑을 지나갔을 것이다. 등으로.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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