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34자) · 반월
브레이크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오병국 기관사는 기관사 삼십팔 년 동안 비상 제동을 네 번 걸었다. 한 번은 선로에 들어온 개, 한 번은 신호 오류, 한 번은 선로에 누운 사람. 그 사람은 살았다. 네 번째는 구 년 전 도원이었다. 그날 그 사람은 관제 지시대로 도원에 섰다. 그리고 그 뒤로 도원역을 지날 때마다 속도계를 안 보고 창밖을 봤다. 3번 출구 옆 다른 색 타일 여섯 장을. 나는 그걸 안다. 그날 나도 그 열차에 탔으니까.
“반월 사 분 전이다.”
인터폰 너머 목소리는 차분했다. 차분해서 무서웠다. 그 사람은 화가 날 때 말이 많아지고, 정한 게 있을 때 말이 짧아진다.
“기관사님, 관제가 통과랍니다.”
“알아. 들었어.”
“권 팀장이.”
“권혁수. 알아. 구 년 전에도 걔였어.”
나는 5호차 연결문 옆 인터폰 수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 두 손으로는 짝 지은 사람들의 등을 짚고 있었다. 첫 짝은 이미 넘어갔다. 윤형태 씨 부부. 넘어가면서 부인이 남편 손에 묻은 기름을 자기 바지에 문질렀다. 둘째 짝, 이어폰 학생 둘. 셋째, 문순례 씨와 최보람. 넷째, 유하를 안은 이모. 짝 하나에 십일 초. 두 사람에 십일 초.
“차장. 반월은 환승역이야. 승강장 두 층. 계단 넓고, 역무원 많고, 소방서가 이 킬로 거리야. 서면 이 사람들 다 올라가.”
“압니다.”
“근데 왜 통과래.”
“말을 안 해요.”
“그러니까 서는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무전기에서 권혁수의 목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기관사 채널이었다. 운전실 무전이 객실 무전기에도 물려 있어서 들렸다.
“삼일칠 기관사. 관제 팀장입니다. 반월 통과하십시오. 반복합니다. 반월 통과.”
“관제, 삼일칠 기관사. 반월 정차합니다. 기관사 판단입니다.”
“정차 불허합니다.”
“비상 정차 권한은 기관사한테 있어. 규정 몇 조인지 불러 줘?”
잡음. 권혁수가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오병국 기관사님.”
“권혁수. 너 구 년 전에 도원 세우라고 했잖아. 그날 세워서 백열하나 살렸어. 오늘은 왜 안 되는데.”
무전 너머가 오래 조용했다. 넘어가던 짝 하나가 발판 앞에서 멈췄다. 김 과장과 엄 영감님이었다. 둘 다 무전을 듣고 있었다. 도민이 저쪽에서 손을 뻗어 과장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넘어갔다. 영감님 보자기가 과장 옆구리에 끼여서 같이 넘어갔다.
“반월 승강장 상황이 정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권혁수가 말했다. 그게 다였다. 그 상황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 말해. 무슨 상황인데.”
“통과하십시오.”
“말 안 하면 세운다.”
무전이 끊겼다. 운전실 인터폰에서 오 기관사의 숨소리가 났다. 길게 들이쉬었다가 짧게 끊는 숨. 그 사람이 브레이크 핸들을 당기기 전에 늘 하는 숨이었다. 나는 그 숨소리를 알았다. 구 년 동안 인터폰으로 들었다.
“차장.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 사람이 나한테 물은 것은 처음이었다. 구 년 동안 물은 적이 없었다. 점심 메뉴 말고는.
나는 5호차를 봤다. 줄이 반쯤 줄었다. 뒤 연결문 유리가 이제 회색이었다. 남은 짝들이 서로 팔을 끼고 문 쪽을 보고 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불을 지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반월 승강장에 내리면 천 명 넘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반월에 서면 쉰여덟이 산다. 연기 가득한 열차에서 내려 넓은 계단으로 올라간다. 역무원이 있고 소방서가 이 킬로 거리에 있다. 구 년 전처럼.
구 년 전에 백열하나가 올라갔다. 백열둘이 아니라.
“서세요.”
내가 말했다.
“서세요, 기관사님. 제가 세겠습니다. 내리는 사람 전부. 불 지른 사람까지.”
“알았어.”
4호차로 넘어간 유하가 연결문 너머에서 소리쳤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렸다.
“아줌마, 서면 우리 내려?”
“응.”
“그럼 이모 가게 문 닫았다고 손님한테 전화해야 돼.”
이모가 유하 입을 막았다. 막으면서 웃었다. 이모 가게는 네 시에 예약 손님이 있었다고 했다. 젤 네일 풀 세트. 그 손님은 그날 저녁 뉴스를 보고 이모한테 문자를 보냈다. 괜찮으세요. 예약은 다음에요. 이모는 그 문자를 나중에 내게 보여 주었다. 그 문자가 그날 받은 문자 중에 제일 좋았다고.
열차가 감속하기 시작했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연결통로를 넘던 여섯째 짝이 휘청했다. 등을 다친 강태오 씨와 노상윤. 두 사람이 발판 위에서 서로를 붙들었다. 노상윤이 강태오 씨 등을 안 건드리려고 팔을 이상한 각도로 들고 버텼다. 넘어갔다. 누군가 내 어깨를 짚었다. 쏠리는 몸을 버티려고. 두꺼운 점퍼 소매였다. 그 손이 떨어지는 순간 코끝에 냄새가 스쳤다. 연기에 녹은 냄새가 아니었다. 날것의 냄새. 주유기 손잡이에서 막 뗀 손바닥 냄새. 돌아봤다. 사람들 어깨와 어깨가 빽빽했다. 누구 손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매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있었다.
창밖이 밝아졌다.
승강장이 가까워지자 4호차와 5호차 여기저기서 휴대폰이 한꺼번에 울렸다. 역에 닿으면 신호가 잡힌다. 가람, 도원, 새말, 청운을 지나는 몇 초마다 날아간 문자들의 답장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진동이 사방에서 겹쳐 5호차 바닥 전체가 떨리는 것 같았다. 등산 가방 아저씨가 화면을 보고 소리 내어 읽었다. 속보. 한빛선 열차 화재 발생. 관계 당국, 승객 안전 확보 중. 누가 웃었다. 안전 확보 중이래. 누가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은 금방 꺼졌다. 박 대리가 자기 화면을 읽었다. 부장님이었다. 거래처 미팅 몇 시 도착 예정. 박 대리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김 과장이 그 휴대폰을 뺏어서 답장을 썼다. 불남. 늦음. 그리고 보냈다. 과장이 그날 한 일 중에 제일 빨랐다.
반월역 승강장은 두 층이다. 우리 선로는 아래층이다. 스크린도어 너머 승강장이 천천히 흘러왔다. 감속한 열차 창으로는 사람 얼굴이 하나하나 보였다. 사람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교복들이 있었다. 체육복을 입은 무리가 있었다. 에코백을 멘 사람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 유모차. 반월역 위층은 경기장 환승 통로와 이어져 있다. 그날 오후 여섯 시에 무슨 경기가 있었는지 나는 나중에 기사로 읽었다. 그 사람들이 전부 승강장 끝까지 밀려와 있었다. 안내 방송을 들었는지 다들 우리 열차를 보고 있었다. 우리 열차의 뒤쪽을. 뒤 칸 창이 검게 칠해진 것처럼 어두운 것을.
그리고 형광 조끼를 입은 역무원 하나가 스크린도어 바로 앞에서 두 팔을 머리 위로 교차하고 있었다. 엑스 자로. 크게. 계속. 그 사람 입이 벌어져 있었다. 소리는 안 들렸다. 들릴 필요가 없었다. 서지 마세요. 서지 마세요.
역무원 뒤로 계단이 보였다. 반월역 비상 계단. 넓은 계단이었다. 사람들이 그 계단 입구를 가득 막고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려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이었다. 열차가 서고 문이 열리고 우리 열차의 연기가 승강장으로 나가면, 그 연기는 계단 쪽으로 간다. 연기는 위로 간다. 사람들도 위로 간다. 넓은 계단 하나에 둘이 동시에.
4호차 창가에 붙은 사람들이 승강장을 봤다. 승강장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 유리 두 장과 스크린도어 한 장 사이로 서로를 봤다. 교복 입은 남학생 하나가 우리 창을 향해 휴대폰을 들었다. 찍고 있었다. 그 옆 여학생이 그 팔을 내렸다. 도민이 창에 손바닥을 댔다. 저쪽 누군가도 스크린도어에 손바닥을 댔다. 두 손바닥이 유리 세 겹을 사이에 두고 잠깐 같은 높이에 있었다.
열차가 거의 섰다. 걷는 속도였다. 오 기관사도 봤을 것이다. 운전실 창은 승강장 제일 앞을 먼저 본다. 엑스 자로 교차한 팔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이 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인터폰에서 소리가 났다. 말이 아니었다. 욕이었다. 짧고, 낮고, 누구한테 하는 건지 모를 욕. 그리고 열차가 다시 앞으로 당겨졌다. 브레이크가 풀리는 소리. 전동기가 다시 걸리는 소리. 몸이 뒤로 쏠렸다. 창밖 승강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엑스 자 팔이 뒤로 흘러갔다. 교복들, 체육복들, 유모차, 계단. 역무원은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 팔을 내리지 않았다. 마지막 칸이 승강장을 벗어날 때까지, 아니, 뒤 칸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반월 통과. 세 시 오십구 분 십 초. 감속과 재가속에 사십 초를 썼다. 사십 초면 네 사람이다. 짝으로 치면 여덟.
그 사십 초 동안 5호차 연기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뒤 연결문 틈으로 쏟아진 회색이 바닥을 타고 발목까지 차올랐다. 마지막 짝 둘이 남아 있었다. 남궁하준과 이어폰 학생 하나, 그리고 나. 남궁하준은 두 손을 가슴 높이에 들고 있어서 팔짱을 낄 수 없었다. 학생이 그 사람 허리띠를 잡았다. 둘이 넘어갔다. 나는 연기 속에서 한 번 더 5호차를 봤다. 아무도 없었다. 정수리, 어깨, 무릎. 없었다. 넘어갔다. 문, 걸쇠, 레버. 네 번째.
4호차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민이 옆에 와서 앉았다. 둘 다 한동안 말을 안 했다. 나는 코를 문질렀다. 코 안에 아직 그 냄새가 남아 있었다. 연기에 녹은 냄새가 아니라 날것.
“도민 씨.”
“네.”
“아까 서려고 할 때, 누가 제 어깨를 짚었어요. 두꺼운 점퍼. 그 손에서 날 휘발유 냄새가 났어요. 탄 냄새 말고. 주유소 냄새요.”
도민이 나를 봤다.
“휘발유는 부을 때 손에 묻어요. 비누로 씻어도 손톱 밑에 남아요. 저 차 기름 넣다가 흘리면 하루 종일 납니다.”
“그 사람은 손을 못 씻었어요. 여기 물이 없으니까.”
“그럼 손이에요.”
도민이 자기 손바닥을 코에 댔다가 뗐다. 나도 그랬다. 탄내. 참기름. 복숭아 핸드크림. 날 휘발유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보다가 동시에 4호차를 둘러봤다. 마흔다섯 명. 아흔 개의 손.
인터폰이 울렸다. 오 기관사였다.
“차장.”
“네.”
“못 섰다.”
“압니다.”
“네가 서라고 했는데.”
“봤습니다. 저도.”
그 사람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 조끼 입은 애. 팔 안 내리더라.”
“네.”
“그 애가 맞았어.”
그 사람은 한 번 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계기판 경고음만 한참 울렸다.
그 사람은 인터폰을 끊었다. 무전기가 떨렸다. 이번에는 내 채널이었다.
“한차경 차장님. 관제 팀장입니다.”
권혁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떨렸다.
“반월 승강장,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천이백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