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53자) · 유하

열둘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이번 칸은 시간을 조금 더 줬다. 6호차는 연기가 다 차기 전에 닫혔다. 문 두 겹이 연기를 붙잡고 있었다. 도민은 5호차 뒤 연결문 유리가 흐려지는 속도를 손목시계로 재더니 오 분 오십 초라고 했다. 넉넉하게 잡아서 오 분 사십. 삼백사십 초. 한 사람에 구 초면 서른일곱하고 조금. 나는 그 숫자를 5호차 사람 수에 댔다. 원래 여덟, 3호차에서 온 넷, 넘어온 스물일곱. 서른아홉. 끄는 손으로 먼저 건너갈 도민과 박 대리를 빼면 서른일곱. 서른일곱에 서른일곱. 맞았다. 칸이 비는 순간과 연기가 닿는 순간이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디 들어가는가.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차장은 명단에 없으니까. 차장은 마지막에 넘어간다. 넘어갈 시간이 없으면 넘어가지 않는다. 구 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규칙이었다.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니었다.

5호차는 사람으로 꽉 찼다. 이번에는 정말로 꽉 찼다. 좌석 마흔넷에 선 사람까지. 다들 뒤를 등지고 앞 연결문을 향해 섰다. 누가 줄을 세우지 않았는데 줄이 섰다. 도민의 순번대로, 내가 섞은 순서대로. 느린 사람 하나, 빠른 사람 둘. 사람들은 한 번 해 본 것을 금방 몸에 붙인다.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고, 소매를 걷고, 앞 사람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참기름 냄새가 아직 5호차 공기에 떠 있었다. 엄 영감님 보자기에서 새는 그 냄새가 탄내 밑에서 이상하게 사람을 안심시켰다. 누가 참기름 냄새 맡으니까 배고프다, 했다. 누가 웃었다.

그때 아이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두 번째였다.

“아줌마.”

“차장님이라고 하라니까.”

이모가 말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줌마, 나 아까부터 말했잖아.”

아이는 나를 5호차 구석으로 끌고 갔다. 소화기 함 옆. 사람들 무릎 사이로. 아이가 쪼그려 앉자 나도 쪼그려 앉았다. 아이는 손가락을 폈다. 두 손.

“칠 호차 사람, 원래 열하나였어.”

“응.”

“이모, 나.”

손가락 둘이 접혔다.

“문 두드린 삼촌. 휴대폰으로 문자 계속 쓰던 등산 가방 아저씨. 이어폰 언니 둘. 쌍둥이처럼 생긴 할머니 둘. 파란 우산 아줌마. 넥타이 아저씨. 수염 아저씨.”

손가락이 다 접혔다. 한 손에 다섯, 다른 손에 다섯, 그리고 아이는 이모 무릎을 짚어 하나를 더 셌다. 열하나.

“나는 타면 세. 심심하니까. 칠 호차 열하나였어. 근데 아까 불난 데서 사람 나올 때 다섯 나왔어.”

“넷이야.”

“다섯이야. 아줌마가 허리 굽히고 있을 때 하나 더 나왔어. 아줌마 뒤로 지나갔어.”

나는 그 자리를 다시 봤다. 7호차 연결문 앞. 교복 여자애를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허리를 숙였을 때. 귀에 닿을 만큼 가까운 데서 난 목소리. 없어요, 다 나왔어요. 쉰 목소리. 숨에서 난 휘발유 냄새.

“그리고 지금 칠 호차에서 온 사람 중에 안 다친 사람이 열둘이야. 아까 문 넘을 때 셌어. 여기 와서 또 셌어. 열둘.”

“누가 더 있는데.”

“몰라.”

아이는 정말로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어른들은 다 똑같이 생겼어. 까만 옷 입고 휴대폰 봐.”

나는 웃을 뻔했다. 웃지 못했다. 목 안의 모래가 한꺼번에 가라앉았다.

8호차에 아홉이 있었다. 넷이 덴 채로 나왔다. 문순례 씨는 다섯이 안에 남았다고 했다. 불 지른 사람이 그 다섯 가운데 있다고, 한가운데 서 있었으니까 안에 있을 거라고 강태오 씨는 말했다. 그런데 안에서 나온 것이 다섯이었다면. 그 다섯째가 다 나왔다고 소리쳐서 내가 문을 닫았다면. 그 다섯째가 지금 이 칸에서 어른들 사이에 까만 옷을 입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면.

안에 남은 것은 넷이었다. 유리에 붙은 손바닥 하나를 포함해서.

그리고 불을 지른 사람은 나를 지나서, 내 손바닥 밑으로 등을 내밀고 연결통로를 넘었다. 발판 앞에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나는 일어섰다. 무릎이 한 번 꺾였다. 소화기 함을 짚었다. 내 손이 맞았다. 7호차에서 넘어온 것은 열여섯이었다. 칠 분 전의 내 눈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한 사람이 늘어 있었다. 서른일곱 안에, 삼백사십 초 안에 그 사람의 자리가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서른일곱 가운데 한 자리가 비었을 것이고, 그 빈자리에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을 것이다. 불 지른 사람이 내 자리에 서 있었다.

도민이 다가왔다.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말했다. 또박또박, 들리게.

“여기 모르는 사람 하나 있어.”

5호차 앞쪽 줄이 흔들렸다. 도민은 아이를 보고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계산이 빠르다. 아홉, 넷, 다섯, 열둘. 삼 초도 안 걸렸다.

“불 지른 놈이 여기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5호차가 멈췄다. 서른아홉 명이 동시에 숨을 멈추는 소리를 나는 그날 들었다.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없어지는 소리였다.

“도민 씨.”

“다들 들으세요. 7호차에서 넘어온 남자분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한 분씩 확인하겠습니다.”

“도민 씨, 그만하세요.”

“차장님, 불 지른 놈이 우리 사이에 있어요. 그놈이 또 뭘 가지고 있을지 몰라요. 페트병이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 누가 알아요.”

그 말에 강태오 씨가 몸을 일으켰다. 등을 못 대는 사람이 벽을 짚고 일어났다. 그 사람 눈이 7호차에서 온 남자들 쪽으로 갔다. 그리고 멈췄다. 노상윤. 내가 오기 전에 8호차 연결문을 두드리던 대학원생. 강태오 씨를 부축해서 두 번의 문을 넘긴 사람.

“당신. 우리 나올 때 문 바로 앞에 있었지. 제일 가까이.”

“문 두드리고 있었어요. 안에 사람 보여서요.”

“그 전에 들어갔다 나온 거 아니야? 우리 틈에 섞여서.”

강태오 씨가 노상윤의 멱살을 잡았다. 등이 당겼는지 그 사람 입에서 신음이 샜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노상윤은 손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멱살을 잡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손이었다. 5호차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서 한 발씩 물러났다. 물러난 자리만큼 둘레에 빈 원이 생겼다. 그 원 안에 있으면 범인이 된다. 원 밖에 있으면 아니다. 사람들은 원 밖으로 나가려고 서로를 밀었다.

나는 원 안으로 들어갔다.

강태오 씨의 손목을 잡았다. 등을 다친 사람의 손목은 뜨거웠다.

“아닙니다. 이분 아닙니다.”

“어떻게 알아요.”

“이분은 문 앞에서 멈췄습니다. 세 번 다요. 발판 앞에서 한 번씩 멈췄다가 건넜습니다. 제가 등을 짚었습니다.”

“그게 뭐요.”

“한 번도 안 멈춘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태오 씨의 손이 풀렸다. 노상윤이 목을 쓸었다. 5호차가 다시 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다들 발밑을 봤다. 어느 발이 한 번도 안 멈췄는지. 자기 발인지 옆 사람 발인지.

도민이 내게 바짝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그제야.

“누군지 아세요?”

“몰라요. 연기 속이었어요. 등만 짚었어요. 두꺼운 점퍼. 휘발유 냄새.”

“여기 휘발유 냄새 안 나는 사람 없어요.”

“압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놈을 우리 앞에 세워요? 뒤에 세워요? 같이 문 넘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5호차 뒤 연결문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도민의 손목시계는 남은 시간이 사 분 십 초라고 했다. 삼백사십 초가 아니라 이백오십 초. 원 안에서 쓴 시간이었다.

“스물일곱이요.”

도민이 말했다.

“지금부터 구 초씩이면 스물일곱 명. 열이 남아요.”

그 사람은 노선도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주었다. 그 사람은 명단을 펴고 볼펜을 꺼냈다. 이번에는 망설였다.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떴다. 누구 이름에 줄을 그을지. 그 망설임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 사람이 무서웠다. 망설이는 게 무서웠다. 망설인다는 것은 결국 긋는다는 것이다.

그때 아이가 다시 내 소매를 당겼다. 세 번째.

“아줌마, 나는 이모가 안고 넘어가면 돼. 그러면 하나 줄잖아.”

도민의 볼펜이 멈췄다. 그 사람이 아이를 봤다. 나도 봤다. 아이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세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이 이름이 유하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이모가 유하야, 하고 불렀다. 안겨서 넘어가면 둘이 한 번에 넘는다. 아이는 5호차에 유하 하나였다. 그걸로는 하나밖에 안 줄었다. 그런데 아이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7호차에서 6호차로 넘어올 때 문순례 씨와 최보람이 팔짱을 끼고 한 사람처럼 넘어가던 것. 연결통로 폭은 한 사람이지만, 서로 붙들고 걸으면 둘이 한 사람 자리로 지나간다. 시간은 한 사람보다 몇 초 더 걸린다. 그래도 둘이다.

“짝이요.”

내가 말했다.

“짝 지어서 넘어갑니다. 팔짱 끼고. 둘이 한 사람 자리로.”

도민이 볼펜을 내렸다. 그 사람은 명단을 접지 않고 뒷면에 새로 적기 시작했다. 이름 옆에 이름. 짝. 그 사람이 쓰는 속도가 내가 부르는 속도보다 빨랐다.

짝은 금방 지어졌다. 윤형태 씨 부부는 원래 짝이었다. 이어폰 낀 학생 셋 가운데 둘이 짝이 되자 남은 하나가 쌍둥이 같은 할머니 한 분의 팔을 꼈다. 할머니가 손주 같다고 좋아했다. 엄 영감님 짝이 문제였다. 영감님은 보자기를 품에 안아야 해서 팔이 하나밖에 안 남았다. 그 남은 팔에 누가 끼느냐. 도민이 명단을 보다가 김 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영감님하고요.”

“내가? 나 폐가.”

“영감님은 무릎이 안 좋으세요. 폐하고 무릎이면 딱 한 사람이에요.”

영감님이 과장을 위아래로 훑었다.

“담배 냄새 나는구먼.”

“참기름 냄새 나시네요.”

둘은 팔짱을 꼈다. 서로 얼굴을 안 봤다. 박 대리가 그 둘을 보면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줄을 따라 걸었다. 앞에서 뒤로. 한 사람 한 사람 옆을 지나면서 숨을 들이쉬었다. 코로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소용없었다. 모두에게서 연기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에, 옷깃에, 손에. 휘발유는 따로 떨어진 냄새가 아니라 연기 속에 녹아 모두의 몸에 발려 있었다. 불을 지른 사람의 냄새는 이제 우리 모두의 냄새였다. 그 사람은 우리 냄새 속에 숨어 있었다.

오 기관사가 인터폰으로 불렀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장. 반월 사 분 전이다.”

“압니다.”

“나 반월에서 선다.”

인터폰 너머에서 쇠 부딪는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이 브레이크 핸들에 손을 얹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구 년 동안 수천 번 들었다. 그날처럼 무겁게 들린 적은 없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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