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04자) · 참기름
십삼 초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질렀다. 두 겹 철판을 지나오면 고함도 속삭임만 해진다. 등산복 남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닫혔다. 꽉 찼어요, 꽉 찼어요. 입 모양만 봐도 알았다. 그 사람 등 뒤 6호차 좌석에는 등산 가방 두 개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사람 자리에. 가방 두 개는 좌석 두 개를 차지하고 앉아서 비켜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 문 여세요. 연기가 넘어가는 건 문이 열려 있는 동안뿐입니다. 사람이 빨리 건너면 빨리 닫습니다.”
나는 유리에 입을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손잡이를 쥔 손등에 힘줄이 섰다. 그 사람 옆에 선 여자가, 부부였다, 남편 팔을 잡았다. 놓으라는 것인지 더 세게 잡으라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여자도 몰랐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만은 위원님들께 여러 번 말씀드렸다. 그 사람은 자기 칸에 연기가 한 줌이라도 들어오면 자기 옆 사람이 죽는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틀린 것은 셈이었다. 문을 안 열면 연기는 한 줌이 아니라 7호차 열여섯 명 모두의 폐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문 이쪽의 열여섯을 세지 않았다. 문 저쪽의 열하나만 셌다. 사람은 자기가 선 쪽만 센다.
도민이 내 옆에서 손목시계를 봤다.
“일 분 지났어요.”
나는 차장 열쇠를 꺼냈다. 연결문 비상 잠금은 양쪽 어디서든 열쇠로 풀 수 있다. 풀 수는 있어도 사람이 손으로 붙잡고 있으면 문은 안 열린다. 열쇠는 쇠를 풀지 사람 손을 풀지 않는다. 나는 열쇠를 꽂아 놓고 다시 유리를 두드렸다.
그때 참기름 영감님이 움직였다.
영감님은 보자기를 좌석에 내려놓고 소주병 하나를 들고 등산복 남자 뒤로 갔다. 느렸다. 무릎이 하나씩 펴졌다. 그 사람 등 뒤에 서서 병뚜껑을 비틀었다. 뚜껑이 좀 샌다던 그 병이었다. 그러고는 병을 기울여 등산복 남자의 두 손등 위에, 손잡이를 쥔 그 손 위에 천천히, 방앗간에서 막 짠 노란 기름을 부었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뜨거운 것도 아닌데. 손이 미끄러졌다. 다시 잡았다. 또 미끄러졌다. 반들반들한 스테인리스 손잡이 위에서 열 손가락이 헛돌았다. 도민과 내가 동시에 당겼다. 문이 열렸다. 연결통로 가득 고소한 냄새가 휘발유 냄새를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코로 기억한다. 탄내와 참깨가 섞인 냄새. 세상에 그런 냄새가 있는 줄 그날 알았다.
“아, 이 양반이!”
“손주 거 반 병 썼소. 물어내쇼.”
영감님은 그 말을 할 때 웃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영감님은 남은 병을 품에 안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등산복 남자는 기름 범벅인 손을 앞으로 든 채 서 있었다. 그 사람 부인이 휴지를 꺼내 남편 손을 닦기 시작했다. 닦으면서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
일 분 사십 초. 문 하나 앞에서 잃은 시간이었다.
연결통로는 한 사람씩만 건넌다. 고무 주름이 좌우로 밀리고, 발판 두 장 사이가 손가락 두 개만큼 벌어졌다 붙었다 한다. 그 틈으로 침목이 지나간다. 땅 밑 오십 미터에서도 틈 아래는 보인다. 비상등 불빛에 침목이 하얗게 번쩍이며 지나간다. 사람들은 거기서 반드시 한 번 멈춘다. 손잡이를 잡고, 발판에 발을 올리고, 아래를 안 보려다 결국 보고, 그다음에 건넌다.
한 사람당 십삼 초.
평소에 재 둔 것이 아니었다. 가람에서 도원까지, 7호차 사람들이 뒤쪽에서 앞쪽으로 옮겨 앉는 동안 나는 연결통로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셌다. 셀 게 있으면 세는 사람이라서. 십삼 초. 역과 역 사이 사 분 이십 초. 이백육십 초를 십삼으로 나누면 스물. 문 하나가 한 정거장에 넘기는 사람은 스물이다. 칸의 정원이 아니다. 규정도 아니다. 사람이 겁을 먹고 발판 앞에서 한 번 멈추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정한 숫자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 분 이십 초가 없었다. 일 분 사십 초를 잃었다. 남은 것은 이 분 사십 초, 백육십 초. 백육십을 십삼으로 나누면 열둘 남짓. 7호차에는 열여섯이 있었다. 넷이 모자랐다.
“차장님. 제가 먼저 건너갈게요.”
도민이었다.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이 문 뻑뻑해요. 저쪽에서 누가 문짝 잡고 있어야 사람들이 손잡이를 두 번 안 잡아요. 손잡이 두 번 잡으면 한 사람당 삼 초 늘어요. 그리고 저쪽에서 손을 내밀어 주면 발판 앞에서 안 멈춰요. 멈추는 게 제일 길어요.”
맞는 말이었다. 그 사람 말은 매번 맞았다.
“삼 초 곱하기 열여섯이면 사십팔 초예요. 사람 넷이에요.”
“압니다.”
“그럼 보내 주세요.”
나는 보냈다. 도민이 건너가서 6호차 쪽 문짝을 등으로 받치고 두 손을 내밀었다. 나는 7호차 쪽에서 사람들의 등을 짚었다. 짚으면서 셌다. 짚는 손과 받는 손 사이로 사람이 넘어갔다. 발판 앞에서 멈추려는 사람의 손목을 도민이 먼저 잡았다. 멈출 틈이 없었다. 십 초. 한 사람에 십 초.
강태오 씨가 노상윤의 어깨에 기대 넘어갔다. 하나, 둘. 남궁하준 씨는 두 손을 들고 건넜다. 도민이 그 사람 손 대신 팔꿈치를 잡았다. 셋. 문순례 씨와 최보람. 넷, 다섯. 아이 이모가 쇼핑백 세 개를 들고 발판 앞에 섰다.
“가방 두고 가세요.”
“이거 조카 운동화예요.”
“두고 가세요.”
이모는 두 개를 내려놓았다. 한 개는 끝까지 쥐고 넘어갔다. 여섯. 아이가 이모 뒤에 붙어 넘어갔다. 일곱. 넘어가면서 아이가 나를 돌아봤다. 입술이 움직였다. 뭐라고 했는지 그때는 못 들었다.
여덟, 아홉, 열.
연기는 이제 7호차 천장 전체를 덮고 무릎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바닥에 붙은 공기만 겨우 숨을 쉴 만했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등을 짚었다. 등 너머로 다음 등이 왔다. 누가 누군지 보지 않았다. 셀 때는 얼굴을 안 본다.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왔다.
연기 속에서 등 하나가 내 손바닥 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등을 짚었다. 두꺼운 점퍼였다. 짚는 순간 휘발유 냄새가 났다. 7호차 전체가 휘발유 냄새였으니까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 사람은 멈추지 않고 넘어갔다. 발판 앞에서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열여섯.
나는 한 번 더 셌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7호차에는 열다섯이 있었다. 칠 분 전에, 저 연결문 앞에서 내가 셌다. 열한 명에 넷. 그런데 내 손은 열여섯 번 등을 짚었다. 손이 틀렸거나 그때 눈이 틀렸다. 둘 중 하나였다. 연기 속에서 둘 중 무엇이 틀렸는지 따질 시간은 없었다. 나는 틀린 숫자를 주머니에 넣듯 한쪽으로 밀어 두고 발판에 발을 올렸다.
마지막은 나였다.
그 몇 초를 길게 적어 두고 싶다. 연결통로 고무 주름 안쪽은 원래 먼지 냄새가 난다. 그날은 달랐다. 좌석 커버의 합성섬유가 녹는 냄새,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그을린 냄새, 천장 패널의 도료가 들뜨는 냄새, 그리고 그 모든 것 밑에 깔린 휘발유의 단내가 한꺼번에 코 안쪽 점막에 들러붙어서, 숨을 들이쉬면 냄새가 아니라 무게가 들어왔다. 눈을 뜨고 있어도 발판이 안 보였다. 발끝으로 발판 이음새를 더듬었다. 틈 아래로 침목이 번쩍였다. 그 빛 하나로 발 디딜 데를 알았다.
도민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고 건넜다. 차장이 승객 손을 잡고 건너면 안 된다고 누가 정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랬다. 건너서 돌아서자마자 문을 밀고 걸쇠를 내리고 레버를 눌렀다. 무거운 것이 내려앉는 소리. 두 번째였다. 유리 너머 7호차 바닥에 쇼핑백 두 개가 연기에 잠기고 있었다. 하나는 연두색이었다. 새 운동화 상자 모서리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때가 세 시 사십팔 분 이십 초였다. 도원을 지나고 이 분 사십 초.
나는 기침을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목 안에 모래가 들어찬 것 같았다. 도민이 내 등을 두드렸다. 두 번. 세 번째는 손을 들었다가 거뒀다. 목소리를 내 보려는데 쇳소리가 났다. 그날 뒤로 내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방송할 때 예전 목소리가 안 나온다. 승객들은 모른다. 나만 안다.
6호차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 등산복 남자는 휴지를 쥐고 서 있었다. 기름 냄새가 났다. 그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사과인지 인사인지 그냥 고개가 무거워서인지 몰랐다.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 부인이 내게 생수를 건넸다. 나는 받았다.
등산복 남자가 입을 열었다. 윤형태라고 했다. 쉰다섯. 부부가 청계산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고.
“제가 막은 거, 몇 초였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숫자를 알아야 잠을 잘 사람의 얼굴이었다.
“일 분 사십 초입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숫자를 받아서 어딘가에 넣었다. 그 뒤로 그 사람은 문 앞에 서지 않았다. 대신 문 옆에 섰다. 다음 문부터 그 사람은 도민 반대편에서 문짝을 받쳤다. 기름 묻은 손으로. 그 손은 끝까지 미끄러웠지만 한 번도 문짝을 놓치지 않았다.
인터폰이 울렸다.
“차장, 6호차 카메라에 누가 뭘 붓던데. 불 끄는 거야?”
“참기름입니다.”
운전실이 조용했다.
“뭐?”
“참기름이요. 문 열었습니다.”
“내가 기관사 삼십팔 년에 참기름으로 문 연 건 처음 듣는다.”
“저도 처음 봤습니다.”
오 기관사가 웃었다. 짧게. 그날 운전실에서 들려온 웃음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민이 손목시계를 풀어 내게 보여 줬다.
“십 초였어요. 양쪽에서 끌고 미니까.”
“압니다.”
“이백육십을 십으로 나누면 스물여섯이에요. 스물이 아니라.”
그 사람은 그 숫자를 무슨 상장처럼 내밀었다. 스물여섯. 문 하나가 한 정거장에 넘기는 사람. 한 시간 전에는 없던 숫자였다. 우리가 만든 숫자였다. 잃은 일 분 사십 초 끝에 딸려 온 숫자.
나는 6호차를 셌다. 정수리, 어깨, 무릎. 3호차에서 따라온 도민은 뺐다. 원래 이 칸에 있던 열하나에 넘어온 열여섯. 스물일곱이어야 했다. 스물일곱이었다. 그러면 7호차에 열여섯이 있었던 것이 맞다. 내 손이 맞았고, 칠 분 전의 내 눈이 틀렸다. 나는 그렇게 정리했다. 정리하고 나니 조금 덜 무서웠다. 그게 틀린 정리였다.
아이가 이모 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아까 연결통로에서 돌아보며 한 말을 한 번 더 했다. 이번에는 들렸다.
“열여섯이야. 아까부터.”
새말역이 창밖을 지나갔다. 무전이 떨렸다. 새말 통과. 권혁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서두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