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80자) · 관제 팀장

통과

마지막 칸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손바닥은 오른손이었다. 엄지가 아래로 벌어져 있었고 손가락 마디가 유리에 눌려 하얬다. 그 하얀 것이 조금씩 아래로 미끄러졌다.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비상 잠금 레버에 엄지를 걸었다. 레버를 올리면 걸쇠가 풀린다. 걸쇠가 풀리면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면 무엇이 오는지 나는 이 분 전에 얼굴로 맞아 봤다.

인터폰이 울렸다. 7호차 연결문 옆 비상 인터폰. 누가 누른 것이 아니라 운전실에서 부른 것이었다. 오 기관사는 운전실 모니터로 객실 카메라를 볼 수 있다. 화질이 나빠서 얼굴은 안 보이고 사람이 어디 서 있는지만 보인다. 내가 어디 서 있는지는 보였을 것이다.

“차장.”

“네.”

“지금 손 어디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버에서 손 떼. 열면 연기가 7호차로 한꺼번에 들어와. 7호차에 지금 몇이야.”

“열다섯입니다.”

“그럼 열다섯이야. 하나 말고.”

오 기관사는 그 말을 하고 인터폰을 끊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운전실의 소리가 들렸다. 계기판 경고음, 선로 이음매를 밟는 바퀴 소리, 그리고 그 사람이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소리. 나는 레버에서 엄지를 뗐다.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도 손이 그 모양 그대로 허공에 있었다. 유리 안쪽의 하얀 손가락 끝이 창틀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됐다.

“뗐습니다.”

“잘했어.”

잘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한 사람도 알았다. 그래서 그 뒤로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닥에 누운 네 사람에게 갔다. 안경 없는 여자가 제일 멀쩡했다. 문순례, 예순넷. 요양보호사. 8호차 맨 뒤 좌석에 앉아서 저녁 교대 들어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눈썹이 없었다. 원래 없었는지 오늘 없어졌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어머님, 8호차에 몇 분 계셨어요?”

“아홉.”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버릇이 들어서 타면 세요. 요양원에서 밤에 방마다 머릿수 세는 게 일이라. 아홉. 나까지 아홉.”

그 사람은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바닥을 짚었다. 하나, 둘, 셋. 요양원 복도 바닥을 짚듯이. 손끝에 검댕이 묻어 나왔다. 그 검댕을 치마에 닦지도 않고 다시 짚었다. 아홉에서 넷이 나왔다. 다섯이 남았다. 나는 그 수를 입 안에서 한 번 굴렸다. 삼킬 수가 없었다.

“불 지른 사람 봤어요.”

등을 쥔 남자가 말했다. 강태오, 마흔. 택배 기사. 조끼에 회사 이름이 있었다.

“모자 쓴 남자요. 회색 점퍼. 가방에서 페트병을 꺼냈는데 물인 줄 알았어요. 뚜껑 여니까 냄새가.”

그 사람은 거기서 멈췄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 뒤는 여기 적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중에 법정에서 했다. 나는 방청석에서 들었다. 그 사람은 증언대에서 세 번 쉬었다.

“그 사람은요.”

“안에 있겠죠. 한가운데 서 있었으니까.”

나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아까 문 앞에서, 다 나왔다고 소리친 분이 누구세요.”

네 사람이 서로를 봤다. 교복 여자애, 최보람, 열일곱은 고개를 저었다. 손을 가슴에 모은 대학생, 남궁하준, 스물하나는 목이 쉬어서 말을 못 했다. 손을 저었다. 문순례 씨가 대신 말했다.

“우리 중엔 없어요. 나는 나오자마자 드러누웠고, 이 총각은 소리를 못 내고, 저 기사님은 등이 아파서 숨도 못 쉬었고, 학생은 울지도 못했는데.”

그럼 누가. 나는 그 질문을 머릿속에 세워 두기만 했다. 무전기가 떨렸다.

“삼일칠, 관제.”

그 낮은 목소리였다.

“삼일칠 차장입니다.”

“도원 통과하십시오. 다음 지시 대기.”

“관제, 매뉴얼 이 장 삼 절. 열차 화재 시 최근접 역 정차 후 대피 유도. 도원 정차 요청합니다.”

“요청 기각합니다.”

“사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관제 판단입니다.”

“부상자 넷입니다. 8호차에 다섯이 남았습니다. 갈매까지 여섯 역입니다. 이십육 분입니다.”

“압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아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무전기를 입에서 한 뼘 뗐다가 다시 댔다.

“관제, 성함 말씀해 주십시오.”

잡음이 한참 났다. 그리고.

“관제 팀장 권혁수입니다. 한차경 차장님.”

나는 내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다. 열차 번호만 댔다. 구 년 동안 차장이 몇 번 바뀌었는지, 이 노선에 한씨 성 차장이 몇이나 있는지, 그 사람이 무슨 화면을 보고 내 이름을 불렀는지. 무엇이든 설명이 됐다. 그런데 권혁수라는 이름에서 먼저 떠오른 것은 화면이 아니라 구 년 전 도원역 무전의 목소리였다. 그때도 낮았다. 그때도 서두르지 않았다.

“팀장님, 도원입니다.”

“압니다.”

“구 년 전에도 도원이었습니다.”

무전이 끊겼다. 끊긴 것인지 그 사람이 버튼에서 손을 뗀 것인지 모른다.

구 년 전 삼월, 나는 차장 일 년 차였다. 도원역을 오백 미터 앞두고 우리 열차 밑에서 전선이 탔다. 관제는 도원에 세우라고 했다. 우리는 섰고, 나는 사람들을 계단으로 올려 보냈다. 한 사람씩 등을 짚으면서 셌다. 백열둘. 계단 위에서, 땅 위에서, 소방차 사다리 옆에서 다시 셌다. 백열하나. 다음 날 나온 보고서에는 승객 백열한 명 전원 대피, 인명 피해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보고서 맨 아래 관제 당직자 칸에 적힌 이름을 나는 그 뒤로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쓴 적도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방금 무전 너머에서 그 이름이 제 입으로 저를 불렀다.

나는 무전기를 허리에 걸었다. 도민이 옆에 있었다. 다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7호차 뒤쪽을 가리켰다.

“차장님, 이거 보세요.”

연결문 아래 틈에서 새던 회색 실이 이제 실이 아니었다. 바닥에 깔려 좌석 다리 두 개 너머까지 기어 와 있었다. 천장 쪽으로도 올라갔다. 7호차 뒤쪽 조명 두 줄이 뿌옇게 번져 있었다. 연기는 냄새가 먼저 온다. 눈에 보이기 전에 코 안쪽이 마르고, 목젖 위가 쓴다. 7호차 뒤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이미 앞쪽으로 몰려 있었다. 아무도 옮기라고 하지 않았는데 옮겼다. 코가 먼저 알았다.

“가람 지나고 삼 분입니다.”

도민이 손목시계를 두드렸다.

“저 속도면 도원에서 이 칸 뒤쪽 절반이 찹니다. 그다음 역 가기 전에 이 칸 다 차고요. 그럼 한 역에 한 칸이에요.”

“그걸 어떻게.”

“아까 틈에서 저 좌석 다리까지 재 봤어요. 이 분 사십 초에 오 미터. 연기가 불어나니까 뒤로 갈수록 빨라지겠지만, 문이 하나씩 막아 주니까 대충.”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칸을 그었다.

“여덟 칸, 여덟 역. 갈매 들어갈 때 1호차 하나 남습니다. 딱.”

그 사람은 딱, 이라고 말하고 스스로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계산이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기분이 나쁜 사람의 얼굴. 나는 그 계산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했다. 맞았다. 맞는 계산이 제일 무섭다.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오 기관사였다. 그 사람도 객실 방송으로 도민의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또 버튼을 누르고 있었는지, 도민 목소리가 커서 연결문 인터폰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차장, 그 총각한테 물어봐. 내가 더 밟으면 되냐고.”

“지금 몇입니까?”

“백육십. 이 선로 최고가 백팔십이야. 역 하나에 삼십 초는 줄여.”

나는 도민에게 그대로 전했다. 도민은 잠깐 생각했다.

“연기도 열차 안에 있잖아요. 같이 가요.”

인터폰 너머가 조용했다. 그러다 오 기관사가 말했다.

“그 총각 말 참 정떨어지게 하네.”

“맞는 말입니다.”

“맞으니까 정떨어지지.”

그 사람은 그래도 밟았다. 투덜거리는 사람이 제일 먼저 움직인다. 구 년을 같이 달리면서 알게 된 것이다. 바퀴 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창밖 비상등이 스치는 간격이 촘촘해졌다. 삼십 초. 그날 우리가 번 것 중에 처음으로 손에 잡힌 것이었다.

“그럼 지금 다 앞으로 가면 되잖아요.”

아이 이모가 말했다. 복숭아 냄새. 이모는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이미 6호차 쪽으로 반쯤 몸을 틀고 있었다.

“가요. 다 같이.”

나는 7호차에 방송을 했다. 이번에는 버튼을 보고 눌렀다.

“7호차 승객 여러분, 앞 칸으로 이동합니다. 부상자 네 분을 먼저 모시겠습니다. 가방은 두고 가셔도 됩니다.”

두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불이 나도 가방을 멘다. 이모는 쇼핑백 세 개를 한 손에 몰아 쥐었다. 아이 봄 운동화, 언니 생일 선물, 가게 손님이 맡긴 네일 팁 상자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짝지었다. 강태오 씨는 등을 못 대니 대학원생 노상윤이 옆구리를 받쳐 걷게 했다. 내가 오기 전에 8호차 연결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안에 대고 소리치던 청년, 화상엔 물이라던 그 청년이었다. 남궁하준 씨는 두 손을 가슴 높이에 들고 걷게 했다. 손에 아무것도 닿으면 안 됐다. 그 손은 이미 물집이 부풀어 비닐처럼 번들거렸고, 그는 그 손을 자기 것이 아닌 물건처럼 몸에서 떼어 들고 있었다. 문순례 씨는 혼자 걷겠다고 했다. 최보람은 문순례 씨 팔짱을 꼈다. 누가 누구를 부축하는지 알 수 없는 짝이었다. 나는 그 순서를 입으로 한 번 불렀고, 부른 순서대로 손가락을 접었다. 열다섯. 아이가 옆에서 내 손가락을 따라 접었다. 아이 손가락은 한 번 더 접혔다. 나는 그걸 보고도 넘겼다.

도원역이 창밖을 하얗게 지나갔다. 나는 그 승강장을 안다. 3번 출구 계단 옆 벽 타일 여섯 장이 다른 색이다. 구 년 전에 새로 붙인 자리. 그 여섯 장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세 시 사십육 분.

6호차 연결문 유리 너머로 참기름 영감님이 보였다. 영감님은 보자기를 품에 안고 일어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7호차 바닥의 사람들을 보고, 뿌연 천장을 보고, 보자기에서 소주병 하나를 꺼내 들어 보였다. 이거라도 줄까, 하는 손짓이었다. 참기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영감님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 칸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내민 사람은 그 영감님이 처음이었다.

6호차 연결문 앞에 제일 먼저 선 사람은 강태오 씨를 부축한 노상윤이었다. 그 사람이 손잡이를 돌렸다. 돌아갔다. 당겼다. 안 열렸다. 다시 당겼다. 문짝이 한 뼘 열렸다가 도로 닫혔다.

유리 너머에서 등산복 입은 남자가 반대쪽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그 사람 뒤로 6호차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목도리로 코를 막은 채. 아무도 그 남자를 말리지 않았다.

“열지 마세요!”

남자가 유리 너머에서 소리쳤다. 소리는 두꺼운 철판에 먹혀서 작게 왔다.

“연기 들어와요! 여기 꽉 찼어요!”

6호차에는 빈자리가 반이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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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배2026.05.21· 2화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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