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07자) · 세 시 사십 분

여덟 번째 칸

불타는 지하철에 예순둘이 갇혔다 · 남시우

그날 나는 예순둘을 셌다. 세는 것이 내 일이라서가 아니라, 세지 않으면 손이 떨려서였다. 그러니까 이것은 세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날 내가 닫은 문 하나에 관한 이야기다.

삼월 십칠일 화요일. 오후 세 시 삼십육 분, 한빛중앙역을 떠났다. 한빛 광역급행선은 땅 밑 오십 미터를 달린다. 역과 역 사이가 사 분 이십 초. 여덟 칸짜리 열차에 평일 이 시간이면 예순 명 안팎이 탄다. 출발할 때 단말기에 뜬 숫자는 예순둘이었다. 개표 기록과 차량 하중을 맞춘 추정치라서 나는 늘 한 번 더 센다. 객실을 앞에서 뒤로 걸으면서, 입술만 움직여서.

그날은 3호차에서 멈췄다. 넥타이를 맨 남자 넷이 노트북 하나를 무릎에 올려놓고 싸우고 있었다. 법인카드 영수증이 문제였다. 누가 점심값을 긁었고 누가 커피값을 긁었는지. 제일 젊어 보이는 사람이 저 말고 과장님이 긁으셨잖아요, 했고, 과장이라는 사람이 내가 언제, 했다. 창가에 앉은 남자만 그 싸움에 끼지 않았다. 서른대여섯. 노선도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나는 그 칸을 일곱으로 셌다.

“차장님이세요?”

창가 남자가 나를 봤다.

“네.”

“이 노선, 역이 여덟 개 맞죠? 갈매까지.”

“갈매는 여덟째입니다. 땅 위로 올라가는 첫 역이고요.”

“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스티커를 긁었다. 그 사람이 도민이다. 나는 그때 이름을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그 사람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면 그걸로 뭘 할지 벌써 정해 놓는 사람이었다.

세 시 사십 분. 허리의 무전기가 한 번 떨렸다. 소리보다 떨림이 먼저 왔다. 단말기 화면 맨 위에 붉은 줄이 떴다. 8호차 연기 감지. 오작동이 한 달에 두세 번 있는 장치다. 에어컨 필터 먼지에도 울린다. 나는 뒤로 걷기 시작했다. 뛰지 않았다. 승객 앞에서 차장이 뛰면 객실 전체가 일어선다. 구 년 동안 배운 것 중에 제일 먼저 배운 것이다.

4호차. 5호차. 연결통로를 건널 때마다 고무 주름이 발밑에서 밀리고, 발판 두 장이 손가락 두 개만큼 벌어졌다 붙었다. 6호차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참기름 냄새가 났다. 문 옆 노약자석에 여든은 넘어 보이는 영감님이 앉아 있었고, 무릎 위 보자기 사이로 소주병 두 개가 삐죽 나와 있었다. 병 안에 든 것이 노랬다. 영감님은 나를 올려다보고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손주 줄 거요. 방앗간에서 막 짠 거.”

“네.”

“뚜껑이 좀 샌다고.”

“네.”

나는 웃지 않았는데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그 칸은 열하나였다. 영감님 하나, 등산복 부부, 이어폰 낀 학생 셋, 나머지는 다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영감님을 지나 칸 한가운데쯤 왔을 때 참기름 냄새 밑에서 다른 냄새가 올라왔다. 먼지가 아니었다. 주유소 냄새. 셀프 주유기 앞에서 손잡이를 쥐었다 놓으면 손바닥에 남는 그 달큼하고 매운 냄새가 연결통로 틈으로 밀려와서 코 안쪽을 긁었다. 그 뒤를 고무 타는 냄새가 따라왔다. 그때부터 뛰었다.

7호차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전부 뒤를 보고 있었다. 7호차와 8호차 사이 연결문. 문짝 가운데 손바닥만 한 유리창이 주황색이었다. 주황색이 흔들렸다. 그 앞에 여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아홉 살쯤. 분홍 운동화. 오른손을 들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넷, 다섯, 여섯. 저 아이도 세고 있었다. 뭘 세는지 그때는 몰랐다.

“비키세요.”

나는 아이를 안아서 옆 좌석에 내려놓았다. 아이 이모라는 여자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문 손잡이는 뜨겁지 않았다. 연결문은 방화문이다. 철판 두 겹 사이에 뭔가를 채워 넣은 것. 손잡이를 돌리고 당기자 문이 열리면서 안에 갇혀 있던 것이 한꺼번에 나를 밀었다.

그 안을 적지 않겠다. 위원님들이 물으셨을 때도 거기서 말이 막혔다. 적을 수 있는 것만 적는다. 검은 것이 천장을 타고 기어 왔다. 열이 얼굴 가죽을 한 겹 벗기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첫 번째는 예순 넘은 여자였다. 안경이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팔을 잡고 끌었다. 두 번째는 교복. 여자애. 머리카락 끝이 오그라들어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는 남자였다. 한 사람은 등을 감싸 쥐고 있었고 한 사람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었다. 손이 이상한 색이었다.

넷. 나는 셌다.

“더 있어요?”

연기 속에 대고 소리쳤다. 목이 긁혔다. 기침이 나왔다. 허리를 숙이고 두 번째 여자애를 7호차 바닥에 내려놓는데, 바로 옆에서, 귀에 닿을 만큼 가까운 데서 목소리가 났다.

“없어요! 다 나왔어요!”

남자 목소리였다. 쉬어 있었다. 숨에서 휘발유 냄새가 났다. 그때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7호차 연결통로 전체가 휘발유 냄새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연기가 7호차 천장으로 번지고 있었다. 문을 닫아야 했다. 차장 매뉴얼 사십일 쪽. 화재 차량이 확인되면 인접 연결문을 폐쇄해 연기 확산을 지연시킨다. 나는 그 쪽수를 외우고 있었다. 외운 대로 했다. 문을 밀었고, 걸쇠를 내렸고, 비상 잠금 레버를 끝까지 눌렀다. 철판이 틀에 물리는 소리가 났다. 둔했다. 푸시식 하는 공압문 소리가 아니라 무거운 것이 제자리에 내려앉는 소리.

넷. 다시 셌다. 네 사람이 7호차 바닥에 누워 있었다. 7호차 사람들이 둘러쌌다. 누가 생수를 땄다. 누가 목도리를 풀었다. 교복 여자애가 울지 않고 천장만 봤다.

아이 이모가 핸드백을 뒤집었다. 립밤, 머리끈, 사탕, 네일숍 명함 한 뭉치가 바닥에 쏟아졌고 그 사이에서 튜브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핸드크림이었다. 그 사람은 그걸 짜서 등을 쥔 남자의 손등에 바르려고 했다. 옆에 있던 청년이 그거 바르면 안 돼요, 화상엔 물이에요, 하자 이모가 알아요, 아는데 손이 가만히 안 있어서 그래요, 하고 튜브를 자기 손에 짰다. 그러고는 자기 손을 비볐다. 복숭아 냄새가 휘발유 냄새 위에 얇게 떴다. 나는 그 냄새를 오래 기억했다. 그 칸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일부러 만든 냄새였다.

아이는 쏟아진 명함을 주워 이모 가방에 넣으면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줌마.”

“차장님이라고 하는 거야.”

이모가 말했다. 아이는 고치지 않았다.

“아줌마, 다섯이야.”

“뭐가?”

아이는 대답 대신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나는 그 손을 잠깐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때 내게는 셀 것이 너무 많았다. 아이의 다섯은 그중 제일 작아 보였다.

무전기를 들었다.

“관제, 여기 한빛 삼일칠 열차 차장. 8호차 화재 확인. 연결문 폐쇄. 부상 넷. 가람역 정차 요청합니다.”

잡음. 그리고 목소리. 낮고, 서두르지 않는 남자 목소리였다.

“삼일칠, 관제 팀장입니다. 정차 불가. 가람 통과하십시오.”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가람 통과. 다음 지시 대기.”

무전기가 조용해졌다. 운전실 인터폰이 울렸다. 오병국 기관사. 쉰여덟. 나보다 서른 해 가까이 먼저 기관사가 된 사람. 평소에는 인터폰으로 점심 메뉴를 묻는 사람이다.

“차장, 들었지.”

“들었습니다.”

“나는 서고 싶어.”

“저도요.”

“근데 관제가 통과래.”

“압니다.”

“그리고 차장.”

“네.”

“방송 켜져 있어.”

나는 손을 봤다. 무전기를 든 손이 아니라 반대쪽 손이 객실 방송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언제 집었는지 모른다. 버튼이 눌려 있었다. 내 숨소리, 관제의 정차 불가, 오 기관사의 서고 싶어, 전부 일곱 칸 스피커로 나갔다. 마이크를 거치대에 걸었다. 손이 한 번 미끄러졌다. 두 번째에 걸렸다.

7호차가 조용했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나를 봤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차장이 서고 싶다는 말을 들었고, 서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다. 둘 다 들은 사람은 더 물을 것이 없다. 등산 가방을 멘 남자 하나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가 도로 내렸다. 여기는 지하 오십 미터다. 역에 닿을 때만 신호가 잡힌다. 누군가에게 말하려면 다음 역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사람은 화면을 켜 둔 채 엄지로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역을 지나는 몇 초 동안 날아가라고. 나는 그 사람이 뭘 쓰는지 안 봤다. 안 봐도 알았다.

세 시 사십일 분 오십 초. 창밖이 하얘졌다. 가람역 승강장이었다. 스크린도어 너머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가방을 멘 학생들, 유모차, 형광 조끼를 입은 역무원 하나. 그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 서지 않고 속도도 안 줄이고 지나가는 열차를. 역무원이 무전기를 입에 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시 어두워졌다. 터널 벽의 비상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스쳤다. 하나, 둘, 셋.

3호차의 그 남자가 7호차까지 와 있었다. 도민. 숨이 조금 찼다. 연결문 틈을 보고 있었다. 문짝과 틀 사이, 아래쪽 모서리에서 가느다란 회색 실 같은 것이 새어 나와 바닥을 기었다.

“저거, 얼마나 걸릴까요?”

그가 물었다.

“뭐가요.”

“저 틈으로 이 칸이 다 차는 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몰랐다. 그 사람은 벌써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초침이 한 바퀴 도는 동안 그는 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고는 7호차 바닥에서 연결문까지를 운동화 앞코로 재듯 두 걸음 걸어 보았다.

“칸 하나가 이십 미터쯤이죠.”

“십구 미터 반입니다.”

“차장님은 그런 걸 다 아세요?”

“세는 게 일이라서요.”

그가 잠깐 나를 봤다. 웃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한참 뒤에 나한테 돌려주었다.

나는 7호차를 셌다. 좌석에 앉은 사람, 선 사람, 바닥의 네 사람 곁에 쪼그린 사람. 셀 때는 얼굴을 안 본다. 얼굴을 보면 느려진다. 정수리, 어깨, 무릎. 열다섯. 7호차 승객 열하나에 8호차에서 나온 넷. 맞았다. 숫자가 맞으면 손이 조금 덜 떨린다. 구 년 전 도원역에서 백열둘을 세고 나서 생긴 버릇이다. 그날 땅 위로 올라온 사람은 백열하나였다. 그 하나가 누구였는지는 나중에 말하겠다.

아이가 이모 품에서 빠져나와 내 옆에 섰다. 분홍 운동화. 아이는 바닥의 네 사람을 봤다. 그리고 7호차 좌석을 봤다. 손가락이 다시 접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손가락을 보다가 연결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은 이제 주황색이 아니었다. 검었다. 연기가 유리 안쪽에 붙어서 문짝 전체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검은 유리 한가운데, 안쪽에, 손바닥 하나가 붙어 있었다.

아까는 없던 것이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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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시우작가2026.10.09· 1화

    작가 남시우입니다. 불이 한 정거장에 한 칸씩 앞으로 오는 열차에서 차장이 승객을 한 칸씩 옮깁니다. 1화의 여덟 번째 칸을 읽고, 여러분이라면 어느 칸에서 무엇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 달밤에책2026.05.20· 1화

    이 장면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요.

    • 남시우작가2026.05.21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두 줄은 저도 오래 고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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