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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13,213자)

주문진 해전 — 두 개의 전보

1950 · 네오

주문진 해전, 1950년 7월 2일 새벽 — 38선과 동해안(속초·양양·하조대·주문진·사천진·강릉·묵호), 북쪽으로 돌아가던 북한 탄약 운반선 10척과 어뢰정 4척(21~24호)·포함 2척, 주노·자메이카·블랙 스완의 위치, 여섯 시 십오 분 발견, 1만 1천 야드에서 연 사격과 4천 야드까지 좁혀진 거리, 해안으로 향한 23호와 북쪽으로 달아난 21호, 6월 29일 주노의 묵호 포격. 교전 지점은 기록의 서술로 잡은 개략, 거리 비례 아님.

1950년 6월 말, 동해, 38선으로 올라가는 바다.

바다는 기름을 부은 듯 잔잔했다. 포탑을 여럿 얹은 영국 해군 경순양함 자메이카의 함교 아래, 전투정보실에서 일하는 존 헤가티는 갑판에 나왔다가 뱃전 너머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물 위에 사람이 떠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손목과 손목이 끈으로 묶여 있었다1.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한 쌍이 떠 왔고, 그 뒤로 또 한 쌍이 떠 왔다.

배는 15노트쯤으로 달리고 있었다1. 그 속도로 지나가는데도 냄새가 갑판까지 올라왔다. 옆에 선 수병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중얼거렸다.

“홍콩에서 일본 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나.”

헤가티도 그렇게 들었다. 6월 초 자메이카는 홍콩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평범한 항해에 올랐다. 홍콩 수비대와 친하게 지낸 덕에 영국 육군 미들섹스 연대와 왕립포병대의 하사관 몇 명도 배에 태웠다1. 국경 경비에 지친 육군에게 바닷바람이나 쐬어 주자는 뜻이었다. 항해 도중에 북한군이 남쪽을 쳤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몇 시간 뒤 자메이카와 작은 호위함인 슬루프 블랙 스완은 동해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 해군 경순양함 주노와 합류해 해안 도로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포격하는 일이었다2.

묶인 시신들은 뱃머리가 일으킨 물결에 밀려 천천히 멀어졌다. 누가 그들을 묶었는지 아는 사람은 배 위에 없었다.

*

6월 29일, 동해, 미 경순양함 주노 함교.

주노의 레이더 화면에 점이 두 무리 떠올랐다.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는 수상 표적이었다. 함장 제시 클라이번 소웰 대령은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함교 뒤쪽에 선 제독을 돌아보았다. 제5순양함전대 사령관 존 M. 히긴스(51) 소장은 이 배에 지휘관 깃발을 올려 기함으로 쓰고 있었다2. 일주일 사이 그는 극동 해군에서 가장 쓸 만한 군함 한 척을 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국 해군 배들은 이미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했지?”

“그렇게 통보받았습니다.”

“그럼 저건 한국 배가 아니군.”

주노의 5인치 포가 불을 뿜었다. 한 척이 가라앉았고 나머지는 흩어졌다2. 같은 날 주노는 묵호(현 동해시 묵호항) 앞바다에서 해안의 북한군 집결지를 때렸다2. 이 전쟁에서 미 해군이 쏜 첫 함포 사격이었다3.

뒤에 그 배의 정체가 드러났다. 가라앉은 배는 한국 해군의 소해정 JML-305였다2. 혼란 속에 소문이 하나 더 돌았다. 동해안에 소련 순양함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2.

소웰은 레이더 화면에 뜨는 작은 점을 그 뒤로 전보다 오래 보았다. 이 바다에서 작은 배는 적일 수도 있었고, 우리 편일 수도 있었고, 그냥 고기잡이배일 수도 있었다.

*

7월 2일 새벽, 주문진(현 강릉시 주문진읍) 남쪽 앞바다, 북한 해군 제2어뢰정대 21호정.

탄약 상자를 다 내린 운반선 열 척이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렸다2. 동해안 길을 따라 내려가는 인민군에게 탄을 대 주는 길이었다. 발동기를 단 작은 운반선들이었다. 육지 길은 낮이면 미군 비행기와 함포가 노렸으니, 탄은 바다로 실어 날라야 했다.

제2어뢰정대 정대장 김군옥은 21호정에 타고 있었다4. 정대가 가진 어뢰정은 21호에서 24호까지 네 척이었다5. 길이가 19미터 남짓한 소련제 쾌속정으로, 무게는 17톤이 조금 넘었다6. 뒤쪽 갑판의 홈에 어뢰 두 발을 싣고 앞쪽에는 기관총을 걸었다. 포를 단 작은 군함인 포함 두 척이 같이 붙어 운반선 무리를 감쌌다2.

“해 뜨기 전에 38선 위로 올라간다.”

김군옥의 말이 정 안에 전해졌다. 어뢰정은 빨랐다. 운반선이 느렸다. 정들은 운반선 속도에 맞춰 바다 위를 기어가듯 달렸다. 동쪽 수평선이 희어지기 시작했다.

어뢰 홈 옆에 붙은 수병 하나가 어뢰의 몸통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정비는 몇 번이나 해 보았지만 바다에 대고 실제로 쏘아 본 적은 없었다. 쏘는 법은 소련 교관들이 곧 제대로 가르쳐 주기로 되어 있었다.

*

같은 날 여섯 시 십오 분, 자메이카, 전투정보실.

배는 새벽 전투배치 중이었다. 해 뜰 무렵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은 전쟁을 한 번 치른 영국 해군의 몸에 밴 습관이었다. 헤가티는 함교 바로 아래, 바다 지도에 배의 위치를 그리는 작도실에서 레이더 화면과 해도를 붙들고 있었다1.

함교에서 방송이 내려왔다.

“육안 관측, 고속 수상정, 우리 쪽으로 접근.”

헤가티는 레이더 화면을 다시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배들은 해안에 바짝 붙어 움직여 레이더가 닿지 않는 그늘에 숨어 있었다1. 먼저 본 것은 블랙 스완의 견시였다. 여섯 시 십오 분, 블랙 스완이 해안 가까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배 무리를 보았다2.

장교 침실 쪽에서는 뉴질랜드 해군 사관후보생 마이클 머스챔프가 자다가 경보를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영국 해군으로 보내진 사관후보생 셋이 이 배에 타고 있었다. 존 버제스, 톰 리델, 그리고 머스챔프였다7. 머스챔프는 뒷날 그 순간의 자기를 이렇게 그렸다. 열여덟 살짜리가 몹시 당황해서 옷을 꿰고, 불꽃막이 두건을 쓰고, 철모를 얹었다. 세 가지를 그렇게 빨리 해치운 적은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없었다7.

그가 함교에 올라섰을 때 바다 위에 작은 배 여섯 척이 보였다. 해안과 군함 세 척 사이에 갇혀 있었다7. 함교에는 쌍안경을 든 장교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사관후보생에게 돌아올 쌍안경은 없었다. 머스챔프는 맨눈으로 물보라를 좇았다. 작은 배들이 뱃머리를 이쪽으로 돌리는 것이 맨눈으로도 보였다. 하얀 물보라가 꼬리처럼 길어졌다.

*

같은 시각, 21호정.

군함 세 척이 바다 쪽을 막고 있었다. 큰 배 둘과 작은 배 하나였다. 김군옥 쪽에서 보면 해는 군함들 등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세 개가 수평선에 걸렸다.

해안 쪽으로 붙어 달아나면 운반선과 함께 몰려 맞을 판이었다. 바다 쪽으로 빠지려면 저 군함들 앞을 지나야 했다.

“정대장 동지, 운반선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운반선은 그대로 북으로 보내라.”

김군옥은 군함 쪽을 보았다. 어뢰정은 큰 배를 만나려고 만든 배였다. 큰 배에 가까이 붙어 어뢰를 꽂고 빠지는 배였다. 그러려면 저 포들 아래를 지나 수 킬로미터를 달려 들어가야 했다.

키를 쥔 수병이 그를 돌아보았다. 기관실 쪽에서 기관병이 고개를 내밀었다. 정 안의 누구도 순양함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수평선의 그림자는 다가갈수록 커졌고, 그림자 위로 포탑들이 하나씩 모양을 드러냈다.

“정 네 척, 적함으로 돌격.”

네 척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방향을 틀었다. 뱃머리가 들리고 꽁무니가 가라앉았다. 포함 두 척도 따라왔다. 운반선 열 척은 그 사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꾸역꾸역 올라갔다.

*

같은 시각, 주노 함교.

“소형정 넷, 고속으로 접근합니다. 포함으로 보이는 배 둘.”

소웰은 쌍안경을 들었다. 사흘 전의 레이더 점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가 떠 있었고, 저 배들은 몸을 숨기지 않았다. 똑바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히긴스가 말했다.

“한국 배가 우리한테 저렇게 달려들 리는 없지.”

“거리 1만 1천 야드.”

“쏘게.”

주노의 5인치 포탑들이 돌았다. 자메이카의 6인치 포 열두 문이 들어 올려졌다2. 블랙 스완의 4인치 포도 같은 쪽을 겨누었다.

주노의 포탑 안에서는 장전수들이 탄을 받아 밀어 넣고 다음 탄을 기다렸다. 포가 물러났다가 돌아올 때마다 뜨거운 탄피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포탑 안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장전수들이 아는 것은 귀에 꽂힌 전화기에서 들리는 사격 지시와, 다음 탄의 무게뿐이었다. 1만 1천 야드는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7. 그 거리에서 17톤짜리 배는 물결 위의 나뭇잎만 했다.

*

같은 시각, 자메이카.

“좌현 수상 경보!”

함내 방송이 울리자 연습 때 수백 번 외운 명령과 복창이 꼬리를 물었다. 표적 지정, 사격 준비, 발사. 헤가티는 이 말들을 수없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1. 첫 일제사격이 배를 밑바닥 뼈대인 용골까지 흔들었다. 작도실 책상 위의 연필이 굴러떨어졌다.

함장 J. S. C. 솔터(49) 대령은 함교에서 해안 쪽을 보고 있었다. 1942년 북극해에서 침몰 직전의 순양함 에든버러에 어뢰를 쏘아 가라앉힌 구축함 함장이 그였다. 어뢰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배들이 거리를 좁히는 속도를 눈으로 쟀다.

함교 보고가 아래로 이어졌다.

“표적 정지.”

“명중 가능성.”

“불길과 연기 보임.”

“표적 침몰 중.”

헤가티의 작도반은 레이더 화면에서 다른 표적을 찾았다. 더 먼 바다에서 다른 무리가 오고 있다면 놓쳐서는 안 되었다. 화면은 비어 있었다.

작은 배들은 계속 다가왔다. 머스챔프의 눈에는 그 배들이 20밀리와 40밀리쯤 되는 작은 포를 주노와 자메이카 쪽으로 쏘는 것이 보였다. 포탄은 두 순양함까지 닿지 않았다7. 영국 쪽 기록에는 그 배들이 「대단히 용감하게 돌격했다」고 적혔다8.

거리가 4천 야드로 줄었을 때, 24호정은 이미 물속에 있었다. 22호정은 바다 위에 멈춰 섰다. 23호정은 해안으로 뱃머리를 돌렸다2. 포함 두 척도 하나씩 불길에 휩싸였다2. 머스챔프는 두 순양함이 거리를 잡은 뒤 십 분 안에 네 척이 가라앉았다고 기억했다7.

어뢰는 한 발도 물에 떨어지지 않았다9.

*

같은 시각, 21호정.

옆을 달리던 정이 물기둥 속으로 사라졌다. 물보라가 가라앉았을 때 그 자리에는 기름과 나뭇조각만 떠 있었다. 다른 정 하나는 기관이 멎어 바다에 떠 있었다. 또 하나는 연기를 끌며 해안 모래밭 쪽으로 기어갔다.

“정대장 동지!”

김군옥은 키를 쥔 수병의 어깨를 쳤다. 어뢰를 쏠 거리까지는 아직 멀었다. 남은 것은 이 정 하나였다.

“지그재그로 빠진다. 북으로.”

21호정은 좌우로 크게 몸을 틀며 바다 쪽으로 뛰쳐나갔다8. 포탄이 왼쪽에 떨어졌다가 오른쪽에 떨어졌다. 물기둥이 무너질 때마다 갑판에 바닷물이 쏟아졌다. 정은 북쪽으로 내달렸다. 운반선 열 척도 해안에 붙은 채 북쪽으로 사라져 갔다.

*

같은 날 아침, 주문진 남쪽 해안.

연기는 바다 위 몇 군데에서 오르다가 차례로 잦아들었다. 해안에 얹힌 23호정만 남았다. 승조원들은 배를 버리고 모래밭 너머로 달아났다.

자메이카는 해안에 걸린 정을 향해 몇 발을 더 조준해 쏘았다. 그 정이 다시는 북한군 손에 쓰이지 않게 하려는 사격이었다. 헤가티는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적었다1.

자메이카는 보트를 내려 물에 떠 있는 북한 수병들을 건졌다. 미국 쪽 기록은 포로를 둘로 적는다2.

보트가 기름띠 사이로 다가가자 물에 뜬 사람 하나가 팔을 휘저어 멀어지려 했다. 노를 젓던 영국 수병이 노를 내밀었다. 그 사람은 노 끝을 한참 노려보다가 붙잡았다. 다른 하나는 이미 헤엄칠 힘이 없어 뱃전에 걸린 채 끌려 올라왔다. 둘 다 맨발이었다.

갑판에 올라온 두 사람은 바닷물과 기름을 뒤집어쓰고 떨고 있었다. 7월이었지만 새벽 바닷물은 찼다. 수병들이 담요를 가져왔다. 하나는 담요를 받지 않고 갑판에 그냥 웅크렸다. 수병이 담요를 그의 어깨에 걸쳐 놓고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서로를 죽이려던 사람들이 한 배 위에 섰다.

배에는 한국군 연락장교가 타고 있었다7. 그가 포로들 앞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영국 장교들이 미리 일러 둔 질문이 있었다.

“왜 어뢰를 쏘지 않았나?”

포로 하나가 연락장교를 보더니 대답했다. 연락장교가 영어로 옮기자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러시아 사람들이 다음 주에 쏘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답니다.”

머스챔프는 그 대답을 회고에 그대로 적어 두었다7. 다음 주에 배울 무기를 싣고, 이번 주에 순양함 세 척에 달려든 사람들이었다.

*

7월 2일 낮, 38선 북쪽의 포구, 21호정.

정이 부두에 닿았을 때 갑판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떠날 때 넷이던 정이 하나로 돌아왔다. 수병들은 밧줄을 묶고 어뢰 홈을 내려다보았다. 어뢰 두 발은 떠날 때와 똑같이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부두에 나온 사람들이 물었다. 22호는? 23호는? 24호는? 수병들은 대답 대신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군옥은 지휘소로 올라갔다. 그는 위에 보고를 올려야 했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잃었는지, 적함이 몇 척이었고 어떻게 되었는지. 거리가 줄어들던 순간 순양함 옆구리에서 불이 번쩍였던 것, 그 둘레로 물기둥과 연기가 솟던 것이 그의 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포의 불꽃이었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 바다 위에서는 가릴 수 없었다. 그가 그날 무엇이라고 적었는지는 지금도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

7월 2일, 주노 통신실, 그리고 그 뒤의 북쪽.

전보가 두 개 나갔다.

하나는 주노에서 도쿄의 극동 해군 사령부로 갔다. 히긴스의 기함이 북한 어뢰정을 만나 세 척을 가라앉혔다는 보고였다. 미 해군의 함정 이력은 뒷날 그 내용을 한 줄로 적었다. 주노는 7월 2일 주문진 부근에서 첫 해상 교전을 치렀고, 적 어뢰정 세 척을 격침했다3. 아군 피해는 없었다.

다른 하나는 북쪽으로 갔다. 그 전보의 원문은 지금까지 바깥에 나온 적이 없다. 다만 북쪽 신문이 그 뒤에 무엇을 실었는지는 남아 있다. 7월 10일, 북한 신문들은 미 순양함 한 척을 격침한 어뢰정 분대의 공을 치하하는 김일성(38) 최고사령관의 방송을 실었다8. 7월 18일자 보도는 날짜를 7월 5일로 적었다. 주문진 앞 약 10마일 바다에 미 해군 순양함 두 척과 구축함 한 척이 나타났고, 그 가운데 순양함 한 척을 격침했으며, 21호에서 24호까지 네 척 가운데 두 척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8.

군함은 셋이었다. 북한 보도의 숫자와 맞았다. 순양함 두 척에 작은 군함 한 척이었다. 맞지 않는 것은 그 뒤였다. 순양함은 한 척도 가라앉지 않았다. 영미 기록으로 잃은 정은 넷 가운데 셋이었고, 포함 두 척도 돌아가지 못했다2.

김군옥은 살아서 돌아갔다. 그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6.

*

7월 3일 저녁 여덟 시 이십 분, 블랙 스완.

해가 진 뒤 육지 쪽 안개 속에서 비행기 두 대가 나타났다. 지상 공격기로 보였다. 비행기들은 블랙 스완에 총탄을 퍼붓고 갑판 위 구조물에 자국을 남긴 뒤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나갔다. 블랙 스완의 대공포는 한 대도 맞히지 못했다. 북한 비행기가 바다 위 군함을 공격한 첫 기록이었다2.

이튿날 북한군 비행장에는 서해의 항공모함에서 날아온 함재기들이 들이닥쳤다. 그 뒤로 북한 공군이 군함을 노리는 일은 드물어졌다.

며칠 뒤 주노는 2일 아침 놓친 운반선 무리를 다시 찾아냈다. 운반선들은 남은 탄과 함께 가라앉았다9.

*

7월 8일, 동해안, 자메이카.

자메이카와 주노, 블랙 스완은 다시 함께 해안을 포격하고 있었다. 낮에는 철길과 도로 위 산비탈을 때려 흙과 바위를 쏟아 놓았다. 밤에는 불을 끄고 해안 가까이 숨어 기다렸다. 북한군이 등불을 켜고 길을 치우러 나오면 그 불빛을 겨누었다. 바다가 잔잔한 밤에는 해안에서 고함과 구령 소리가 들렸다1.

북한군도 해안에 포를 끌어다 놓았다. 7월 8일, 해안 포대의 76밀리 포탄 한 발이 자메이카의 주돛대 밑동, 포 하나 바로 옆에 떨어졌다2.

여섯 명이 전사했다. 수병이 한 명이었다. 나머지 다섯은 홍콩에서 바닷바람이나 쐬라고 태운 미들섹스 연대와 왕립포병대의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이 나자 포마다 탄을 나르는 일을 자원했다1. 다섯 명이 더 다쳤다. 헤가티는 함교에서 그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전투 때 내건 큰 군함기가 폭발에 날아가고 없었다1.

얼마 뒤 배 뒤쪽 함미에서 장례가 열렸다. 군목 레이먼드 로가 기도문을 읽었다1. 시신들은 군함기에 덮인 채 한 사람씩 판자 위에서 미끄러져 바다로 들어갔다. 헤가티는 물보라가 여섯 번 이는 것을 보았다. 바다는 엿새 전 아침처럼 잔잔했다.

*

1951년 11월 28일, 미국 워싱턴주 브레머턴, 퓨젓사운드 해군 조선소.

경순양함보다 큰 중순양함 볼티모어가 다시 취역했다. 함장은 폰드빌 L. 테더 대령이었다10. 배는 1947년 4월 29일 이 조선소에서 퇴역한 뒤 예비 함대에 묶여 있었다10. 1950년 7월에도 볼티모어는 이 부두에 있었다. 북쪽에서 「빨찌모르」라고 부른 배가 이 배였다2.

북쪽에서 그 이름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졌다. 김일성이 죽은 뒤 북쪽에서 낸 『김일성전집』에는 1950년 6월 30일에 해군사령관에게 내렸다는 긴 지시문이 실렸다. 적 순양함은 뱃머리가 높아 어뢰정이 바짝 붙으면 함포를 쏘지 못한다고 적혀 있었다. 주된 표적은 순양함 「빨찌모르」이고, 속초항(현 강원 속초시)에 가서 7월 2일 새벽 세 시에 공격하라고 적혀 있었다8. 평양의 전쟁 기념관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21호 어뢰정이 놓였다4. 2023년 9월, 북한은 새로 띄운 잠수함에 「김군옥영웅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11. 2026년 7월 2일, 북한 관영 통신사 조선중앙통신은 어뢰정 네 척이 「움직이는 섬」이라고 뽐내던 중순양함 볼티모어를 바닷속에 처넣고 경순양함 한 척을 부쉈다고 다시 썼다5.

1999년, 재미 사학자 방선주는 두 쪽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8. 그는 이렇게 적었다.

“사실은 둘 다 잘못이 있다. 특히 ‘미 순양함 격침’이란 아예 없었다. 군함들의 항해일지를 보면 안다.”

미국 쪽 백과사전은 어뢰정 네 척이 모두 가라앉았다고 썼다. 주노의 항해일지는 한 척이 지그재그로 빠져나갔다고 적었다8. 북쪽 신문은 순양함 한 척을 가라앉혔다고 썼다. 그날 아침 주문진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순양함은 없었다. 바다로 달아난 21호정 한 척과, 다음 주에 쏘는 법을 배우기로 했던 어뢰들이 있었을 뿐이다.

사료 출처

1. John D. Hegarty(전 영국 해군 소령), 「H.M.S. Jamaica — Korean War Service 1950」, tottenham-summerhillroad.com/hms_jamaica_john_hegarty.html — 홍콩 출항과 육군 하사관 승선, 둘씩 묶인 시신과 15노트, 전투정보실 근무, 레이더보다 먼저 온 육안 보고, 「Alarm Surface Port」와 함교 보고, 좌초 정에 대한 조준 사격, 양양 부근 도로 차단과 밤의 고함 소리, 7월 8일 피탄·전사자 구성·군함기 소실, 군목 Raymond Lowe의 수장과 물보라 여섯 번, 함장 J. S. C. Salter. 2. Samuel J. Cox, 미 해군역사유산사령부(NHHC) H-Gram 050 「H-050-1」, history.navy.mil/about-us/leadership/director/directors-corner/h-grams/h-gram-050/h-050-1.html — 주노 함장 Jesse Clyborn Sowell 대령과 제5순양함전대 사령관 John M. Higgins 소장, 6월 29일 묵호(Bokuku Ko) 첫 함포 사격, 같은 날 레이더 표적 사격과 한국 해군 소해정 JML-305 침몰·소련 순양함 소문, 자메이카(6인치 3연장 포탑 넷)·블랙 스완(4인치 2연장 포탑 셋), 여섯 시 십오 분 블랙 스완 발견, 탄약 운반선 10척·어뢰정 4척·포함 2척, 1만 1천 야드 사격 개시와 4천 야드 때의 상태(24호 침몰, 22호 정지, 23호 해안행, 21호 북쪽 도주), 포함 두 척 격침, 자메이카 포로 두 명, 유엔군 피해 없음, 운반선은 며칠 뒤 주노가 격침, 볼티모어 주장, 7월 3일 20시 20분 블랙 스완 피습, 7월 8일 자메이카 76밀리 피탄과 여섯 명 전사. 3. NHHC DANFS, 「Juneau II (CLAA-119)」, history.navy.mil/research/histories/ship-histories/danfs/j/juneau-ii.html — 6월 29일 첫 해안 포격, 7월 2일 주문진 부근 첫 해상 교전과 어뢰정 세 척 격침. 4. 영문 위키백과, 「Battle of Chumonchin Chan」 — 21호정 지휘관 김군옥, 기념관 전시. 5. 조선중앙통신, 「Military Miracles in Fatherland Liberation War」(2026.7.2), 조선통신 영어 게재본 koreanewsservice.com/en-news/military-miracles-in-fatherland-liberation-war-2/ — 제2어뢰정대 어뢰정 4척, 「움직이는 섬」 중순양함 볼티모어 격침·경순양함 격파 주장, 김일성이 6월 30일 해군 지휘관에게 지시했다는 서술. 6. 정영, 자유아시아방송 「‘미 볼티모어함 격침’ 북 해전의 미스터리」(2016.8.17), rfa.org/korean/weekly_program/media_in_out/nkmediaanalysis-08162016144508.html — 2016.8.6 조선중앙TV 「공화국영웅 김군옥」, 북한 어뢰정 약 17톤, 기념관에 한 척만 전시. 7. 뉴질랜드 해군박물관, 「HMS Jamaica – Korean War」, navymuseum.co.nz/explore/by-themes/post-war-1970/hms-jamaica-korean-war/ — 사관후보생 John Burgess·Michael Muschamp·Tom Riddell, 10킬로미터 사격 개시와 3.6킬로미터, Michael Hickey 『Korean War: The West Confronts Communism 1950–1953』(2000) 62쪽에 실린 머스챔프 회고(열여덟 살·불꽃막이·철모, 해안과 군함 사이에 갇힌 여섯 척, 20·40밀리 포, 십 분 안에 넷, 하나 좌초·하나 도주), 한국군 연락장교의 심문과 「러시아 사람들이 다음 주에」 대답. 8. 방선주(재미 사학자, 한림대 객원교수), 「[기고] 6·25 유일의 海戰이야기」, 서울신문(1999.6.25) 7면, m.seoul.co.kr/news/1999/06/25/19990625007003 — 북한 신문 7월 10일 김일성 방송 보도, 7월 18일자 보도(7월 5일, 주문진 앞 약 10마일, 순양함 둘·구축함 하나, 21~24호 가운데 두 척 손실), 김군옥 제2정대장 생환과 공화국 영웅 칭호, 주노 항해일지(여섯 시 십칠 분 발견, 한 척 격침, 해안으로 피한 두 척 격파, 김군옥 정의 지그재그 도주), 영국 기록의 「지극히 용감하게 돌격」, 『김일성전집』의 6월 30일 지시문(뱃머리, 「빨찌모르」, 속초항, 7월 2일 새벽 세 시), 인용한 결론 문장. 9. NHHC, 「Essay on Naval Battles of the Korean War」, history.navy.mil/research/library/online-reading-room/title-list-alphabetically/e/essay-on-naval-battles-of-the-korean-war.html — 어뢰정이 어뢰를 쏘기 전에 끝난 교전, 한 척만 도주, 운반선을 7월 초 주노가 격침. 10. NHHC DANFS, 「Baltimore V (CA-68)」, history.navy.mil/research/histories/ship-histories/danfs/b/baltimore-v.html — 1947년 4월 29일 브레머턴 퇴역, 1951년 11월 28일 퓨젓사운드 해군 조선소 재취역, 함장 Fondville L. Tedder 대령. 11. 영문 위키백과, 「North Korean submarine Hero Kim Kun Ok」 — 2023년 9월 6일 잠수함 명명.

[나이] 괄호 안 숫자는 1950년에서 출생연도를 뺀 나이다. John M. Higgins 1899년생(영문 위키백과 「John Higgins (admiral)」), J. S. C. Salter 1901년 11월 24일생(영문 위키백과 「Jocelyn Salter」, uboat.net 지휘관 기록 2200 — 1942년 포사이트 함장으로 에든버러 처분), 김일성 1912년생. 머스챔프의 「열여덟 살」은 본인 회고의 말이다. 소웰·헤가티·김군옥은 출생연도를 확인하지 못해 나이를 적지 않았다. [자료 충돌] 발견 시각은 여섯 시 십오 분(H-Gram, 블랙 스완 관측)과 여섯 시 십칠 분(방선주가 본 주노 항해일지). 북한 측 손실은 어뢰정 셋과 포함 둘(H-Gram), 어뢰정 셋(DANFS 주노·영문 위키백과), 한 척 격침·두 척 해안 격파·한 척 도주(주노 항해일지), 여섯 척 가운데 다섯 격파·하나 좌초(헤가티), 넷 침몰·하나 좌초·하나 도주(머스챔프), 어뢰정 넷 모두 격침(1997년 미국 백과사전), 넷 가운데 둘(북한 1950.7.18 보도)로 갈린다. 포함 수는 둘(H-Gram)과 셋(뉴질랜드 해군박물관, 「둘이라는 자료도 있다」는 각주). 교전 날짜는 7월 2일(영미 기록, 조선중앙통신 2026)과 7월 5일(북한 1950.7.18 보도). H-Gram 본문 한 곳에 「2 June」이라 적힌 것은 7월의 오기로 보았다. 운반선 격침은 「며칠 뒤」(H-Gram)·「7월 초」(NHHC 에세이)·「7월 하순」(영문 위키백과)으로 갈려 본문은 「며칠 뒤」로 적었다. 블랙 스완 함장은 A. D. H. Jay 대령이 1950년 7월 24일 호위대장으로 나오지만(H-Gram) 다른 목록은 6월에 G. A. F. Norfolk 대령으로 바뀌었다고 적어(영문 위키백과 「3rd Frigate Squadron」, Mackie 『Royal Navy Senior Appointments』) 7월 2일 함장을 정하지 못하고 이름을 쓰지 않았다. 뉴질랜드 해군박물관은 Andrewes 소장을 「지휘관」으로 적지만 그는 함대 사령관으로 벨파스트에 기를 올리고 있었다(헤가티). 6월 29일 레이더 사격이 낮 포격 뒤의 밤이었는지는 H-Gram이 밝히지 않는다. [재구성] 21호정 수병들의 몸짓, 주노 포탑 안 장전수 장면, 머스챔프가 맨눈으로 본 대목, 보트에서 포로를 건지는 몸짓과 담요, 21호정의 귀항과 김군옥이 보고를 앞에 둔 장면(귀항 포구는 확인하지 못했다)도 재구성이다. 모든 대화(자메이카 수병, 소웰과 히긴스의 6월 29일·7월 2일 대화, 김군옥과 수병들의 말, 주노 함교 보고), 헤가티가 시신을 갑판에서 본 장면(회고는 「우리는 보았다」로만 적는다), 소웰이 레이더 점을 오래 보았다는 대목, 북한 어뢰정의 출항·운반선 하역·어뢰를 쓰다듬는 수병·김군옥의 돌격 결정과 지그재그 명령, 솔터가 함교에서 거리를 재는 모습, 연필이 굴러떨어진 일, 포로에게 담요를 준 몸짓과 연락장교의 자세, 수장 때 시신이 판자에서 미끄러지는 동작과 그날 바다가 잔잔했다는 대목은 기록의 뼈대 위에 쓴 소설적 재구성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다음 주에…」는 머스챔프 회고의 영어 문장을 옮긴 것이고, 포로가 진실을 말했는지 둘러댔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 어뢰정의 제원(길이 19미터 남짓, 어뢰 두 발, 앞쪽 기관총)과 주노의 5인치 포는 소련 G-5급과 미 주노급의 일반 제원을 따른 것으로 이 화의 원사료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주노가 도쿄로 보낸 전보와 김군옥이 북쪽으로 올린 보고의 원문은 둘 다 보지 못했다. 한국군 연락장교와 포로의 이름, 북한 수병의 이름은 확인하지 못했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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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해전 — 두 개의 전보 · 1950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