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5자)

은수저

왕의 고양이 · 강여울

대전 뜰은 어두웠다⁠. 침전 처마 밑에 등롱 하나만 걸려 바람에 흔들렸다⁠. 나인은 뜰 한가운데 박석 위에 무릎을 꿇었다⁠. 침전 문까지는 계단이 일곱이었다⁠. 수라간 나인이 밤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아니었다⁠.

금손은 계단을 올라갔다⁠. 침전 문은 닫혀 있었다⁠. 문 앞을 지키던 늙은 내관이 졸다가 고양이를 보고 문을 한 뼘 열어 주었다⁠. 날마다 하는 일이었다⁠. 금손은 문 안으로 들어가 왕의 이부자리 옆에 앉았다⁠. 왕은 자지 않고 누워 있었다⁠. 금손은 울었다⁠. 길게⁠, 끝을 올려서⁠. 밥을 달라고 할 때와 다르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와 다르게 울었다⁠.

“⁠배가 고프냐⁠? 내관이 생선을 안 주더냐⁠?⁠”

금손은 문 앞으로 가서 다시 울었다⁠. 왕이 일어나 앉았다⁠. 금손은 문턱에서 돌아보고 한 번 더 울었다⁠. 왕이 겉옷을 걸쳤다⁠.

문이 열리자 뜰의 나인이 보였다⁠. 등롱 불빛이 나인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나인이 이마를 박석에 댔다⁠. 늙은 내관이 놀라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네 이년⁠, 여기가 어디라고⁠…⁠.⁠”

“⁠두어라⁠.⁠”

왕은 계단 위에 섰다⁠. 금손은 계단을 내려가 나인 옆에 앉았다⁠. 나인의 앞치마에서 장독의 찬 흙 냄새가 났다⁠.

“⁠수라간 나인이냐⁠?⁠”

“⁠예⁠, 전하⁠. 금손에게 밥을 주는 나인이옵니다⁠.⁠”

“⁠의금부가 수라간을 뒤진다 들었다⁠.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흉물을 싼 베의 닭 피는 소인이 날랐사옵니다⁠.⁠”

나인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으려고 목에 힘을 준 소리였다⁠.

“⁠흉물이 나오기 사흘 전 저녁⁠, 제조상궁 마마님께서 약에 쓰신다고 닭 피 한 사발을 처소로 가져오라 하셨사옵니다⁠. 소인은 가져다 드렸사옵니다⁠. 그 밤 금손을 찾아 중궁전 뒷담에 갔다가 감나무 밑에서 등롱 불빛을 보았사옵니다⁠. 초록 저고리를 보았사옵니다⁠. 마마님께서 아무것도 못 본 것으로 하라 하셨고⁠, 소인은 그리했사옵니다⁠.⁠”

“⁠제조상궁이 너를 살렸다 하더구나⁠. 무엇으로 살렸느냐⁠?⁠”

나인의 어깨가 굳었다⁠. 금손은 나인의 무릎에 뺨을 문질렀다⁠.

“⁠두 해 전 소인이 수라간 은수저 한 벌을 훔쳤사옵니다⁠. 어미 약값으로 서문 밖 약방에 넘겼사옵니다⁠. 마마님께서 같은 수저를 맞춰 넣으시고 덮어 주셨사옵니다⁠.⁠”

왕이 오래 말이 없었다⁠. 바람이 등롱을 흔들었다⁠. 불빛이 나인과 고양이 위를 오갔다⁠.

“⁠네가 지금 무엇을 내놓는지 아느냐⁠?⁠”

“⁠제 목이옵니다⁠.⁠”

“⁠제조상궁의 목도 같이 내놓는 것이다⁠.⁠”

“⁠알고 있사옵니다⁠.⁠”

나인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다⁠. 젖은 눈으로 왕을 똑바로 보았다⁠.

“⁠중궁전 상궁들이 모르는 일로 매를 맞고 있사옵니다⁠. 소인은 아는 사람이옵니다⁠. 아는 사람이 숨어 있는 동안 모르는 사람이 맞는 것을 더는 못 보겠사옵니다⁠.⁠”

*

이튿날 아침 연옥은 대전 뜰로 끌려 나왔다⁠. 열쇠 소리 없는 발소리였다⁠. 초록 저고리 소매가 구겨져 있었다⁠. 나인은 뜰 한쪽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연옥이 나인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네가 왔구나⁠.⁠”

“⁠예⁠, 마마님⁠.⁠”

“⁠내가 너를 살렸다⁠. 은수저 일로 너는 두 해 전에 벌써 죽었을 목숨이다⁠.⁠”

“⁠그래서 왔사옵니다⁠. 마마님께서 살려 주신 목숨이니 마마님 일에 쓰고 싶지 않았사옵니다⁠. 모르는 사람들 대신 쓰겠사옵니다⁠.⁠”

연옥의 숨이 길게 나왔다⁠. 화가 난 숨이 아니었다⁠. 오래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사람의 숨이었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연옥의 숨을 들었다⁠.

“⁠전하⁠.⁠”

연옥이 엎드렸다⁠.

“⁠흉물은 소인이 묻었사옵니다⁠. 나무를 깎은 것도⁠, 못을 박은 것도⁠, 종이에 붉은 글씨를 쓴 것도 소인이옵니다⁠. 이 아이는 피 한 사발을 무엇에 쓰는지도 모르고 날랐을 뿐이옵니다⁠. 중궁전 장방 이불 속에 주머니를 넣은 것도 소인이옵니다⁠. 중전마마께서는 감나무 밑에 손끝 하나 대지 않으셨사옵니다⁠.⁠”

편전 문밖이 술렁였다⁠. 엎드린 젊은 대신들이 고개를 들었다⁠.

“⁠다만 한 가지는 거두지 않겠사옵니다⁠. 서른 해 전 역모는 거짓이옵니다⁠. 소인이 죄를 지었다 하여 아비의 무죄가 죄가 되지는 않사옵니다⁠.⁠”

*

대감은 해가 한 뼘 오르기 전에 왔다⁠. 이번에는 숨이 차 있지 않았다⁠. 진피를 천천히 씹으며 계단 아래 섰다⁠.

“⁠전하⁠, 이제 분명해졌사옵니다⁠. 역적의 딸이 서른 해 원한으로 중전마마를 모함했사옵니다⁠. 자백까지 했으니 더 물을 것이 없사옵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약을 내리시어 궁궐의 흉한 기운을 끊으소서⁠.⁠”

“⁠역모가 거짓이라는 말은 어찌하겠소⁠?⁠”

“⁠죽을 사람의 말이옵니다⁠, 전하⁠. 죽을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하옵니다⁠. 역적의 딸이 하는 말로 선왕의 국문을 다시 여시면⁠, 선왕께서 친히 정하신 일을 전하께서 뒤집으시는 것이옵니다⁠.⁠”

뒷줄에서 젊은 대신 하나가 나섰다⁠. 엿새째 편전 문밖에 엎드려 있던 대신이었다⁠.

“⁠전하⁠, 소신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중궁전 일은 밝혀졌으니 되었사옵니다⁠. 서른 해 전 일까지 들추시면 조정이 흔들리옵니다⁠.⁠”

대감이 젊은 대신을 돌아보았다⁠. 엿새 동안 서로 다른 냄새를 피우던 두 무리가 처음으로 같은 냄새를 냈다⁠. 금손은 코를 찡그렸다⁠. 영역을 두고 싸우던 수고양이들이 담 밖에서 낯선 고양이가 오면 한편이 된다⁠. 연옥은 담 밖의 고양이였다⁠.

“⁠중전은 오늘부터 문 밖에 나오셔도 좋다⁠.⁠”

왕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제조상궁은 의금부로 넘긴다⁠. 수라간 나인은 은수저를 훔친 죄로 매 스물을 치고⁠, 처분이 날 때까지 궁 안 빈 곳간에 가둔다⁠.⁠”

관원들이 연옥의 양팔을 잡았다⁠. 연옥은 끌려가다 나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관원이 팔을 당겼지만 연옥의 발은 박석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매를 맞을 때는 다리를 펴라⁠. 웅크리면 뼈가 상한다⁠. 이를 악물지 말고 혀를 입천장에 붙여라⁠.⁠”

나인이 연옥을 올려다보았다⁠. 입술이 떨렸다⁠.

“⁠마마님⁠…⁠.⁠”

“⁠스무 대면 걸을 수 있다⁠. 걸어서 곳간에 들어가라⁠. 업혀 들어가지 말고⁠.⁠”

연옥은 더 말하지 않고 관원들에게 끌려갔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내려와 계단 끝에 앉았다⁠. 연옥이 지나간 자리에 쑥물 냄새가 오래 남았다⁠.

*

매 소리는 수라간 뒤뜰에서 났다⁠. 금손은 대전 지붕 끝에 엎드려 있었다⁠. 소리가 날 때마다 귀가 뒤로 젖혀졌다⁠. 나인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열 번째 매에서 한 번⁠, 숨이 끊기는 소리가 났다⁠. 스무 번이 끝나자 내관 둘이 나인을 양쪽에서 부축해 곳간으로 데려갔다⁠. 나인의 발이 땅에 끌렸다⁠. 곳간 문이 닫혔다⁠. 빗장 소리가 났다⁠.

연옥은 의금부 관원들 사이에 끼어 궐문 밖으로 나갔다⁠. 금손은 지붕 끝을 따라 궐문까지 달렸다⁠. 궐문 기와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연옥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초록 저고리가 궐문 밖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 작아졌다⁠. 자줏빛 치마 끝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

저녁에 늙은 내관이 수라상에서 남은 전복을 들고 침전 마루로 나왔다⁠. 전복은 잘게 썰려 사기 접시에 담겨 있었다⁠. 내관은 접시를 금손 앞에 놓고 쪼그려 앉았다⁠.

“⁠먹어라⁠. 수라간 아이가 갇혔으니 오늘은 내가 먹인다⁠. 전복이다⁠. 대감들도 명절에나 먹는 것이다⁠.⁠”

금손은 전복 냄새를 맡았다⁠. 고개를 돌렸다⁠. 앞발로 접시를 한 번 밀었다⁠.

“⁠이놈 보게⁠. 전하 수라보다 입맛이 까다로우시네⁠.⁠”

금손은 마루에서 내려가 수라간 뒷문으로 갔다⁠. 해가 서쪽 담에 닿았다⁠. 쌀뜨물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른 나인 하나가 뒷문을 열고 나왔다가 고양이를 보고 바가지 물을 뿌렸다⁠. 금손은 장작더미 위로 피했다⁠. 해가 담 너머로 다 넘어갈 때까지 장작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어두워지자 금손은 곳간을 찾아갔다⁠. 수라간 곳간 뒤에 쓰지 않는 빈 곳간이 하나 있었다⁠. 문 앞에 내관 하나가 졸고 있었다⁠. 곳간 벽 높은 곳에 손바닥만 한 바람구멍이 있었다⁠. 금손은 벽에 기대 놓은 장작더미를 타고 올라가 바람구멍에 코를 넣었다⁠. 쌀뜨물 냄새가 났다⁠. 피 냄새도 났다⁠. 이번 피는 닭 피가 아니었다⁠.

“⁠금손아⁠?⁠”

나인의 목소리가 어둠 바닥에서 올라왔다⁠. 짚 위를 기는 소리가 났다⁠. 바람구멍 밑에 나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인이 손을 위로 뻗었다⁠. 손가락 끝이 금손의 수염에 겨우 닿았다⁠.

“⁠걸어서 들어왔어⁠. 마마님 말씀대로⁠. 업히지 않았어⁠.⁠”

나인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주먹밥 하나를 꺼냈다⁠. 저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밥알을 떼어 바람구멍으로 밀어 올렸다⁠. 금손은 밥알을 받아먹었다⁠. 생선이 아니었다⁠. 금손은 밥알을 다 먹었다⁠.

“⁠너 이제 누가 먹이니⁠. 전하 무릎에서 조기만 먹으면 살이 찔 텐데⁠.⁠”

나인이 웃으려다 숨을 들이켰다⁠. 다리가 아픈 사람의 숨이었다⁠. 금손은 바람구멍 턱에 몸을 말고 엎드렸다⁠. 졸던 내관이 깨어 장작더미 위의 누런 덩어리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

밤에 중전이 대전에 왔다⁠. 근신이 풀리고 처음으로 중궁전 문을 나온 걸음이었다⁠. 중전은 왕 앞에 절하고 앉았다⁠. 분과 먹 냄새가 침전에 퍼졌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중전의 손을 보았다⁠. 엄지가 먹 자국을 문지르고 있었다⁠.

“⁠전하께서 소첩을 믿어 주셔서⁠…⁠.⁠”

“⁠나는 중전을 믿지 않았소⁠. 수라간 나인이 와서 말했을 뿐이오⁠.⁠”

중전의 엄지가 멈추었다⁠. 왕은 중전을 보지 않고 등잔을 보았다⁠.

“⁠중전⁠, 서른 해 전 대감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시오⁠?⁠”

“⁠모르옵니다⁠.⁠”

“⁠정말 모르시오⁠?⁠”

중전이 대답하지 않았다⁠. 엄지가 먹 자국을 세게 문질렀다⁠. 먹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손톱 밑까지 배어 있었다⁠.

“⁠어릴 적 유모가 한 번 말해 준 적이 있사옵니다⁠. 소첩이 태어나기 전 해⁠, 아버님 사랑채에 밤마다 손님이 들끓던 겨울에⁠, 아버님이 흰 도포에 피를 묻히고 새벽에 들어오신 일이 있었다고⁠. 이튿날부터 아버님 댁 대문에 벼슬 받은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고⁠. 소첩이 아는 것은 그것뿐이옵니다⁠.⁠”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전이 절하고 물러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

*

대감은 그믐 이틀 전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침전에 들었다⁠. 의금부의 처분을 적은 글이었다⁠. 그믐 새벽에 죄인 연옥에게 사약을 내린다고 했다⁠. 대감이 종이를 서안 위에 펼쳤다⁠. 먹물을 갈아 둔 벼루가 옆에 있었다⁠.

“⁠전하⁠, 서명만 하시면 되옵니다⁠. 그믐이 지나면 궁궐의 흉한 기운도 끝나옵니다⁠.⁠”

“⁠제조상궁이 의금부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더냐⁠?⁠”

“⁠아비의 이름을 돌려 달라 한다 하옵니다⁠. 역적의 이름을 돌려주면 역적을 벤 선왕의 이름을 거두어야 하옵니다⁠. 죽은 자의 이름 하나와 산 조정을 바꾸실 수는 없사옵니다⁠.⁠”

대감의 목소리는 무겁고 느렸다⁠. 시큼한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감은 제 말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금손은 대감의 수염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았다⁠.

금손은 서안 위로 올라갔다⁠. 종이 위에 앉았다⁠. 종이가 엉덩이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상소 더미 위에 앉을 때처럼 앞발로 두어 번 꾹꾹 눌렀다⁠.

“⁠전하⁠, 고양이가⁠…⁠.⁠”

왕은 오래 금손을 보았다⁠. 붓을 들었다⁠. 붓끝에서 먹물이 한 방울 떨어져 종이 귀퉁이에 번졌다⁠. 왕의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금손의 앞발을 하나씩 들어 종이에서 내려놓았다⁠. 금손은 버둥거리지 않았다⁠. 왕의 손바닥이 차가웠다⁠.

붓이 종이에 닿았다⁠. 먹 냄새가 피어올랐다⁠. 대감이 진피를 씹는 소리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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