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77자)

느린 눈

왕의 고양이 · 강여울

편전 뜰의 박석이 햇볕에 데워지고 있었다⁠. 연옥은 엎드린 채 고개만 들고 있었다⁠. 대감은 계단 아래 서서 연옥을 내려다보았다⁠. 진피를 씹지 않는 대감의 입에서는 마른 침 냄새가 났다⁠. 금손은 어좌 계단 끝에 앉아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맡았다⁠. 한 사람의 냄새는 시큼했고 한 사람의 냄새는 조용했다⁠.

“⁠선왕께서 친히 국문하여 정하신 일이옵니다⁠, 전하⁠. 역모 편지가 나왔고⁠, 편지의 글씨를 여러 사람이 보았사옵니다⁠. 역적의 딸이 서른 해 원한을 품고 중전마마를 모함한 것이 이제 분명해졌사옵니다⁠.⁠”

“⁠소인이 원한을 품은 것은 맞사옵니다⁠.⁠”

연옥이 말했다⁠. 목소리가 박석 위로 낮게 퍼졌다⁠.

“⁠서른 해 동안 하루도 놓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원한을 품었다 하여 원한의 까닭이 거짓이 되지는 않사옵니다⁠. 아비는 그 편지를 쓰지 않았사옵니다⁠.⁠”

“⁠죽은 자는 무엇이든 쓰지 않았다 할 수 있소⁠.⁠”

“⁠산 자는 무엇이든 썼다 할 수 있지요⁠, 대감⁠.⁠”

대감의 수염이 흔들렸다⁠. 금손의 앞발이 한 번 들썩였다가 내려앉았다⁠. 왕이 손을 들었다⁠.

“⁠흉물은 누가 묻었느냐⁠?⁠”

연옥이 왕을 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편전 문밖의 젊은 대신들이 엎드린 채 고개를 들었다⁠.

“⁠말하지 않겠느냐⁠?⁠”

“⁠전하께서 서른 해 전 일을 물으시면 소인은 밤새도록 아뢰겠사옵니다⁠. 오늘 일은 소인의 입이 아닌 다른 데서 찾으셔야 하옵니다⁠.⁠”

왕은 오래 말이 없었다⁠. 금손의 등에 왕의 손이 얹혀 있었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제조상궁의 열쇠를 거두어라⁠. 처소에서 한 발도 나오지 못하게 지키고⁠, 흉물을 묻은 자는 죄인을 다스리는 의금부가 찾는다⁠.⁠”

늙은 내관이 뜰로 내려갔다⁠. 연옥은 허리춤에서 열쇠꾸러미를 풀어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내관이 받아 들자 열쇠들이 한꺼번에 울었다⁠. 울음이 그치고 나서 연옥의 허리춤은 조용했다⁠. 금손은 귀를 세웠다⁠. 연옥이 일어나 뜰을 가로질러 나갔다⁠. 발소리만 났다⁠. 열쇠 소리 없이 걷는 연옥의 발소리는 처음 들었다⁠. 다른 궁녀들의 발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

연옥이 갇히자 수라간이 어지러워졌다⁠. 곳간 열쇠를 누가 가질지를 두고 늙은 상궁 둘이 다투었고⁠, 저녁 수라는 반찬 하나가 빠진 채 올라왔다⁠. 이튿날 낮 수라는 조기가 통째로 올라왔다⁠. 볼살을 떼어 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금손은 상 모서리에서 조기 꼬리를 물고 내달렸다⁠.

“⁠전하⁠, 저놈이⁠! 수라를⁠!⁠”

늙은 내관이 엉거주춤 쫓아왔다⁠. 금손은 조기를 문 채 대전 마루를 가로지르고 편전 문턱을 넘었다⁠. 편전 문밖에는 나흘째 엎드린 젊은 대신들이 여전히 줄지어 있었다⁠. 금손은 대신들의 등을 징검다리 삼아 건넜다⁠. 조기 국물이 관복에 떨어졌다⁠. 내관은 대신들 사이로 돌아 뛰다가 맨 끝 대신의 갓을 걷어찼다⁠.

“⁠이⁠, 이 무슨⁠…⁠.⁠”

“⁠송구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금손은 대전 지붕 위에서 조기를 다 먹었다⁠. 내려다보니 내관이 갓을 주워 대신에게 씌워 주고 있었고⁠, 엎드린 대신들의 어깨가 하나씩 들썩이고 있었다⁠. 웃음을 참는 어깨였다⁠. 침전 창이 열려 있었다⁠. 왕이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왕의 어깨도 들썩였다⁠.

*

밤이 깊자 왕은 침전에서 등잔을 끄지 않았다⁠. 서안에는 북쪽에서 올라온 글이 펼쳐져 있었다⁠. 늙은 내관이 소리 내어 읽었다⁠. 세 고을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나왔다고 했다⁠. 고을을 버린 백성들이 도성 나루까지 내려와 움막을 쳤다고 했다⁠. 금손은 서안 모서리에 앉아 왕의 손등에 꼬리를 감고 있었다⁠. 나루라는 소리에 귀가 한 번 돌아갔다⁠. 강물과 개 짖는 소리와 굶은 사람들의 입냄새가 귀를 따라 돌아왔다⁠.

내관이 물러가자 왕이 금손에게 말했다⁠.

“⁠중전을 폐하라는 상소가 오늘 쉰 장이 넘었다⁠. 중전을 폐하면 대감이 무너진다⁠. 대감이 무너지면 곳간을 열 수 있다⁠. 굶는 고을 사람들은 중전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왕은 금손의 귀 뒤를 긁었다⁠. 손가락이 오래 머물렀다⁠.

“⁠제조상궁의 아비가 정말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서른 해 전 아버님께서 죄 없는 사람들을 베신 것이 된다⁠. 그 국문 뒤로 자리를 얻은 대신이 편전에 절반이다⁠. 대감 편이든 젊은 대신들 편이든⁠.⁠”

금손은 하품을 했다⁠. 왕은 웃지 않았다⁠.

“⁠너는 좋겠다⁠. 묻힌 것이 있으면 파면 되니⁠.⁠”

왕이 등잔을 껐다⁠. 어둠 속에서 왕의 숨이 오래 고르지 못했다⁠. 금손은 왕의 가슴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숨이 오르내릴 때마다 금손의 몸도 같이 오르내렸다⁠. 한참 뒤에야 왕의 숨이 느려졌다⁠.

*

그믐이 가까워지자 밤이 길어졌다⁠. 달이 손톱만큼 남았다⁠. 금손은 중궁전 담 위에서 삼색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숲에서 검은 수고양이가 나왔다⁠. 이번에는 대숲 가장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담 끝을 넘어 중궁전 담 위로 올라왔다⁠. 삼색이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두 고양이가 담 위에서 엉겨 붙었다⁠. 털이 날렸다⁠. 삼색이는 늙었고 검은 수컷은 무거웠다⁠. 삼색이가 담에서 밀려 떨어질 뻔하다가 기와 끝에 발톱을 박았다⁠. 검은 수컷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앞발을 들었다⁠.

금손이 두 고양이 사이로 뛰어들었다⁠. 등을 둥글게 말고 옆걸음으로 검은 수컷 앞을 가로막았다⁠. 꼬리털을 다 부풀리자 몸이 한 배 반으로 커 보였다⁠. 검은 수컷이 낮게 울었다⁠. 금손은 더 낮게 울었다⁠. 수구 앞에서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여기는 삼색이의 담이었지만 삼색이의 담 옆이 금손의 지붕이었다⁠.

검은 수컷이 앞발을 휘둘렀다⁠. 금손의 콧등이 쓰라렸다⁠. 금손은 물러서지 않았다⁠. 검은 수컷의 눈을 정면으로 보고⁠, 귀를 눕히고⁠, 울었다⁠. 한참 뒤 검은 수컷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것은 고양이끼리는 진 것이었다⁠. 검은 수컷은 천천히 담을 따라 대숲으로 돌아갔다⁠.

삼색이가 기와 위로 기어 올라와 금손의 콧등을 핥았다⁠. 피 맛이 났다⁠. 이번에는 금손 자신의 피였다⁠.

*

연옥의 처소 앞에는 내관 둘이 지키고 있었다⁠. 내관들은 문 앞만 보았다⁠. 금손은 처소 뒤로 돌아가 바람구멍 살창을 찾았다⁠. 살 사이가 좁았다⁠. 머리를 넣고 어깨를 비틀자 털이 살에 쓸렸다⁠. 몸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방은 어두웠다⁠. 등잔 하나가 낮게 타고 있었다⁠. 연옥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열쇠꾸러미가 없는 허리춤에 두 손이 얹혀 있었다⁠. 앞에 놓인 저녁상은 그대로였다⁠. 밥과 국과 생선 한 토막⁠.

연옥이 금손을 보았다⁠. 놀라지 않았다⁠.

“⁠콧등을 다쳤구나⁠.⁠”

금손은 상 가까이 가서 앉았다⁠. 생선 냄새가 났다⁠. 연옥이 젓가락을 들어 생선 살을 발랐다⁠. 가시를 하나씩 빼고 살을 상 아래 방바닥에 놓았다⁠. 왕이 하는 것과 같은 손짓이었다⁠. 손이 더 빨랐다⁠. 날마다 남의 상을 차려 온 손이었다⁠.

“⁠너를 버리라 한 것도 나고⁠, 살려 두라 한 것도 나다⁠. 짐승이 헷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금손은 생선 살을 먹었다⁠. 연옥은 자기 밥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등잔불이 연옥의 옆얼굴을 반만 비추었다⁠.

“⁠열한 살이었다⁠. 아비는 외직에 나가 있어서 집에 없었다⁠. 포졸들이 새벽에 대문을 부쉈고⁠, 마당에 횃불이 스무 개쯤 들어왔다⁠. 오라비 둘은 사랑채에서 끌려 나갔다⁠. 막내는 일곱 살이었다⁠. 막내가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횃불에 끌려 나올 때 나는 장독 뒤에서 보고 있었다⁠.⁠”

연옥은 담담했다⁠. 말과 말 사이에 숨을 고르지 않았다⁠. 금손은 숨이 고른 사람의 말을 오래 들었다⁠. 생선 살을 다 먹고 앞발을 핥았다⁠.

“⁠중전마마께서 무슨 죄가 있느냐 묻는다면⁠, 내 막내는 무슨 죄가 있었느냐 물을 것이다⁠. 나는 대감의 딸에게 집을 잃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싶었다⁠. 대감이 딸의 자리와 함께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대감이 편지 한 장으로 한 일을 나는 흉물 하나로 하려 했다⁠.⁠”

연옥이 금손을 보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금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이 고양이의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사람은 고양이의 말을 모른다⁠. 연옥의 눈꺼풀은 천천히 내려왔다가 천천히 올라갔다⁠. 너를 치지 않겠다는 말⁠. 금손은 한참 연옥의 눈을 보다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관비로 들어와 처음 몇 해는 곳간에서 잤다⁠. 곳간 고양이들과 같이⁠. 고양이들이 이렇게 하더구나⁠. 서로⁠.⁠”

연옥이 처음으로 아주 조금 웃었다⁠.

“⁠그믐마다 침방 뒤 은행나무 밑에 물 한 그릇을 놓았다⁠. 서른 해 동안⁠. 이번 그믐은 못 가겠구나⁠.⁠”

*

살창 밖에서 쌀뜨물 냄새가 났다⁠. 나인의 목소리가 살창 틈으로 들어왔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마마님⁠. 마마님⁠, 저예요⁠.⁠”

연옥이 살창으로 다가갔다⁠. 금손은 연옥의 발치에 앉았다⁠. 살창 너머 어둠 속에 나인의 얼굴이 반쯤 보였다⁠.

“⁠여기 오면 안 된다⁠. 내관들이 앞에 있다⁠.⁠”

“⁠마마님⁠, 그 닭 피요⁠. 약에 쓰신다던 그 피⁠. 그걸 감나무 밑에 묻으신 거예요⁠?⁠”

“⁠네가 모르는 것이 너를 살린다⁠. 의금부에서 묻거든 모른다고 해라⁠.⁠”

“⁠중궁전 상궁들이 매를 맞고 있어요⁠. 본방상궁은 다리를 못 써요⁠. 모르는 사람들이 매를 맞고 있다고요⁠.⁠”

“⁠내 어미도 몰랐다⁠.⁠”

연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살창의 대나무 살이 연옥의 손에 쥐였다⁠.

“⁠매는 원래 모르는 사람이 맞는다⁠. 서른 해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궁은 원래 그렇다⁠. 네가 나서면 모르는 사람 하나가 더 맞을 뿐이다⁠.⁠”

“⁠그래도⁠…⁠.⁠”

“⁠가거라⁠. 너는 은수저 일도⁠, 닭 피 일도 모른다⁠. 내가 너를 위해 묻어 둔 것을 네 손으로 파내지 마라⁠.⁠”

나인이 울었다⁠.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숨만 셋으로 끊겼다⁠. 살창 너머로 나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연옥은 살창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

금손은 나인을 따라갔다⁠. 나인은 처소로 가지 않고 수라간 뒷문 장작더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금손이 무릎에 올라가자 나인이 두 팔로 감쌌다⁠.

수라간 대문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횃불 냄새가 담을 넘어왔다⁠. 송진과 기름 타는 냄새였다⁠. 대문이 열리고 낯선 목소리가 수라간 마당을 울렸다⁠.

“⁠의금부에서 왔다⁠! 수라간 사람들은 다 나와라⁠!⁠”

나인이 금손을 안고 장독 뒤로 숨었다⁠. 장독은 차가웠다⁠. 금손의 등에 나인의 심장이 뛰었다⁠. 들쥐의 심장보다 빨랐다⁠.

“⁠흉물을 싼 베에서 닭 피가 나왔다⁠. 수라간 늙은 숙수가 기억하더라⁠. 흉물이 나오기 사흘 전 저녁⁠, 닭 피 한 사발을 받아 들고 수라간을 나간 나인이 있었다고⁠. 그 나인은 앞으로 나와라⁠!⁠”

마당에 나온 나인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횃불이 하나씩 얼굴을 비추었다⁠. 허리가 굽은 늙은 숙수가 관원 뒤에서 횃불 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숙수의 손에서 날마다 닭 목을 비트는 사람의 기름 냄새가 났다⁠.

“⁠얼굴을 보면 알겠느냐⁠?⁠”

“⁠어두워서⁠…⁠. 키가 작고⁠, 손이 빨랐사옵니다⁠. 금손을 먹이던 아이 같기도 하고⁠…⁠.⁠”

관원이 횃불을 장독대로 돌렸다⁠. 불빛이 장독 어깨를 타고 넘어왔다⁠. 금손은 장독 어깨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노란 눈 두 개가 불빛을 받았다⁠.

“⁠고양이로군⁠.⁠”

관원이 혀를 차고 횃불을 거두었다⁠. 불빛이 다시 마당 가운데로 돌아갔다⁠. 장독 뒤에서 나인이 금손을 꽉 끌어안았다⁠. 금손은 버둥거리지 않았다⁠.

나인이 금손을 내려놓았다⁠. 일어나서 앞치마를 털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가자⁠, 금손아⁠.⁠”

나인은 수라간 마당으로 가지 않았다⁠. 장작더미 옆 쪽문을 열고 대전으로 가는 회랑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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