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58자)

두 번째 주머니

왕의 고양이 · 강여울

금손은 사발 앞에서 앉지도 서지도 않고 엉덩이를 반쯤 든 채 멈춰 있었다⁠. 조기 냄새가 코를 당겼다⁠. 조기 밑의 겁먹은 땀 냄새가 코를 밀어냈다⁠. 대나무 막대가 자루 입구를 받치고 있었고⁠, 막대 끝의 노끈이 장작더미 뒤로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 노끈이 바람도 없는데 조금 떨렸다⁠. 노끈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금손은 사발을 건너뛰지 않았다⁠. 사발 옆으로 돌아가 막대를 앞발로 툭 쳤다⁠. 흔들리는 것을 보면 앞발이 먼저 나간다⁠. 막대가 쓰러지고 자루가 아무것도 없는 바닥 위로 털썩 내려앉았다⁠.

장작더미 뒤에서 젊은 내관이 튀어나왔다⁠. 노끈을 당기는 것과 동시에 덮치려던 내관은 자루가 먼저 떨어진 것을 보고 멈추려다 장작 끝에 발끝이 채였다⁠.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쓰러진 자루 위로 엎어지면서 두 손으로 자루를 끌어안았고⁠, 자루 입구가 내관의 머리를 덮었다⁠. 내관이 자루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동안 금손은 사발의 조기를 다 먹고 장작더미 꼭대기로 올라가 앉았다⁠.

“⁠누구요⁠? 거기 누구요⁠?⁠”

등롱이 다가왔다⁠. 나인이었다⁠. 처소에서 금손이 없어진 것을 알고 맨발로 뛰어나온 참이었다⁠. 불빛이 자루를 뒤집어쓴 내관을 비추었다⁠. 내관이 자루를 벗고 일어났다⁠. 얼굴에 장작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밤에 수라간 뒤에서 무얼 하십니까⁠?⁠”

“⁠내⁠, 내가 무얼 하든 수라간 나인이 물을 일이 아니다⁠.⁠”

“⁠대전 고양이를 자루에 넣어 어디로 가져가려 하셨습니까⁠?⁠”

“⁠고양이라니⁠. 쥐를 잡으려던 참이다⁠.⁠”

“⁠쥐를 잡으시면서 수라상 조기를 미끼로 쓰셨어요⁠? 그 조기 한 마리면 쥐가 백 마리는 꾀겠네요⁠.⁠”

내관의 얼굴이 등롱 불빛 아래서 붉어졌다⁠. 손이 고운 내관은 자루를 둘둘 말아 쥐었다⁠.

“⁠대감마님 분부다⁠. 궁궐에 요물을 두면 전하께 해롭다고⁠…⁠.⁠”

말해 놓고 내관이 입을 다물었다⁠. 나인이 등롱을 한 걸음 내밀었다⁠.

“⁠제조상궁 마마님께 여쭐까요⁠? 대감마님 분부로 수라간 조기를 꺼내 가셨다고요⁠.⁠”

내관은 대답하지 않고 담 그늘로 빠져나갔다⁠. 발소리가 급했다⁠. 나인이 장작더미를 올려다보았다⁠. 금손은 앞발로 수염의 조기 기름을 닦고 있었다⁠.

“⁠너 정말 요물 맞는 거 아니야⁠?⁠”

*

이튿날 낮 수라 때 젊은 내관이 수라상 곁에 엎드려 있었다⁠. 대감의 줄을 타고 대전에 들어온 내관이라 수라 시중에도 끼었다⁠. 이마에 장작에 긁힌 붉은 줄이 두 개 나 있었다⁠. 금손은 상 모서리에 앞발을 얹다 말고 내관을 보았다⁠. 겁먹은 땀 냄새가 났다⁠. 어젯밤과 같은 냄새였다⁠. 금손은 내관을 향해 꼬리를 높이 세우고 천천히 걸어갔다⁠. 내관의 무릎 앞에 앉아 고개를 갸웃했다⁠. 내관이 무릎걸음으로 한 뼘 물러났다⁠.

“⁠네 이마는 어찌 된 것이냐⁠?⁠”

왕이 물었다⁠.

“⁠쥐⁠, 쥐를 잡다가 다쳤사옵니다⁠, 전하⁠.⁠”

“⁠쥐를 잡다가⁠.⁠”

왕이 조기 볼살을 떼어 상 아래로 내렸다⁠. 금손은 내관을 보면서 볼살을 먹었다⁠.

“⁠쥐 잡는 일은 금손에게 배우게⁠. 이놈은 다치는 법이 없다⁠.⁠”

기미상궁이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었다⁠. 젊은 내관의 목덜미가 귀까지 붉어졌다⁠.

*

이튿날 해 질 무렵 중궁전 담 위에서 삼색이가 비명을 질렀다⁠. 후원 대숲 가장자리를 검은 수고양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수컷은 삼색이를 보지도 않았다⁠. 삼색이는 귀를 등에 붙이고 꼬리를 부풀리고⁠, 담을 따라 검은 수컷을 쫓으며 울었다⁠. 담이 끝나는 데서 멈추었다⁠. 담 끝 너머는 대숲이었다⁠. 삼색이는 한 번도 담 끝을 넘지 못했다⁠.

금손은 담 아래 기와에 앉아 있었다⁠. 금손이 궁궐에 오기 전의 일이었다⁠. 오래전 봄 삼색이는 처음으로 새끼를 낳았다⁠. 대숲을 막 차지한 검은 수컷은 새끼들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 늙은 고양이들의 몸에는 그런 냄새가 남는다⁠. 해마다 봄이면 삼색이는 대숲 쪽으로 머리를 두고 울었다⁠. 이길 수 없는 수컷이었다⁠. 이기지 못해도 삼색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검은 수컷이 대숲으로 사라졌다⁠. 삼색이는 한참 담 끝에 앉아 있다가 돌아와 금손 옆에 몸을 눕혔다⁠. 찢긴 왼쪽 귀가 떨렸다⁠. 금손은 삼색이의 귀를 한 번 핥았다⁠. 삼색이가 처음으로 피하지 않았다⁠.

*

대전에서는 사흘 안에 문초를 끝내라는 말이 나왔다⁠. 늙은 내관이 왕에게 아뢰는 것을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들었다⁠. 젊은 대신들이 편전 문밖에 엎드려 물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중궁전 궁녀 가운데 입을 연 사람은 아직 없었다⁠.

밤에 열쇠 소리가 중궁전으로 갔다⁠. 나인은 처소에서 잠들어 있었고 금손은 문풍지 구멍을 빠져나와 열쇠 소리를 따라갔다⁠. 연옥은 중궁전 마당을 지나 중전이 자는 방 옆의 장방으로 갔다⁠. 이불과 옷감을 쌓아 두는 방이었다⁠. 연옥이 열쇠 하나를 골라 자물쇠를 열었다⁠. 등롱이 장방 안으로 들어갔다⁠.

금손은 장방 문 앞으로 갔다⁠. 창호지가 등롱 빛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안이 보이지 않았다⁠. 금손은 앞발 하나를 들어 창호지 아래 귀퉁이를 꾹 눌렀다⁠. 종이가 손톱 끝에 찢어지며 콩알만 한 구멍이 났다⁠. 금손은 구멍에 눈을 댔다⁠.

연옥이 시렁 위의 이불 더미를 한 채씩 들어 올렸다⁠. 맨 아래 이불과 바로 위 이불 사이로 손을 넣었다가 뺐다⁠. 손에 들려 있던 작은 주머니가 없어졌다⁠. 피와 쇠 냄새가 창호지 구멍으로 새어 나왔다⁠. 감나무 밑의 냄새와 같았다⁠. 이번 피는 더 새것이었다⁠.

연옥이 등롱을 들고 돌아서다 창호지를 보았다⁠. 귀퉁이에 콩알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 너머가 비어 있었다⁠. 금손은 이미 마루 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연옥은 구멍 앞에 오래 서 있다가 자물쇠를 잠그고 나갔다⁠.

장방 뒤쪽 벽에 바람구멍으로 낸 살창이 있었다⁠. 대나무 살 하나가 오래전에 부러져 있었다⁠. 금손은 부러진 살 틈에 머리를 넣었다⁠. 수구의 쇠창살보다는 넓었다⁠. 장방 안은 솜과 좀약 냄새로 꽉 차 있었다⁠. 금손은 시렁으로 뛰어올라 이불 사이에 앞발을 넣었다⁠. 주머니 끈이 발톱에 감겼다⁠.

이번에는 왕에게 가져가지 않았다⁠. 지난번 먹이를 바친 뒤에 일어난 일을 금손의 몸은 기억했다⁠. 왕은 칭찬하지 않았고⁠, 이튿날 밤 광주리가 왔다⁠. 금손은 주머니를 맡았다⁠. 피와 쇠 밑에 연옥의 손바닥 냄새가 가장 짙었다⁠. 냄새의 주인은 하나뿐이었다⁠. 남의 마당에 숨긴 먹이는 숨긴 짐승의 굴 앞에 갖다 두는 것이 맞았다⁠.

연옥의 처소 댓돌에는 연옥의 꽃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금손은 주머니를 꽃신 사이에 내려놓았다⁠. 젖은 주머니 위에 누런 털 몇 가닥이 붙었다⁠.

*

이튿날 아침 연옥은 중궁전 마당에 늙은 상궁 넷을 불러 세웠다⁠. 대전에서 보낸 내관도 하나 따라왔다⁠. 금손은 처마 그늘에서 지켜보았다⁠.

“⁠장방을 뒤진다⁠. 중궁전 물건 하나하나를 상궁들이 보는 앞에서 연다⁠.⁠”

중전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근신 중인 사람은 마당에 나오지 않는 법이었지만 중전은 툇마루 끝까지 나와 섰다⁠.

“⁠제조상궁이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흉물이 하나만 있으란 법은 없사옵니다⁠, 마마⁠.⁠”

장방 자물쇠가 열렸다⁠. 상궁들이 이불을 한 채씩 내려 마당에 펼쳤다⁠. 솜이 날렸다⁠. 맨 아래 이불까지 다 내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연옥이 직접 시렁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손이 빈 채로 나왔다⁠. 연옥의 숨이 한 번 막혔다⁠.

중전이 툇마루에서 내려왔다⁠. 맨발이었다⁠. 펼쳐진 이불을 밟고 연옥 앞까지 걸어왔다⁠.

“⁠찾던 것이 없느냐⁠?⁠”

“⁠…⁠.⁠”

“⁠흉물이 하나만 있으란 법이 없다면⁠, 하나 더 있을 자리도 네가 아는 모양이로구나⁠. 네가 넣어 둔 것이냐⁠, 제조상궁⁠?⁠”

“⁠마마⁠, 말씀을 삼가소서⁠.⁠”

“⁠삼갈 사람은 내가 아니다⁠.⁠”

중전의 엄지가 먹 자국을 문지르지 않았다⁠. 손이 치마 옆에서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마당 끝에서 본방상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회초리를 맞은 다리를 끌고 와서 웃었다⁠.

연옥은 허리를 굽혔다⁠. 열쇠꾸러미가 울었다⁠.

“⁠소인이 지나쳤사옵니다⁠. 물러가겠사옵니다⁠.⁠”

연옥이 장방 창호지를 한 번 보았다⁠. 콩알만 한 구멍⁠. 그리고 처마 그늘을 보았다⁠. 금손은 꼬리를 높이 세운 채 앉아 있었다⁠.

*

연옥은 처소 댓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꽃신 사이에 젖은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누런 털이 붙은 주머니였다⁠. 금손은 처소 처마 끝에 앉아 있었다⁠. 연옥이 주머니를 집어 들고 고개를 들었다⁠. 눈과 눈이 처마 높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너는 내가 묻는 것마다 파내는구나⁠.⁠”

연옥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가 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금손은 꼬리를 바닥에 탁 쳤다⁠.

“⁠서른 해 전 우리 집 마당에도 너 같은 것이 하나 있었더라면⁠.⁠”

연옥은 주머니를 들고 방에 들어가 화로에 넣었다⁠. 베 타는 냄새와 피 타는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쇠는 타지 않았다⁠. 재 속에서 녹슨 못 몇 개가 검게 남았다⁠.

*

편전 문밖 박석 위에 젊은 대신들이 줄지어 엎드려 있었다⁠. 사흘째였다⁠. 등이 둥글게 솟은 관복 여덟 벌이 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금손은 대전 지붕에서 내려와 편전으로 가는 길에 첫 번째 등에 올라갔다⁠. 관복은 햇볕에 데워져 따뜻했다⁠. 두 번째 등⁠, 세 번째 등⁠. 대신들은 엎드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엎드려 있는 것이 상소의 일이었다⁠. 다섯 번째 대신이 끙 소리를 냈다⁠. 금손은 마지막 등에서 문턱으로 뛰어내렸다⁠. 문 안에서 늙은 내관이 입을 막고 돌아섰다⁠.

낮 조회가 끝날 무렵 대감이 앞으로 나왔다⁠. 진피를 씹지 않았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대감의 수염을 보았다⁠. 수염이 흔들리지 않았다⁠.

“⁠전하⁠, 중궁전 흉물을 누가 묻었는지 소신이 알아냈사옵니다⁠. 제조상궁의 내력을 캐 보았사옵니다⁠. 제조상궁은 서른 해 전 선왕께서 역모로 다스리신 집안의 딸이옵니다⁠. 아비와 오라비들이 목을 내놓았고⁠, 열한 살 계집아이 하나가 관비가 되어 궁에 들어왔사옵니다⁠. 관청에 딸린 종이었던 계집이 이름을 바꾸고 궁녀가 되어 제조상궁까지 올랐사옵니다⁠.⁠”

편전이 조용해졌다⁠. 왕의 무릎이 굳었다⁠.

“⁠역적의 딸이 원한을 품고 중전마마를 모함하려 흉물을 묻은 것이옵니다⁠. 그 원한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전하께서 아실 것이옵니다⁠. 서른 해 전 그 집안을 고발한 사람이 소신이었사옵니다⁠.⁠”

대감이 종이를 내관에게 넘겼다⁠. 서른 해 전 관청에서 종을 받아들일 때 쓴 문서를 베낀 것이었다⁠. 종이에서 오래 묵은 곰팡이와 관청 창고의 냄새가 났다⁠. 금손이 처음 맡는 냄새였다⁠. 왕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내관이 종이를 두 손에 받쳐 든 채 계단 밑에서 기다렸다⁠. 왕의 손가락이 금손의 등을 쥐었다가 놓았다⁠. 누런 털 몇 가닥이 왕의 손가락 사이에 남았다⁠.

“⁠제조상궁을 들라 하라⁠.⁠”

연옥은 편전 뜰에 엎드렸다⁠. 초록 저고리와 자줏빛 치마가 박석 위에 납작하게 펼쳐졌다⁠. 열쇠꾸러미가 박석에 닿아 소리를 냈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일어나 어좌 계단 끝까지 걸어 나갔다⁠. 털을 세우지 않았다⁠. 귀를 앞으로 세우고 뜰을 내려다보았다⁠.

“⁠대감의 말이 맞느냐⁠?⁠”

연옥이 엎드린 채 고개를 들었다⁠.

“⁠맞사옵니다⁠, 전하⁠. 소인의 아비는 선왕께서 역적으로 베신 분이옵니다⁠. 소인은 아비의 이름을 버리고 이 궁에서 서른 해를 살았사옵니다⁠.⁠”

대감의 숨이 길게 나왔다⁠. 연옥은 대감을 보지 않고 왕을 보았다⁠.

“⁠그리고 그 역모 편지를 쓴 손은⁠, 지금 전하 앞에 서 있는 저 대감의 손이옵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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