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83자)

무청 한 잎

왕의 고양이 · 강여울

광주리 뚜껑이 열린 곳은 강물 냄새가 나는 나루였다⁠. 남새 장수가 광주리를 모래 위에 기울였고⁠, 금손은 무청과 함께 모래로 쏟아졌다⁠. 발밑이 차고 축축했다⁠. 사방에서 낯선 냄새가 몰려왔다⁠. 생선 비린내는 수라간의 것보다 독했고⁠, 젖은 밧줄과 뱃사공의 땀과 개똥이 뒤섞여 있었다⁠.

“⁠궁 고양이야⁠, 강 냄새 맡고 살아 보거라⁠. 거기보다 먹을 건 없어도 맞을 일도 없다⁠.⁠”

남새 장수는 빈 광주리를 달구지에 던져 넣고 소를 몰아 떠났다⁠. 바퀴 소리가 멀어지자 개 짖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루 끝 움막에서 누렁개 두 마리가 뛰어나왔다⁠. 금손은 꼬리를 부풀리고 뒷걸음질 치다가 뱃전에 매인 나룻배 위로 뛰어올랐다⁠. 개들이 물가에서 짖었다⁠. 배가 흔들렸다⁠. 금손은 흔들리는 바닥에 네 발톱을 다 박고 버텼다⁠. 궁궐에는 흔들리는 바닥이 없었다⁠.

뱃전 너머 움막 앞에 사람들이 모여 불을 쬐고 있었다⁠. 누더기에서 나무 연기와 굶은 사람의 시큼한 입냄새가 났다⁠. 북쪽 말씨를 쓰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고을에 남은 게 없어⁠. 조 한 됫박이 쌀 한 됫박 값이라니까⁠.⁠”

“⁠도성에 오면 곳간을 연다더니⁠, 열 기미가 없어⁠.⁠”

“⁠곳간이 문제냐⁠. 중전마마가 임금을 저주했다더라⁠. 궁궐 마당에서 피 묻은 인형이 나왔대⁠.⁠”

“⁠누가 그래⁠?⁠”

“⁠시전 바닥에 다 퍼졌어⁠. 고양이가 파냈다던데⁠.⁠”

사람들이 웃었다⁠. 웃음 끝에 누군가 기침을 오래 했다⁠. 금손은 제 이야기인 줄 몰랐다⁠. 고양이라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귀가 한 번씩 돌아갔을 뿐이다⁠.

*

금손은 바람을 맡았다⁠. 강바람은 남쪽에서 불어왔다⁠. 남쪽에는 물과 모래뿐이었다⁠. 바람이 한 번 북쪽으로 돌았을 때⁠, 아주 옅은 냄새가 섞여 왔다⁠. 수천 개의 아궁이에서 나는 연기 냄새 밑에⁠, 오래 태운 침향 한 가닥⁠. 날마다 어좌 방석에서 맡던 냄새였다⁠. 금손은 개들이 움막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배에서 내려 둑을 따라 걸었다⁠.

도성은 담과 지붕으로 이어져 있었다⁠. 궁궐보다 담이 낮았고 지붕이 촘촘했다⁠. 금손은 땅으로 다니지 않았다⁠. 땅에는 개와 사람과 수레가 있었다⁠. 행랑 지붕에서 행랑 지붕으로⁠, 초가 처마에서 기와 처마로 건너갔다⁠. 시전 거리에서 고양이 셋이 금손의 길을 막았다⁠. 생선 가게 뒤를 영역으로 삼은 들고양이들이었다⁠. 금손은 꼬리를 높이 세우고 천천히 지나가려 했다⁠. 들고양이들은 궁궐의 인사를 몰랐다⁠. 하나가 달려들어 금손의 엉덩이를 물었다⁠. 금손은 지붕에서 굴러떨어져 무 더미 위에 처박혔다⁠. 무청 한 잎이 꼬리에 붙었다⁠. 떼어 낼 틈이 없었다⁠. 금손은 무 더미를 박차고 다시 지붕으로 올라갔다⁠.

새벽 닭이 울 무렵 궁궐 담이 보였다⁠. 담은 높았고 담 위에 기와가 덮여 있어 발 디딜 데가 없었다⁠. 담 밑으로 궁궐 물이 빠져나오는 수구가 있었다⁠. 돌로 쌓은 물길 입구에 쇠창살이 박혀 있었고⁠, 창살 사이로 검은 물이 흘렀다⁠. 쇠창살은 녹슬어 있었다⁠. 피는 없고 쇠만 있는 냄새였다⁠. 금손은 물에 발을 담갔다⁠. 차가웠다⁠. 털이 몸에 들러붙었다⁠. 창살 사이에 머리를 넣고⁠, 어깨를 넣고⁠, 숨을 뱉어 배를 홀쭉하게 만든 뒤 뒷다리로 바닥을 찼다⁠. 몸이 창살 안쪽으로 빠져나갔다⁠.

수구 안쪽은 후원 대숲이었다⁠. 검은 수고양이의 영역이었다⁠. 대숲 그늘에서 검은 수컷이 걸어 나왔다⁠. 금손보다 머리 하나가 컸고 목둘레가 두꺼웠다⁠. 젖고 지친 누런 고양이를 보고 검은 수컷은 귀를 눕혔다⁠. 금손도 귀를 눕혔다⁠. 꼬리를 부풀리자 젖은 털에서 물이 튀었다⁠. 검은 수컷이 낮게 울었고⁠, 금손이 더 낮게 울었다⁠. 검은 수컷이 한 발 다가오자 금손은 대나무를 타고 올라가 담 위로 뛰었다⁠. 등 뒤에서 대나무가 휘청이는 소리가 났다⁠. 금손은 돌아보지 않고 담을 따라 달려 대전 지붕에 내려앉았다⁠. 제 지붕이었다⁠. 기와가 발바닥에 닿자 다리가 풀렸다⁠.

*

아침 조회 때 늙은 내관이 편전 문을 열고 먼지떨이를 떨어뜨렸다⁠. 어좌 방석 위에 누런 고양이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털은 진흙으로 뭉쳐 있었고⁠, 꼬리 끝에 시든 무청 한 잎이 붙어 있었다⁠.

“⁠전⁠, 전하⁠! 저놈이⁠, 저놈이 또⁠…⁠.⁠”

왕이 문턱에서 멈추었다⁠. 왕의 숨이 한 번 끊겼다⁠. 왕은 계단을 올라가 방석 앞에 쪼그려 앉았다⁠. 금손은 눈을 반쯤 떴다가 다시 감았다⁠. 왕이 금손의 꼬리에서 무청을 떼어 들었다⁠. 손끝이 떨렸다⁠.

왕이 웃었다⁠. 소리를 내어 웃었다⁠. 편전 문턱의 대신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흉물이 나온 뒤로 왕이 웃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무를 한 잎 얻어 왔구나⁠. 수라간에서는 무청도 안 주더냐⁠?⁠”

왕은 금손을 안아 무릎에 올리고 방석에 앉았다⁠. 진흙이 붉은 곤룡포에 묻었다⁠. 내관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조회가 시작되자 대감이 앞으로 나왔다⁠. 진피 냄새가 계단 밑까지 왔다⁠.

“⁠전하⁠, 소신이 들은 바로는 저 짐승을 어젯밤 강 건너 나루에 버렸다 하옵니다⁠. 사람 걸음으로 반나절인 길을 짐승이 하룻밤에 돌아왔사옵니다⁠. 궁궐 담을 넘어서⁠. 이것이 요물이 아니면 무엇이옵니까⁠?⁠”

젊은 대신 하나가 뒷줄에서 나섰다⁠.

“⁠요물이든 아니든 흉물은 사람이 묻은 것입니다⁠. 고양이 핑계로 중궁전 일을 덮으려 하시면 백성들은 왕실이 저주를 덮었다 할 것이옵니다⁠. 시전에 벌써 소문이 돌고 있사옵니다⁠.⁠”

“⁠중전을 폐하라는 말을 고양이 핑계로 하는 것은 누구인가⁠?⁠”

대감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젊은 대신의 목에서 핏줄이 섰다⁠. 편전이 둘로 갈라졌다⁠. 앞줄과 뒷줄이 서로 다른 냄새를 피웠다⁠. 금손의 귀에 두 무리의 소리는 담 위에서 우는 수고양이들의 소리였다⁠. 영역을 놓고 우는 소리⁠. 한쪽이 지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소리⁠.

왕이 손을 들었다⁠. 소리가 가라앉았다⁠.

“⁠대감은 내 고양이를 누가 버렸는지 아시오⁠?⁠”

대감이 입을 다물었다⁠.

“⁠버린 사람을 알면서 짐승이 돌아온 것만 탓하시오⁠? 나는 내 고양이를 누가 내다 버렸는지부터 묻겠소⁠. 그리고 저녁마다 제 집에 돌아가는 경들이 요물이 아니듯⁠, 아침에 제 방석으로 돌아온 고양이도 요물이 아니오⁠.⁠”

뒷줄에서 웃음이 새었다⁠. 대감의 목덜미에서 시큼한 땀이 났다⁠. 대감은 허리를 굽혔다⁠. 굽힌 허리 위로 하얀 수염이 흔들렸다⁠. 금손은 앞발을 내밀다가 왕의 손에 붙잡혔다⁠.

“⁠오늘은 참아라⁠.⁠”

*

낮 수라에 왕은 조기를 통째로 상 아래로 내렸다⁠. 기미상궁이 은 젓가락을 든 채 굳었다⁠. 금손은 조기를 대가리부터 먹었다⁠. 왕은 숟가락을 들지 않고 금손이 먹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무청이 붙어 왔다⁠. 수라간에 무를 대는 것은 남새 수레다⁠. 남새 수레는 수라간 대문으로 드나든다⁠.⁠”

기미상궁의 젓가락 끝이 놋그릇에 부딪혀 짤랑 소리를 냈다⁠.

“⁠전하⁠, 소인은 아무것도⁠…⁠.⁠”

“⁠너에게 묻지 않았다⁠. 금손에게 말하는 것이다⁠.⁠”

왕은 금손의 귀 뒤를 긁었다⁠. 손가락이 귀 뒤에서 오래 머물렀다⁠.

“⁠너를 버린 손이 수라간에 있다⁠. 누구의 손인지 알면 나는 그 손을 벌해야 한다⁠. 벌하면 네 밥 주는 손이 하나 줄겠지⁠. 수라간에서 너를 먹이는 손이 몇이나 되느냐⁠?⁠”

금손은 조기 뼈를 발라 먹느라 대답하지 않았다⁠. 왕은 결국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세 숟갈 뜨고 상을 물렸다⁠. 상을 물리면서 기미상궁에게 일렀다⁠.

“⁠수라간 대문을 드나든 수레를 묻지 마라⁠. 묻지 말라고 한 것도 묻지 마라⁠.⁠”

*

낮에 중궁전 마당에서 문초가 열렸다⁠. 금손은 중궁전 처마 그늘에 엎드려 지켜보았다⁠. 감나무 밑의 구덩이는 메워져 있었고 국화 화분은 치워져 있었다⁠. 궁녀들이 줄지어 무릎을 꿇었다⁠. 연옥이 한 사람씩 앞으로 불러 물었다⁠. 감나무 밑에 누가 갔느냐⁠. 밤에 마당에 나온 사람이 있느냐⁠. 마마께서 요즘 누구에게 글을 쓰셨느냐⁠.

본방상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옥이 손짓하자 내관 둘이 본방상궁의 팔을 잡았다⁠. 회초리 소리가 마당을 세 번 갈랐다⁠. 본방상궁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당의 다른 궁녀들이 대신 숨을 들이켰다⁠. 금손의 귀가 소리 날 때마다 뒤로 젖혀졌다⁠.

중궁전 문 안에서 먹 가는 소리가 멎었다⁠. 한참 뒤 다시 났다⁠.

연옥이 고개를 들었다⁠. 처마 그늘의 노란 눈 두 개를 보았다⁠. 연옥의 숨이 처음으로 흐트러졌다⁠. 짧게 한 번⁠, 들이쉬다 만 숨이었다⁠. 연옥은 문초를 멈추고 궁녀들을 물렸다⁠.

궁녀들이 다 나간 뒤 금손은 처마에서 툇마루로 내려왔다⁠. 중궁전 문 앞에는 내관 하나가 지키고 서 있었다⁠. 내관은 고양이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금손은 문지방 밑 틈에 코를 대었다⁠. 분과 먹 냄새가 새어 나왔다⁠. 문이 한 뼘 열렸다⁠.

“⁠너로구나⁠. 강 건너에 버려졌다더니⁠.⁠”

중전이 문 안쪽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의 먹 자국이 어제보다 넓었다⁠. 중전은 북어 한 줌을 문지방 위에 놓았다⁠. 금손이 북어를 먹는 동안 중전은 문틈으로 마당을 내다보았다⁠. 본방상궁이 맞은 자리에 흙이 흐트러져 있었다⁠.

“⁠너는 돌아올 데가 있어서 좋겠다⁠. 나는 이 문을 나가면 돌아올 데가 없단다⁠. 아버님 댁도 이제 내 집이 아니고⁠.⁠”

금손은 북어를 다 먹고 문지방에 뺨을 문질렀다⁠. 문틀에 누런 털 몇 가닥이 남았다⁠. 중전이 털 한 가닥을 집어 들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

저녁에 수라간 뒷문에서 나인이 금손을 보고 사발을 떨어뜨렸다⁠. 사발은 깨지지 않고 굴렀다⁠. 나인이 달려와 금손을 끌어안았다⁠. 진흙 냄새와 강물 냄새가 나인의 앞치마에 묻었다⁠.

“⁠왜 왔어⁠. 왜 왔냐고⁠. 이 바보야⁠.⁠”

나인은 울면서 생선 대가리를 셋 다 금손 앞에 놓았다⁠. 금손은 셋 다 먹었다⁠. 나인의 소매에서는 이제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쌀뜨물과 장작 연기와 눈물 냄새뿐이었다⁠. 금손은 다 먹고 나인의 무릎에 올라가 앉았다⁠. 나흘 만이었다⁠.

열쇠 소리가 왔다⁠. 나인이 금손을 앞치마로 덮었다⁠. 앞치마는 고양이 하나를 다 덮지 못했다⁠. 누런 꼬리가 앞치마 밑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버리라 했다⁠.⁠”

“⁠버렸습니다⁠, 마마님⁠. 강 건너 나루에 버렸습니다⁠. 제 발로 왔습니다⁠.⁠”

연옥은 앞치마 밑으로 솟은 꼬리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초록 저고리 소매가 열쇠꾸러미를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제 집 냄새를 아는 짐승이구나⁠. 나도 한때는 알았다⁠.⁠”

“⁠예⁠?⁠”

“⁠이제부터 이 고양이를 잘 먹여라⁠. 날마다 생선을 주고 밤에는 네 처소에 재워라⁠. 대전 밖으로 혼자 다니지 못하게 해라⁠.⁠”

나인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는 버리라 하시고⁠…⁠.⁠”

“⁠대감 댁 사람들이 이 짐승을 찾고 있다⁠. 요물로 몰아 죽이면 흉물도 요물의 장난이 된다⁠. 어제는 어제의 쓸모⁠, 오늘은 오늘의 쓸모다⁠.⁠”

연옥이 돌아섰다⁠. 열쇠 소리가 회랑으로 멀어졌다⁠. 나인은 앞치마를 걷고 금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너⁠, 누구 편이야⁠? 응⁠?⁠”

금손은 나인의 손바닥을 핥았다⁠. 짠맛이 났다⁠.

*

밤에 금손은 나인의 처소를 빠져나왔다⁠. 나인이 잠든 사이 문풍지 구멍으로⁠. 오줌을 누러 장작더미로 가는 길이었다⁠. 장작더미 앞에 사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인의 사발이 아니었다⁠. 사발 안에서 조기 냄새가 났다⁠. 수라상 조기였다⁠.

금손은 걸음을 멈추었다⁠. 조기 냄새 밑에 다른 냄새가 있었다⁠. 대감 집 사랑채의 향 냄새⁠, 손이 고운 젊은 내관의 겁먹은 땀 냄새⁠. 사발 뒤로 삼베 자루 하나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자루 입구를 대나무 막대 하나가 받치고 있었다⁠. 막대 끝에 노끈이 묶여 장작더미 뒤로 이어졌다⁠.

장작더미 뒤에서 숨소리 하나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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