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757자)

쥐 대신

왕의 고양이 · 강여울

이튿날 아침 중궁전 궁녀 셋이 빗자루를 들고 감나무 밑으로 몰려왔다⁠. 금손은 밤새 판 구덩이 가장자리에 엎드려 있다가 첫 빗자루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몸을 뺐다⁠. 첫 빗자루는 흙을 쳤고⁠, 두 번째는 감나무 둥치를 쳤고⁠, 마지막 빗자루는 앞에 선 궁녀의 정강이를 쳤다⁠. 궁녀들이 서로를 탓하는 사이에 금손은 담 위로 올라가 앉아 앞발을 핥았다⁠. 발가락 사이에 낀 흙에서 아직 피 냄새가 났다⁠.

“⁠대전 고양이가 왜 남의 마당을 파고 그런대⁠?⁠”

“⁠쥐구멍이라도 있나 봐⁠.⁠”

“⁠쥐구멍이면 쥐를 잡지⁠, 왜 감나무 밑을 파⁠.⁠”

궁녀들은 구덩이를 발로 메웠다⁠. 아무도 흙을 손으로 만지지 않았다⁠. 금손이 반쯤 파 놓은 자리에서 젖은 베 귀퉁이가 손톱만큼 비어져 나와 있었는데⁠, 궁녀 하나의 짚신이 귀퉁이를 밟고 지나갔다⁠.

한낮에 열쇠 소리가 왔다⁠. 연옥은 혼자 오지 않았다⁠. 젊은 내관 둘이 커다란 국화 화분을 장대에 꿰어 메고 따라왔다⁠. 연옥은 오늘도 초록 저고리에 자줏빛 치마를 입고 있었고⁠, 감나무 밑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소맷부리에서 쑥물 냄새가 흘러내렸다⁠.

“⁠겨울 앞두고 마당이 허전하다⁠. 여기 두어라⁠.⁠”

내관들이 화분을 내려놓기 전에 연옥은 구덩이 자리에 마른 쑥을 한 줌 뿌리고 아궁이 재를 한 바가지 끼얹었다⁠. 쑥은 쓴 냄새였고 재는 다른 냄새를 먹어 치우는 냄새였다⁠. 화분이 쿵 내려앉으면서 밑의 흙이 한 번 더 다져졌다⁠. 노란 국화가 서른 송이쯤 피어 있었다⁠. 국화 냄새가 마당을 덮었다⁠.

금손은 담 위에서 콧등을 찡그렸다⁠. 쑥과 재를 덮고 화분을 올려도 흙 밑의 피와 쇠는 그대로였다⁠. 덮을수록 냄새가 깊어질 뿐이었다⁠.

*

중궁전 문이 열리고 중전이 툇마루로 나왔다⁠. 중전에게서는 분과 먹 냄새가 났다⁠. 아침마다 혼자 글씨를 쓰는 사람의 냄새였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첫 마디에 먹물이 배어 있었고⁠, 중전은 말을 고르는 동안 엄지로 먹 자국을 문질렀다⁠. 금손을 보면 중전은 늘 북어를 잘게 찢어 툇마루 끝에 놓아두었다⁠. 오늘도 북어가 놓였다⁠. 금손은 담에서 내려와 툇마루 끝에서 북어를 먹으며 귀를 마당으로 돌렸다⁠.

“⁠누가 내 감나무 밑에 화분을 놓으라 했느냐⁠?⁠”

“⁠소인이 그리했사옵니다⁠, 마마⁠.⁠”

연옥이 허리를 굽혔다⁠. 열쇠꾸러미가 허리에서 한 번 울었다⁠.

“⁠겨울을 앞두고 내전 마당을 손보는 것은 소인이 맡은 일이옵니다⁠.⁠”

“⁠이 마당은 내 마당이다⁠. 열두 해 전 혼례를 올리고 이 궁에 들어온 날 내가 처음 본 나무가 저 감나무다⁠. 감나무 밑에 무엇을 둘지는 내가 정한다⁠.⁠”

“⁠마마의 마당이 곧 전하의 마당이옵고⁠, 전하의 궁 살림은 소인이 맡았사옵니다⁠.⁠”

연옥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낮고 고른 목소리가 마당을 건넜다⁠. 중전이 엄지로 먹 자국을 세게 문질렀다⁠.

“⁠아버님께 여쭙겠다⁠.⁠”

“⁠대감마님께서 내전 마당까지 살피실 틈이 있으실는지요⁠. 요즘 북쪽 곳간 일로 편전에서 바쁘시다 들었사옵니다⁠.⁠”

“⁠제조상궁⁠.⁠”

“⁠예⁠, 마마⁠.⁠”

“⁠네가 이 마당을 언제부터 그리 아꼈느냐⁠?⁠”

연옥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감나무를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연옥의 숨은 고르고 길었다⁠. 중전의 숨은 짧았다⁠.

“⁠전하께서 이 마당에 발을 들이신 지 석 달이옵니다⁠, 마마⁠. 마당이 허전한 까닭이 화분 하나 탓은 아니겠지요⁠.⁠”

중전의 엄지가 멈췄다⁠. 먹 자국 위에서 손가락이 하얗게 눌렸다⁠. 중전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당 끝 담까지 울렸다⁠. 연옥은 닫힌 문에 대고 한 번 더 허리를 굽힌 뒤 열쇠 소리를 앞세워 나갔다⁠.

삼색이가 담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삼색이의 마당에 사람 둘이 서서 서로의 영역을 다투다 갔다⁠. 한 사람은 제 마당이라 했고 한 사람은 제가 맡은 마당이라 했다⁠. 금손이 보기에는 둘 다 마당을 지키지 못했다⁠. 마당 밑에 여우의 먹이가 그대로 묻혀 있었다⁠.

툇마루 안쪽 문이 다시 한 뼘쯤 열렸다⁠. 중전의 손이 나와 북어 한 줌을 더 놓고 들어갔다⁠.

“⁠너는 전하 무릎에 앉는다지⁠. 요즘도 전하께서 밤에 기침을 하시느냐⁠?⁠”

금손은 하품을 했다⁠. 이빨이 다 보이도록 크게⁠. 문 안에서 중전이 아주 짧게 웃는 소리가 났다⁠.

*

밤에 금손은 수라간 곳간 쌀가마 사이에서 쥐를 한 마리 잡았다⁠. 살찐 수컷이었다⁠. 금손은 쥐를 물고 나인들이 자는 처소로 갔다⁠. 처소 앞 댓돌에 짚신이 여덟 켤레 놓여 있었다⁠. 쌀뜨물 냄새가 나는 짚신은 왼쪽에서 세 번째였다⁠. 금손은 쥐를 짚신 안에 반쯤 넣어 두었다⁠. 어제 생선 대가리 둘을 남기고 간 일을 갚아 두는 것이었다⁠.

새벽에 비명이 났다⁠. 나인이 맨발로 댓돌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나인들이 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금손 서방님이 또 혼수를 보내셨네⁠.⁠”

“⁠이번 건 실하다⁠, 실해⁠. 국 끓여도 되겠다⁠.⁠”

“⁠웃지들 마⁠! 이게 몇 번째야⁠?⁠”

나인은 부지깽이로 쥐 꼬리를 집어 장작더미 너머로 던졌다⁠. 그러고는 지붕 위의 금손을 올려다보며 부지깽이를 흔들었다⁠.

“⁠너는 네가 나를 먹여 살리는 줄 아느냐⁠? 내가 너를 먹여 살린다⁠. 알아들어⁠?⁠”

금손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나인은 알아듣지 못했다⁠. 부지깽이를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나인은 우물가로 가서 소매를 걷고 손을 씻었다⁠. 손은 이미 깨끗했다⁠. 연옥이 시킨 대로 어젯밤 소매째 빨아 널었는데도 나인은 손톱 밑을 손톱으로 파냈고⁠, 손목을 돌로 문질렀다⁠. 금손은 우물 돌 위에 앉아 나인의 손을 오래 맡았다⁠. 피 냄새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거의 남지 않은 냄새가 금손의 코에는 더 또렷했다⁠.

나인은 여우의 먹이를 날라 준 사람이었다⁠. 금손은 나인이 여우의 무리에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인이 젖은 손을 내밀자 금손은 한 걸음 물러났다⁠.

“⁠너까지 왜 이래⁠. 내가 뭘 했다고⁠.⁠”

나인이 젖은 손을 치마에 닦았다⁠. 우물에 두레박이 내려가는 소리가 오래 났다⁠.

*

이튿날 밤 금손은 연옥을 따라가 보았다⁠. 여우가 먹이를 묻은 자리를 하나만 두는 법은 없었다⁠. 열쇠 소리는 중궁전으로 가지 않고 침방 뒤로 꺾였다⁠. 침방은 궁녀들이 바느질을 하는 곳이었고⁠, 뒤뜰에는 늙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담보다 높이 솟아 있었다⁠. 떨어진 열매가 발밑에서 터질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금손은 담 위에서 코를 앞발에 묻었다⁠.

연옥은 은행나무 밑동에 등롱을 내려놓았다⁠. 품에서 이번에는 호미가 나오지 않았다⁠. 작은 사기 사발 하나가 나왔다⁠. 연옥은 사발에 물을 따라 뿌리 사이에 놓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땅에 짚었다⁠. 이마가 손등에 닿았다⁠. 한 번⁠, 두 번⁠. 일어나서 사발의 물을 뿌리에 천천히 부었다⁠. 물이 흙에 스미는 소리가 금손의 귀에는 쥐가 마른 잎 밑을 지나가는 소리만큼 작게 들렸다⁠.

“⁠그믐에 또 오겠습니다⁠, 아버지⁠.⁠”

연옥은 사발을 품에 넣고 등롱을 들었다⁠. 열쇠꾸러미를 움켜쥐는 손이 잠깐 떨렸다⁠. 떨림은 열쇠 소리가 되지 못하고 손 안에서 끝났다⁠.

금손은 연옥이 간 뒤 은행나무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피 냄새는 없었다⁠. 젖은 흙과 은행 열매와 연옥의 손바닥 냄새⁠, 맨 밑에 아주 오래되어 흙과 거의 하나가 된 쇠 냄새가 있었다⁠. 감나무 밑의 녹슨 못보다 훨씬 깊고 묵은 냄새였다⁠. 금손은 한 번 긁어 보다가 은행 열매를 밟고 말았다⁠. 앞발에 묻은 냄새가 사흘 동안 빠지지 않았다⁠.

*

비는 화분이 놓이고 사흘째 되는 밤에 왔다⁠. 기와골을 타고 내린 빗물이 감나무 밑으로 모였고⁠, 다져 놓은 흙이 풀렸다⁠. 금손은 처마 밑에서 비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마당으로 내려갔다⁠. 털이 젖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금손은 젖은 것을 싫어했다⁠. 젖은 것보다 마당 밑의 냄새가 더 싫었다⁠.

화분은 옮길 수 없었다⁠. 금손은 화분 옆구리 밑을 팠다⁠. 빗물을 먹은 흙은 앞발이 닿을 때마다 쑥쑥 밀려났고⁠, 재가 젖어 회색 진흙이 되어 발가락 사이에 엉겼다⁠. 담 위에서 삼색이가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하악질을 하지 않았다⁠. 한참 지켜보다가 담에서 내려와 구덩이 가장자리를 맡았고⁠, 젖은 재 냄새에 재채기를 두 번 하고는 금손 옆에 앉았다⁠. 제 마당에 묻힌 냄새가 싫은 것은 삼색이도 같았다⁠.

발톱 끝에 매듭이 닿았다⁠. 금손은 매듭을 이빨로 물고 뒷걸음질 쳤다⁠. 보따리는 어린 고양이만큼 무거웠다⁠. 한 번 당기면 한 뼘 나왔다⁠. 두 번 당기자 화분이 기우뚱했고⁠, 세 번 당기자 보따리가 흙에서 쑥 빠져나와 금손의 엉덩이가 진흙에 주저앉았다⁠. 보따리 안에서 쇠끼리 부딪는 소리가 났다⁠. 열쇠 소리보다 둔하고 짧았다⁠.

피 냄새가 났다⁠. 먹이의 냄새였다⁠. 먹이는 윗사람에게 가져가야 했다⁠. 금손은 새끼 때부터 그렇게 했다⁠. 쥐는 나인에게⁠, 참새는 늙은 내관의 신발 옆에⁠. 이렇게 크고 무거운 먹이는 가장 큰 영역의 주인에게 가져가야 했다⁠.

중궁전 담을 오르는 데 세 번 미끄러졌다⁠. 수라간 지붕에서 한 번 보따리를 놓쳤고⁠, 보따리는 기와골을 따라 굴러 처마 끝에서 겨우 멈췄다⁠. 금손은 처마 끝까지 엉금엉금 기어가 매듭을 다시 물었다⁠. 턱이 아팠다⁠. 젖은 베가 입천장에 붙어 피 맛이 혀에 번졌다⁠. 대전 지붕에 이르렀을 때 동쪽 하늘이 회색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

*

침전에서 등잔 냄새가 났다⁠. 왕은 밤을 새운 얼굴로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 늙은 내관이 세숫물을 들이려고 문을 여는 순간 금손은 내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진흙 묻은 발자국이 문턱에서 서안까지 이어졌다⁠.

금손은 보따리를 왕의 버선발 위에 내려놓았다⁠. 젖은 베가 버선에 철퍽 소리를 내며 얹혔다⁠. 금손은 한 걸음 물러나 앉아 꼬리를 높이 세웠다⁠. 쥐를 바칠 때보다 꼬리가 더 높았다⁠.

“⁠이놈이⁠, 쥐 대신 무얼 잡아 왔느냐⁠?⁠”

왕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내관이 세숫대야를 내려놓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전하⁠, 소인이 치우겠사옵니다⁠. 흙투성이를⁠…⁠.⁠”

내관이 매듭을 풀었다⁠. 붉게 물든 베가 한 겹씩 벌어졌다⁠. 안에서 사람 모양으로 깎은 나무토막이 나왔다⁠. 손가락 길이의 녹슨 못이 나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나무에 감긴 종이에 붉은 글씨가 줄지어 있었다⁠. 내관이 종이를 펼쳐 들었다가 손을 놓았다⁠.

“⁠흉물이옵니다⁠, 전하⁠! 종이에⁠, 전하의 생신이⁠…⁠.⁠”

왕은 웃음을 거두었다⁠. 등잔 불빛이 왕의 얼굴에서 핏기를 걷어 갔다⁠. 왕의 목덜미에서 차가운 땀이 솟았다⁠. 금손은 칭찬을 기다렸다⁠. 쥐를 바치면 나인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생선을 주었고⁠, 참새를 바치면 내관은 투덜대면서도 귀 뒤를 긁어 주었다⁠. 왕은 금손을 만지지 않았다⁠. 버선발에 얹힌 젖은 베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금손아⁠. 이것을 어디서 가져왔느냐⁠?⁠”

금손은 제 이름을 알아들었다⁠. 나머지는 몰랐다⁠. 금손은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아직 마당 밑에 냄새가 남아 있었다⁠. 하나를 가져왔으니 남은 것을 확인해야 했다⁠. 문턱에서 금손은 돌아보았다⁠. 왕이 일어나 있었다⁠.

“⁠등을 들어라⁠.⁠”

“⁠전하⁠,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사옵니다⁠. 신발이라도⁠…⁠.⁠”

“⁠등을 들라 했다⁠.⁠”

왕은 버선발로 마루를 내려왔다⁠. 금손은 꼬리를 세우고 앞서 걸었다⁠. 회랑을 지나 수라간 뒤를 돌아 중궁전 뒷담 문까지⁠. 잠 못 드는 밤마다 왕이 혼자 따라 걷던 길이었다⁠. 오늘은 내관이 등롱을 들고 헐떡이며 따라왔다⁠.

중궁전 마당은 비에 젖어 있었다⁠. 감나무 밑의 국화 화분이 한쪽으로 기울었고⁠, 화분 옆구리 밑으로 진흙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삼색이가 앉아 있다가 사람 발소리에 담 위로 뛰어올랐다⁠. 왕은 구덩이 앞에 멈추었다⁠. 버선이 진흙에 젖어 들었다⁠.

중궁전 문이 열렸다⁠. 중전이 흰 속적삼 위에 겉옷을 걸치며 툇마루로 나왔다⁠. 석 달 만에 제 마당에 들어선 왕이 새벽 등롱 아래 서 있었다⁠. 왕의 등 뒤에서 내관이 붉은 베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전하⁠…⁠. 이 새벽에 어인 일로⁠…⁠.⁠”

“⁠중전⁠.⁠”

왕의 목소리가 젖은 마당에 낮게 깔렸다⁠.

“⁠이 구덩이를 아시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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