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669자)
어좌 방석
왕의 고양이 · 강여울
임금이 앉는 어좌의 방석에 해가 먼저 닿았다. 임금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보는 편전의 동쪽 창호지가 밝아지면, 볕은 마룻바닥을 건너 계단 셋을 올라가 붉은 방석 한가운데에 고였다. 금손은 볕이 고이기 전부터 방석 위에 동그랗게 누워 있었다. 볕이 등에 닿자 누런 주황 털 위로 옅은 줄무늬가 물결처럼 떠올랐다. 방석에서는 침향 냄새가 났다. 날마다 여기 앉는 사람의 등과 허리에서 옮아 온 냄새였다. 궁궐 안에서 아침에 가장 먼저 따뜻해지는 자리가 여기였고, 가장 따뜻한 자리는 가장 큰 영역의 주인이 앉는 자리였다. 금손은 두 가지를 다 알았다.
발소리가 났다. 왼발을 조금 끄는 늙은 내관의 발소리였다. 금손은 눈을 뜨지 않고 귀 하나만 돌렸다. 내관에게서는 먼지떨이의 닭털과 밤새 입에 문 감초 냄새가 났다.
“또 너냐.”
내관이 먼지떨이를 들었다. 금손은 배를 뒤집었다. 주황 털보다 한결 옅은 배털이 볕에 드러났고 네 발이 허공에서 느슨하게 접혔다. 내관은 세 해째 같은 수에 넘어갔다. 먼지떨이가 배 위로 내려오는 순간 앞발 둘이 닭털을 끌어안았고, 뒷발 둘이 손잡이를 차기 시작했다.
“놔라, 이놈아. 여기는 나라님 자리다. 네 자리가 아니야.”
금손이 아는 사람 말은 많지 않았다. 금손, 밥, 생선, 이리 온, 저리 가, 쉿, 안 돼. 나머지는 소리째로 귀에 담아 두었다. 저리 가는 알아들었다. 알아듣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먼지떨이를 사이에 두고 내관과 금손이 버티는 동안 문이 열렸다. 마른 생강 냄새와 쉰 숨이 들어왔다. 왕은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잠을 못 잔 사람의 숨에서는 밤새 끓이다 식은 보리차 냄새가 났다. 왕이 기침을 두 번 했다. 내관이 먼지떨이를 놓고 엎드렸다.
“전하, 소인이 아무리 쫓아도 이놈이….”
“두어라.”
왕이 계단을 올라와 금손을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방석에 동그랗게 눌린 자국이 남았다. 왕은 자국 위에 앉아 금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네가 먼저 데워 놓았구나. 수고했다.”
세 해 전 겨울, 금손은 눈을 피해 편전에 들어왔다가 처음 방석에 올라갔다. 아침 조회에 대신들이 들어오고 내관이 소리를 질러도 내려가지 않았다. 왕은 고양이를 안아 무릎에 올리고 조회를 마쳤다. 이후로 궁궐 사람들은 금손을 대전 고양이라 불렀고 대신들은 왕의 고양이라 불렀다. 금손이라는 이름은 왕이 내렸다. 일곱 해 전 겨울, 대전 섬돌 밑에서 굶주려 우는 누런 암고양이를 왕이 거두었다. 왕은 털빛이 금 같다고 금덕이라 불렀다. 금덕은 수라간 장작더미에 새끼를 낳고 이레 만에 죽었다. 왕은 금덕을 손수 후원에 묻고 짧은 글을 지어 넋을 달랬다. 세 해 전 방석에 올라온 고양이의 털빛을 보고 왕은 금덕의 새끼를 알아보았다. 금덕의 자손이라 하여 금손이었다.
대신들이 들어오자 편전은 냄새로 찼다. 젖은 갓끈과 먹과 말 땀.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코만 내밀고 한 사람씩 살펴봤다. 맨 앞줄 가운데의 대감에게서는 말린 귤껍질을 씹는 냄새가 났다. 대감은 늘 진피를 씹었고, 말할 때마다 하얀 수염이 가슴께에서 흔들렸다. 대감은 중전의 친정 아버지였다. 금손은 친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대감이 입을 열면 다른 대신들이 입을 닫는다는 것은 알았다.
“북쪽 세 고을 원님들이 글을 올렸습니다.” 젊은 대신 하나가 말했다. “서리가 일찍 내려 조 이삭이 여물지 못했고, 벌써 고을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백성이 있다 하옵니다. 곳간을 열어 주셔야….”
“곳간을 열면 도성 쌀값이 오릅니다.”
대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은데 편전 안의 다른 소리가 다 가라앉았다.
“국경 너머에 오랑캐 기병이 어른거린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곳간은 군량입니다. 굶는 백성은 봄이 오면 고을로 돌아갑니다. 굶는 군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왕의 허벅지가 금손의 배 밑에서 단단해졌다. 왕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북쪽 고을 아이들도 봄까지 기다릴 수 있소?”
“전하, 아이들은 원래 잘 버팁니다.”
대감이 허리를 깊이 굽혔다. 하얀 수염이 앞으로 늘어져 어좌 계단 가까이에서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을 보면 금손의 앞발이 먼저 나간다. 몸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앞발이 수염 끝을 한 번 치고 두 번 쳤다. 대감이 고개를 들었고, 수염 몇 가닥이 금손의 발톱 끝에 딸려 올라갔다.
편전 뒷줄에서 누군가 웃음을 삼키다가 기침으로 바꾸었다. 대감의 목덜미에서 시큼한 땀이 올라왔다. 수고양이가 담 위에서 귀를 눕힐 때 나는 냄새와 닮아 있었다.
“전하, 편전에 짐승을 두시는 것은 예가 아니옵니다.”
“내 무릎이 고양이 한 마리 둘 데도 없을 만큼 좁지는 않소.”
왕은 짧게 대답하고 곳간 이야기를 다음 조회로 미뤘다. 대감이 진피를 씹는 소리가 조회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금손은 대감을 늙은 수고양이로 읽었다. 남의 담에 와서 큰 소리로 울고, 주인이 대꾸하지 않으면 담을 제 것으로 삼는 수고양이. 왕은 대꾸하지 않는 주인이었다.
*
낮 수라는 대전 안쪽 방에서 받았다. 임금의 밥상을 수라상이라 했고, 상이 들어오면 임금 음식을 먼저 맛보는 기미상궁이 반찬마다 은 젓가락을 넣었다가 뺐다. 금손은 기미상궁보다 먼저 맛을 보는 일을 맡고 있었다. 맡긴 사람은 없었다. 상이 놓이면 금손은 상 모서리에 앞발을 얹고 코를 반찬 위로 차례차례 옮겼다. 간장, 무, 조개, 맨 끝에 조기.
“전하, 고양이가 상에 발을….”
“기미를 하는 중이다.”
왕이 젓가락으로 조기 볼살을 떼어 상 아래로 내렸다. 금손은 볼살을 받아먹고 앞발을 핥았다. 기미상궁의 은 젓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수라에 먼저 입을 대신 분이 전하가 아니시니, 소인은 아무것도 못 보았사옵니다.”
“그래, 너는 못 보았다. 금손이 기미를 했다.”
*
해가 서쪽 담에 닿으면 금손은 수라간 뒷문으로 갔다. 수라간은 장작 연기와 생선 비늘과 쌀뜨물 냄새로 가득했고, 뒷문 옆 장작더미는 일곱 해 전 금손이 처음 눈을 뜬 자리였다. 눈을 뜨자마자 맡은 냄새가 쌀뜨물이었다. 쌀뜨물 냄새의 주인이 오늘은 늦었다.
나인은 해가 다 넘어간 뒤에야 뛰어왔다. 손에 생선 대가리 셋을 담은 사발이 있었다. 스물두 살 나인의 손에서는 늘 쌀뜨물과 장작 연기가 났다. 오늘은 냄새가 하나 더 있었다. 소매에서 닭 피가 났다. 수라간에서 닭을 잡는 날은 많았고 닭 피가 소매에 밴 날도 많았다. 다만 오늘은 피 냄새가 손등보다 소매 안쪽에 깊었고, 사발 하나를 품에 안고 오래 걸은 사람처럼 가슴께에서 올라왔다.
“늦었지. 제조상궁 마마님 심부름 다녀오느라.”
제조상궁은 궁녀들의 우두머리였다. 대전과 수라간 살림이 다 제조상궁 연옥의 열쇠꾸러미 안에 있었다. 금손은 제조상궁이라는 소리를 몰랐다. 열쇠꾸러미 소리는 알았다. 쇠 열쇠 스무 개가 허리춤에서 서로 부딪는 소리, 연옥이 가는 곳마다 연옥보다 먼저 도착하는 소리였다.
나인이 사발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았다. 금손은 대가리 하나를 먹고 고개를 들었다. 나인의 소매가 코앞에 있었다. 피 냄새가 생선 냄새를 덮었다. 금손은 남은 대가리 둘을 두고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버렸다.
“얘가 왜 이래? 너까지 나를 마다하는 거야?”
나인이 소매를 걷어 손목을 문질렀다. 손목은 깨끗했다. 깨끗한 손목을 오래 문질렀다.
“약에 쓰신다더라. 닭 피를. 무슨 약에 피를 한 사발이나 쓰나. 어머니 약은 외상도 안 준다는데.”
장작더미 위에서 금손은 꼬리로 앞발을 덮고, 나인의 숨이 자꾸 끊기는 것만 들었다.
*
밤이 되면 궁궐은 담장으로 나뉜 영역이 되었다. 낮에는 사람이 다니는 문과 길이 있지만 밤에는 담과 지붕만 남았다. 대전 지붕과 수라간 뒤뜰은 금손의 것이었다. 중궁전 담과 마당은 늙은 삼색 암고양이의 것이었고, 후원 대숲은 검은 수고양이의 것이었다. 침방 뒤 은행나무는 아무의 것도 아니었다. 가을이면 열매 냄새가 고약해서 고양이도 사람도 거기를 비켜 다녔다.
고양이끼리는 몸으로 말했다. 꼬리를 곧게 세우고 다가가면 인사였고 꼬리털을 부풀리면 물러나라는 말이었다. 귀를 옆으로 눕히면 더 오면 치겠다는 말이었다. 담 모서리에 뺨을 문지르면 냄새가 남았고, 남은 냄새가 다음 고양이에게 여기를 누가 지나갔는지 알렸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 것이 가장 어려운 말이었다. 너를 치지 않겠다는 말. 사람은 고양이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잠 못 드는 밤이면 왕은 등불도 없이 금손이 지나간 회랑을 따라 걷곤 했다. 오늘 밤 왕은 침전에 남아 기침을 했다. 금손은 꼬리를 높이 세우고 대전 지붕에서 수라간 지붕으로, 수라간 지붕에서 중궁전 담으로 건너갔다. 담 위에 삼색이가 앉아 있었다. 털이 셋으로 얼룩진 늙은 암컷이었고 왼쪽 귀 끝이 찢겨 있었다. 금손은 꼬리를 세우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삼색이도 눈을 감았다 떴다. 지붕은 건너가도 된다는 말이었다. 마당에 내려가도 된다는 말은 들어 있지 않았다. 금손은 중궁전 지붕 꼭대기 용마루에 올라가 엎드렸다.
열쇠 소리가 났다.
소리는 담 밖 회랑에서 시작해 중궁전 뒷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왔다. 등롱 하나가 소리를 따라 들어왔다. 등롱 불빛에 초록 저고리와 자줏빛 치마가 드러났다. 연옥은 열쇠꾸러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어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쥔 손 틈으로 쇠끼리 비비는 소리가 조금 샜다. 마당 동쪽 감나무 밑에서 연옥이 무릎을 꿇었다. 등롱을 곁에 내려놓고 품에서 호미 하나와 보따리 하나를 꺼냈다.
바람이 감나무에서 용마루로 불어 올라왔다. 금손의 수염이 앞으로 쏠렸다. 젖은 흙, 떨어져 무른 감, 연옥의 손에서 나는 쑥물 냄새. 쑥물 밑에 피가 있었다. 저녁에 나인의 소매에서 맡은 것과 같은 닭 피. 피 밑에는 쇠가 있었다. 열쇠는 날마다 손에 쥐어 사람 땀이 밴 쇠였고, 보따리 속 쇠는 비를 맞으며 오래 버려졌던 쇠, 녹슨 못의 냄새였다.
연옥은 구덩이를 팔뚝 깊이로 팠다. 보따리를 넣고 흙을 덮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떨어진 감잎을 긁어모아 흙 위에 뿌렸다. 다 하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흙 위에 손바닥을 얹은 채 오래 앉아 있었다.
“서른 해다.”
연옥이 흙에 대고 말했다. 금손은 서른이 무엇인지 몰랐다. 목소리가 흙에 닿아 흩어지는 것만 들었다.
금손은 여우를 떠올렸다. 후원 너머 산에서 가끔 담을 넘어오는 여우는 먹다 남은 것을 땅에 묻었다가 며칠 뒤 와서 파 먹었다. 고양이는 먹이를 묻지 않는다. 고양이가 묻는 것은 똥뿐이다. 피 냄새 나는 것을 남의 마당에 묻는 짐승은 여우였다. 금손은 연옥을 여우로 읽었다. 남의 영역에 먹이를 숨겨 놓고 드나드는 여우.
*
“금손아. 금손아.”
중궁전 뒷담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났다. 쌀뜨물 냄새가 담을 넘어왔다. 남은 생선 대가리 둘을 들고 금손을 찾아 나선 나인이었다. 수라간 나인은 밤에 중궁전 담 근처에 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연옥의 자줏빛 치맛자락이 등롱을 덮었다. 마당이 어두워졌다. 열쇠꾸러미가 연옥의 다른 손 안에서 소리 없이 움켜쥐어졌다. 나인의 발소리가 뒷담 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왔다. 나인은 감나무를 보지 못하고 지붕만 올려다보았다.
“금손아, 너 여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 아까는 내가 잘못….”
“수라간 나인이 이 밤에 중궁전 마당에서 무얼 하느냐?”
나인이 사발을 떨어뜨렸다. 생선 대가리 둘이 흙에 굴렀다. 연옥이 등롱에서 치맛자락을 걷었다. 불빛이 연옥의 아래턱과 콧날을 밑에서 비추었다. 나인이 무릎을 꿇었다.
“마, 마마님. 고양이를 찾느라….”
“무엇을 보았느냐?”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다. 방금 왔습니다.”
연옥이 다가와 나인의 손목을 잡았다. 소매를 코 가까이 끌어 올려 냄새를 맡았다. 금손은 용마루에서 앞발을 모았다. 사람이 사람의 냄새를 맡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직 닭 피 냄새가 나는구나. 우물에 가서 소매째 빨아라. 오늘 저녁 심부름은 네 손도 모르는 일이다.”
“예.”
“두 해 전 은수저 일처럼.”
나인의 숨이 멎었다. 멎었다가 셋으로 끊겨 나왔다. 금손은 이 숨을 알았다. 장작더미에서 들쥐를 몰면 들쥐가 이렇게 숨을 쉬었다.
“은수저 값은 내가 채워 넣었다. 네 어미 약방 외상도 내가 갚았다. 네 목은 내가 묻어 둔 것이다. 묻은 사람이 도로 꺼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잊지 않겠습니다.”
“가거라.”
나인은 흙에 구른 생선 대가리를 그대로 두고 뒷담 문으로 달려 나갔다. 연옥이 등롱을 들어 지붕을 비추었다. 불빛이 처마를 타고 용마루까지 올라왔다. 금손의 노란 눈이 불빛을 받아 두 점으로 빛났다. 연옥은 한참 노란 두 점을 올려다보았다.
“대전 고양이로구나. 너도 못 본 것이다.”
연옥이 등롱을 낮추고 뒷문으로 나갔다. 열쇠 소리가 회랑을 따라 멀어졌다.
*
금손은 용마루에서 처마로, 처마에서 감나무 가지로 내려갔다. 담 위에서 삼색이가 낮게 울었다. 내 마당이다, 하는 소리였다. 금손은 대꾸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 내려앉았다.
흙에서 연옥의 손바닥 냄새가 났다. 손바닥 밑에 피가 있었고 피 밑에 녹슨 쇠가 있었다. 금손은 앞발로 감잎을 쓸어 내고 흙을 긁었다. 연옥이 눌러 놓은 흙은 단단해서 발톱 끝이 한 겹씩밖에 벗기지 못했다. 삼색이가 담에서 뛰어내렸다. 꼬리를 세 배로 부풀리고 귀를 옆으로 눕힌 채 감나무 둘레를 돌았다. 금손도 꼬리를 부풀렸다. 두 고양이가 구덩이를 사이에 두고 낮게 울었고, 우는 소리가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처마 밑으로 스며들었다.
중궁전 안에서 문고리 소리가 났다. 사람 하나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는 소리였다.
금손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긁었다. 발톱 끝에 젖은 베가 닿았다. 차가웠다. 베에서 올라온 냄새는 저녁에 나인의 소매에서 난 냄새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