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6,025자)
광주리
왕의 고양이 · 강여울
어좌 방석에 해가 먼저 닿았다. 그믐이 지난 첫 아침이었다. 금손은 볕이 고이기 전부터 방석 위에 동그랗게 누워 있었다. 왼발을 조금 끄는 발소리가 났다. 늙은 내관이 먼지떨이를 들고 들어왔다가 방석을 보고 먼지떨이를 내렸다.
“오늘은 잘 데워 두어라. 오늘 전하께서 오래 앉으실 게다.”
금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내관은 먼지떨이로 어좌 계단의 먼지만 털고 물러났다. 세 해 만에 처음으로 배를 뒤집을 일이 없었다. 금손은 한쪽 눈을 떠서 내관의 등을 보았다. 조금 심심했다.
왕이 들어와 금손을 안아 들고 방석에 앉았다. 왕의 숨에서는 오늘도 식은 보리차 냄새가 났다. 밤새 잠을 못 잔 숨이었다. 숨 밑의 땀은 차갑지 않았다.
대신들이 들어왔다. 대감은 맨 앞줄에 서지 않았다. 계단 아래 박석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관복 대신 흰 도포 차림이었다. 진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감 뒤로 연옥이 꿇어앉아 있었고, 연옥 옆에 나인이 다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셋 사이에 한 사람씩 앉을 자리만큼 박석이 비어 있었다.
*
“서른 해 전 역모는 거짓이었다.”
왕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는데 편전 안의 다른 소리가 다 가라앉았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귀를 세웠다. 대감이 말할 때 가라앉던 소리가, 오늘은 왕이 말할 때 가라앉았다.
“선왕께서 거짓 편지에 속으셨다. 속인 사람은 여기 있다. 죄 없이 죽은 집안의 이름을 되돌려 준다. 무덤을 다시 쓰게 하고, 남은 자손이 있으면 찾아 벼슬길을 열어 주어라.”
연옥의 등이 한 번 떨렸다. 엎드린 채로.
“대감은 벼슬을 모두 거두고 남쪽 바닷가 먼 고을로 귀양 보낸다. 서른 해 전 국문으로 벼슬을 얻은 자들은 의금부가 하나하나 다시 살핀다. 앞줄이든 뒷줄이든.”
편전 뒷줄이 술렁였다. 앞줄도 술렁였다. 이번에는 두 무리가 같은 냄새를 피웠다. 담 밖에서 큰 고양이가 들어올 때 담 안의 수고양이들이 귀를 눕히는 냄새였다. 큰 고양이는 왕이었다.
“죄인 연옥은 중전을 모함하고 임금을 해하는 흉물을 묻었다. 죽음으로 다스릴 죄다.”
연옥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허나 죽음을 거두고 남쪽 먼 섬의 관비로 보낸다.”
젊은 대신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조기 국물을 맞았던 대신이었다.
“전하, 중전마마를 모함한 죄는 죽음이옵니다. 원한에 까닭이 있다 하여 죄를 덜어 주시면 앞으로 원한을 품은 자마다 흉물을 묻을 것이옵니다.”
“서른 해 전 이 나라가 먼저 저 사람에게 빚을 졌소.”
왕이 젊은 대신을 내려다보았다.
“나라가 진 빚을 갚는 날에 새 빚을 지지 않겠소. 경의 말도 옳소. 그래서 살려 두되 궁에는 두지 않소. 저 사람은 열한 살에 관비로 이 궁에 들어왔소. 관비로 나가오. 들어온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오. 다만 이번에는 아비의 이름을 가지고 나가오.”
젊은 대신이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수라간 나인은 은수저를 훔쳤다. 중전이 나인의 죄를 더 묻지 말아 달라 청했다. 매는 이미 맞았으니 궁에서 내보낸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나인이 이마를 박석에 댔다. 금손은 왕의 무릎에서 나인의 정수리를 보았다. 가르마가 비뚤어져 있었다.
“중전은 어젯밤 다시 자리를 내놓겠다는 글을 올렸다. 받지 않는다. 중전이 무엇을 깔고 앉았는지 조정이 다 알았으니, 앞으로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지는 중전이 보일 것이다.”
왕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마지막 말을 했다.
“북쪽 세 고을에 곳간을 연다. 오늘.”
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흰 도포 위로 하얀 수염이 늘어졌다.
“전하, 곳간을 여시면 도성 쌀값이 오르옵니다.”
“오르면 내가 내리겠소. 대감은 이제 쌀값을 걱정하실 자리가 아니오.”
대감이 허리를 굽혔다. 하얀 수염이 앞으로 늘어져 어좌 계단 가까이에서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을 보면 금손의 앞발이 먼저 나간다. 앞발이 수염 끝을 한 번 쳤다. 왕은 금손의 앞발을 붙잡지 않았다. 대감은 고개를 들지 않고 오래 엎드려 있었다. 금손은 두 번은 치지 않았다.
*
낮 수라에 왕은 조기를 한 마리 통째로 발라 놓았다. 가시를 하나씩 빼고 살만 접시에 모았다. 기미상궁이 은 젓가락을 든 채 왕의 손을 보았다. 임금이 생선 가시를 바르는 것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전하, 그것은 소인들이….”
“내가 한다.”
왕은 접시를 상 아래 내려놓았다. 금손은 조기 살을 먹었다. 왕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금손이 다 먹을 때까지 내려다보았다.
“수라간 나인이 해 질 녘에 남새 대문으로 나간다.”
금손은 앞발을 핥았다.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네가 묻힌 것을 다 팠다. 이제 무엇을 묻고 무엇을 꺼낼지는 내가 정해야 한다. 너 없이도.”
왕이 금손의 귀 뒤를 긁었다. 손가락이 귀 뒤에서 오래 머물렀다. 기미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은 젓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
연옥은 한낮에 궐문을 나갔다. 관원 둘이 앞뒤에 따랐다. 두 손은 묶여 있지 않았다. 초록 저고리에 자줏빛 치마, 허리춤에는 열쇠꾸러미가 없었다. 품에 쇠 함 하나를 안고 있었다. 왕이 돌려준 것이었다. 녹슨 뚜껑을 끈으로 묶어 두었다.
금손은 궐문 지붕 끝에 앉아 있었다. 연옥이 궐문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았다. 관원이 재촉하지 않았다.
“땅 파는 짐승아.”
연옥의 목소리는 낮았다. 서른 해 동안 궁궐 회랑에서 들리던 목소리였다. 열쇠 소리 없이 들으니 다른 궁녀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너는 나를 묻으려고 판 것이니. 내가 묻은 것을 다 파내려고 판 것이니.”
금손은 꼬리를 높이 세웠다.
“네가 마지막에 판 것이 내가 처음 묻은 것이었다. 너는 그것도 모르고 팠다.”
연옥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금손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연옥은 쇠 함을 고쳐 안고 관원에게 돌아섰다.
“수라간 나인에게 전해 주게. 서문 밖 약방 영감에게 지난달 외상까지 다 갚아 두었다고. 이번 겨울 약값은 걱정하지 말라고. 그 아이 어미가 겨울을 넘기면 봄에는 제 손으로 벌어 대라고.”
“죄인이 남의 약값까지 챙기오?”
“서른 해 남의 상을 차린 손이오. 버릇이 쉬 안 떨어지오.”
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옥은 궐문을 나갔다. 초록 저고리가 궐문 밖 길로 작아졌다. 쑥물 냄새가 바람에 실려 한참 남아 있다가 시전 생선 냄새에 묻혔다.
*
해가 기울 무렵 금손은 중궁전 담으로 갔다. 감나무에는 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감나무 밑의 구덩이는 메워져 있었고, 메운 흙 위에 북어 한 줌이 놓여 있었다. 삼색이가 북어를 먹고 있었다. 담 위가 아니라 마당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놓아 준 것을.
중전이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에 먹 자국이 없었다. 깨끗하게 씻은 손이었다.
“너도 왔구나.”
중전이 북어 한 줌을 툇마루 끝에 더 놓았다. 금손은 북어를 먹었다. 삼색이가 마당에서 고개를 들어 금손을 보았다. 꼬리를 곧게 세웠다. 금손도 꼬리를 세웠다.
“아버님이 오늘 남쪽으로 떠나셨다. 배웅은 하지 않았다. 아버님은 내가 안 나올 줄 아셨을 게다.”
중전은 빈 감나무 가지를 올려다보았다.
“감이 다 떨어졌구나. 내년 가을에는 곶감을 만들어 볼까. 남쪽 섬에도 곶감을 보낼 수 있을지.”
금손은 북어를 다 먹고 수염을 핥았다. 중전이 손을 뻗어 금손의 등을 한 번 쓸었다. 주황 털의 옅은 줄무늬를 따라,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
나인은 빈 곳간에서 나와 수라간으로 갔다. 다리를 조금 절었다. 수라간 마당에 나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한 나인이 짚신 한 켤레를 내밀었다.
“이거 챙겨 가. 금손 서방님이 혼수 넣어 주던 짚신이잖아.”
“쥐는 빼고 줘.”
나인들이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허리 굽은 늙은 숙수가 장작더미 뒤에서 나와 나인 앞에 섰다. 손에 기름 냄새가 났다.
“내가 의금부에 말했다. 네 얼굴을 다 말하지는 않았다만.”
“알아요, 숙수 어른. 어둡다고 하셨잖아요.”
숙수가 생선 대가리 셋을 싼 연잎 꾸러미를 나인의 보따리에 찔러 넣었다. 금손은 장작더미 위에서 연잎 꾸러미를 보았다. 생선 냄새가 보따리로 들어갔다.
*
남새 대문 앞에 소달구지가 서 있었다. 날마다 궁에 무와 배추를 대는 남새 장수의 달구지였다. 해가 서쪽 담에 닿았다. 나인이 보따리 하나를 등에 지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 빈 광주리를 들고 있었다. 무청이 깔린 대나무 광주리였다.
늙은 내관이 왼발을 끌며 회랑에서 걸어 나왔다. 두 팔에 금손을 안고 있었다. 금손은 내관의 팔 안에서 버둥거리지 않았다. 내관에게서는 먼지떨이 닭털과 감초 냄새가 났다.
“전하께서 보내셨다.”
내관이 나인 앞에 멈추었다.
“이놈이 가겠다면 데려가고, 남겠다면 두고 가라 하셨다. 네가 안아 가지 말고, 이놈이 정하게 하라 하셨다.”
나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관이 허리를 굽혀 금손을 남새 대문 문턱에 내려놓았다.
문턱은 나무였다. 수레바퀴에 닳아 가운데가 움푹 꺼져 있었다. 금손은 문턱 위에 앉았다.
등 뒤에서 냄새가 왔다. 침향 냄새, 어좌 방석에 밴 왕의 등 냄새. 수라간 장작 연기, 조기 굽는 기름. 중궁전 담 모서리에 삼색이와 금손이 번갈아 문지른 뺨 냄새. 일곱 해 동안 하나씩 제 것으로 삼아 온 영역의 냄새였다.
앞에서 냄새가 왔다. 쌀뜨물과 장작 연기. 매 맞은 다리에 붙인 쑥 찜질. 눈을 처음 뜬 날 맡은 냄새였다.
바람이 대전에서 불어왔다. 바람에 기침 소리 하나가 실려 왔다. 아주 멀리서, 대전 회랑 끝에서. 금손은 귀를 돌렸다. 회랑 높은 곳에 붉은 옷 하나가 흐린 빛으로 서 있었다. 기침이 한 번 더 났다. 붉은 옷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하얀 것이 내려왔다. 하나가 금손의 코끝에 앉아 녹았다. 차가웠다. 첫눈이었다.
“또 이놈이야?”
남새 장수가 달구지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이번엔 강 건너까지 안 가도 되는 거지?”
나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광주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어 두었다. 금손을 보지 않고 대문 밖 길만 보았다.
금손은 문턱에서 일어났다. 꼬리를 높이 세웠다. 광주리로 한 걸음 나갔다. 무청 냄새가 났다. 연잎에 싼 생선 대가리 냄새도 났다. 두 걸음째에서 앞발이 허공에 멈추었다.
대전에서 기침이 또 났다. 이번에는 길게 이어졌다.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밤마다 침전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소리였다. 왕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자면 가슴 속에서 먼저 들리던 소리였다. 오래 쫓긴 들쥐의 숨과 닮아 있었다.
금손은 앞발을 거두었다. 돌아서서 문턱 위로 올라갔다. 나인을 한 번 보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나인이 웃었다. 입꼬리가 떨렸다.
“알았어. 너는 저기 영역이 더 크지.”
나인은 연잎 꾸러미를 풀어 생선 대가리 하나를 문턱 앞에 놓았다.
“이건 혼수야. 이번엔 가는 사람이 주는 혼수.”
금손은 생선 대가리를 물었다. 나인은 빈 광주리를 등에 지고 달구지에 올랐다. 남새 장수가 고삐를 흔들었다.
“아이고, 서방님이 장가를 안 가시겠다네.”
대문 안쪽에서 배웅 나온 나인들이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
달구지가 굴렀다. 금손은 생선 대가리를 문 채 문턱에 앉아 달구지를 보았다. 나인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달구지가 시전 모퉁이를 돌 때에야 손 하나가 광주리 위로 올라와 흔들렸다.
늙은 내관이 무거운 빗장을 걸었다. 빗장 소리가 나자 금손은 생선 대가리를 내려놓고 회랑으로 뛰었다. 회랑 끝 붉은 옷 앞에서 멈추었다. 왕이 기둥을 짚고 서 있었다. 숨이 거칠었다. 금손은 왕의 발등에 뺨을 문질렀다. 오른쪽, 왼쪽. 제 영역에 냄새를 바르는 순서였다.
“가지 않았구나.”
왕이 허리를 굽히다 기침을 했다. 내관이 달려와 팔을 받쳤다. 왕은 내관의 팔을 물리고 금손을 안아 올렸다. 팔이 떨렸다. 일곱 해 동안 금손을 들어 올린 팔 가운데 가장 힘없는 팔이었다.
“바보 같은 놈. 저 아이를 따라갔으면 생선을 실컷 먹었을 것을.”
생선. 금손은 귀를 세우고 회랑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문턱 앞에 두고 온 생선 대가리가 떠올랐다. 왕의 품은 따뜻했다. 금손은 생선 대가리를 잊었다.
용마루에 첫눈이 얇게 앉아 하얀 줄이 되어 있었다. 날마다 금손이 걷던 줄이었다. 왕은 금손을 안고 침전으로 천천히 걸었다. 금손은 왕의 어깨 너머로 남새 대문을 보았다. 문턱 앞 생선 대가리 위에 삼색이가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