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5,239자) · 신다율 · 7월 31일(토)

역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2100, 불탄 헛간 옆 천막. 다율은 노트북 세 대를 한 줄로 펴 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천막 안에 탄내가 아직 배어 있었다. 나흘이 지났는데도 바람이 헛간 쪽에서 불면 젖은 재 냄새가 천막 천을 뚫고 들어왔다. 다율은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코를 한 번 찡그리고 화면으로 돌아갔다. 노트북 하나에는 5월 29일 밤의 기록이 떠 있었다. 하나에는 7월 28일 새벽의 기록이 떠 있었다. 가운데 것은 비어 있었다.

한결이 붕대 감은 손으로 천막 문을 걷고 들어왔다. 손바닥 붕대는 이틀 전보다 얇아져 있었다. 손가락 끝은 이제 나와 있었다. 다율은 그 손가락을 한 번 보고 말을 시작했다.

“판 서님, 저쪽은 우리가 교대할 때 들어옵니다.”

그는 두 화면의 시각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78이 뜬 것은 여단 당직이 바뀌고 10분 안이었다. 헛간에 드론 쉰이 온 것도 그랬다. 다른 날 다른 공격들도 줄을 세우니 절반 넘게 그 10분 안에 몰려 있었다. 당직이 바뀌면 여단 전산의 문지기도 바뀐다. 나가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침대에 가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직 화면이 눈에 안 익었다. 저쪽은 그 틈을 알았다. 누가 알려 줬는지는 몰랐다. 여단 정비 전산에서 두 번째 진지 좌표가 새어 나간 날부터 다율은 그 틈을 의심했다.

“그 틈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으면, 거꾸로 나가는 길도 있습니다.”

“나가서 뭘 하십니까?”

“저쪽 드론이 보는 것을 바꿉니다. 78을 돌려주는 겁니다.”

한결은 그것이 어떻게 되는 일인지 묻지 않았다. 그가 물을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얼마나 걸립니까?”

“저쪽이 알아차리고 끊을 때까지입니다. 10분일 수도 있고 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판 서님은 그동안 창고 7에 계시면 됩니다. 그동안은 저쪽 눈이 저쪽을 봅니다.”

다율은 가운데 노트북 옆에 종이 묶음 하나를 놓았다. 정보참모가 빌려 준 감청 기록이었다. 저쪽 병사들이 몰래 건 전화를 여단 감청반이 받아 적은 것이었다. 다율은 그 안에서 저쪽 사람들의 말버릇을 찾았다. 암호를 만드는 사람들도 제 어머니 앞에서는 말버릇이 나온다. 묶음 맨 위의 한 장에는 6월 21일 0000이라는 시각과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엄마, 나는 탁자 앞에만 있어. 화면만 봐. 총은 안 쏴.

*

2240, 한결과 표트르와 토마시와 즈비섹이 창고 7 뒤 옥수수밭에 엎드렸다. 넷의 배낭에 점화부 세 벌과 퓨즈가 들어 있었다. 오늘 밤은 셋이었다. 한 번에 셋을 꺼낸 적은 없었다.

비에스와프가 도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사이 그의 턱수염은 더 희어졌다. 그는 창고 쪽 하늘을 가리켰다. 관측 드론 둘이 떠 있었다. 하나는 돌았고 하나는 서 있었다. 선 것은 이제 매일 밤 창고 지붕 위에 섰다. 소콜로프는 창고 7을 한 번도 눈에서 놓지 않았다.

한결은 손목시계를 봤다. 여단 당직은 2300에 바뀌었다. 옥수수는 한 달 사이 사람 키를 넘게 자라 있었다. 이삭 끝의 수염이 말라 갈색이 되었고, 엎드린 넷의 등 위로 그 수염이 바람에 스쳤다. 즈비섹이 이삭 하나를 손으로 쥐어 보고 속삭였다. 표트르가 옮겼다. 올해 이 밭은 거둘 사람이 없다고. 거둘 사람이 없으면 내년 봄에는 쥐가 먼저 온다고.

*

2300, 천막. 다율은 가운데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화면에 글자가 흐르지 않았다. 그는 한결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영화처럼 초록 글자가 쏟아지는 일은 없다고. 그가 보는 것은 지도 한 장이었다. 저쪽 드론들이 떠 있는 자리가 작은 점으로 찍힌 지도였다. 점마다 옆에 짧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 드론을 모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라틴 글자로 적힌 러시아 이름들이었다. 스무 개가 넘었다.

다율은 점 하나하나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보는 것을 조금 바꿀 수 있었다. 저쪽이 5월 29일 밤 우리 화면에 78을 띄웠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는 저쪽이 하던 것을 배웠다. 두 달 동안 배웠다.

2304, 그는 창고 7 북쪽 2킬로미터의 들판에 표적 셋을 띄웠다. 저쪽 드론의 화면에만 뜨는 표적이었다. 정비 트럭의 열, 전차 배기의 열, 그리고 사람 몇의 열. 그 들판에는 저쪽이 세워 둔 풍선 전차 여덟 대가 있었다. 우리 드론을 속이려고 저쪽이 세운 가짜들이었다.

이름표 달린 점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 둘, 다섯, 여덟.

다율은 목록을 끝까지 내려가다가 손을 멈췄다. 이름표 하나가 눈에 걸렸다. ilya.

그 점은 창고 7 지붕 위에 서 있는 관측 드론이었다. 다율은 감청 기록 맨 위의 한 장을 봤다. 엄마, 나는 탁자 앞에만 있어.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러시아에 일리야는 많았다. 그는 그 점에 커서를 올렸다가, 내렸다. 그 점이 보는 것은 바꾸지 않았다. 그 점은 창고 지붕 위에서 원래 보던 것을 계속 보게 두었다.

한결이 창고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 점이 제대로 보면 창고가 위험했다. 다율은 그것을 알았다. 알고도 두었다. 스무 개 넘는 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 하나 뒤에 앉은 손이 원래 하던 일을 하게 두었다. 그는 나머지 점들로 돌아갔다. 손끝이 차가웠다. 천막 밖에서 바람이 불어 탄내가 다시 들어왔다.

*

2311, 학교 지하실. 소콜로프는 화면 여덟 개가 한꺼번에 북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봤다.

조종병들이 소리쳤다. 창고 7 북쪽 들판에 정비 트럭 열 반응, 전차 배기, 사람. 열아홉 살 하나가 흥분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조장들이 표적을 나눴다. 부관이 좌표를 불렀다. 소콜로프는 그 들판의 이름을 듣고 눈썹을 찌푸렸다. 그 들판에는 우리 풍선이 있었다.

“기다려.”

늦었다. 광케이블 셋이 이미 내려가고 있었다. 화면 셋이 차례로 하얘졌다가 검게 끊겼다. 명중이었다. 부관이 명중 셋을 외쳤다.

2314, 들판을 멀리서 보던 다른 드론의 화면에, 불타는 것이 떠 있었다. 풍선 전차였다. 고무 포탑이 녹아내리며 흐물흐물 주저앉고 있었다. 안에 든 송풍기가 마지막 바람을 뿜었고, 녹은 고무가 그 바람에 한 번 부풀었다가 꺼졌다.

지하실이 조용해졌다. 열아홉 살이 도로 의자에 앉았다.

2319, 지하실 바로 옆 학교 운동장에 무언가 떨어져 터졌다. 창문 합판이 들썩였고 배관에서 녹이 쏟아졌다. 우리 드론이었다. 되돌아오던 광케이블 드론 하나가 실이 엉켜 조종이 끊긴 채 제 집 마당에 떨어졌다. 부관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내려왔다. 운동장 철봉 하나가 휘었다고 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소콜로프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우리 화면이 거짓말을 한다.”

그는 5월 29일 밤을 떠올렸다. 저쪽 화면에 78을 띄우던 밤이었다. 그때 저쪽 자주포가 헛것에 열여덟 발을 쏘는 것을 그는 초시계로 쟀다. 지금 그의 부하들이 헛것에 광케이블 셋을 쏘았다. 그는 초시계를 꺼내지 않았다.

“회선을 끊어. 통신 중대, 전부. 유선만 남기고.”

2316, 일리야가 소리쳤다. 창고 7, 뒤 울타리, 전차 셋 이동. 그의 화면은 창고 지붕 위에서 줄곧 한자리에 서 있던 그 드론의 것이었다. 부관이 좌표를 받아 적으려고 연필을 들었다. 소콜로프가 손을 들었다.

“쏘지 마. 그것도 거짓말일 수 있다.”

방금 헛것에 셋을 쏜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이제 화면 전부를 믿지 않았다. 일리야는 입을 다물었다. 화면 속에서 전차 세 대가 옥수수밭으로 들어가 줄기를 눕히며 멀어졌다. 일리야는 그것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보고만 있었다.

*

2312, 같은 시각 창고 7. 한결은 지붕 밑 셋째 줄에서 셋째 차의 레버를 내리고 있었다.

딸깍. 첫 차는 이미 걸려 있었다. 둘째 차도 걸렸다. 즈비섹과 토마시였다. 셋째 차는 표트르였다. 창고 지붕 위의 선 드론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한결은 해치 틈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다율이 말한 대로라면 지금 저쪽 눈은 저쪽을 보고 있었다. 한결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믿지 않아도 다른 길은 없었다. 그는 지붕 위의 소리가 한자리에 서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걸린 채로 레버를 내렸다.

2316, 세 대가 뒤 울타리를 밀고 나갔다. 경계병들은 북쪽 들판에서 솟는 불길을 보고 있었다. 기관총은 늦게 왔다. 옥수수밭을 세 대가 한 줄로 가로질렀다. 드론은 오지 않았다. 저쪽 드론들은 북쪽 들판의 풍선들 위에 있었다.

2331, 개울 앞에서 셋째 차가 섰다. 왼쪽 궤도의 핀 하나가 빠져 있었다. 한결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붕대 감은 손으로 망치를 쥐었다. 손바닥 안쪽에서 새살이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그는 핀을 박았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이제 둘이 남았다. 왼쪽 주머니의 둘은 그대로였다.

*

2330, 학교 지하실. 통신 중대장이 마지막 회선을 뽑았다고 보고했다. 화면 여럿이 검게 꺼졌다. 부관이 시각을 적었다. 소콜로프는 그 시각에서 화면이 처음 거짓말을 한 시각을 뺐다. 26분이었다.

그는 수첩 앞장에 숫자를 적었다. 광케이블 소진 열일곱. 풍선 여덟 전소. 학교 운동장 하나. 그리고 창고 7 관측 드론의 기록을 돌렸다. 일리야의 드론이었다. 그 드론은 26분 내내 창고 지붕 위에 서 있었다. 그 화면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2316, 전차 세 대가 뒤 울타리를 밀고 나가는 것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그 좌표를 쏘지 말라고 한 것은 소콜로프 자신이었다.

그는 일리야를 봤다. 일리야는 조종기를 쥔 채 굳어 있었다. 스무 개 넘는 화면 가운데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은 그 하나였다. 저쪽이 그 하나만 건드리지 않았다. 왜 그 하나였는지 소콜로프는 한참 생각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일리야의 화면 기록을 따로 떼어 저장하라고 부관에게 일렀다. 일리야는 조종기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손이 떨렸다. 탁자 밑으로 손을 넣어 무릎 사이에 끼웠다.

*

8월 1일 0600, 천막. 굴린 전차가 열둘이 되었다. 헛간이 탄 날 잃은 셋을 도로 찾았다.

다율은 가운데 노트북을 덮었다. 밤새 그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자 무릎이 소리를 냈다. 한결이 천막으로 들어와 젖은 정비복 그대로 그 앞에 섰다. 붕대가 다시 붉어져 있었다.

“판 서님, 창고 위에 선 드론 하나는 안 건드렸습니다.”

“압니다. 계속 서 있었습니다.”

한결은 왜냐고 묻지 않았다. 다율도 더 말하지 않았다. 감청 기록 맨 위의 한 장이 노트북 위에 놓여 있었다.

*

0550, 학교 지하실. 모두 잠든 뒤 소콜로프는 개인 노트북을 열었다. 통신이 끊긴 기계였다. 그 안에 번역 사전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는 러시아어로 한 단어를 치고, 옆 칸에 나온 한국어 글자를 한참 봤다. 읽을 줄 모르는 글자였다. 그는 그 글자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검색 칸에 한국어 세 글자가 떠 있었다. 두 바퀴.

2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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