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5,167자) · 서한결 · 8월 6일(금)
A-50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2300, 폴란드 동부 상공 8,000미터. 고샤는 오른쪽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새 윙맨이 거기 있었다. 호출부호는 보베르였다. 비버라는 뜻이었다. 스물네 살이고, 이가 튼튼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간격은 조금 넓었다. 지크가 있던 자리보다 기체 반 개쯤 멀었다. 고샤는 그 간격을 좁히라고 하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나면 저절로 좁혀질 간격이었다. 좁혀질 때까지 둘 다 살아 있으면. 헬멧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지크가 쏟아 넣은 사탕이 아직 몇 알 남아 있었다. 고샤는 그것을 먹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오늘 밤 FA-50 둘은 사냥꾼이 아니었다. 사냥꾼은 앞에 있었다. 나토 전투기 넷이 20킬로미터 앞에서 동쪽으로 가고 있었고, 고샤의 편대는 그 뒤를 받치는 호위였다. 브리핑실 벽에 붙어 있던 종이 한 장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러시아 조기경보기 A-50 한 대가 회랑 동쪽 하늘에서 물러나면, 회랑 쪽 활공폭탄 출격은 절반 아래로 준다. 어느 참모부의 추정이었다. 활공폭탄은 혼자 날아오지 않는다. 멀리서 보는 눈이 표적을 불러 줘야 떨어뜨린다. 그 눈이 A-50이었다. 오늘 밤 사냥감은 그 눈이었다.
2311, 경고음이 울렸다. 저쪽 레이더였다. 이번에는 훑고 지나가지 않고 붙었다. 산소마스크 안에서 고샤의 숨이 넷을 세기 전에 끊겼다. 무전에 앞 편대장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수호이 둘, 정면, 60킬로미터.
“보베르, 간격 유지. 내 날개 끝만 봐.”
“예, 대위님. 날개 끝만 봅니다.”
2314, 앞 편대가 먼저 쐈다. 캐노피 너머 어둠 속에서 불빛 둘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저쪽도 쐈다. 경고음이 한 음 높아졌다. 고샤는 스로틀을 밀고 기체 머리보다 몸을 먼저 틀었다. 좌석이 등을 밀었다. G가 가슴을 누르고 눈앞이 가장자리부터 회색으로 좁아졌다. 플레어를 뿌렸다. 기체 뒤에서 하얀 불꽃들이 폭죽처럼 흩어졌다. 무언가가 오른쪽 아래로 스쳐 지나가 그 불꽃 속으로 들어가 터졌다.
“보베르?”
“여기 있습니다. 조금 멀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멀어진 건 괜찮아. 대답만 해.”
2322, 앞 편대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어왔다. 목표가 방향을 바꿨다. 동쪽으로. 멀리 동쪽 하늘에서 커다란 점 하나가 레이더 화면 끝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었다. 등에 접시를 인 비행기였다. 떨어지지 않았다. 물러나고 있었다. 수호이 둘이 그 뒤를 막으며 같이 물러났다. 오늘 밤 아무도 그것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회랑 동쪽 하늘을 비웠다.
고샤는 돌아오는 내내 보베르의 간격을 봤다. 기체 반 개. 착륙할 때쯤에는 기체 반 개보다 조금 좁아져 있었다.
2330, 연료 경고등이 켜지기 직전이었다. 발밑으로 회랑이 지나갔다. 어둠 속에 불빛이 드문드문 있었다. 불탄 마을은 불빛이 없었다. 그 사이 어딘가 양철 지붕 정비고가 있었고, 그 옆에 헛간이 있었다고 들었다. 헛간은 지난주에 탔다고 했다. 고샤는 그 자리를 찾아보려다 그만두었다. 8,000미터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대신 계기판의 연료 숫자를 봤다. 돌아갈 만큼 남아 있었다. 보베르에게도 물었다. 보베르는 자기도 돌아갈 만큼 남았다고 했고, 조금 뒤에 정정했다. 돌아갈 만큼보다 조금 더 남았다고.
*
2340, 불탄 헛간 옆 천막. 한결은 전화기 화면으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다율이 보내 준 것이었다. 서울통신, 배소현. 서울에서 저녁 여섯 시에 나간 기사였다. 제목이 두 줄이었다. 철수를 거부한 한국인, 정부는 여권법 수사 검토. 기사는 한결이 6월에 전화로 들은 그 목소리처럼 빨랐다. 여행금지 72시간, 계약 해지, 부품 수출 전면 중단. 그리고 국방부 기자실에서 들은 한 줄. 정부 관계자, 해당 인물에 대해 여권법 위반 여부 검토 중.
이름은 없었다. 소속도, 위치도 없었다. 기사 아래 댓글이 삼천 개가 넘었다. 한결은 첫 화면만 봤다. 나라 망신이라는 말과 그 사람을 데려오라는 말이 번갈아 있었다. 데려오라는 말도 두 가지였다. 구하라는 뜻과 잡아 오라는 뜻. 기사 한가운데 따옴표로 묶인 한 문장만 6월의 기사에서 그대로 넘어와 있었다. 정비지원차 이탈 없음.
다율이 한결 어깨 너머로 화면을 봤다.
“판 서님, 이름 안 나왔습니다.”
“압니다.”
“그럼 괜찮은 겁니까?”
한결은 전화기를 작업대 위, 번호판 옆에 엎어 놓았다. 운전병이 천막 문간에서 그 기사를 자기 전화로 읽고 있었다. 사촌이 여단 공보실에 있는 그 운전병이었다. 그는 한결과 눈이 마주치자 전화기를 등 뒤로 감췄다. 이번에는 제가 안 했다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 한결이 대답하기 전에 전화기가 먼저 떨었다. 엎어 놓은 채였다. 뒤집자 박 팀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
0010, 서울은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박 팀장의 목소리 뒤로 지하철 안내 방송이 들렸다. 출근길이었다.
“서 정비관. 아니, 서한결 씨. 기사 봤지?”
“봤습니다.”
“검찰이 자네 이름을 알아. 어제 오후에 본사 법무팀으로 전화가 왔어. 폴란드 계약 인력 명단을 달래. 명단에 이름이 하나야. 이름 없는 기사가 이름을 찾게 했어.”
한결은 천막 기둥에 등을 기댔다. 붕대를 푼 손바닥이 기둥의 거친 나무에 닿았다. 새살이 아직 분홍이었다.
“팀장님이 그 명단을 주셨습니까?”
“법무팀이 줬어. 나는 안 줬어. 그런데 안 줬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회사 서류에 자네 이름이 있으니까. 자네가 7월에 그 창원 번호로 뭘 했는지도, 감사팀이 알아. 두 개가 곧 한 책상에 올라가.”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경의 이름이 그 책상에 올라가 있을 것이었다.
“자네 돌아오면 공항에서 바로 조사야. 안 돌아오면 여권이 정지돼. 둘 중 하나야. 나는 그걸 알려 주려고 전화한 거야. 회사 사람으로서.”
“알겠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밀려 나가고 밀려 들어오는 소리였다. 박 팀장은 그 소리 속에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끊으려는가 보다 하고 한결이 전화기를 귀에서 떼려는데, 박 팀장이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하나 더 있어. 이건 회사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
“예.”
“어머님이 다시 입원하셨어. 지난주 목요일. 병원에서 회사 인사팀으로 확인 전화가 왔더라. 단체보험이 아직 살아 있는 줄 알고. 6월에 끊겼다고 인사팀이 말했고, 그 통화 기록이 내 책상으로 왔어. 가족 연락처에 자네 대신 회사 번호가 적혀 있었대. 자네가 그렇게 적어 놨더라.”
한결은 천막 기둥에서 등을 뗐다.
“이건 내가 알려 주면 안 되는 거야. 개인 기록이야. 나는 이걸 말하면 징계야. 내년에 나가는 사람이니까 상관없어.”
“어느 병원입니까?”
박 팀장이 병원 이름을 말했다. 서울 동쪽의 구립 병원이었다. 아버지가 봄에 입원했던 곳이었다. 한결은 그 이름을 받아 적지 않았다. 적지 않아도 알았다. 박 팀장이 다음 역 이름을 듣고 내려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결은 끊긴 전화기를 한참 귀에 대고 있었다. 지하철 소리는 이미 없었다. 위성 전화의 잡음만 남아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내리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할리나의 부엌 창에 등잔이 켜져 있었다. 반죽을 치대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헛간 터에 서 있었다. 불탄 기둥 하나에 손을 짚었다. 숯이 손바닥에 검게 묻었다. 새살 위에 묻은 숯은 털어도 잘 안 떨어졌다.
*
0120, 한결은 창고 7로 갔다.
다율이 천막 입구에서 그를 봤다.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요격 드론 두 대를 배낭에 넣어 주었다. 여단 공병대가 멧돼지를 돌려받고 답례로 보내온 것이었다. 표트르와 토마시가 이미 트럭 옆에 서 있었다. 오늘 밤은 한 대였다. 점화부 상자에는 일곱 벌이 남아 있었다.
0310, 옥수수밭은 조용했다. 동쪽 하늘도 조용했다. 활공폭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밤마다 두세 번은 들렸는데, 오늘은 한 번도 없었다. 창고 지붕 위의 선 드론은 여전히 거기 서 있었다. 한결은 이제 그 소리를 들어도 엎드리지 않았다. 서 있는 드론은 보기만 했다. 오는 것은 도는 드론이었다.
0336, 지붕 밑 넷째 줄의 차가 네 번째에 걸렸다. 딸깍 뒤에 네 번. 이 창고의 넷째는 늘 그랬다. 차가 뒤 울타리를 밀고 나가자 도는 드론 둘이 왔다. 다율이 보내 준 요격 드론이 토마시의 손에서 올라가 하나를 받았다. 토마시는 요격 드론을 처음 날려 봤다. 조종기를 너무 세게 쥐어서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다른 하나는 뒤판에 떨어졌다. 배기구 덮개가 날아갔다. 차는 서지 않았다.
0402, 개울 앞 비탈에서 박격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쪽은 활공폭탄 대신 박격포를 썼다. 박격포는 가까이서 쏘아야 했고, 가까이서 쏘는 것은 저쪽에게도 위험했다. 여섯 발이 떨어지고 멎었다. 능선 뒤에서 우리 쪽 자주포가 대답했다. 저쪽 박격포 자리 근처에서 흙기둥 셋이 솟았다. 그 뒤로 저쪽은 다시 쏘지 않았다. 표트르는 흙기둥 사이를 비집고 개울을 건넜다. 한결은 포탑 해치에서 동쪽 하늘을 봤다. 여전히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0512, 능선을 넘었다. 굴린 전차가 열셋이 되었다. 핀은 둘이었다. 이번에는 궤도가 버텼다.
*
0600, 천막 안에서 한결은 새 작업대 앞에 앉았다. 종이 넷과 번호판이 모서리를 맞춰 서 있었다. 그는 날짜 칸이 빈 철수 권고서를 한 번 집어 들었다가 도로 세웠다. 날짜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제 그 칸에 무엇을 적든 서울은 다른 날짜를 적을 것이었다.
밖이 너무 조용했다. 동쪽 하늘은 밤새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병사들이 천막 밖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나눴다. 좋은 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고, 저쪽이 뭘 모으는 거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둘 다 동쪽을 보고 있었다. 할리나가 부엌 창을 열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가 닫았다.
브란도프스키가 천막에 들렀다. 그는 지휘소 벽의 D-22를 오늘 아침 D-21로 고쳤다고 했다. 여단의 원래 전차는 7월 한 달 동안 셋을 더 잃어 스물여섯이 되어 있었다. 굴린 열셋을 더하면 서른아홉이었다. 참모부가 적은 마흔다섯까지 여섯이 모자랐다. 창고 7에는 아홉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숫자들을 말하고 나서 한결의 손을 봤다. 숯이 묻은 손바닥이었다. 그는 무엇을 묻지 않았다. 한결의 어머니 이야기를 그는 몰랐다. 모르는 채로, 오늘 하루는 창고에 가지 말라고 했다. 부탁이었다.
다율은 노트북을 켜 둔 채 잠들어 있었다. 머리가 탁자에 닿아 있었다. 한결은 그의 어깨에 담요를 걸쳐 주려다, 화면 한구석을 봤다.
활공폭탄 경보 칸의 숫자가 밤새 0에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