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5,141자) · 서한결 · 7월 28일(수)
불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300, 학교 지하실. 소콜로프는 벽에 붙인 지도에서 핀 하나를 뽑았다.
창고 7에 꽂혀 있던 핀이었다. 그는 그것을 국도변 농가 헛간 자리에 다시 꽂았다. 한 달 넘게 그 헛간은 표적 목록 맨 아래에 있었다. 민간인이 있다는 이유였다. 노파 하나와 아이 하나. 오늘 그 줄은 맨 위로 올라와 있었다. 대령이 서른 대를 말한 날부터 저 여단은 창고 7에서 세 대를 더 꺼내 갔다. 셈이 거꾸로 가고 있었다.
“손은 길마다 피해 다닌다. 그러면 손이 돌아가는 집을 친다.”
조종병 열다섯이 탁자 둘레에 앉아 있었다. 여섯은 이달에 온 새 얼굴이었고, 그 가운데 넷이 열아홉 살이었다. 교육은 2주였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열흘이었다. 열아홉 살 하나가 조종기 배터리를 거꾸로 끼웠다가 옆자리 일리야에게 조용히 고쳐 받았다. 일리야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때 소콜로프처럼 말했다. 짧게, 한 번만. 그들 앞에 상자에서 막 꺼낸 드론이 날개를 편 채 줄지어 있었다. 쉰이었다. 일리야가 첫 번째 조의 조장이었다. 그는 조종기를 쥔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떨리지 않았다.
“활공폭탄은 0320에 떨어진다. 드론은 그 전에 그물을 찢는다. 그물이 찢어지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인다.”
*
0310, 헛간 지붕 위 방호망이 처음으로 울었다.
한결은 헛간 안 작업대 옆 간이침대에서 자다가 그 소리에 일어났다. 쇠그물이 무언가에 걸려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였다. 그다음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물 두 겹 가운데 바깥쪽이 찢어졌다. 불붙은 그물 조각이 헛간 지붕 위로 늘어졌다.
헛간 안에는 되살린 전차 세 대가 서 있었다. 지난주에 꺼내 온 셋이었다. 7월 20일부터 27일 사이에 한 대씩 나왔다. 굴린 전차가 열둘이 된 것이 어젯밤이었다. 셋은 아직 점화부를 끼우지 않은 채였다. 한결은 오늘 아침에 끼우려고 점화부 상자를 작업대 밑에 두고 잤다.
소리가 여럿으로 불어났다. 벌 떼였다. 높은 것과 낮은 것이 뒤섞여 헛간 둘레를 한꺼번에 감쌌다. 다율이 헛간 구석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요격 드론 넷이 올라갔다. 넷이 넷을 받았다. 다섯째부터는 받을 것이 없었다. 방호망 장비의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이 몇을 흔들어 떨어뜨렸다.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실을 끌고 왔다.
헛간 마당의 병사들이 산탄총을 들고 무릎을 세웠다. 넷이었다. 한 사람이 쏠 때마다 다른 사람이 탄을 밀어 넣었다. 첫 두 발에 하나가 떨어졌다. 셋째 발은 빗나갔다. 빗나간 산탄이 밀밭 위로 흩어지며 이삭을 잘랐다. 표트르는 헛간 문간에 서서 손전등으로 드론이 오는 쪽 하늘을 비췄다. 토마시는 그 불빛 끝을 보고 쐈다. 귀 대신 눈으로 싸우는 사람이 그 마당에는 제일 빨랐다.
0314, 안쪽 그물이 찢어졌다. 한 대가 그 구멍으로 파고들어 헛간 지붕을 뚫었다. 지붕 널빤지가 불붙은 채 헛간 안으로 쏟아졌다. 마른 짚이 먼저 탔다. 불은 짚에서 짚으로 한꺼번에 번졌다. 헛간 안이 대낮처럼 밝아졌고 열기가 얼굴을 때렸다.
“나가십시오! 다 나가십시오!”
브란도프스키의 목소리가 헛간 문간에서 들렸다. 병사들이 뛰어나갔다. 한결은 뛰어나가지 않았다. 그는 작업대 밑으로 들어갔다.
*
0316, 작업대 밑은 아직 뜨겁지 않았다. 점화부 상자가 거기 있었다. 녹색 탄약 상자 셋이었다. 그 옆에 탄약통 하나가 있었다. 작업대 위에 세워 두던 종이 넷을 밤마다 넣어 두던 통이었다. 0.2라고 적힌 종이, 보일러 도면, 소각로의 여섯 줄, 날짜 칸이 빈 철수 권고서.
그는 탄약통을 먼저 끌었다. 가벼웠다. 다음에 점화부 상자를 끌었다. 무거웠다. 상자 손잡이가 열에 달궈져 있었다. 손바닥이 손잡이에 들러붙는 느낌이 났다. 그는 놓지 않았다. 놓으면 다시 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불붙은 널빤지 하나가 등 뒤에 떨어졌다. 정비복 등판이 탔다. 탄 냄새가 제 몸에서 났다.
누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운전병이었다. 운전병은 소리를 지르며 한결을 끌었다. 한결은 상자를 끌었다. 운전병이 한결을 끌고 한결이 상자를 끄는 그 줄이 헛간 문턱을 넘었을 때, 지붕 한가운데가 내려앉았다.
0320, 활공폭탄이 떨어졌다. 헛간이 아니라 헛간 뒤 밀밭이었다. 소콜로프의 드론이 그물을 찢는 동안 밀밭에 모여 있던 정비 트럭 둘을 노린 것이었다. 땅이 들렸다가 내려앉았고, 흙과 밀 이삭이 비처럼 쏟아졌다. 트럭 하나가 옆으로 누웠다. 두 번째 폭탄은 국도 건너편에 떨어졌다. 할리나의 작은 트랙터가 거기 있었다. 일곱 주 전 밀밭에서 한결이 연료 필터를 전화선 두 바퀴로 이어 준 그 트랙터였다.
*
0340, 헛간이 탔다. 안의 전차 세 대도 탔다.
전차는 불에 잘 안 탄다. 그러나 오래 달궈지면 안의 것들이 탄다. 배선이 녹고, 고무 패킹이 녹고, 탄약고의 빈 칸에 남은 기름이 탄다. 한결은 헛간 마당 흙바닥에 주저앉아 그것을 봤다. 불길 사이로 포탑 셋이 검게 서 있었다. 하나의 포탑 옆면에 분필로 쓴 숫자가 보였다. 표트르가 두 대째에 적어 둔 번호였다. 열이었다. 분필이 열에 하얗게 들떠 떨어졌다.
위생병이 한결의 손을 잡아 펴려고 했다. 손이 안 펴졌다. 손바닥이 상자 손잡이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위생병은 물을 붓고 기다렸다. 물이 닿는 순간 한결은 이를 악물었다. 뜨거운 것이 아니라 차가운 것이 아팠다.
할리나와 주자는 부엌 밑 감자 저장고에 있었다. 운전병이 0312에 둘을 거기로 밀어 넣었다고 했다. 할리나는 끝까지 안 들어가려고 했다고 했다. 운전병은 그 이야기를 하며 자기 팔뚝을 보였다. 이빨 자국이 있었다. 아이 것이 아니었다. 닭 세 마리는 주자가 치마에 싸서 같이 들고 들어갔다. 감자 저장고 안에서 셋 다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했다.
드론 소리는 0410에 멎었다. 쉰이 다 왔고 다 갔다.
*
0430, 학교 지하실. 마지막 관측 드론이 헛간 위에서 돌아오며 보낸 영상이 화면에 떠 있었다. 열상 화면의 헛간은 하얗게 타고 있었다. 그 안에 네모난 것 셋이 더 하얬다. 전차였다.
소콜로프는 영상을 거꾸로 돌렸다. 0317, 불붙은 헛간 문턱에 사람의 열 둘이 겹쳐 있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끌고, 끌려 나오는 쪽이 무언가 네모난 것을 끌고 있었다. 끌려 나오는 사람의 손이 화면에서 제일 하얬다. 뜨거운 것을 쥔 손이었다. 부관이 그 장면을 보고 무엇을 끌고 나오는 거냐고 물었다. 소콜로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수첩 앞장에 세 대 전소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으려다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손은 살았다고 적을 칸이 그의 수첩에는 없었다.
*
0600, 해가 떴다. 헛간은 기둥 몇 개와 검은 벽 한쪽만 남아 연기를 올리고 있었다. 전차 세 대는 그 안에 검게 서 있었다. 연기에서 고무와 짚과 기름 냄새가 섞여 났다. 비가 온 뒤의 모닥불 냄새 같다가, 가까이 가면 쇠 냄새가 났다.
브란도프스키가 마당에 서서 셌다. 굴린 전차 열둘에서 셋을 뺐다. 아홉. 한결은 그 셈을 따라 하지 않았다. 따라 하지 않아도 알았다. 표트르가 불탄 포탑 셋 앞을 천천히 걸었다. 그는 세 대의 조종석 선반을 알았다. 안경은 거기 없었다. 안경은 창고 7에서 처음 꺼낸 셋째 차의 선반에 있었고, 그 차는 오늘 새벽 강 건너 대대에 가 있었다. 표트르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 가슴 주머니를 만졌다. 비어 있었다. 안경이 거기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도 손이 갔다.
할리나가 감자 저장고에서 나왔다. 그녀는 헛간을 봤다. 오래 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은 서 있었다. 곧 화덕에 불을 넣는 소리가 났다. 연기가 굴뚝에서 올라왔다. 헛간 연기와 다른 색이었다. 병사들은 헛간 마당에 흩어져 앉아 그 굴뚝을 봤다. 누구도 먼저 일어나 불탄 전차 쪽으로 가지 않았다. 불탄 것 앞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한결뿐이었는데, 한결은 손이 붕대에 감겨 있었다. 운전병이 불탄 트럭 쪽에서 소화기 빈 통을 주워 와 줄지어 세웠다. 다섯 개였다. 그는 그것이 할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통을 한 줄로 맞췄다. 맞추고 나서 한 번 더 맞췄다. 줄은 처음부터 맞아 있었다.
*
0800, 주자가 국도를 건너갔다 돌아왔다.
아이는 불탄 트랙터 앞에 한참 서 있었다고 운전병이 말했다. 트랙터는 뼈대만 남아 있었다. 바퀴 고무가 녹아 흙에 달라붙었고 좌석 스프링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드라이버를 빌려 달라고 했다. 운전병이 빌려 주었다. 아이는 트랙터 뒤로 가서 나사 네 개를 풀었다. 하나는 녹이 슬어 안 풀려서, 운전병이 대신 돌려 주었다.
주자가 그것을 들고 한결 앞에 왔다. 번호판이었다. 가장자리가 그을려 있었고 숫자 둘째 자리가 열에 부풀어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한결의 붕대 감은 손 옆에 내려놓았다.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한결도 묻지 않았다.
*
1000, 헛간 터 옆에 천막 하나가 섰다. 병사들이 불타지 않은 탁자 하나를 부엌에서 빌려 와 그 안에 놓았다. 새 작업대였다. 점화부 상자 셋이 그 밑에 들어갔다. 셋 가운데 하나는 뚜껑이 녹아 열리지 않았다. 열어 보니 안의 점화부 셋이 열을 먹어 쓸 수 없었다. 남은 것을 세었다. 열이었다.
브란도프스키가 천막에 들어와 불탄 상자를 봤다. 그는 여단에 보고할 숫자를 수첩에 적었다. 되살린 전차 셋 전소, 점화부 셋 손실, 부상 넷, 사망 없음. 사망 없음을 적을 때 그의 볼펜이 한 번 멈췄다. 그는 그 네 글자 밑에 줄을 한 번 그었다. 강조하려는 것인지 지우려는 것인지는 그도 몰랐다.
다율이 천막 입구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어젯밤의 기록이 떠 있었다. 드론이 들어온 방향, 시각, 요격한 수, 못 한 수. 그는 그 기록을 끝까지 넘기다가 한 곳에서 멈췄다. 첫 드론이 그물에 닿은 시각이었다. 0310. 여단 당직이 바뀌고 10분 안이었다. 그는 다른 창을 열어 5월 29일 밤을 띄웠다. 78이 처음 뜬 것은 1907이었다. 그것도 당직이 바뀌고 10분 안이었다. 그는 두 시각을 나란히 놓고 한참 봤다.
다율은 노트북을 불탄 헛간 쪽으로 돌려 놓고 한결을 봤다.
“판 서님, 이번엔 제가 들어갑니다.”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탄약통을 열었다. 종이 넷을 하나씩 꺼내 새 작업대 위에 세웠다. 0.2. 도면. 여섯 줄. 날짜 칸이 빈 권고서. 넷 다 모서리가 조금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주자가 두고 간 것을 붕대 감은 손으로 들어 그 옆에 세웠다.
그을린 번호판이 종이 넷 옆에 다섯째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