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5,166자) · 서한결 · 7월 9일(금)
미끼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200, 농로 입구의 옥수수 줄기들이 달빛에 은색으로 서 있었다. 그 사이로 작은 궤도 차 두 대가 앞서 들어갔다.
다율의 무인 지뢰 제거기였다. 하나는 창고 앞 도로를 갈았던 그 차였고, 하나는 사흘 전 여단 공병대가 빌려 준 차였다. 빌려 준 차의 옆구리에는 공병대 마크 위에 누군가 매직으로 멧돼지 한 마리를 그려 놓았다. 공병대에서 부르던 이름이라고 했다. 다율은 두 차를 헛간 작업대 위 노트북 두 대로 몰았다. 화면 둘을 번갈아 보느라 목이 좌우로 계속 돌았다. 운전병이 옆에서 그 목을 보며 테니스 경기를 보는 사람 같다고 했다.
일주일 사이에 농로도 묻혔다. 사흘째 밤에 전차 한 대가 그 길로 빠져나간 것을 저쪽도 봤다. 비에스와프가 옥수수밭 끝에서 공병들이 판 자리를 세어 두었지만, 이번에는 밤에 판 것이 섞여 있어 다 세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제거기가 먼저 갔다.
한결은 표트르와 토마시 뒤에서 제거기의 궤도 자국을 밟으며 걸었다. 자국 밖으로 한 발만 나가도 안 되었다. 앞사람의 뒤꿈치만 보고 걸었다. 배낭 속에 점화부 두 벌이 있었다. 여단 창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헛간에 서 있는 되살린 세 대 가운데 두 대에서 어제 저녁 뽑아 온 것이었다. 그 두 대는 지금 헛간에서 다시 움직이지 못하는 쇳덩이였다. 넷 분으로 스물둘을 돌려 막는다고 한결이 종이에 그린 그 순서였다. 오늘 밤 두 대를 꺼내 오면 헛간의 두 대를 되살릴 부품은 또 없다.
*
0215, 학교 지하실. 관측 드론 화면에 농로를 기어 오는 작은 것 둘이 떠 있었다.
소콜로프는 그것을 한참 봤다. 부관이 경계병에게 알릴지를 물었다. 소콜로프는 고개를 저었다.
“두 번 나왔다. 세 번째는 안 나온다.”
그는 수첩 앞장에 적힌 것을 부관에게 보였다. 첫째 밤 둘, 셋째 밤 하나. 둘째 밤은 울타리 앞에서 돌아섰다. 그는 셋을 셌고, 셋째 밤 뒤에 농로에 지뢰를 묻으라고 했다. 묻은 것은 그가 세지 않은 길이었다. 이번에는 세었다.
*
0231, 앞서 가던 제거기가 들렸다.
불빛이 먼저 왔다. 소리는 그다음에 왔고, 땅이 한결의 발바닥을 한 번 쳤다. 공병대가 빌려 준 멧돼지였다. 대전차지뢰가 그 차의 오른쪽 궤도 밑에서 터졌다. 작은 차는 공중에서 반 바퀴를 돌아 뒤집힌 채 옥수수 줄기 위로 떨어졌다. 궤도가 하늘을 향해 헛돌다 멎었다. 뒤집힌 차체 밑에서 연기가 가늘게 올라왔다.
조명탄이 떴다. 창고 쪽에서 기관총이 긁었다. 셋은 궤도 자국 위에 엎드렸다. 한결의 뺨 밑으로 흙이 차가웠다. 기관총 탄이 머리 위 옥수수 잎을 끊고 지나갔다. 끊긴 잎이 등 위에 떨어졌다. 토마시가 엎드린 채 한결의 발목을 잡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손이었다. 그는 귀 대신 발목으로 말했다.
남은 제거기는 서지 않았다. 다율은 멧돼지가 뒤집힌 자리를 비켜 옥수수밭 쪽으로 한 줄을 새로 갈았다. 그 줄 끝에서 지뢰가 하나 더 터졌다. 이번에는 날 앞이었다. 쟁기 날이 휘었지만 차는 뒤집히지 않았다. 다율의 제거기는 휜 날을 끌고 창고 뒤 울타리까지 갔다.
0247, 조명탄이 꺼졌다. 셋이 그 새 줄 위로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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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창고 지붕 밑 첫째 줄의 두 대가 차례로 레버를 물었다. 딸깍, 딸깍. 한결은 표트르에게 첫째 차를 맡기고 둘째 차 조종석에 앉았다. 이번 조종수는 한결이었다. 창원에서 인수 시험을 하느라 몰아 본 적이 있었다. 3년 전 일이었다.
첫째 차는 두 번째에, 둘째 차는 네 번째에 걸렸다. 한결은 네 번째 시동을 걸며 속으로 웃었다. 이 창고의 차들은 저마다 버릇이 있었다. 넷째에 걸리는 차는 성질이 급한 차였다. 셋까지는 참는 척만 했다.
셋째로 꺼내려던 차가 있었다. 궤도가 풀려 바닥에 누운 차였다. 점화부는 없었지만 두 대가 쇠줄로 끌면 끌려 나올 수는 있었다. 토마시가 견인 쇠줄을 그 차의 쇠고리에 걸었다. 걸자마자 창고 정문 쪽에서 드론 소리가 났다. 둘이었다. 광케이블이었다. 한결은 그 소리가 창고 지붕 위를 도는 것을 들었다. 끌려 나오는 차는 느리다. 느린 차 세 대가 줄지어 나가면 드론은 셋을 차례로 고를 수 있다.
“끊으십시오.”
토마시는 쇠줄을 풀었다. 풀면서 쇠줄 끝을 한 번 발로 찼다. 세 번째는 오늘도 그 자리에 남았다.
*
0331, 두 대가 뒤 울타리를 밀고 나갔다. 다율의 제거기가 연 줄 위로 들어섰다.
첫 드론이 뒤에서 왔다. 토마시가 첫째 차의 포탑 해치에서 산탄총을 쏘았다. 빗나갔다. 드론은 둘째 차로 왔다. 한결의 차였다. 한결은 조종석에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해치 밖에서 표트르의 고함이 들렸을 뿐이었다. 차체 뒤쪽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 기관실 덮개 위였다. 계기판의 경고등 두 개가 동시에 켜졌다. 한결은 발을 떼지 않았다. 떼면 서고, 서면 두 번째가 온다.
두 번째 드론은 오지 않았다. 옥수수밭 끝 도랑에서 비에스와프가 쏜 산탄이 그것의 실을 끊었다. 실이 끊긴 드론은 힘을 잃고 옥수수 줄기 위에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거기서 터지지 않고 한참 떨다가 멎었다.
0412, 개울 앞에서 오른쪽 궤도가 비명을 질렀다. 한결은 차를 세우고 물속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무릎까지였다. 핀 하나가 반쯤 빠져 있었다. 그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핀을 꺼내 박았다. 넷이 셋이 되었다. 왼쪽 주머니의 둘은 건드리지 않았다. 손이 왼쪽 주머니 위를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표트르가 첫째 차를 세웠다. 뒤집힌 멧돼지가 농로 옆에 누워 있었다. 표트르는 견인 쇠줄을 그 작은 차의 궤도에 걸었다. 55톤이 작은 차를 끌고 개울을 건넜다. 작은 차는 뒤집힌 채 흙을 긁으며 끌려왔다. 궤도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0425, 학교 지하실의 화면에서 두 대가 개울을 건너 능선 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한 대는 뒤에 무언가를 끌고 있었다. 뒤집힌 작은 차였다.
소콜로프는 그 화면을 끄지 않았다. 부관이 포병에 좌표를 넘길지 물었다. 능선 너머는 저쪽 자주포의 사거리 안이었고, 우리 포가 쏘면 30초 뒤에 저쪽이 대답할 것이었다. 소콜로프는 수첩 앞장을 폈다. 첫째 밤 둘, 셋째 밤 하나. 그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넷째 밤 둘. 그는 그 줄 옆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다. 틀린 예언에 가위표를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끌고 가는 저건 뭡니까?”
“제 편이 뒤집어 놓은 걸 도로 주워 가는 거다.”
부관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았다. 소콜로프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화면 속 작은 차가 흙을 긁으며 끌려가는 것을 끝까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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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0, 헛간 마당에 두 대가 들어왔다. 굴린 전차가 다섯이 되었다. 헛간의 두 대는 여전히 쇳덩이였다. 다섯 가운데 굴러갈 수 있는 것은 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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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 헛간 옆 마을에 활공폭탄이 떨어졌다.
소리보다 먼저 땅이 들렸다. 헛간 기둥이 삐걱거렸고 작업대 위의 종이 넷이 한꺼번에 미끄러졌다. 한결이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눌렀다. 마을 쪽에서 먼지 기둥이 솟았다. 러시아 폭격기는 회랑 밖 70킬로미터에서 그것을 떨어뜨렸다. 날개 달린 폭탄은 혼자 미끄러져 왔다. 오늘은 마을 한가운데였다. 주자가 닭장 경계선 상자에서 굴러떨어졌다가 일어났다. 무릎이 까졌다. 아이는 울지 않고 닭 세 마리부터 셌다. 셋이었다. 그다음에 자기 무릎을 봤다.
할리나의 이웃집 지붕이 없었다. 기와가 전부 마당으로 쏟아져 있었고, 서까래가 부러져 하늘로 뻗어 있었다. 이웃집 노인은 부엌에 있었다. 부엌은 지붕이 있는 쪽이었다. 노인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마당에 나와 앉아, 부러진 서까래를 올려다보며 한참 욕을 했다. 운전병이 옮기지 않았다. 옮길 필요가 없었다.
1210, 마을 면사무소 앞에 줄이 서 있었다. 의용군 입대를 받는 줄이었다. 활공폭탄이 떨어지고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줄은 줄지 않았다. 늘어 있었다. 트랙터 기사와 우체부와 교회 오르간을 치던 청년이 서 있었다. 할리나가 그 줄 옆을 지나갔다. 바구니에 빵이 가득했다. 그녀는 줄 선 사람들에게 빵을 주지 않았다. 지붕 없는 이웃집으로 가져가는 빵이었다. 줄 선 사람 몇이 모자를 벗었다. 할리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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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다율이 헛간 뒤에서 뒤집힌 멧돼지를 바로 세웠다. 표트르와 운전병이 도왔다. 오른쪽 궤도가 찢어져 있었고 차체 밑판이 안으로 휘어 있었다. 다시 굴러갈 차가 아니었다.
다율은 드라이버로 차체 옆의 작은 덮개를 열었다. 손바닥만 한 기록 칩이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빼내 노트북에 꽂았다. 이 차가 지나온 길이 지도 위에 선으로 떴다. 선 위에 붉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이 차가 찾아서 터뜨리거나 비켜 간 지뢰였다. 다율은 점을 셌다. 셋은 공병대에 있을 때 찾은 것이었고, 여덟은 사흘 동안 여기서 찾은 것이었다. 마지막 점은 점이 아니라 별표였다. 그 차를 뒤집은 것이었다.
그는 여단 장비 대장을 폈다. 이 차의 줄 끝에 멸실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다. 보통은 한 단어를 적었다. 파손. 다율은 그 칸에 한 단어를 적지 않았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적었다. 이 차가 찾은 지뢰 열하나.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열두 번째가 이 차를 찾음.
운전병이 그것을 어깨 너머로 읽었다. 공병대에 돌려줄 때 이 대장도 같이 보내겠다고 했다. 멧돼지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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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한결은 둘째 차의 기관실 덮개를 열었다. 드론이 떨어진 자리는 덮개 위였고, 파편이 흡기구 망을 뚫고 들어가 냉각수 호스 하나를 찢어 놓았다. 호스는 새것이 없었다. 그는 찢어진 자리를 잘라 내고 남은 두 토막을 쇠 파이프 한 마디에 끼웠다. 그 위를 야전 전화선으로 두 바퀴 감고 끝을 안쪽으로 접었다. 표트르가 옆에서 그 손을 보다가, 저쪽이 그 두 바퀴를 알아본다는 이야기가 여단에 돈다고 했다. 한결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알아봐도 감아야 물이 안 샜다. 시동을 걸고 10분을 돌렸다. 이음매 밑에 받쳐 둔 깡통에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표트르가 깡통을 들어 안을 들여다보고, 뒤집어 흔들어 보기까지 했다. 한결은 그 깡통을 도로 받아 제자리에 놓았다. 밤새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내일 아침 그 깡통이 먼저 알려 줄 것이었다.
*
1700, 브란도프스키가 전화를 받고 헛간으로 왔다. 그단스크의 여단 연락장교였다. 그는 전화기를 한결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 수첩에 받아 적은 것을 읽었다.
“세관이 필증을 멈췄답니다. 사유가 한 줄입니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브란도프스키는 수첩을 돌려 한결에게 보였다. 영어였다. 그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검사원 번호 마지막 자리 판독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