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5,151자) · 서한결 · 7월 5일(월)

도장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840, 2중대 7호차가 숲 가장자리에서 서 있었다. 한결은 그 차의 기관실 덮개 위에 엎드려 있었다.

연료 분사 펌프로 가는 배선 하나가 파편에 반쯤 끊겨 있었다. 끊긴 자리에서 구리선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피복을 벗기고 두 가닥을 비틀어 이었다. 이은 자리에 절연 테이프를 감았다. 테이프가 모자라서 그 위에 철사를 두 바퀴 감았다. 7호차 전차장은 해치 밖으로 머리만 내밀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조종수는 차 밑에 들어가 궤도를 붙들고 있었는데, 궤도를 붙든다고 차가 안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무언가 붙들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얼굴이었다. 숲 너머에서 저쪽 전차가 오고 있다는 보고가 20분 전에 들어왔다.

0846, 높은 벌 소리가 났다. 7호차 옆 참호에서 병사 하나가 산탄총을 들고 일어섰다. 소리는 나무 꼭대기 위를 한 바퀴 돌았다. 한결은 덮개 위에 납작 엎드렸다. 등 위로 햇빛이 뜨거웠다. 쇠 덮개가 달아올라 배가 따가웠다. 소리가 나무 사이로 내려왔다. 산탄총이 두 번 울렸고, 두 번째에 소리가 끊겼다. 드론은 숲 가장자리 풀밭에 떨어져 터졌다. 풀 타는 냄새가 났다.

“판 서, 얼마나 걸립니까?”

전차장이 물었다. 한결은 대답 대신 철사 끝을 안쪽으로 접었다. 다음 사람 손이 안 베이게.

“지금 걸어 보십시오.”

시동이 걸렸다. 7호차는 숲 가장자리에서 뒤로 빠져 헐다운 자리로 들어갔다. 차체를 능선 뒤에 숨기고 포탑만 내미는 자리였다. 0902에 숲 너머에서 첫 포성이 났다. 7호차가 대답했다. 한결은 참호 안으로 굴러 들어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세 번째 포성 뒤에 숲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저쪽 것이었다. 7호차 전차장이 해치 밖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한결은 참호 바닥의 흙을 털며 그 엄지를 봤다. 저 차는 오늘 아침 서 있었다.

0915, 숲 너머에서 저쪽 포가 대답했다. 7호차가 있던 숲 가장자리에 포탄이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한결이 엎드려 있던 자리였다. 흙과 나뭇가지가 참호 위로 쏟아졌다. 한결은 참호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포탄 사이의 시간을 셌다. 20초, 25초. 여섯 발이 떨어지고 멎었다. 고개를 들자 숲 가장자리의 자작나무 세 그루가 허리가 꺾여 있었다. 흰 껍질 사이로 드러난 속살이 젖은 종이처럼 누랬다.

굴린 전차는 셋이었다. 창고 7에는 열아홉이 서 있었다. 점화부는 한 벌도 없었다.

*

2000, 창원 완성차 검사동의 형광등 절반이 꺼져 있었다.

정하경은 검사대 옆 책상에 컵라면을 올려놓고 뚜껑 위에 볼펜을 얹어 두었다. 3분을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봤다. 수출 라인이 서 있었다. 폴란드로 갈 차들이 도색까지 마치고 줄지어 서 있었는데, 사흘 전부터 한 대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옆 국내 라인에서는 우리 육군에 들어갈 새 전차가 한 대씩 나가고 있었다. 새것은 늘 나갔다. 하경은 새것만 봤다.

수출 라인 작업자들은 사흘째 할 일이 없었다. 누구는 도색이 끝난 차의 궤도 위에 앉아 화투를 쳤고, 누구는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서 졸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서해 지도와 산둥반도 위성 사진이 번갈아 나왔다. 작업자 하나가 하경에게 물었다. 저 차들 언제 나가느냐고. 하경은 모른다고 했다. 서울이 정한 일이 창원에서는 라인 한 줄이 서는 것으로 보였다. 서는 라인 옆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서울에서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하경은 그 사람들의 이름을 다 알았다.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화투장을 뒤집는 소리가 검사동까지 들렸다.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긴 번호가 떴다. +48로 시작했다. 폴란드였다. 한 달 전 품질기획팀에서 그 나라 이름을 몇 번이나 들었다. 하경은 라면 뚜껑 위의 볼펜을 치우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반장님, 서한결입니다.”

“알아, 번호 보고 알았어. 그 나라에 아는 사람이 자네밖에 없어.”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라면 불고 있어. 짧게 해.”

한결은 짧게 하지 못했다. 그는 그단스크 부두에 선 컨테이너 둘을 말했다. 6월에 창원에서 나간 점화부 스무 벌과 퓨즈 스무 상자였다. 부품은 이미 폴란드 땅에 있었다. 다만 검사 필증이 아직 발행되지 않은 로트였다. 서류가 늦게 따라가는 일은 흔했다. 필증이 없으면 폴란드 세관이 안 풀어 주고, 서울은 그 필증을 이제 발행하지 말라고 했다.

“그 로트, 반장님이 보신 겁니다. 6월 셋째 주요.”

“봤지, 기억해. 점화부 한 벌이 커넥터 도금이 얇아서 뺐어. 스물하나 가운데 하나.”

“반장님 번호로 필증을 한 번만 끊어 주십시오. 날짜는 그 주로요. 반장님이 보신 날짜입니다. 없는 걸 만드는 게 아닙니다.”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컵라면 뚜껑 틈으로 김이 새어 나와 하경의 안경을 흐리게 했다. 그녀는 안경을 벗어 가운 자락에 닦았다.

“서 정비관, 내가 그 주에 봤다는 건 맞아. 그런데 필증에 찍히는 건 내가 봤다는 말이 아니야. 내가 보냈다는 말이지. 서울이 보내지 말라고 한 걸 내가 보냈다고 찍으라는 거야.”

“폴란드 전차가 서 있습니다. 열아홉 대가요. 그 부품이 없어서요.”

“그 도장은 내 번호다.”

하경은 그 말을 하고 잠깐 숨을 골랐다. 목소리를 올리지 않았다. 올리지 않아서 더 단단했다.

“내가 규격 안쪽 아래를 두 해 동안 적은 거 알지? 열네 장. 그거 누가 시켜서 적은 거 아니야. 그 차들 필증에 내 번호가 찍혀서 적은 거야. 내 번호가 찍힌 차가 어디서 서면, 그건 내가 선 거야. 그래서 규격 안이어도 뺐어. 그 번호로 서울이 막은 걸 보내라고? 그럼 그 열네 장이 다 거짓말이 돼.”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경의 말이 옳았다. 그리고 폴란드의 열아홉 대도 거기 서 있었다.

“미안해, 안 돼.”

하경이 그 말을 하고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창밖 국내 라인에서 새 전차 한 대가 경적을 짧게 울리며 문을 나갔다.

“서 정비관.”

“예.”

“밥은 거기서 어떻게 먹나?”

한결은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알았다. 6월 1일 소인이 찍힌 편지였다. 어머니의 연필 글씨였다. 밥은 어떻게 먹느냐. 연필을 너무 세게 눌러서 종이 뒷면까지 볼록하게 솟은 글씨였다. 그 글씨가 창원 검사동의 형광등 밑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한 번 더 왔다.

“…헛간 주인 할머니가 빵을 구워 주십니다. 매일요.”

“그래, 다행이네. 라면 다 불었어, 끊는다.”

하경은 전화를 내려놓았다.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면이 국물을 다 먹고 부풀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끝까지 먹었다. 먹는 동안 한 번도 전화기를 보지 않았다.

*

1340, 폴란드의 한결은 트랙터 옆 흙바닥에 한참 앉아 있었다.

전화기는 무릎 위에 엎어져 있었다. 할리나의 닭 세 마리가 그의 군화 끝을 번갈아 쪼았다. 주자가 닭장 경계선 상자 위에서 닭들을 불렀다. 닭들은 오지 않았다. 대통령 이름을 가진 닭들이라 사람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운전병이 지나가다 옮겨 주었다. 한결은 웃지 못했다. 할리나가 부엌에서 나와 빵 한 덩이를 그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아직 따뜻했다. 그녀는 무엇을 묻지 않았다. 폴란드어로 뭐라고 한마디 하고 도로 들어갔다. 운전병이 옮기려다가, 이건 옮기면 안 되는 말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한결이 눈으로 묻자 운전병은 한숨을 쉬고 옮겼다. 전화기를 그렇게 엎어 두면 속에 든 사람이 숨 막힌다고 했다고.

하경은 틀리지 않았다. 필증에 찍히는 번호는 검사원이 세상에 대고 하는 약속이었다. 이 차는 내가 봤고, 내가 보냈다. 그 약속이 있어서 폴란드 여단은 창원에서 온 차를 뜯어보지 않고 받았다. 그 약속을 서류 한 장으로 바꾸면, 다음 약속은 아무도 안 믿는다.

그러나 열아홉 대는 서 있었다. 트레일러는 다시 올 것이었다. 그리고 8월의 어느 날, 여단은 스물아홉이 아니라 그보다 적은 수로 회랑 앞에 서야 할 것이었다.

*

1700, 한결은 작업대 서랍에서 비닐 파일을 다시 꺼냈다. 작년 여름 필증 사본이었다. 오른쪽 아래 네모 칸에 검사원 번호가 찍혀 있었다. 숫자 여섯 자리. 그 옆에 하경의 서명이 있었다. 획이 짧고 끝이 위로 들렸다. 급하지 않은 사람의 서명이었다.

다율이 헛간에 들어와 작업대 옆에 섰다. 그는 파일을 보고, 한결의 얼굴을 봤다.

“판 서님, 그거 하시면 그 반장님이 다칩니다.”

“압니다.”

“압니까?”

“압니다, 안 하면 열아홉이 안 굴러갑니다. 그것도 압니다.”

다율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자기 노트북을 열어 그단스크 선사의 화물 조회 화면을 띄워 주었다. 컨테이너 두 개의 번호가 떠 있었다. 끝자리가 둘 다 7이었다. 상태 칸에 반송 대기라고 적혀 있었다. 대기라는 말은 아직 배가 안 떠났다는 뜻이었다. 배가 떠나면 그 스무 벌은 다시 창원으로 간다. 창원의 창고 선반에 올라가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먼지를 쓸 것이었다. 다율은 화면을 끄지 않고 노트북을 작업대 한쪽에 밀어 두었다. 끄면 한결이 그 번호를 다시 찾아야 했다.

*

2100, 협동농장 사무동 1층. 여단 행정반이 쓰는 방에 복사기가 한 대 있었다. 전쟁 전부터 농장 경리가 쓰던 것이었다. 뚜껑에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말라 붙어 있었다.

한결은 필증 사본을 유리판 위에 엎었다. 날짜 칸과 로트 번호 칸은 오후 내내 그가 손본 것이었다. 손이 떨려서 두 번을 버리고 세 번째 것이었다. 날짜는 6월 셋째 주였다. 하경이 그 부품을 본 주였다. 그것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뚜껑을 닫았다. 초록 불빛이 유리판 밑을 한 번 지나갔다. 기계가 헐떡이는 소리를 내더니 종이 한 장을 밀어냈다. 따뜻했다. 한결은 그것을 불빛에 비춰 봤다. 손본 자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토너가 모자라서 전체가 흐렸고, 흐린 덕분에 손댄 자리도 흐렸다.

다만 오른쪽 아래가 문제였다. 검사원 번호 여섯 자리 가운데 다섯은 읽혔다. 마지막 한 자리는 토너가 닿지 않아 회색 얼룩이었다. 3인지 8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복사기 뚜껑을 다시 열지 않았다. 토너는 이것뿐이었다. 행정반 병사가 사흘 전부터 새 토너를 청구하고 있었다. 병사는 방구석 간이침대에서 자다 깨어 한결이 복사하는 것을 봤다. 무엇을 복사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토너 청구서도 한 장 복사해 달라고 했다. 원본은 사단으로 보냈는데 답이 없어서 한 장 더 보내겠다고 했다. 한결은 청구서를 복사해 주었다. 청구서는 필증보다 더 흐리게 나왔다. 병사는 그것을 불빛에 비춰 보고, 이걸 보면 토너가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며 도로 누웠다.

복사된 종이 오른쪽 아래에서, 번호 마지막 자리가 흐리게 번져 있었다.

2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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