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5,246자) · 서한결 · 6월 22일(화)

3호차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252, 3호차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섰다.

한결은 두 번째 차의 포탑 해치에 눈만 내놓고 앞을 봤다. 앞 차의 뒤판 너머로 도로가 들판을 가로질러 곧게 뻗어 있었다. 달빛에 희끄무레한 도로 양옆으로 풀숲이 낮게 깔려 있었고, 그 풀숲 여기저기에서 가는 선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여섯 줄이었다. 줄마다 끝이 풀숲 속 어딘가로 들어가 있었다. 그 끝에 무엇이 앉아 있는지 한결은 알았다. 마레크의 조종수 해치 위로 떨어진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앞 차의 포탑 해치에서 야누시가 상체를 내밀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손바닥을 뒤로 펴서 한 번 눌렀다. 서 있으라는 뜻이었다. 즈비섹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두 번째 차가 앞 차 30미터 뒤에서 섰다.

3호차의 포신이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았다. 포구가 도로 오른쪽 풀숲을 향해 낮게 내려갔다. 한결은 야누시가 무엇을 하려는지 그제야 알았다. 풀숲에 앉은 것들은 실로 조종된다. 실은 전파를 안 내서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이 안 듣는다. 대신 실은 끊어진다. 야누시는 드론을 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실을 쏘려는 것이었다.

*

0253, 포가 울었다.

산탄이었다. 포구 앞 풀숲이 한 번에 쓸려 나갔다. 수천 개의 쇠구슬이 부채꼴로 퍼지며 풀을 베고 흙을 뒤집었다. 흙먼지가 달빛 속에 하얗게 솟았다가 가라앉았을 때, 오른쪽의 반짝이던 선 셋 가운데 둘이 보이지 않았다. 셋째 선 끝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낮고 빠르게 떠서, 3호차 쪽으로 기울어 왔다.

동축 기관총이 그것을 긁었다. 토마시였다. 그는 소리를 못 들었지만 조준경 속 움직이는 점은 봤다. 점이 흔들리다가 도로 위에 떨어져 터졌다. 불빛이 3호차 앞 궤도를 한 번 비췄다.

0254, 왼쪽 풀숲에서 둘이 동시에 떠올랐다. 3호차의 포탑이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장전기가 다음 탄을 올리는 데 6초가 걸렸다. 6초는 드론에게 긴 시간이었다.

야누시가 해치 밖으로 몸을 더 내밀었다. 손에 산탄총을 들고 있었다. 열이틀 전 밀밭에서 병사들이 드론을 떨어뜨리던 그 총이었다. 첫 발에 왼쪽 것 하나가 날개를 잃고 풀숲으로 박혔다. 그는 펌프를 당겼다. 두 번째 것이 이미 포탑 위에 있었다.

한결은 그것을 봤다. 소리는 나중에 기억났다. 벌 소리가 한 음 높아졌다가, 끊겼다.

3호차의 포탑 위에서 불빛이 한 번 섰다. 크지 않았다. 드론은 전차를 부수지 않는다. 한 군데만 죽인다. 조준경이나 안테나나 흡기구나, 사람을. 야누시의 상체가 해치 테두리에 걸린 채 앞으로 꺾였다. 산탄총이 포탑 위를 미끄러져 도로로 떨어졌다.

*

0255, 3호차는 서지 않았다.

포탑이 왼쪽으로 끝까지 돌았고 두 번째 산탄이 나갔다. 토마시가 쏜 것이었다. 전차장 해치 위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그는 아직 몰랐다. 조준경 속 왼쪽 풀숲이 쓸려 나갔다. 풀숲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하나는 산탄이 닿기 한 박자 전에 이미 떠올라 있었다. 실이 쇠구슬 사이를 빠져나갔다.

여섯째는 두 번째 차로 왔다. 한결의 차였다. 한결은 해치를 닫았다. 잠망경 속에서 점 하나가 커지고 있었다. 즈비섹이 조종간을 한쪽으로 확 당겼다. 트랙터를 몰던 사람이 도랑에 빠질 뻔한 순간 손이 먼저 하는 동작이었다. 55톤이 도로 위에서 몸을 틀었다. 점은 포탑이 있던 자리를 지나 도로 옆 흙에 박혀 터졌다. 파편이 차체 옆구리를 소나기처럼 두드렸다. 잠망경 하나가 하얗게 금이 갔다.

앞에서 3호차가 다시 움직였다. 표트르가 조종석에서 야누시의 마지막 손짓을 기억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는 그 손짓대로 갔다. 전차장 해치 테두리에 걸린 몸이 차가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0302, 저쪽 능선 뒤에서 우리 쪽 포가 울기 시작했다. K9이었다. 여단 포대가 3호차의 뒤를 연막과 포탄으로 덮었다. 들판 위로 흰 연막이 길게 깔렸고, 두 대는 그 연막 속으로 들어갔다. 한결은 금 간 잠망경 대신 해치를 한 뼘 열고 앞을 봤다. 연막 냄새가 매캐했다. 그 안에서 앞 차의 엔진 소리만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갔다. 즈비섹도 그 소리를 따라갔다.

0320, 저쪽 포가 대답했다. 연막 속 어딘가에 포탄이 떨어졌고, 땅이 전차 바닥을 통해 한결의 무릎까지 올라왔다. 두 번째는 더 멀었다. 저쪽은 연막을 보고 쏘았지 전차를 보고 쏜 것이 아니었다. 즈비섹이 조종석에서 무언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곡조가 없는 노래였다. 한결은 그것이 노래가 아니라 숨을 고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트랙터로 가을걷이를 하던 사람이 긴 밭고랑 끝까지 가는 동안 부르던 소리였을 것이다. 한결은 그 소리를 막지 않았다. 앞 차의 엔진 소리와 즈비섹의 소리 사이에서, 그는 방금 본 불빛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계기판의 온도 바늘만 봤다.

*

0514, 두 대가 능선을 넘었다.

능선 너머 헛간 앞 마당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브란도프스키가 맨 앞이었다. 다율이 노트북을 가슴에 안고 그 옆에 있었고, 할리나가 부엌 문간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고 있었다. 3호차가 마당에 들어와 섰다. 엔진이 꺼졌다. 한 달 동안 창고에 서 있던 엔진이 네 시간을 쉬지 않고 돌고 나서 식어 가는 소리가 났다. 쇠가 줄어드는 소리였다.

한결은 두 번째 차에서 내려 3호차로 갔다. 포탑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올라가지 않아도 보였다. 브란도프스키가 올라갔다. 그는 전차장 해치 테두리에 걸린 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오래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야누시의 목에서 인식표를 벗겼다. 끈이 해치 테두리에 걸려서 한 번에 안 빠졌다. 그는 끈을 풀지 않고 손으로 끊었다.

토마시가 포수석에서 나왔다. 해치를 나오다가 위를 봤다. 그는 한참 움직이지 않다가 자기 귀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들리지 않는 귀를 막았다. 표트르는 조종석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종간을 쥔 채였다. 다율이 조종수 해치 앞에 쪼그려 앉아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1020, 다율이 제거기가 보내온 어젯밤 영상을 돌려 봤다. 길을 다 갈고 도랑에 몸을 숨긴 뒤에도 제거기의 앞 카메라는 켜져 있었다. 도랑 턱 너머로 도로 옆 풀숲이 비스듬히 보였다. 2231의 한 장면에서 풀잎 사이로 무언가가 가늘게 반짝였다. 다율은 그 장면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봤다. 실이었다. 그때는 이미 거기 있었다. 무언가 낮게 날아와 풀숲에 내려앉는 장면은 그 20분 전이었는데, 그 부분은 달이 구름에 들어가 있어서 흐렸다. 그는 그것을 거미줄로 봤다. 모니터 셋을 동시에 보던 밤이었다.

“판 서님, 제가 봤습니다. 어젯밤에요. 보고도 몰랐습니다.”

한결은 그 멈춘 화면을 봤다. 거미줄로 보였다. 누가 봐도 그랬다. 그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괜찮은 일이 아니었다. 대신 그 장면의 시각을 자기 수첩에 적었다. 2231, 풀숲, 반짝임. 다음에 제거기가 길을 갈 때 먼저 볼 자리였다. 다율은 그 줄을 옆에서 읽고, 자기 노트북의 같은 장면에 표시를 하나 달았다.

*

0810, 브란도프스키는 헛간 안 작업대 한쪽을 빌려 종이 한 장을 썼다. 한결은 옆에서 그것을 봤다. 폴란드어였다. 맨 위에 이름이 있었다. 베아타. 야누시의 누이였다. 그녀는 바르샤바 남쪽 도시의 빵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한 달 전부터 이 여단 병사들의 가족에게 가짜 전사 통지가 돌았다. 모르는 번호로 오는 문자였다. 가족들은 이제 문자를 믿지 않았다. 브란도프스키는 그래서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종이에 썼다. 사단 연락장교가 오늘 오후 그 종이를 들고 빵 공장까지 간다고 했다. 사람이 가서 문을 두드려야 진짜가 된다고 했다.

그는 쓰다가 한 번 멈췄다.

“판 서, 야누시가 3호차 전차장이 된 게 몇 년입니까?”

“인수 때 제가 적은 건 2년 전 봄입니다.”

“그럼 2년이라고 쓰겠습니다. 그가 스스로는 3년이라고 했을 겁니다. 부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브란도프스키는 2년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 옆에 괄호를 치고 작게 3년이라고 덧붙였다. 한결은 그것을 봤고, 봤다고 말하지 않았다.

*

1300, 표트르가 헛간 뒤 트랙터 옆으로 왔다. 오전 내내 조종석에서 나오지 않던 사람이었다. 얼굴을 씻었는지 앞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는 한결 앞에 서서 손바닥을 펴 보였다.

궤도 연결핀 두 개였다. 출발 전 야누시가 여단 창고 선반 구석에서 찾아 온 것이었다. 제 몫이라며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던 그 둘이었다. 표트르는 위생병이 야누시의 주머니를 비울 때 그 옆에 있었다고 했다. 다른 것은 다 위생병이 봉투에 넣었는데, 이것만은 자기가 달라고 했다고.

“판 서님 거랍니다. 궤도에 쓸 거니까요. 궤도는 판 서님이 고치니까요.”

한결은 핀 두 개를 받았다. 차가웠다. 한쪽 핀 머리에 손톱 자국 같은 긁힘이 있었다. 야누시가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린 자리였다.

그는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섯 개가 있었다. 한 달 동안 셌던 주머니였다. 그는 그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왼쪽 주머니를 열어 거기에 넣었다. 왼쪽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둘이 있었다. 다섯은 쓰는 핀이었다. 둘은 세지 않는 핀이었다.

표트르는 그 동작을 끝까지 봤다. 그는 무엇을 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가슴 주머니 단추를 풀어 안경을 꺼냈다가, 도로 넣고 단추를 채웠다. 3호차 계기판 위 선반은 오늘 비워 둘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마레크 자리가 아니라 야누시 자리라서.

굴린 전차는 둘이었다. 잃은 사람은 하나였다.

*

6월 23일 0610, 다율의 노트북 화면에 창고 7이 떠 있었다. 고도를 높게 잡은 관측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이었다.

정문 앞 도로에 트레일러 넷이 줄지어 서 있었다. 뒤에 크레인 차량 하나가 붙어 있었다. 마당에 선 스무 대 가운데 맨 앞 차의 방수포를 누군가 걷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하나 보였다.

0614, 화면 가장자리에서 흙기둥이 솟았다. K9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트레일러 줄 앞뒤로 떨어졌다. 크레인 차량이 뒤로 빠졌고, 트레일러들이 차례로 머리를 돌렸다. 방수포를 걷던 사람은 방수포를 도로 덮지도 않고 뛰었다. 사진을 찍으려던 사람도 뛰었다. 넷이 올 때의 절반 속도로 돌아갔다.

한결은 화면 속 울타리 밖 옥수수밭 끝을 찾아봤다. 거기 누가 엎드려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비에스와프는 소이 수류탄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쓸 일이 없었다.

1140, 같은 화면에 다른 것이 들어왔다. 러시아 공병들이었다. 그들은 창고 울타리 둘레를 따라 한 줄로 흙을 파고 무언가를 묻었다. 도로 옆, 다율의 제거기가 갈아 놓은 두 줄 위에도 묻었다. 창고 안의 스무 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가져가지 않고, 부수지도 않았다. 다율이 화면을 확대했다가 도로 줄였다.

“미끼입니다. 이제 저 스무 대는.”

울타리 밖 흙이 한 줄로 새로 뒤집혀 있었다.

2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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