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5,163자) · 서한결 · 6월 22일(화)

둘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030, 학교 지하실의 모니터 여섯이 같은 도로를 보고 있었다.

소콜로프는 의자를 탁자에서 조금 떼어 앉았다. 화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여섯을 한눈에 넣었다. 하나가 움직이면 눈이 저절로 그쪽으로 갈 것이었다. 도로는 달빛에 희끄무레했고, 양옆 풀숲이 바람에 한쪽으로 누웠다가 일어났다. 풀이 누울 때마다 실이 한 번씩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여섯 화면에서 조금씩 다른 시각에 일어났다. 바람이 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조종병 셋은 조종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일리야는 가슴 주머니 단추를 두 번 만졌다. 부관은 보온병 뚜껑에 차를 따라 소콜로프 앞에 놓았다. 소콜로프는 그것을 마시지 않았다. 식어 가는 차에서 김이 가늘게 올라오다 끊겼다.

창고 지붕 위에 선 관측 드론의 화면에서, 셋째 줄 가운데 차체의 열은 아까보다 조금 더 밝았다.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0100, 남쪽에서 포성이 올라왔다.

한꺼번에 여러 발이었다. 지하실 벽이 먼 데서 오는 진동으로 낮게 울렸다. 무전이 연달아 들어왔다. 남쪽 진지에 폴란드 전차 넷, 보병 동반, 포병 사격 동반. 부관이 무전을 받아 적다가 소콜로프를 봤다. 곧이어 탁자 위의 야전 전화가 울렸다. 대령이었다.

“남쪽이 뚫린다. 자네 드론 전부 남쪽으로 돌려.”

“남쪽은 가짜입니다.”

“전차 넷이 가짜야?”

“넷이 와서 넷이 돌아갈 겁니다. 제 여섯이 남쪽으로 가면 저 도로가 빕니다. 저쪽이 원하는 게 그겁니다.”

“자네가 틀리면 남쪽 중대가 다 죽어.”

“제가 맞으면 이 여단이 한 달 동안 부순 것이 다시 굴러 나옵니다.”

전화 너머에서 대령이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수화기를 손으로 막지 않은 소리였다. 그는 다시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여섯은 두고, 예비 관측 드론은 남쪽으로 보내라고 했다. 소콜로프는 그 정도는 받았다. 전화를 내려놓자 부관이 물었다. 남쪽이 진짜면 어떻게 하느냐고. 소콜로프는 식은 차를 그제야 한 모금 마셨다.

“진짜였으면 저쪽이 포를 저렇게 넓게 뿌리지 않는다.”

*

0104, 창고 7의 경계병들이 남쪽 울타리로 뛰어갔다. 넷이었다. 둘은 발전기 옆 방공호로 들어갔다. 남쪽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한 박자 늦게 창고 지붕을 건너왔다. 우리 쪽 포였다. 한결은 그 소리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스무 발을 넘기자 소리가 하나로 이어져 더는 셀 수 없었다. 여단은 오늘 밤 이 30분을 사려고 사흘 치 포탄을 쓰고 있었다.

한결은 육육이의 조종수 해치를 밀어 올렸다. 차가운 공기가 하루 동안 데워진 차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공기에 화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남쪽 하늘이 붉게 깜빡였다. 그는 조종수석 아래로 몸을 접어 넣고 점화부를 소켓에 밀었다. 표트르가 퓨즈를 첫 줄부터 꽂았고, 야누시가 포탑 쪽 퓨즈함을 맡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손만 움직였다. 레버를 내리는 순간 금속이 제자리에 물리는 소리가 셋의 귀에 동시에 닿았다.

옆 차에서도 같은 소리가 났다. 토마시와 즈비섹이 거기 있었다. 즈비섹은 농장 트랙터를 스무 해 몬 사람이었다. 전차는 처음이었지만 조종간 둘과 페달의 순서는 오후 내내 표트르가 손짓으로 가르쳤다.

야누시는 포탑으로 올라가기 전에 기름종이 뭉치를 들고 옆 차 해치 밑으로 갔다. 소이 수류탄 여섯이었다. 그는 그것을 해치 밖으로 내밀었고, 어둠 속에서 비에스와프의 손이 그것을 받았다. 울타리 밑 도랑을 거쳐 마당까지 들어와 있던 참이었다. 야누시가 짧게 말했다. 표트르가 한결의 귀에 대고 옮겼다. 트레일러가 오면 태우라고. 우리가 못 나가도 태우라고. 비에스와프는 뭉치를 외투 안에 넣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쉰 살 먹은 사람의 끄덕임이라 느렸다. 느려서 믿음이 갔다.

0106, 표트르가 시동을 걸었다. 걸리지 않았다. 스타터 모터가 쇳소리를 내며 한참 돌다가 멎었다. 두 번째도 같았다. 한결은 조종수석 옆에 쪼그려 앉아 계기판의 바늘을 봤다. 전압이 바닥에서 조금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한 달 동안 서 있던 배터리였다. 세 번째에 엔진이 한 번 기침을 하고 멎었다. 표트르가 한결을 돌아봤다. 한결은 손가락 넷을 펴 보였다. 표트르가 그 손가락을 보고 네 번째로 스위치를 눌렀다.

엔진이 걸렸다. 1,500마력이 창고 지붕 밑을 한꺼번에 채웠다. 함석판이 떨었고, 바닥의 먼지가 배기에 밀려 뒤쪽으로 구름처럼 날렸다. 야누시가 포탑 해치를 열고 몸을 반쯤 내밀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분필 토막을 꺼내 포탑 옆면에 커다랗게 숫자 하나를 적었다. 3이었다.

“내가 탄 차가 3호차다.”

표트르가 그 말을 옮기면서 웃었다. 한결도 웃었다. 누가 정한 규칙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부터 그 차는 3호차였다.

*

0112, 옆 차의 엔진도 걸렸다. 한 번에 걸렸다. 즈비섹이 트랙터 몰던 손으로 조종간을 당겼고, 차가 창고 마당으로 굴러 나갔다. 20미터쯤 갔을 때 오른쪽에서 쇠 긁히는 소리가 났다. 차가 그 자리에서 기우뚱하며 섰다.

한결은 3호차에서 뛰어내렸다. 오후에 손으로 더듬어 둔 자리였다. 오른쪽 셋째 바퀴 뒤, 반쯤 빠져나와 있던 핀 머리 두 개. 한 달 동안 서 있던 궤도가 처음으로 힘을 받자 그 둘이 마저 빠진 것이었다. 궤도판 두 장이 벌어져 있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벌어진 자리를 손으로 쟀다. 판을 다시 맞대려면 차를 한 뼘 뒤로 물려야 했다. 그는 즈비섹을 향해 손바닥을 뒤로 한 번 밀었다. 트랙터 몰던 사람은 그 손짓을 알아들었다. 차가 한 뼘 물러났다. 판 두 장의 구멍이 맞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핀 두 개를 꺼냈다. 일곱 가운데 둘이었다. 망치를 들었다.

첫 번째 망치질 소리가 창고 마당에 울렸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높은 소리였다. 남쪽 포성 사이로 그 소리가 또렷하게 튀었다. 방공호 쪽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손전등 불빛 하나가 마당을 쓸었다.

그때 3호차의 포탑이 돌았다. 토마시는 포수석에 있었다. 귀가 아직 절반만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망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대신 손전등 불빛이 한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봤다. 포신이 발전기를 향해 멈췄다. 1초 뒤 포가 울었다.

발전기가 불덩이가 되어 뒤집혔다. 창고 7의 모든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다 사라졌고, 방공호 쪽에서 기관총이 어둠에 대고 짧게 긁었다. 탄이 3호차 차체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울타리 밖 도랑에서 비에스와프와 아가타가 응사했다. 총구 불빛 두 개가 옥수수밭 끝에서 번갈아 깜빡였다.

한결은 두 번째 망치질을 했다. 포성에 귀가 먹먹해서 자기 망치 소리가 안 들렸다. 손바닥에 닿는 떨림으로만 핀이 들어가는 것을 알았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핀 머리가 판과 평평해졌다. 그는 두 번째 핀을 박았다. 일곱이 다섯이 되었다.

0124, 한결은 3호차 포탑으로 기어올랐다. 망치 자루에 쓸린 손바닥 가죽이 벗겨져 쓰라렸다. 포수석에서 토마시가 고개를 내밀고 뭐라고 물었다. 창고 마당 전체에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의 소리였다. 야누시가 그의 헬멧을 손바닥으로 눌러 도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표트르가 옮겨 주었다. 발전기 맞췄느냐고, 맞았으면 귀가 먹은 뒤로 처음 맞힌 거라고 물었다고. 마레크가 죽던 날 포탑 안에서 터진 소리가 그의 귀 한쪽을 가져갔고, 그 뒤로 그는 조준경 속의 표적이 무슨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지 들은 적이 없었다. 한결은 토마시의 헬멧 위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맞았다는 뜻이었다. 토마시는 그 손바닥의 뜻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

0131, 학교 지하실의 화면에 하얀 손이 떠 있었다.

창고 지붕 위 관측 드론이 마당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발전기가 터진 불빛이 화면 한쪽을 하얗게 날려 버렸고, 그 불빛 옆에 사람 하나가 엎드려 망치를 들고 있었다. 망치가 내려갈 때마다 손이 하얗게 번쩍였다. 다른 손은 궤도판을 누르고 있었다. 소콜로프는 그 손을 봤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었다.

부관이 숨을 들이켰다.

“지금 치면 됩니다. 저기 서 있습니다.”

“저기서 치면 전차 두 대가 창고 안에서 선다. 선 전차는 저쪽이 태운다. 우리한테 남는 건 탄 쇳덩이 스물둘이다.”

“그럼 언제입니까?”

소콜로프는 여섯 개의 화면을 봤다. 도로는 아직 비어 있었다.

“도로에 올라서면. 둘이 다 올라서고 나서.”

그는 마이크를 들었다. 일리야와 다른 조종병 둘이 동시에 등을 폈다. 일리야의 조종기 손잡이가 손바닥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바지에 손을 한 번 닦고 다시 쥐었다. 화면 속 도로 위로 아까 그 개구리가 다시 뛰어올라 왔다가, 한참 앉아 있더니 반대편 풀숲으로 건너갔다. 일리야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그것을 끝까지 봤다.

“여섯, 깨어나라. 모터는 돌리지 마라. 눈만 떠.”

*

0204, 두 대가 창고 정문 앞에 섰다. 한결은 3호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걸어갔다. 쇠고리에 감긴 철사가 발전기 불빛에 붉게 보였다. 한 바퀴였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풀었다. 5초가 걸리지 않았다. 급하게 떠난 사람이 급하게 감은 철사였다. 그는 푼 철사를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핀 다섯 개 옆으로 철사가 들어갔다.

문짝이 밖으로 열렸다. 3호차가 먼저 나갔다. 두 번째 차가 뒤따랐다. 한결은 두 번째 차의 포탑 위로 올라가 해치 안으로 몸을 내렸다. 즈비섹이 조종석에서 고개를 돌려 엄지를 들었다. 트랙터 기름 냄새가 전차 안에서도 났다. 즈비섹은 좌회전을 할 때마다 해치 밖으로 왼팔을 쭉 내밀었다. 스무 해 동안 국도에서 트랙터를 몰며 들인 버릇이었다. 한결이 그 팔을 두 번 끌어내렸고, 세 번째에는 표트르가 앞 차에서 뒤돌아보다가 그것을 봤다. 전차 두 대가 적진 한가운데를 빠져나가는데 한 대가 깜빡이 대신 팔을 내밀고 있었다. 표트르는 무전을 켤 수 없어서 해치 안에서 혼자 웃다가 조종간을 한 번 헛잡았다.

비에스와프와 아가타가 도랑에서 나와 울타리 옆에 섰다. 그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여기가 그들의 자리였다. 비에스와프는 지나가는 3호차에 대고 소매를 걷어 올려 보였다. 연필로 적은 스물두 줄 가운데 두 줄에 가위표가 그어져 있었다.

0230, 두 대가 도로에 올라섰다. 다율의 제거기가 뒤집어 놓은 흙 두 줄이 도로 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차가 그 사이로 들어갔다. 도로는 들판을 가로질러 저쪽 능선까지 곧게 이어졌다. 트레일러가 오기까지 27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결은 잠망경에 눈을 댔다. 달이 구름에서 나왔다. 도로 양옆 풀숲이 바람에 한쪽으로 누웠다.

출구 도로 위에 실 여섯 줄이 반짝였다.

2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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