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5,211자) · 소콜로프 · 6월 21일(월)

두 바퀴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1800, 골다프 동쪽 마을의 옛 학교 지하실. 소콜로프는 한 달 치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돌리고 있었다.

지하실 천장은 낮았다. 머리 위로 난방 배관이 지나갔고, 배관에 칠한 흰 페인트가 벗겨져 녹이 비늘처럼 일어나 있었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몇 장 남아 있었다. 해바라기와 탱크와 파란 지붕 집이었다. 탱크 그림 밑에는 아이 글씨로 우리 아빠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 어느 쪽으로 피난을 갔는지 이 지하실의 누구도 몰랐고, 아무도 그 그림을 떼지 않았다. 그 앞에 접이식 탁자 둘을 붙이고 모니터 넷을 올렸다. 발전기가 계단 위에서 돌았고, 그 진동이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와 모니터 속 영상을 조금씩 떨게 했다.

그는 폴더 하나를 열었다. 5월 17일부터 오늘까지 저 여단의 전차가 멈췄다가 다시 움직인 장면만 모아 둔 것이었다. 부관이 날짜별로 이름을 붙여 두었다. 마흔한 개였다. 소콜로프는 영상마다 전차를 보지 않았다. 전차 옆에 쪼그려 앉은 사람의 손만 봤다.

5월 20일. 흙 묻은 정비복, 트럭 옆, 호스에 철사. 감고, 끊고, 한 번 더 감는다. 끝을 안쪽으로 접는다. 5월 29일. 같은 손이 궤도 옆에서 무언가를 묶는다. 두 바퀴, 끝을 안으로. 6월 4일. 밤이라 열상이었다. 하얀 손 두 개가 검은 전선을 감는다. 두 바퀴였다.

“끝을 왜 안으로 접나?”

부관이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다음 사람 손이 안 베이게 하려는 겁니다. 제 아버지가 전기공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소콜로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수첩 뒷장을 폈다. 두 바퀴 옆에 줄이 다섯 있었다. 그는 5월 20일과 5월 29일 영상을 다시 한 번씩 보고, 줄을 둘 더 그었다. 처음 볼 때는 그 두 장면을 놓쳤다. 그때는 손을 찾고 있지 않았다.

*

1920, 대령이 왔다. 여단장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머리를 배관에 한 번 부딪쳤고, 그 뒤로는 허리를 굽힌 채 탁자까지 왔다. 그는 서류철 하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맨 위 종이는 동원령 두 번째 물결의 배정 공문이었다. 이 대대에 조종병 여섯이 온다고 적혀 있었다. 입대 날짜와 교육 기간이 같은 칸에 들어 있었다. 교육은 2주였다.

“열아홉 살이 넷이야. 둘은 전기공 학교를 다녔다더군. 자네 부관 아버지처럼.”

대령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앉으면 이 지하실에서 오래 있게 될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창고 7을 친다. 오늘 밤. 포병 대대가 좌표를 받아 놨어.”

“스물둘을 다 없애시겠다는 겁니까?”

“스물둘이 저쪽으로 넘어가면 내 전선이 뚫린다. 모레 아침 트레일러가 온다지만, 모레까지 저 창고를 지키는 게 경계병 여섯이야. 저쪽이 알면 하룻밤에 끝난다.”

“모스크바는 사진을 원합니다. 트레일러에 실린 폴란드 전차 사진입니다.”

“사진은 모스크바 사정이고 전선은 내 사정이다.”

소콜로프는 모니터 하나를 대령 쪽으로 돌렸다. 두 바퀴가 감기는 장면이 멈춰 있었다.

“이 손이 한 달 동안 저 여단 전차 열한 대를 되살렸습니다. 우리가 부순 것 가운데 셋 중 하나를 이 손이 도로 굴려 보냈습니다. 창고를 치면 스물둘은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 손은 남습니다. 창고를 두면 이 손이 창고로 옵니다.”

“미끼로 쓰겠다는 거야?”

“전차 스물두 대보다 그 손 하나가 비쌉니다.”

대령은 멈춘 화면을 오래 봤다. 그 손은 장갑을 끼지 않았고, 손가락 마디마다 기름이 검게 배어 있었다. 대령은 그 손을 보는 대신 소콜로프의 얼굴을 봤다. 둘 다 옳았다. 대령은 전선을 셌고 소콜로프는 손을 셌다. 셈이 다를 뿐이었다.

“트레일러가 오기 전까지다. 한 대라도 저쪽 능선을 넘으면, 그건 자네 이름으로 올라간다.”

대령은 서류철을 두고 계단을 올라갔다. 이번에는 배관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다.

일리야가 벽 쪽에서 일어나 탁자로 왔다. 그는 대령이 두고 간 공문의 둘째 장을 조심스럽게 들췄다. 배정될 조종병 여섯의 이름과 태어난 해가 적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 줄씩 짚어 내려갔다. 여섯째 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사촌 사샤의 이름은 없었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고, 내쉰 다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없어서 다행인 이름 대신 들어간 여섯이 누구의 사촌인지 그도 알았다. 소콜로프는 그것을 보고도 공문을 도로 덮으라고만 했다.

*

2040, 첫 포탄이 떨어졌다.

지하실이 통째로 한 번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천장 배관에서 녹 비늘이 소나기처럼 쏟아졌고 모니터 둘이 꺼졌다. 두 번째는 25초 뒤였다. 소콜로프는 노트북을 가슴에 끌어안고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연달아 왔다. 계단 위 발전기가 기침하듯 멎었다가 다시 돌았다. 그 사이 부관이 무전에 대고 소리쳤다. 전방 2조, 응답하라.

폴란드 자주포였다. 오후에 서쪽 포 진지를 두들긴 그 포였다. 저쪽 레이더가 우리 포의 탄도를 거꾸로 풀어 진지를 찾았고, 30초 안에 쏘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오늘은 조종병들이 모여 있던 헛간까지 같이 찾았다.

2058, 전방 2조가 응답했다. 목소리는 셋째 조종병의 것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대답하지 않았다. 헛간 지붕이 내려앉았다고 했다. 하나는 끌어냈고 하나는 아직 못 찾았다고 했다. 2111에 다시 무전이 왔다. 찾았다고 했다. 셋째 조종병은 그 말을 하고 한참 숨만 쉬다가, 조종기가 그 친구 손에 그대로 쥐여 있었다고 덧붙였다. 부관이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지하실 안에 발전기 소리만 남았다. 누군가 배관에서 떨어진 녹 비늘을 군화로 밟았고, 과자 부스러기를 밟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소콜로프는 탁자 밑에서 나와 녹을 털었다. 수첩 앞장을 폈다. 조종병 열하나라고 적힌 줄이 있었다. 그는 그 줄을 긋고 아래에 아홉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광케이블 재고 열넷. 그 아래에 다른 줄들이 있었다. 요격당한 수였다. 저쪽의 작은 드론들이 우리 드론을 받아 떨어뜨린 수가 여섯이었다. 저쪽은 그것을 한 노트북으로 한다고 했다.

일리야가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떨리는 것을 무릎이 눌러 주었다.

*

2131, 창고 7 서쪽 들판에서 불빛이 번쩍했다. 상시 떠 있는 관측 드론이 그것을 잡았다.

소콜로프는 영상을 되감았다. 대전차지뢰가 터진 자리 옆에서 낮은 것 하나가 계속 기어가고 있었다. 무인 지뢰 제거기였다. 그것은 창고에서 저쪽 능선으로 가는 도로 옆을 따라 흙을 한 줄 뒤집고, 돌아서 한 줄을 더 뒤집었다. 경계병들이 조명탄을 올리고 기관총을 긁었지만 그것은 서지 않았다.

“누가 길을 닦고 있다.”

부관이 지도를 폈다. 창고에서 나가는 길은 여럿이었다. 그러나 전차가 우리 방어선을 피해 저쪽 능선까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방금 흙이 뒤집힌 그 도로였다.

“길을 닦는 건 오늘 밤 쓸 사람입니다.”

“내일 쓸 거면 내일 닦지.”

2150, 소콜로프는 관측 드론 하나를 창고 지붕 위로 보내 한자리에 세웠다. 돌지 말고 서 있으라고 했다. 열상 화면에 긴 지붕 셋이 회색으로 떴다. 지붕 함석 틈으로 아래가 조금씩 보였다. 대부분은 식은 쇳덩이의 검은색이었다. 지붕 밑 셋째 줄 가운데, 그리고 그 옆에 희미하게 밝은 것이 있었다. 차체 해치 틈으로 새어 나오는 열이었다. 사람 셋이 한 전차 안에서 하루를 보내면 쇠가 그만큼 데워진다.

“경계병한테 알릴까요?”

“알리면 경계병이 들어간다. 들어가면 그 손은 싸운다. 싸우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끝나면 안 됩니까?”

“죽은 손은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준다. 나오는 손은 어디로 가는지 가르쳐 준다.”

그는 광케이블 드론 여섯을 불렀다. 여섯을 도로 양옆에 내려 앉히고 실을 깔아 두라고 했다. 날지 말고 땅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실은 전파를 내지 않는다. 저쪽의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에도 안 걸린다. 도로 양옆 풀숲에 앉은 여섯은 열상 화면에서도 돌멩이와 구별되지 않을 것이었다.

2214, 광케이블 드론 여섯이 한 대씩 떠올랐다. 일리야와 다른 조종병 둘이 각각 두 대씩 몰았다. 드론은 낮게 날아 도로 양옆 풀숲에 내려앉았다. 앉는 순간 화면이 한 번 기울었다가 바로 섰다. 카메라가 도로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드론 뒤로 풀려 나온 실이 달빛에 가늘게 반짝이며 풀잎 위에 걸쳐졌다. 거미줄보다 조금 굵었다. 소콜로프는 여섯 개의 화면을 차례로 넘겨 봤다. 여섯 개가 모두 같은 도로를 봤다. 각도만 달랐다. 한 화면에는 도로 위의 개구리 한 마리가 하얗게 떠 있었다. 개구리는 한참 가만히 있다가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저게 제일 먼저 지나갔군.”

부관이 그렇게 말했고, 탁자 앞의 조종병 하나가 웃었다. 소콜로프는 웃지 않았지만 그 조종병을 나무라지도 않았다. 오늘 밤 이 지하실에서 웃을 일은 그것이 마지막일 것이었다.

*

2330, 소콜로프는 일리야를 탁자 앞으로 불렀다.

일리야는 조종기를 들고 왔다. 소콜로프는 조종기가 아니라 다른 것을 꺼냈다. 담뱃갑에서 찢어 낸 종이 한 장이었다. 볼펜으로 숫자 열한 자리가 적혀 있었다. 모스크바 외곽 지역번호로 시작했다.

그 종이는 어제 아침 소콜로프가 일리야에게서 거둔 것이었다. 전날 밤 일리야가 소나무 밑에서 전화를 건 뒤로 대대 전체에 개인 전화 금지가 떨어졌다. 전화기는 모두 부관의 상자에 들어갔다. 전화기가 없어도 번호가 적힌 종이는 사람을 부르게 한다. 소콜로프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까지 거뒀다. 일리야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그는 밥을 먹을 때마다 가슴 주머니를 만졌다.

“오늘 밤 네가 첫 번째 조를 맡는다. 도로 양옆 여섯 가운데 둘이 네 것이다.”

“예, 소령님.”

“끝나면 통신 중대 유선으로 한 번 걸어라. 3분이다. 내가 중대장한테 말해 두겠다.”

소콜로프는 종이를 탁자 위에 놓고 일리야 쪽으로 밀었다. 일리야는 그것을 바로 집지 못했다. 종이 모서리가 발전기 진동에 조금씩 떨리며 탁자 가장자리로 다가왔다. 떨어지기 직전에 일리야가 손바닥으로 덮었다.

“외우진 마라. 외우면 잊을까 봐 계속 외우게 된다. 그냥 갖고 있어.”

일리야가 종이를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그 위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소콜로프는 그 동작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영상 속 저쪽 사람들도 그렇게 했다.

*

0010, 소콜로프는 부관과 중대장 셋을 지도 앞에 세웠다. 지도에는 도로 하나가 연필로 굵게 칠해져 있었다. 그는 연필 끝으로 그 도로를 한 번 따라갔다. 창고 정문에서 시작해 들판을 지나 저쪽 능선까지였다.

“그 손은 오늘 밤 나온다. 나오는 길은 하나다.”

수첩 뒷장의 줄은 일곱이었다.

2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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