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172자) · 서한결 · 6월 12일(토)

스물둘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340, 지휘소 천장에서 흙가루가 떨어졌다.

소리는 그다음에 왔다. 먼 데서 둔하게 한 번, 그리고 가까운 데서 크게 한 번. 전등이 두 번 깜빡이다가 꺼졌고 비상등의 붉은빛이 들어왔다. 통신병 하나가 헤드셋을 쓴 채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가 멋쩍은 얼굴로 도로 나왔다. 여단장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활공폭탄입니다. 강 건너 다리입니다.”

작전참모가 보고했다. 러시아 폭격기는 회랑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70킬로미터 밖에서 날개 달린 폭탄을 떨어뜨리면, 폭탄이 스스로 미끄러져 와서 다리를 끊었다. 비행기는 한 번도 폴란드 방공망 안에 들어오지 않고 돌아갔다. 공중은 비겼고, 땅 위에서 다리가 끊겼다.

0347, 두 번째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지하 벽의 합판 하나가 떨어져 나가 지도 위로 쓰러졌다. 한결은 엎드린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떨어진 합판 밑에서 인수 점검 대장이 삐져나온 것을 보고 그것부터 끌어당겼다. 수첩을 가슴에 안은 채 다시 엎드렸다.

바깥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지휘소 입구 계단으로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며 밀려 내려왔다. 통신병 하나가 기침을 하며 무전기 위를 팔로 덮었다. 무전기가 먼지를 먹으면 다이얼이 뻑뻑해진다. 그 동작이 너무 익숙해서, 한결은 그 병사가 지난 한 달 동안 몇 번이나 그렇게 했을지 생각했다.

0352, 조용해졌다. 비상등 아래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 먼지를 털었다. 다리가 끊겼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강 건너 대대로 가는 보급로 하나가 사라졌고, 그 대대의 연료는 이틀 치였다. 여단장이 제일 먼저 한 말은 피해 보고가 아니었다.

“그 숫자열, 다시 풀어 봐.”

*

0400, 같은 주파수에서 버스트가 또 튀었다. 이번에는 길었다. 통신병이 어젯밤 찾은 방식대로 풀자 폴란드어 몇 단어와 숫자들이 나왔다. 영토방위군 코드명 하나, 창고 7, K2(국산 3세대 전차, 폴란드 도입분) 스물둘, 그리고 알파벳과 숫자로 된 스물두 줄.

“영토방위군 분견대입니다. 골다프 동쪽에 남은 조가 셋 있었는데 한 달 전에 연락이 끊겼습니다. 분대장이 비에스와프 상사입니다.”

작전참모가 파일을 넘기며 말했다. 정보참모가 곧바로 받았다.

“끊겼던 조가 한 달 만에 살아나서, 하필 우리가 제일 원하는 걸 알려 준다는 겁니다. 창고 하나에 전차 스물두 대. 78을 기억하십시오. 저쪽은 우리가 뭘 믿는지 압니다.”

“코드명은 맞습니다.”

“코드명은 한 달 전 것입니다. 한 달이면 누가 그걸 뺏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단장이 한결을 봤다. 한결은 스물두 줄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수첩과 나란히 폈다. 비상등 불빛이 붉어서 글씨를 읽으려면 종이를 눈에 바짝 대야 했다.

“아홉이 제 수첩에 있습니다. 제가 인수 점검한 차들입니다.”

“그건 여단 정비 전산에도 있습니다. 저쪽이 전산을 봤다는 건 지난주에 확인됐고요.”

“그래서 이 두 줄을 봐 주십시오.”

한결이 스물두 줄 가운데 두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두 대는 지난겨울 차체 수리를 하면서 번호판을 새로 달았습니다. 차대번호 판이 조종수 자리 밑 차체 안쪽에 붙어 있습니다. 제가 새 판을 달고 번호를 제 수첩에 적었는데, 여단 전산에는 아직 옛 번호로 남아 있습니다. 서류를 올리라는 게 제 일이었는데 제가 안 올렸습니다.”

“그래서요?”

“전산을 훔쳐본 사람이라면 옛 번호를 보냅니다. 이 버스트에는 새 번호가 들어 있습니다. 보낸 사람은 전차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판을 직접 읽었습니다.”

정보참모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저쪽도 그 창고를 쥐고 있습니다. 저쪽 병사도 기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 그건 제가 반박 못 합니다.”

브란도프스키가 벽에 기대 선 채 입을 열었다.

“반박은 못 해도 셈은 할 수 있습니다. 저쪽이 우리를 속이려고 창고 안에 기어 들어가 번호판 스물두 개를 읽었다면, 그건 스물두 대를 미끼로 쓴다는 겁니다. 미끼치고 너무 비쌉니다.”

“비싼 미끼가 제일 잘 뭅니다.”

정보참모가 곧바로 받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78도 비쌌다. 헛것에 열여덟 발을 쓰게 만들었으니 저쪽이 들인 것보다 훨씬 많이 가져갔다.

한결은 그렇게 말하고 수첩을 덮지 않았다. 반박 못 한다는 말에 지하가 조용해졌다. 여단장은 그 조용함 속에서 두 줄을 한 번 더 봤다.

*

0610, 여단장이 한결에게 물었다.

“스물두 대가 왜 거기 서 있습니까? 러시아가 한 달 동안 안 가져간 이유가 뭡니까?”

“못 굴려서입니다.”

한결은 지도 위의 창고 7을 짚었다. 골다프 동쪽 12킬로미터, 적 점령지 안쪽의 폴란드군 차량 정비창이었다.

“5월 17일 아침, 저 창고에 정기 정비로 들어가 있던 대대 차량입니다. 퇴각하던 정비중대가 파워팩 점화부와 사격통제 퓨즈를 빼 들고 나왔습니다. 제가 그 주에 그 정비중대장한테 들었습니다. 점화부가 없으면 엔진이 안 걸리고 퓨즈가 없으면 포가 안 돕니다. 저쪽은 트레일러에 실어 가려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빼 들고 나온 부품은 어디 있습니까?”

작전참모가 대답했다.

“여단 창고입니다. 상자 여섯 개입니다.”

“스물두 대 분입니까?”

한결이 대신 답했다.

“넷 분입니다. 퇴각할 때 다 못 뺐다고 했습니다.”

*

0730, 한결은 작전참모를 따라 여단 창고로 갔다. 지휘소 뒤 옛 곡물 창고였다. 문을 열자 곰팡이와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구석에 녹색 탄약 상자 여섯 개가 쌓여 있었다. 뚜껑마다 흰 분필로 무언가 적혀 있었는데 빗물에 번져서 반쯤만 읽혔다. 작전참모가 맨 위 상자를 열었다.

기름 먹인 천에 싼 점화부 뭉치가 네 개씩 들어 있었다. 그 아래 칸에 사격통제 퓨즈 상자가 가지런했다. 한결은 천을 하나 풀어 점화부를 손에 올려 봤다. 차가웠다. 커넥터 핀이 멀쩡했다. 누군가 퇴각하는 트럭 짐칸에서 이것들을 하나하나 싸서 넣었다. 포탄이 떨어지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천을 싼 매듭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묶여 있었다. 한 사람이 다 쌌다는 뜻이었다.

“이걸 뺀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정비중대는 절반이 남았습니다. 중대장은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단스크 병원에 있습니다.”

한결은 상자 뚜껑의 번진 분필을 손가락으로 따라 읽어 보려 했다. 폴란드어였고, 끝에 숫자 하나가 있었다. 작전참모가 그것을 읽어 주었다.

“돌아와서 끼울 것. 4.”

*

0900, 지휘소 벽의 통합 화면에 새 그래프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여단 가동 전차 수였다. 5월 17일 마흔넷에서 시작한 선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내려와, 오늘 아침 스물아홉에 닿아 있었다. 전차가 부서져서 준 것은 그 가운데 일부였다. 나머지는 부품이 없어서 섰다. 냉각기가 없어서, 점화 플러그가 없어서, 궤도 판이 없어서 선 차들이 헛간과 정비고에 줄지어 있었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한 달 가까이 지워지지 않은 줄이 여전히 떠 있었다. 회랑 차단 예상 60시간. 그 줄 바로 아래에서 가동률 선이 조용히 내려가고 있었다.

한결은 그 선을 오래 봤다. 선이 꺾일 때마다 그는 그날 무엇이 없었는지 기억했다. 5월 말에 한 번 크게 꺾인 자리는 냉각기가 떨어진 주였고, 6월 첫 주에 한 번 더 꺾인 자리는 그단스크에서 배가 안 내려오기 시작한 날이었다. 누군가 연구소에서 돌린 계산은 회랑이 언제 끊기는지만 셌다. 부품 상자 하나가 몇 대를 세우는지는 세지 않았다.

“회랑은 안 끊겼는데, 여단이 끊기고 있군.”

여단장이 그렇게 말했다.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역습이라는 말이 오늘 아침 회의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스물아홉으로는 버티는 말만 할 수 있었다.

*

1300, 야누시가 지휘소에 불려 왔다. 3호차 전차장으로 창고 7 근처 지형을 아는 사람이었다. 여단장은 지도를 가리키며 창고 둘레의 도로를 물었고, 야누시는 짧게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고 여단장이 한결에게 다시 물었다.

“판 서, 그 아홉 대가 확실히 판 서가 본 차들입니까?”

한결은 수첩을 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읊었다. 차대번호 끝자리와 날짜였다.

“사사팔, 작년 십일월 이십이일. 이일칠, 십일월 이십팔일. 사공오, 십이월 삼일. 일팔구, 작년 십일월 칠일…….”

아홉 개를 읊는 동안 지하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섯 번째에서 한결이 잠깐 멈췄다.

“육육이, 작년 십일월 십사일.”

야누시가 폴란드어로 뭐라고 했다. 브란도프스키가 옮겼다.

“십이월이랍니다. 그 차 인수할 때 눈이 왔답니다. 판 서가 눈 맞으면서 포탑 위에서 조준경을 봤고, 야누시가 그 옆에서 우산을 들고 있었답니다.”

한결은 눈을 떴다. 수첩을 폈다. 육육이의 줄에는 십이월 십사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한참 그 줄을 보다가 야누시를 봤다. 야누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우산은 그날 바람에 뒤집혔다고 브란도프스키가 덧붙였다.

한결은 나머지 셋을 읊었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

다 읊고 나자 정보참모가 처음으로 종이에서 눈을 뗐다.

“판 서, 31대를 다 그렇게 외웁니까?”

“31대는 못 외웁니다. 제가 두 번 본 차만 외웁니다. 두 번 보게 만든 차는 안 잊힙니다.”

“147도 외웠습니까?”

“외웠습니다.”

정보참모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스물두 줄이 적힌 종이를 한결에게서 받아 자기 태블릿 밑에 끼웠다. 기만일 가능성이라는 말을 그날 그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믿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영토방위군 코드명의 한 달 전 교신 기록을 찾아오라고 통신병에게 일렀다. 믿을지 말지를 정하는 대신, 정할 수 있게 만드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

1500, 한결은 헛간으로 돌아가 1호차 분사 펌프를 마저 조립했다. 손은 일했고 머리는 창고 7에 가 있었다. 스물두 대가 서 있는 창고를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안의 차들은 알았다. 아홉 대의 조준경을 그는 직접 닦았다. 그 조준경들이 지금 누구의 창고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생각하자 손끝이 가려웠다. 할리나가 보리차를 한 잔 작업대에 놓고 갔다. 주자는 경계선 상자 위에서 그를 보며 스프링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감시했다.

1800, 같은 주파수에서 세 번째 버스트가 튀었다. 짧았다. 통신병이 풀어서 종이에 적고, 적은 것을 여단장에게 건넸다. 여단장이 읽고 한참 종이를 쥐고 있다가 한결에게 넘겼다. 종이 가장자리가 여단장 손의 땀에 젖어 있었다. 정보참모가 한 달 전 교신 기록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멈춰 섰다. 지하의 모든 눈이 한결 손의 종이 한 장으로 모였다. 폴란드어 두 단어였다. 브란도프스키가 옆에서 읽어 주었다.

“트레일러 온다.”

1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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