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51자)
파묘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순덕은 해 질 녘 움막 앞에서 유성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밤 일을 대감한테 가져가야 하오. 안 가져가면 종이가 숯이 되오.”
“압니다.”
“그러니까 해 뜨고 가져가겠소. 해 뜨기 전에는 내 입이 얼어서 안 열리오. 동짓달 밤은 길잖소.”
순덕은 그렇게 말하고 갑봉 영감이 내민 곡괭이 자루를 받아 들었다. 다모 치마 위에 남정네 솜바지를 껴입었고, 머리는 수건으로 질끈 동였다. 이번에는 아무것으로도 꾸미지 않았다. 산에 가는 사람으로 꾸미면 산에 가는 사람이 되었다.
*
산으로 가기 전에 유성은 칠패 객주 집 뒷문을 한 번 두드렸다. 연이가 빗장 너머로 얼굴만 내밀었다. 뒷문 안쪽에 처음 보는 장정 둘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장정 넷을 사셨어요. 마포 객주 집에서 빌려 왔대요. 내일 밤에는 대문도 뒷문도 다 걸고, 저는 안방에서 아버지랑 잔대요. 나리는 오지 말래요. 나리가 오면 포도대장이 화낸다고.”
“아기씨, 내일 밤에는 누가 와도 뒷문을 열지 마십시오. 아는 얼굴이어도요.”
“아는 얼굴이 누군데요?”
유성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는 아직 몰랐다. 연이는 그 얼굴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렸다. 그리고 손목의 붉은 비단을 들어 보였다.
“저도 감고 있을게요. 그러면 나리가 알아보시겠지요.”
빗장이 닫혔다. 안쪽에서 장정 하나가 하품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봉 영감이 들었으면 망자 앞에서 하품한다고 혼냈을 소리였다.
*
도성 서쪽 고개 애오개 너머 산비탈은 도성 밖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자리였다. 봉분이라기보다 흙더미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비석 대신 나무 말뚝이 꽂혀 있었다. 말뚝에 이름을 적어 둔 것도 있고 안 적은 것도 있었다. 동짓달 스무여드레 밤, 바람이 산비탈을 훑으며 말뚝들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났다.
분이의 무덤은 비탈 중턱 소나무 아래에 있었다. 말뚝에 숯으로 쓴 언문 두 글자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갑봉 영감은 그 무덤 둘레에 장대 넷을 꽂고 거적을 둘렀다. 관물 없는 검시 막이었다. 둘러치고 나서 영감은 사방의 이웃 무덤에 대고 차례로 허리를 굽혔다.
“이웃 망자님들, 오늘 밤 좀 시끄럽겠소. 우리가 도둑이 아니라 검시하는 사람들이오. 놀라서 따라 나오지들 마쇼. 특히 저기 저 큰 무덤 양반, 눈 좀 감고 계쇼.”
“영감, 그 큰 무덤은 누굽니까?”
“모르지. 큰 걸 보니 성질도 클 거요.”
언 땅은 곡괭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첫 곡괭이질에 쇳소리가 나고 불똥이 튀었다. 유성은 무덤 위에 화톳불을 피워 흙을 녹였다. 녹은 만큼 파고, 다시 불을 피우고, 다시 팠다. 순덕은 비탈 아래 길목에 서서 등불을 가리고 망을 보았다. 한 시진쯤 지나자 유성의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졌다. 터진 자리로 흙이 들어가 쓰라렸다. 유성은 그 쓰라림이 손에 붙어 있는 것이 좋았다.
“나리, 쉬쇼. 그러다 나리 무덤도 같이 파겠소.”
“영감은 칠월에 이 무덤 만들 때 계셨습니까?”
“아니. 관청 시신이 아니니 오작인이 갈 일이 없지. 식구들이 묻었겠지.”
순덕이 망을 보다 말고 올라와 화톳불에 손을 쬐었다. 불 너머로 유성의 손바닥을 보더니 혀를 찼다.
“나리, 그 손으로 내일 밥은 어찌 먹소? 숟가락 쥐다가 울겠소.”
“다모는 면천하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
순덕은 불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다. 생각하는 동안 입김이 불 위에서 사라졌다.
“떡집을 하겠소. 진짜 떡장수. 칠패 생선전 끝에, 순천댁 국밥집 옆에. 간판에 내 이름을 걸 거요. 순덕이 떡. 남의 저고리 속 안 뒤지고, 남의 부뚜막에 뭘 안 넣고, 떡만 찌는 거요. 떡은 찌면 찐 대로 나오잖소. 거짓말을 못 해.”
“떡값은 섣달에 몰아서 받으시면 안 됩니다. 칠패 사람들은 다 도망갑니다.”
순덕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곡괭이 자루로 유성의 정강이를 툭 쳤다. 갑봉 영감이 흙을 퍼 올리며 끼어들었다.
“떡집 하면 나는 외상 되오? 내가 이 산에서 다모 등을 얼마나 지켜 줬는데.”
“영감님은 갓 값부터 받으쇼. 서리 나리한테.”
“서리 나리는 이제 서리가 아니라 녹봉도 없소. 내 갓 값은 떼였소.”
웃음이 산비탈에서 잦아들었다. 말뚝 사이로 바람이 또 휘파람을 불었다. 유성은 곡괭이를 다시 들었다.
그때 비탈 아래에서 순덕이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사람이 온다는 신호였다. 유성은 곡괭이를 내려놓았다. 등불 하나가 말뚝들 사이를 흔들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등불 뒤에 사람 그림자가 둘이었다.
*
등불을 든 사람은 쉰쯤 된 여자였다. 무명 치마에 솜저고리를 입었고,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아 흰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그 뒤에 장정 하나가 삽을 들고 섰다. 유성은 그 장정을 알았다. 칠패의 물을 대는 석봉이었다. 석봉은 오늘 웃지 않았다.
여자는 거적을 들추고 무덤 앞에 섰다. 반쯤 파인 흙과 화톳불과 곡괭이를 보았다. 그리고 유성을 보았다. 등불을 든 손이 떨려서 불빛이 유성의 얼굴 위에서 흔들렸다.
“당신이오? 칠월에 우리 분이 검시한 서리가?”
유성은 무릎을 꿇었다. 언 흙에 무릎이 닿았다.
“예. 제가 실족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애 무덤을 파?”
“제가 틀렸습니다. 손목에 쥔 자국을 보고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엽니다.”
여자는 등불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유성의 뺨을 쳤다. 신경우의 손바닥보다 가벼웠는데, 더 오래 울렸다. 여자는 한 번 더 쳤다. 그리고 유성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늙은 손이 솜저고리 깃을 쥐고 놓지 않았다.
“그 애는 열네 살에 객주 집에 들어갔어. 내가 보냈어. 물지게 지는 집에서는 딸 하나 먹일 쌀이 없어서. 일곱 해 동안 설날에만 집에 왔어. 올 때마다 객주 집 떡을 싸 왔어. 제 몫 안 먹고 싸 왔어. 그 애가 칠월에 죽었을 때 관청에서 발을 헛디뎠다고 했어. 나는 그 말을 믿었어. 믿어야 살 수 있으니까. 그 말 믿고 다섯 달을 살았어.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이제 와서 그 말이 틀렸다고 해? 그럼 나는 다섯 달 동안 뭘 믿고 산 거야?”
유성은 멱살을 잡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이 산비탈에 없었다. 갑봉 영감이 다가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가 거두었다. 오작인의 손은 산 사람 어깨에 함부로 얹지 않는다.
석봉이 삽을 쥐고 한 걸음 다가왔다. 삽날이 화톳불 빛을 받아 붉었다. 순덕이 비탈 아래에서 뛰어 올라오다가 멈춰 섰다. 석봉의 손등에 힘줄이 섰다. 삽자루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석봉은 한참 그렇게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하게 둡시다.”
여자가 아들을 돌아보았다.
“나도 보고 싶소. 그 애가 정말 발 헛디뎠는지. 나리 눈으로 똑똑히 보시라 하오.”
석봉은 어머니의 손을 유성의 멱살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 무덤 속으로 내려섰다. 삽이 녹은 흙을 퍼 올렸다. 유성보다 빠르고 깊었다. 물지게로 단련된 어깨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흙이 한 짐씩 올라왔다. 여자는 무덤가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울면서도 흙이 올라오는 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거적에 싸인 분이가 드러난 것은 자정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관은 없었다. 시신을 눕히는 널빤지인 칠성판 위에 거적으로 말아 새끼줄로 묶었다. 가난한 집 장례가 다 그랬다. 새끼줄이 흙 속에서 삭아 손이 닿자 툭 끊어졌다.
유성은 무덤 속으로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갑봉 영감이 위에서 등불을 낮게 들었다. 다섯 달이 지났고, 그중 석 달이 겨울이었다. 흙은 차가웠고, 차가운 흙이 많은 것을 지켜 주었다. 그래도 지키지 못한 것이 더 많았다. 유성은 그것을 오래 보지 않았다. 볼 것만 보았다.
“분이야, 늦었다. 미안하다. 목 좀 보자.”
유성은 낮게 말하고 분이의 목 앞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턱 아래, 목 한가운데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뼈가 있다. 말발굽 모양으로 목을 앞에서 감싸는 뼈였다. 책에는 없는 뼈였다. 유성은 목맨 시신과 물에서 건진 시신을 여럿 씻기면서 손으로 그 뼈를 익혔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그 뼈는 멀쩡했다. 목을 세게 졸린 사람의 그 뼈는 부러져 있었다. 유성의 손끝이 그 뼈에 닿았을 때, 한쪽 끝이 어긋나 있었다. 부러진 자리였다.
유성은 손을 거두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갑봉 영감과 순덕과 석봉과 분이의 어머니가 무덤 가장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불 하나에 얼굴 넷이 붉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목이 졸렸습니다. 분이는 발을 헛디딘 게 아닙니다. 누가 목을 조른 다음 우물에 넣었습니다.”
여자의 입에서 소리가 났다. 짐승이 우는 소리였다. 갑봉 영감이 이번에는 손을 거두지 않고 여자의 어깨를 감쌌다.
유성은 다시 내려다보았다. 분이의 머리가 거적 끝에서 반쯤 드러나 있었다. 땋은 머리는 풀려 있었고, 댕기는 없었다. 대신 정수리께에 비녀 하나가 꽂혀 있었다. 칠월 우물가에서는 풀어진 머리만 보고 이것을 보지 못했다. 장례 때 식구들이 다시 쪽을 지어 꽂아 준 것일 터였다. 유성은 그 비녀를 조심스럽게 뽑았다. 등불에 들어 보았다.
붉은빛이 도는 나무였다. 결이 촘촘하고 손바닥에 묵직했다. 칼로 깎은 자국이 손에 만져졌다. 끝에 매듭 무늬는 없었다. 대신 칼끝으로 새긴 작은 꽃 한 송이가 있었다.
유성은 품 안의 무명 꾸러미를 꺼냈다. 막례의 비녀와 월이의 비녀를 그 옆에 대 보았다. 나무가 같았다. 깎은 칼자국의 방향이 같았다. 무늬만 달랐다.
무덤 가장자리에서 분이의 어머니가 그 비녀를 보았다. 울음이 멎었다. 여자는 갑봉 영감의 팔을 붙잡고 몸을 숙여 비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그 애 비녀는 제 오라비가 깎아 준 대추나무요. 객주 집 들어갈 때, 열네 살 때. 은비녀 못 사 준다고, 밤새 깎아서 꽂아 줬어요. 그 애는 그거 하나만 꽂고 살았어요.”
유성은 고개를 들었다. 무덤 가장자리에는 얼굴이 셋뿐이었다.
석봉이 서 있던 자리에 삽 하나가 흙에 꽂혀 서 있었다. 비탈 아래 어둠 속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지지 않은 사람의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순덕이 그쪽으로 뛰어가다가 말뚝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났을 때는 발소리가 이미 없었다.
도성 문은 닫혀 있었고, 성문을 여는 새벽 종이 울리려면 아직 멀었다. 자정이 지나 있었다. 동짓달 스무아흐레였다. 오늘 밤이 넷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