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38자)

양반은 묻지 못한다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신경우는 동짓달 스무엿새 새벽에 잠이 깼다. 늘 그 시각이었다. 무관은 닭보다 먼저 일어난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고, 아버지는 그렇게 일어나서 평생 군관으로 살다가 군관으로 죽었다. 장례 날 찾아온 사람이 열 명이 안 됐다.

사랑방 서안 위에 옥안이 놓여 있었다. 백정 갑쇠의 살인 옥사를 적은 문서였다. 신경우는 등잔을 당겨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칠패 광주리 장수 막례와 다투던 백정이 홧김에 셋을 죽였다. 부뚜막에서 비녀가 나왔다. 엿새 만에 자백했다. 문장은 짧고 단단했다. 단단해야 했다. 형조가 이 문서를 보고, 그다음에는 대궐로 올라간다. 지금 임금은 사형 옥사를 하나하나 다시 살핀다는 말이 도성에 파다했다. 흠이 있는 옥안은 대궐에서 되돌아오고, 되돌아온 옥안을 올린 포도대장은 섣달 고과에서 미끄러진다.

신경우는 붓을 들어 한 글자를 고쳤다. 주웠다를 훔쳤다로. 백정이 비녀를 주웠다고 하면 비녀가 어디서 왔는지 물을 것이다. 훔쳤다고 하면 묻지 않는다.

붓을 놓다가 등잔 불빛에 제 오른손 등이 보였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손톱으로 할퀸 듯한 흉터 세 줄이 하얗게 아물어 있었다. 칠월에 생긴 것이었다. 고양이에게 긁혔다고 집안사람들에게 말해 두었다. 신경우는 그 흉터를 오래 보지 않았다. 소매를 끌어내려 덮었다.

안방에서 노모의 기침 소리가 났다. 신경우는 일어나 문 앞에 섰다.

“어머님, 주무십시오.”

“섣달에 네가 올라가면 나는 그걸 보고 죽어도 된다.”

“예, 어머님.”

신경우는 사랑방으로 돌아와 옥안을 보자기에 쌌다. 보자기 매듭을 두 번 지었다. 아버지는 매듭을 한 번만 지었다. 그래서 늘 무엇을 흘리고 다녔다.

*

형조는 광화문 앞 육조 거리에 있었다. 대문이 높고 마당이 넓었는데, 그 마당이 늘 사람으로 붐볐다. 송사하러 온 사람, 옥사를 넘기러 온 포교, 문서를 안고 뛰는 서리들. 유성은 그 틈에 섞여 대문을 넘었다. 근신 중인 서리는 한성부 문턱만 넘지 말라고 했지, 형조 문턱은 말하지 않았다. 유성은 그렇게 우기기로 했다.

문지기가 유성을 붙잡고 코를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요? 식초요, 젓갈이요?”

“둘 다입니다.”

“형조에 송사하러 온 사람이 이렇게 냄새나는 건 처음 보오. 무슨 송사요? 젓갈 값 떼였소?”

정랑 방 앞 툇마루에는 먼저 온 송사꾼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맨 앞의 두 노인은 담 너머로 넘어간 감나무 가지 하나를 두고 석 달째 송사 중이라고 했다. 가지에 열린 감이 누구 것이냐를 두고 형조가 세 번 불렀고, 세 번 다 정랑이 직접 만나 주었다고 했다. 노인 하나가 유성의 냄새를 맡고 엉덩이를 한 칸 옆으로 옮겼다.

유성이 청한 사람은 형조 정랑이었다. 형조의 실무를 맡은 벼슬아치로, 마흔쯤 된 김 정랑이 서안 앞에 앉아 유성이 올린 소지를 읽었다. 소지는 관청에 무언가를 청하는 글이었다. 김 정랑은 첫 줄을 읽고 눈썹이 올라갔고, 둘째 줄을 읽고 눈썹이 더 올라가서 이마 주름 속으로 사라졌다.

“포도대장 신경우와 형조판서 댁 서자 시헌을 불러 칠월 열이레 밤의 일을 물어 달라?”

“예.”

“자네, 지금 어디 서 있는지 아나?”

“형조입니다.”

“형조의 우두머리가 누구신가?”

“형조판서 대감이십니다.”

“그 판서 대감의 아드님을 판서 대감의 관청에서 심문해 달라고? 중인 서리가? 그것도 근신 중인 서리가?”

김 정랑은 소지를 반으로 접었다. 다시 반으로 접었다. 손바닥만 해진 소지를 유성 앞으로 밀었다.

“양반은 중인이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포도대장도 마찬가지고. 물을 수 있는 건 나라님이시지. 나라님께 올라가려면 판서 대감 손을 거쳐야 하고. 자네 이 글이 판서 대감 서안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올라가지 않겠군요.”

“올라가긴 할 거야. 자네 이름이 적혀서. 자네를 벌하는 문서로.”

김 정랑은 그 말을 하고 유성의 어깨 너머 툇마루 쪽으로 소리쳤다.

“다음, 감나무!”

*

형조 마당으로 나오자 대문 쪽이 술렁거렸다. 포교 여섯이 길을 텄고, 그 가운데로 신경우가 보자기 하나를 들고 걸어 들어왔다. 뒤로 들것 하나가 따라왔다. 들것 위에 갑쇠가 누워 있었다. 두 다리가 부목에 묶여 있었고, 눈은 뜨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신경우는 유성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마당의 서리들이 숨을 죽였다. 한성부 서리와 포도대장이 형조 마당에서 마주 섰다는 소문은 점심 전에 육조 거리를 다 돌 것이었다.

“근신 중인 놈이 여기서 뭘 하나?”

“대감, 칠월 열이레 밤 강 객주 집 별채에 계셨습니다.”

마당이 더 조용해졌다. 신경우는 보자기를 곰보 박에게 넘기고 유성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손바닥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웃었다.

“그래서? 객주 집 잔치에 간 게 죄냐? 판서 대감 댁에서 대접을 한다기에 갔다. 술 마시고 돌아왔다. 그날 밤 하녀 하나가 우물에 빠졌다더군. 나는 이튿날 들었다.”

“분이 손목에 손가락 네 개 자국이 있었습니다. 굵은 손가락이었습니다.”

“너는 그걸 어찌 아나?”

“제가 검시했으니까요.”

신경우의 웃음이 짙어졌다. 신경우는 소매 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유성은 그 종이를 보고 숨을 멈췄다. 칠월 검안을 베낀 것이었다. 맨 아래 유성의 이름이 있었다.

“그래, 네가 검시했지. 그리고 여기 이렇게 적었다. 실족 익사. 멍은 우물 돌에 부딪혀 생긴 것. 네 글씨냐?”

유성은 입을 열지 않았다.

“네가 그 손가락 자국을 봤다면, 너는 그때 거짓을 적은 거다. 거짓 검안을 올린 서리는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간다. 네가 못 봤다면, 너는 지금 거짓을 말하는 거다. 어느 쪽이냐?”

신경우는 종이를 다시 접어 소매에 넣었다. 그리고 마당의 서리들이 다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은 판서 댁 서방님 몸에 손을 댄 놈이다. 칠월에 검안을 쓰고, 이제 와서 제가 쓴 검안을 뒤집으며 사대부를 끌어들인다. 이런 놈의 말을 누가 믿겠나?”

들것 위의 갑쇠가 고개를 조금 돌렸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보는 눈이었다. 유성을 보고 있었다.

“나리, 소 잡는 손은 소만 잡았소.”

갑쇠의 목소리는 쉬어서 거의 바람 소리였다. 곰보 박이 들것을 흔들었다. 갑쇠의 고개가 다시 떨어졌다. 신경우는 들것을 앞세우고 형조 대청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오른손을 소매 안으로 넣었다. 유성은 그 손을 보았다. 소매 끝에서 흉터 한 줄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

그날 저녁 신경우는 포도청 대청에 순덕을 불렀다. 다른 포교들은 다 물렸다. 화로의 숯이 오늘은 끝까지 붉었다. 순덕은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가, 차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다모, 너 요즘 칠패 떡장수 노릇을 잘한다며?”

“대감이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

“만리재에서는 무당이었고, 판서 댁 안채에서는 방물장수였다지. 판서 댁 계집종이 동백기름을 공짜로 받았다고 자랑을 하더구나. 그 기름값은 포도청에서 나갔고.”

순덕은 고개를 숙였다. 귀 뒤가 뜨거워졌다. 신경우는 서안 서랍을 열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순덕의 면천 문서였다. 순덕은 그 종이를 처음 보았다. 생각보다 얇았다.

“이게 네 이름이다. 관비 순덕이 아니라 그냥 순덕. 섣달이면 이걸 너한테 준다고 했지.”

신경우는 종이를 화로 위로 가져갔다. 종이 끝이 숯 위 한 뼘에서 멈췄다. 열기에 종이가 살짝 휘었다.

“한성부 그놈이 형조 마당에서 칠월을 떠들었다. 칠월 열이레를 그놈 혼자 알아냈을 리가 없지. 누가 그놈 귀에 칠패 말을 넣었을까? 떡장수가? 무당이? 방물장수가?”

“대감, 저는…….”

“그놈이 한 번만 더 칠월을 입에 올리면 이 종이는 숯이 된다. 그놈 곁에 누가 서 있는지 나는 다 안다. 그러니 다모, 이제부터 그놈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하나도 빼지 말고 가져와라. 가져오면 종이는 서랍으로 돌아간다.”

신경우는 종이를 서랍에 도로 넣었다. 서랍 닫히는 소리가 대청에 크게 울렸다. 순덕은 허리를 굽히고 대청을 나왔다. 대청 문을 닫고 나서, 찻주전자를 두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손등의 튼 자리가 화끈거렸다. 화로 곁에 너무 오래 서 있었다.

*

동짓달 스무이레, 정 판관은 갑봉 영감의 움막 앞까지 직접 찾아왔다. 판관이 오작인 집 거적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개천가 아낙들이 빨래를 멈췄다. 판관은 코를 소매로 막은 채 거적 안으로 고개만 들이밀었다.

“유 서리. 아니, 이제 서리가 아니지. 판윤 대감께서 오늘 아침 너를 파직하셨다. 형조에서 서찰이 왔어. 판서 대감 서찰도 왔고. 한성부 관물은 오늘 안으로 내놓으라신다.”

판관은 그 말을 하고 한참 서 있었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유성은 일어나 보따리를 풀었다. 검시에 쓰던 한성부 물건들이었다. 시신의 상처를 재는 놋쇠 자, 독을 시험하는 은비녀, 붉은 기름을 먹인 우산. 우산은 칠패에서 사람들이 잔치냐고 묻던 그 우산이었다. 유성은 하나씩 판관 앞에 놓았다. 판관은 은비녀를 보고 또 얼굴이 하얘졌다.

“그걸 내 손에 주지 마. 그냥 거기 둬. 아전을 보낼게.”

판관은 돌아서다가 다시 돌아섰다.

“최 서리가 네 일을 맡는대. 앞으로 칠패 시신은 최 서리가 본다.”

“시신 목 뒤를 꼭 보라고 전해 주십시오.”

판관은 대답하지 않고 갔다. 이번에는 아무 데도 발을 찧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판관이 간 뒤 움막 안이 오래 조용했다. 순덕이 아궁이 앞에서 무릎을 안고 있었고, 갑봉 영감은 시렁에서 지게미 단지와 식초 단지를 내렸다. 한성부 물건이 아니라 영감 물건이었다.

“이건 내 거요. 판윤 대감도 못 가져가오.”

유성은 그 단지 두 개를 보았다. 그리고 손목에 감긴 붉은 비단을 풀었다. 상처는 거의 아물어 있었다. 비단을 접어 품에 넣었다.

“내일 밤 분이 무덤을 엽니다.”

순덕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갑봉 영감은 단지 뚜껑을 쥔 채 멈췄다.

“나리, 관원 아닌 사람이 무덤을 파면 그건 검시가 아니라 죄요. 무덤 판 죄는 목이 날아가오.”

“압니다.”

“가족이 허락을 안 하면?”

“그래도 엽니다.”

영감은 단지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벽에 걸린 장대와 거적을 내렸다. 내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관물도 없는 검시 막이라. 마흔 해 만에 처음이네.”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양반은 묻지 못한다 ·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