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04자)
서자 시헌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남산 북쪽 기슭의 회현방은 칠패에서 걸어서 한 식경도 안 걸렸다. 그런데 걸어 올라가는 동안 냄새가 바뀌었다. 생선 비린내가 빠지고, 숯 냄새가 빠지고, 마지막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담이 높은 동네는 냄새도 담 안에 가둬 두었다.
형조판서 댁 대문은 그 동네에서도 제일 높았다. 솟을대문 위 기와에 눈이 반듯하게 쌓였고, 대문 앞 돌계단은 누가 새벽에 쓸었는지 눈 한 점 없었다. 동짓달 스무닷새 아침, 유성은 그 돌계단 아래에 섰다. 사흘 전 태를 맞은 등이 아직 옷에 쓸렸고, 손목에는 붉은 비단이 감겨 있었다.
대문 옆 쪽문이 열리고 청지기가 나왔다. 쉰쯤 되는 사내였고, 수염을 가지런히 빗었고, 손에 긴 담뱃대를 들고 있었다. 청지기는 유성의 갓에서 신발까지 한 번 훑고 담뱃대로 땅을 짚었다.
“한성부 서리라? 무슨 일로 판서 댁 대문 앞에 서 있소?”
“서방님께 여쭐 것이 있습니다. 시헌 서방님께.”
“서리가 판서 댁 서방님께 여쭌다. 여쭐 일이 있으면 한성부 판윤 대감께서 판서 대감께 서찰을 올리시오. 그게 법도요.”
“칠패 강 객주 집 일입니다. 서방님이 아시는 하녀가 죽었습니다.”
청지기의 담뱃대가 땅에서 들렸다. 대답이 나오기 전에 쪽문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먼저 나왔다.
“함 서방, 손님을 대문 밖에 세워 두면 쓰나. 집안 체면이 얼어 죽겠네.”
쪽문을 밀고 젊은 사내 하나가 나왔다. 옥색 도포에 털배자를 걸쳤고, 갓끈이 느슨했다. 스물예닐곱쯤 되었고, 눈매가 웃는 모양이었다. 유성은 그 얼굴을 칠월 별채 툇마루에서 보았다. 그때는 부채를 쥐고만 있었다. 판서 대감이 첩에게서 얻은 아들, 서자 시헌이었다.
“나를 찾았소? 이 집에서 나를 찾는 사람은 드문데. 반갑구려.”
*
판서 댁 담 모퉁이는 볕이 들지 않아 눈이 녹지 않았다. 시헌은 그 모퉁이에 서서 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청지기 함 서방은 열 걸음 뒤에서 담뱃대를 쥐고 지켜보았고, 그 뒤로 하인 셋이 어슬렁거렸다. 하인들 손에는 마당 쓸던 대빗자루 대신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말해 보시오. 서리가 판서 댁 서자를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해서 나왔소. 이 집 사람들은 나한테 말을 잘 안 걸거든.”
“칠월 열이레 밤 강 객주 집 별채에 계셨습니다.”
“거기 자주 가오. 아버님 돈이 그 집 장사에 들어가 있으니, 서자가 가서 셈을 봐야지. 적자 형님은 생선 냄새를 못 맡소.”
“그 밤 그 집 하녀 분이가 우물에서 죽었습니다.”
시헌의 눈매가 웃는 모양 그대로 굳었다. 굳은 채로 웃었다.
“들었소. 발을 헛디뎠다고. 관청에서 그렇게 검시했다던데.”
“그 검시를 제가 했습니다. 틀렸습니다.”
시헌은 그 말에 처음으로 팔짱을 풀었다. 유성을 위아래로 다시 보았다.
“재미있는 서리군. 틀린 걸 들고 판서 댁 대문을 두드렸소?”
유성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폈다. 남색 실 한 올이 눈빛을 받아 반짝였다.
“칠패에서 죽은 여자 셋 가운데 하나가 손톱 밑에 이걸 쥐고 있었습니다. 셋 다 칠월 그 밤 별채에서 상을 차린 여자들입니다. 분이는 늘 남색 비단 댕기를 맸다고 들었습니다. 서방님이 주신 댕기라고.”
시헌은 실을 오래 보았다. 웃음이 얼굴에서 천천히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얼굴은 생각보다 어렸다.
“남색 비단은 종로 큰 시전 거리 운종가의 비단전에 가면 백 필은 있소.”
“분이 댕기는 한 줄이었습니다.”
“그 애가 좋았소.”
시헌이 낮게 말했다. 청지기 쪽으로 등을 돌린 채였다.
“이 집에서 나를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아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소. 그 애는 별채 뒤뜰에서 나를 시헌 씨라고 불렀소. 하녀가 서방님 이름을 부르면 매를 맞는데, 그 애는 매 맞을 각오로 불렀소. 그래서 댕기를 사 줬소. 그게 다요.”
“그 밤 잔치가 끝나고 어디 계셨습니까?”
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담 위에서 눈 한 덩이가 떨어져 둘 사이에 부서졌다.
“서방님, 칠월 열여드레 새벽에 어디 계셨습니까?”
“서리가 지금 나를 심문하는 거요?”
“여쭙는 겁니다.”
“중인이 양반에게 여쭐 수 있는 건 날씨까지요. 오늘 날씨는 춥소. 됐소?”
시헌은 담에서 등을 떼고 돌아섰다. 유성의 손이 먼저 나갔다. 시헌의 도포 소매를 잡았다. 옥색 비단이 유성의 손 안에서 구겨졌다. 손목에 감은 붉은 비단과 옥색 소매가 맞닿았다.
열 걸음 뒤에서 청지기의 담뱃대가 땅을 쳤다.
“감히 서리 놈이 서방님 몸에 손을 대!”
하인 셋이 달려들었다. 첫 몽둥이는 유성의 어깨를 쳤다. 유성은 그래도 소매를 놓지 않았다. 둘째 몽둥이가 팔꿈치를 쳤을 때 손가락이 저절로 풀렸다. 셋째는 사흘 전 태를 맞은 등에 떨어졌다. 유성은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입 안에서 쇠 맛이 났다.
“그만해.”
시헌이 말했다. 하인들의 몽둥이가 한 번 더 내려왔다.
“그만하라고 했다!”
시헌이 소리를 지르자 몽둥이가 멈췄다. 하인들이 청지기를 보았다. 서방님 말이 아니라 청지기의 담뱃대를 보았다. 청지기가 고개를 까딱하자 그제야 물러났다. 시헌은 그것을 보고,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제 집 하인이 제 말을 안 듣는 것을 처음 본 얼굴이 아니었다.
청지기가 다가와 유성의 갓을 발로 밀어 냈다.
“판서 대감께서 오늘 일을 한성부 판윤 대감께 알리실 거요. 서리 자리가 내일까지 붙어 있나 보시오.”
*
판서 댁의 말은 유성의 걸음보다 빨랐다. 유성이 한성부 서리방 문턱을 넘었을 때 정 판관은 이미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판관은 유성을 보자마자 무어라 소리치려고 입을 열었다가, 유성의 입가에 말라붙은 피를 보고 입을 그대로 벌린 채 멈췄다.
“그, 그건 피냐?”
“예.”
판관의 무릎이 한 번 꺾였다. 유성이 얼른 판관의 팔을 붙잡았다. 판관은 유성의 손에서 식초 냄새를 맡고, 제 소매로 코를 막고, 그 소매 너머로 겨우 말을 이었다.
“판윤 대감께서……판서 댁에서 사람이 왔어. 서리가 판서 댁 서방님 몸에 손을 댔다고. 그건 매로 끝날 일이 아니야. 판윤 대감께서 사흘 근신이라 하셨어. 사흘 동안 한성부 문턱을 넘지 마. 사흘 뒤에 다시 정하신대.”
“사흘 뒤면 스무여드레입니다.”
“그게 뭐?”
“스무아흐레 하루 전입니다.”
판관은 대답하지 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지난번 장독대에서 찧은 발가락이 아직 아픈지 신발 한 짝을 벗고 있었다.
“너는 왜 날짜만 세냐? 날짜 세는 서리는 처음 본다. 가. 가서 사흘 동안 등이나 고쳐. 그리고 제발 판서 댁 근처에는…….”
판관은 말을 끝내지 않았다. 끝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판관도 이제 알았다.
*
그 시각, 판서 댁 안채 부엌 뒤에서는 방물장수 하나가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동백기름, 분첩, 은가락지 모양 놋가락지, 수놓은 귀주머니가 마루에 늘어놓였다. 계집종 넷이 그 앞에 둘러앉아 한숨을 쉬었다. 방물장수는 순덕이었다. 오늘은 얼굴에 검댕 대신 분을 얇게 발랐고, 머리에 가짜 은비녀를 꽂았다. 이번 변장은 무당 때보다 덜 과했는데, 대신 말이 과했다.
“이 동백기름 한 번 바르면 머리카락이 어찌나 반들거리는지, 지나가던 파리가 미끄러져서 넘어져.”
계집종들이 웃었다. 제일 어린 계집종이 귀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우리 집 서방님 중에 둘째 서방님이 이런 걸 사 주시는 분이야. 칠월 전에는 별채 하녀한테 비단 댕기도 사 줬대.”
“둘째 서방님이 누구요?”
“시헌 서방님. 서자. 그래서 다들 둘째라고 불러. 적자 형님이 아니라서.”
나이 든 계집종이 어린 것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칠월에 그 하녀가 죽었잖아. 그날 새벽에 서방님이 도포가 다 젖어서 들어오셨어. 내가 아궁이 불 보다가 봤어. 대감마님이 그 일로 서방님을 사당 앞에 세우고 회초리를 치셨어. 서른 대. 다 큰 서방님을.”
“그만 떠들어. 방물장수 아줌마 귀에 들어간 말은 장바닥에 다 퍼져.”
나이 든 계집종이 순덕을 흘겨보았다. 순덕은 웃으면서 동백기름 단지를 내밀었다.
“나는 귀가 막혔소. 기름이 들어가서.”
순덕은 그 단지를 나이 든 계집종 손에 쥐여 주고 값을 받지 않았다. 포도청 돈으로 산 기름이었으니 순덕의 돈도 아니었다. 계집종은 단지를 받고 나서야 순덕을 흘겨보던 눈을 거뒀다.
*
갑봉 영감의 움막에서 유성은 웃옷을 벗고 엎드려 있었다. 영감이 식초 섞은 물로 등을 닦으면서 끝없이 잔소리를 했다.
“태 열 대에 몽둥이 셋. 나리 등은 이제 시신 등보다 멍이 많소. 내가 검시하면 맞아 죽었다고 적겠소. 판서 댁 서방님 소매는 무슨 맛이었소? 비단 맛이었소?”
“차가웠습니다.”
순덕이 아궁이 앞에서 방물 보따리를 풀다가, 판서 댁 계집종의 말을 옮겼다. 젖은 도포, 사당 앞 회초리 서른 대. 영감의 손이 멈췄다.
“그럼 그 서자 놈이오?”
유성이 대답하기 전에 거적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눈을 밟는 소리가 하나였다. 영감이 국자를 들었다. 거적이 들리고, 갓을 깊이 눌러쓴 사내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등불 하나를 들고 있었다. 갓을 벗자 시헌의 얼굴이 나왔다. 하인도 청지기도 없었다.
움막 안의 세 사람이 모두 굳었다. 시헌은 시렁 위의 식초 단지와 벽에 걸린 거적을 둘러보고 코를 찡그렸다.
“냄새가 지독하구려. 서리가 사는 데요?”
“오작인이 사는 데요. 서방님이 오실 데가 아니오. 그리고 내 갓 값 물어 줄 사람이 또 하나 늘었구먼.”
갑봉 영감이 국자를 내리지 않고 말했다. 시헌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문간에 쪼그려 앉았다. 옥색 도포 자락이 흙바닥에 끌렸다. 시헌은 유성의 등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우리 집 하인들 몽둥이가 맵소. 내 등도 칠월에 알았소.”
“무엇을 말씀하러 오셨습니까?”
“낮에 서리가 물었잖소. 칠월 열여드레 새벽에 어디 있었냐고. 나는 우물 안에 있었소. 그 애를 건지려고 두레박줄 타고 내려갔소. 못 건졌소. 그래서 도포가 젖었소. 아버님은 내가 하녀 일로 집안 이름을 더럽혔다고 서른 대를 치셨소. 그게 내 새벽이오.”
시헌은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불빛이 아래에서 올라와 얼굴의 반만 비췄다.
“그리고 서리가 묻지 않은 것도 하나 말하겠소. 그 애를 누가 우물에 넣었는지 나는 모르오. 그런데 그 밤 별채엔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소. 아버님이 그 사람에게 잘 대접하라고 나를 보냈거든.”
시헌이 유성을 똑바로 보았다.
“포도대장 나리.”